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눈 이웃들 / 김 국 자
우리 집 동쪽 담 너머는 골목이 있고 그 길 건너에는 차 박사님 댁이 있다.
이른 아침 부인이 꽃밭에 물을 주고 있었다. 나도 잔디에 물을 주고 있었다.
"날씨가 좋은데요."
"예, 할머니 건강하시죠?"
"녜, 건강하세요."
목소리를 높여 서로 인사를 나누며 나는 호스를 골목으로 대었다. 그 부인도 호스를 골목으로 대었다.
담 사이 골목에는 주목, 라일락, 산철쭉, 단풍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물길이 골목으로 안개처럼 번져 나갔다. 우리 집 담 위에 핀 장미꽃이 그 집 복실이를 보고 활짝 웃고 있는 것 같다. 털이 얼굴을 온통 덮고 있는데도 앞이 잘 보이는지 복실이는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긴다. 복실이가 나를 보고 반기는 것은 내가 가끔씩 먹다 남은 뼈다귀를 울 너머로 던지기 때문이다. 울 너머 길에는 낯선 사람은 얼씬도 못 한다. 복실이가 앙탈을 하며 짖어 대기 때문이다. 복실이가 짖어대면 나는 울 너머를 내다보곤 한다. 틀림 없이 낯 선 사람이 지나간다.
서쪽 담 너머에는 세영이네가 살고 있다. 처음 세영이네가 이사 왔을 때는 한 동안 서먹하게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세영이 엄마가 담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달걀 세 개만 꾸어 주시겠어요?"
나는 달걀 세 개를 담 너머로 넘겨 주었다. 잠시 후 칼국수 한 그릇이 담을 넘어왔다. 그 후부터 아예 담을 터서 쪽문을 내었고 그리로 들락거리며 함께 살고 있다. 세영이 엄마가 대문을 잠그고 외출하고 없을 때는 그 집 식구들은 그 쪽문을 통해서 자기네 집으로 들어간다. '밤비'까지 쪽문으로 들어가는 길을 알고 있다.
밤비는 세영이네 강아지다. 다리가 안쫑이고 하마 새끼같이 생겼지만 눈치 하나는 빠르다. 길에서 나를 만나면 쏜살같이 쫓아와서는 나보다 먼저 우리 집 대문으로 들어와 쪽문 쪽으로 달려간다. 나는 쪽문을 열어준다.
밤비는 동네 고양이하고 앙숙이다. 담 위로 고양이가 나타나면 한판 승부를 벌인다. 서쪽 담 위가 시끄러워 내다보면 고양이가 담 위에서 밤비를 놀리는 것이다. 서로 만만치 않은 적수다.
쓰레기 봉투를 담 옆으로 내다 놓고 돌아서는데, 앞 집 흰둥이가 나를 쳐다본다. 애원하는 눈빛이다.
너 쫓겨났구나. 벨 눌러 주랴?"
흰둥이는 그렇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린다.
"딩동딩동, 흰둥이 들어갑니다."
앞 집 초인종을 눌러 준다.
"고마워요."
문이 열린다. 흰둥이는 신바람이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린 문으로 들어간다. 나는 문을 닫아 준다.
흰둥이는 진돗개다. 털빛이 희고 뼈대가 힘차 보이며 두 귀가 쫑긋한 것이 영리해 보인다. 지나가는 개를 보면 무섭게 짖어 대지만, 짖어야 할 때와 짖어서는 안 될 때를 구분 할 줄 안다. 어느 날은 열린 문으로 나와서 지나가는 개와 무섭게 싸웠다. 나는 흰둥이를 응원했다. 물론 흰둥이가 우세했지만, 개 싸움이 사람 싸움으로 번질 뻔한 적도 있었다.
흰둥이는 아침에 주인 아저씨가 출근하는 때를 틈타서 밖으로 나와 산보를 한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닫혀진 대문 앞에서 조용히 문 열리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 것이다. 어쩌다 나와 마주치면, 이렇게 문을 열어 주곤 한다. 그런 날이면 선생이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앞 집은 이사 온 지 오래되지 않아 서로 수인사만 하고 지내지만, 흰둥이하고는 각별한 사이다.
우리 집 뒤로 나서면 높은 축대가 있고, 그 위로 뒷집이 있다. 뒷집 사람들은 윗길로 다니기 때문에 얼굴을 모르고 지낸다. 하지만 유월이면 뒷집 장미꽃 잎이 우리 집 뒤뜰을 덮고, 가을이면 나뭇잎이 끝없이 뒤뜰로 떨어진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공이 날아올 때도 있고 닭이 날아올 때도 있었다. 어느 날은 중 강아지 한 마리가 뒤뜰로 떨어져서 울고 있었다. 나는 강아지를 안고 윗길로 올라가서 그 집 담 안으로 밀어 넣어 주었다. 집 주인은 없었지만 대신 강아지 어미가 돌아온 새끼를 보고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떤 사람은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을 모르고 산다. 개가 짖는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개가 없다. 아니, 개를 길러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앞집, 옆집, 뒷집까지 빙 둘러 개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 귀엽고 믿음직한 이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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