여울에 숨긴 독 / 변 종 호
오래전부터 주천강은 내 유년의 교과서였다. 흐르는 강물은 말이 없었으나 많은 것을 가르쳤다. 모난 돌을 둥글게 만드는 시간, 보이지 않는 강바닥을 더듬는 물살의 집요함, 그리고 작고 못난 것들도 끝내 자기 몫의 자리를 지켜내는 방식까지. 그 가운데 유독 기억에 또렷이 박힌 물고기 하나가 있다. 그 이름도 특이한 퉁가리이다.
처음 봤을 때, ‘픽’하고 웃음이 터졌다. 메기를 닮았으나 몸집은 한 뼘 남짓으로 왜소했다. 진한 밤색의 몸통은 윤기가 도는 대신 불에 그을린듯했고, 대가리는 주둥이 쪽으로 갈수록 납작한 데다 좁쌀 두 개를 박아놓은 듯한 눈이 붙어 있었다. 희고 짧은 수염을 좌우로 세 가닥씩 달고서, 세상을 노려보는 표정이 영 못마땅해 보였다. 누가 보아도 잘생겼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강은 늘 내게 겉모습을 경계하라고 속삭였다. 퉁가리는 탁한 물을 마다하고 맑은 여울을 고집한다. 1급수가 흐르는 여울의 자갈 틈, 햇빛이 물결에 부서져 은빛 비늘처럼 흩어지는 바위틈에서 숨죽여 한낮을 보낸다. 어둠이 깔리면 비로소 움직인다. 야행성의 작은 육식자는 좁쌀눈에 번뜩임을 켜고 강바닥을 더듬는다. 입이 작아 큰 고기는 탐하지 않고, 제 몸에 맞는 작은 물고기와 수서곤충만을 노린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몫만 취한다.
그런 절제가 좋았다. 세상은 크고 화려한 것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지만, 퉁가리는 애초에 욕심이 없는 얼굴로 태어났다. 대신 남모르게 숨겨둔 것을 하나 품고 있다. 아가미 옆과 등지느러미에 감춘 독침. 모르고 움켜쥐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마지막 방패다. 오뉴월 독이 한창 올랐을 때 쏘이면 통증은 살을 넘어 뼛속까지 스며들어 몇 달은 감각이 무딘 채 살아야 한다.
생각해 보면, 비늘 하나 없는 매끈한 몸으로 급한 물살을 여울에서 견디자면 그 정도의 무장은 필요했을 것이다. 세상은 약하고 부드러운 것에 친절하지 않다. 약육강식이라는 단어는 교과서 속 문장이 아니라, 여울 아래서 매 순간 되풀이되는 치열한 생존경쟁이다. 퉁가리의 독침은 공격이 아니라 생존의 마지막 문장이다. 살아남기 위해 마침표처럼 찍어둔 점이라는 생각이다.
강촌에서 나고 자라며 물고기의 습성을 자연스레 배웠다. 퉁가리는 쏘가리나 꺽지, 동자개처럼 육질이 단단해 매운탕감으로 으뜸이다. 이른 봄, 강도래 유충이 통통하게 살찌는 삼월이면 보쌈으로 퉁가리를 잡았다. 사기대접을 광목천으로 싸고, 유충의 냄새를 묻혀 여울의 돌담 아래 묻어두면, 별빛이 강물 위에 흩어질 즈음 대접 속이 퉁가리로 고물거렸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묘하게도 설레면서 경건했다. 강이 허락한 만큼만 거두어 가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그랬던 풍경도 아득하다. 눈에 띄게 개체수가 줄어 구경하기도 쉽지 않다. 강은 여전히 흐르지만, 강물은 예전 같지 않다. 맑은 여울을 고집하던 작은 생명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우리는 발전을 말하며 강을 곧게 폈고, 편리를 말하며 물길을 다듬었다. 그 사이 여울의 숨결은 조금씩 가늘어졌다.
학창 시절, 아이들은 한 친구를 ‘퉁바구’라 불렀다. 왜소한 체격에 큰 머리, 작은 눈. 시력이 나빠 무언가를 보려면 미간을 잔뜩 찌푸려야 했던 아이. 놀림은 일상이었고, 자주 얻어맞았다. 그러던 아이는 망치로 못을 두드려 납작하게 만든 뒤 작은 주머니칼을 만들어 들고 다니며,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에게 달려들곤 했다. 고무줄을 감아서 찔러봐야 겨우 살갗을 스칠 만큼이었지만, 그런 강력한 저항은 그를 향한 조롱을 완전히 멈추게 했다. 돌이켜보면, 그 아이는 이미 자기 안에 독침을 품고 있었다. 세상에 상처받으면서도, 끝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날을 세우고 있었다. 퉁가리처럼.
우리는 종종 단일함을 자랑하고, 같은 얼굴과 같은 생각을 미덕처럼 말한다. 그러나 강을 들여다보면, 생명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흐른다. 납작한 머리도, 좁쌀 같은 눈도, 짧은 수염도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존재한다. 다름은 결핍이 아니라 조건이다. 그 조건 위에서 각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버티고, 숨고, 때로는 찌르며 살아낸다.
퉁가리는 못났다. 그러나 맑은 물을 고집한다. 몸집이 작아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탐한다. 연약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독침을 들이댄다. 이제 퉁가리를 떠올릴 때마다, 생김이 아니라 태도를 본다. 세상이 탁해질수록 더 맑은 여울을 찾아야 한다는 고집, 필요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는 절제, 그리고 끝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이다.
강은 오늘도 흐른다. 자갈 틈 어딘가, 들키지 않으려는 듯 숨죽인 채 퉁가리 한 마리가 한낮을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밤이 오면 다시 눈을 빛내며 제 몫의 세상을 더듬을 것이다. 못났으되 꺾이지 않는 생. 작은 몸뚱이가 내게 가르쳐준 것은, 살아간다는 일의 품위는 크기나 모양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맑은 물을 선택하는 마음, 그리고 자신을 지키는 한 점의 독. 어쩌면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여울에서 각자의 독침을 품은 채 하루를 건너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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