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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서 있는 풍경 / 김국자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11. 4. 29.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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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가 서 있는 풍경 / 김 국 자

 

 

 유월. 멀리서 뻐꾸기가 운다.
  장미꽃이 담을 짚고 밖을 내다보고 있다. 우리 집 장미는 나보다 옆집 부인을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끔 그 부인도 우리 장미꽃을 한참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장미를 나는 질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미를 더 곱게 보아 준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오월에 나는 그 댁 라일락꽃을 바라보기도 하고 꺾어다 거실 화병에 꽂아 놓고 그 향기를 즐겼기 때문이다. 서쪽 담 너머로 세영이네 감나무가 보인다. 그 나무는 해걸이도 안 하는지 감이 해마다 잘 열린다.

  우리 집도 감나무가 있다. 그런데 그 감나무는 감은 열리지만 가을이 오기 전에 다 떨어지고 만다. 자두만한 감이 떨어질 때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저 감은 삶아서 붙여 놓았나 보다”라고 하시며 그 감을 주워 모아 보지만 결국은 버린다.

 

 작년 가을인가 감 하나 달지 못하고 서 있는 우리 감나무가 딱해 보였던지 세영이 엄마는 자기 집 감나무에서 감이 달린 가지를 꺾어다 우리 감나무에 붙들어 매어 놓고는 빙긋이 웃고 갔다. 거실에서 내다보니 제법 나무에 감이 열린 것처럼 보였다. 저녁에 외출했다 들어오던 식구들이 그 감나무를 보고는 한 번씩 웃고 들어왔다.

 

 그 해 그 감이 까치밥이 되어 비도 맞고 눈도 맞으며 겨울이 오도록 나무에 달려 있었다. 그 감을 먹으려고 참새들이 떼로 몰려와 감나무에 앉았다. 참새들은 먹이를 놓고 서로 싸우는 것 같지 않다. 한 놈이 먼저 감을 쪼아 먹은 후 다른 가지로 옮겨 앉으면, 다른 놈이 와서 먹고 그 자리를 비켜 주고, 또 다른 놈이 와서 먹고 날아갔다. 순서를 기다리는 듯 여유 있고 사이 좋아 보였다. 볼이 하얀 새, 울음이 고운 새도 날아와 감을 먹고 갔다.

 

 동네 고양이도 가끔씩 와서 감나무 주위를 맴돌았다. 나뭇가지에 앉아 감을 찍어 먹고 있는 참새를 노려보고는 펄쩍 뛰어 보지만 어림도 없는 짓이었다. 고양이도 겨울이라 먹을 것을 구하지 못했나 싶어 먹다 남은 생선 토막을 감나무 밑에 놓아 주었다. 고양이는 내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기어 와서는 조심스럽게 생선을 먹었다. 찌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먹고 앞발을 핥고 발등을 핥더니, 발톱을 핥았다. 그러고는 가시가 잇새에 끼었는지 앞발을 들어 볼을 비볐다. 그 모습이 귀엽기만 하였다. 감나무가 서 있는 주위로 새들과 고양이가 노닐다 가는 풍경이 그림같이 보였다.

 

 길 건너 앞집 정원에는 느티나무가 있다. 마당에 나서면 그집 느티나무를 보게 된다. 봄에는 가지에 싹이 나기를 기다리고 가을에는 단풍 드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겨울에 눈꽃이 피는 풍경도 보기 좋다. 얼마 전 그 집은 주인이 바뀌었다. 사람은 떠났지만 나무는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래서 자연히 그 집 사람들보다는 나무를 더 오래 보게 된다.

  송(宋)씨―일명(佚名)―라는 이가 쓴〈육려〉라는 시 구절이 떠올랐다.

 

    요사이 뼈에 스민 가난 때문에
    이웃 사람에게 집을 팔았네
    동쪽 뜰의 버드나무 속삭이기를
    후일에 나를 남 보듯 하지 말랬네 

    自歎年來刺骨貧
    吾廬今巳屬西隣
    慇懃說與東園柳 
    他日相逢是路人

 

 그런데 그 집을 산 사람이 이 시를 보고 감동하여 그 집을 송씨에게 도로 주었을 뿐 아니라 송씨의 빚까지 갚아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떠한 사정에 의해서 앞집이 팔렸는지는 모르지만, 들리는 말이 집을 줄여 갔다는 것으로 보아 좋은 형편은 아닌 것 같다. 앞집 전 주인도 이 동네를 어쩌다 지나가며 저 느티나무를 보고 송씨 같은 마음으로 탄식을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공연히 나 혼자 쓸쓸해지는 것이다.

  저녁 나절에 뜰로 나서서 나무를 바라보면 지는 노을 빛을 받아 황금빛을 띠고 있다. 인간이 늙어 가는 모습도 저렇게 곱게 저물어 가면 좋겠구나 생각해 본다.

 

 집 뒤로는 높은 축대가 있고 그 위에 집이 있다. 유월이면 그 집 장미꽃 잎이 뒤뜰로 떨어지고, 가을이면 향나무, 후박나무, 단풍나무의 잎들이 뒤뜰로 떨어진다. 뒷집 사람들은 윗길로 다니기 때문에 얼굴도 모르지만, 나무들도 높은 축대 위에 있기 때문에 자세히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집 뒤에 나무가 있거니 하고 지낸다.

 

 우리 동네는 앞뒤로 산이다. 그리고 집 주위에서 나무들을 늘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마당에 나서면 마주 보이는 앞산이 내 정원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멀리로는 바위 산도 있다. 나는 그 바위 산을 내 집의 큰 정원석으로 보고 산다. 뜰에도 몇 그루의 나무가 있지만, 그보다 집 주위가 나무로 빙 둘러 있어서 이 나무들이 주는 즐거움이 곧 내 행복임을 안다.

 

 우주 시대가 열리고 컴퓨터의 인터넷 속에서 세상 일이 해결되고 있는 때에 나무나 보고 작은 행복을 찾는 사람이라 할지 모르지만 나만의 이유가 있다. 나는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무에 반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집을 사 버렸다는 이도 있듯이, 집도 나무들 속에 있을 때 더 아름답고, 사람도 나무들 옆에 있을 때 더 아름답다.

 

 나무가 서 있는 풍경은 아름답기도 하려니와 마음의 위안과 기쁨을 준다. 나무를 배태하고 길러내는 것이 흙과 자연이어서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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