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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 너머의 숨결 / 입국 심사 ㅡ 양 지 연

장대명화 2026. 1. 6. 05:57

                                  렌즈 너머의 숨결 / 양 지 연

 

토요일 봄날, 자카란다 연보랏빛 기억이 시드니 타운홀 돌계단 위에 흩뿌릴 때면, 순례하듯 카메라를 챙겨서 기억의 한 장면을 찾아 나선다. 렌즈를 통해 본 세상은 언뜻 침묵하는 듯하지만, 사람 하나가 그 안에 들어서면 세상이 말을 건넨다. 계단에 앉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입맞춤하는 연인들은, 미완성으로 끝난 젊은 날 기억을 소환한다.

 

처음 본 그녀가 누구에게 말하면서 눈을 깜빡이는 모습, 머리를 뒤로 넘기는 손, 눈 밑에 난 작은 점 따위의 사소한 것들을 바라본 순간, 내 머릿속에선 격정적인 갈망과 행복, 고통스러운 비극까지 초래할 수 있는 사랑을 상상한다. 그때 스스로 발화한 서로에 대한 끌림은 고요했던 두 사람의 마음을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들판처럼 흔들어 놓았던 적이 있다. 그녀는 속삭였다. “빨강과 파란색이 섞이면 보라색이 된다는데∙∙∙∙∙∙”.

 

잠시 다녀간 그 사랑은 마치 해가 질 녘 창가에 잠깐 머무는 빛처럼 따듯하지만 붙잡을 수 없었다. 선명하지만 오래 머물지 않았던 그래서 더 애틋하고 아름답다.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긴다 해도, 빛의 온기까지 담아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종종 시드니 시내 중심가를 찾는다. 그곳에는 사진의 주제나 목적을 미리 정하지 않았다면 사진 찍을 소재가 참 많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물결, 다양한 인종, 나무 그늘 아래 미소 짓는 누군가의 연인, 창문에서 내려다보는 낯선 고양이의 눈빛,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 지하철 유리창에 반사된 저녁 하늘, 온기를 잃은 석양을 배경으로 천천히 걷는 노부부.

 

렌즈를 통해 진짜로 보고 싶은 건 세상이 아니라, 세상 속의 사람들이다. 그들이 있음으로써 완성되는 이야기와 풍경. 결국 남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던 나와 그 사람이 “여기에 있었다”라고 말해주는 기억뿐이다. 사진은 시간을 붙잡는 기술이라지만, 실은 무엇 하나 붙들 수 있는 건 없다. 찰칵, 셔터가 닫히는 소리와 함께 빛은 프레임 속에 갇히지만, 그 순간의 느낌과 마음의 떨림은 오직 기억에만 남는다.

 

오랜만에 옛 친구 K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너 요즘도 사진 찍냐?”라고 물었다. 나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요즘도 찍긴 하지만, 세상은 더 이상 그 순간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 같아.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고, 사진이 너무 많아지고 가벼워져서.” 전화를 끊고 나서 K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앨범 속에서 찾아보았다. 가장자리가 변색한 사진 속 우리는 중학생이었다. 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남긴 자국들.

 

주머니 속에는 빠듯한 용돈과, 24방짜리 카메라 필름이 들어 있었다. 셔터 한 번을 누를 때마다 기도하듯 집중했다. 셔터를 누르는 데 호흡을 멈추고 용기가 필요했던 그 낡은 기계. 카메라는 귀했다. 학교에는 문예 붓글씨 그림 합창 유도 등 특별활동 시간이 있었다. 나는 사진반에 들어갔다. 지도교사는 한 달 넘게 카메라 대신 사진 배우는 책을 들고 들어왔다. 그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초점 맞추는 법, 구도 잡는 법, 빛을 다루는 법에 대하여 읽었던 기억이 있다. 결국 친구들은 각자 사진을 찍거나 현상 후 잘잘못을 가려 서로 가르치고 배웠다. 동네 사진관 집 아이 K가 우리들의 스승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백일이나 돌 환갑 결혼 잔치 전문 사진사였다.

 

나는 가끔 오래된 앨범을 꺼내어 그 시절 사진들을 바라본다. 공기 빛 그리고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작은 세상. 만두 한 접시보다 귀하게 느껴졌던 사진. 그것은 수십 년 전 15살 내가 카메라 프레임을 통해 어떤 세상을 바라보았는지 지금의 나에게 알려준다. “넌 왜 사람만 그렇게 많이 찍어 자연이 훨씬 더 아름답잖아.”라고 친구들이 물을 때면 나는 “그저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셔터를 눌렀을 뿐이야”라고 대답했다. 지금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람이 없는 배경이나 자연은 나에게 아무런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카메라가 포착하는 것은 결국 사람 냄새, 사람 숨결, 사람 이야기다. 렌즈 너머 그 사람이 배경과 겹칠 때, 풍경은 비로소 살아 숨 쉰다.

 

나는 셔터를 누른다. 누군가의 연인이 웃고, 누군가의 뒷모습이 저물고, 누군가는 처음 만나고 있다. 나는 그 순간들 속에서 나의 보랏빛 시절을 발견한다. 그때 우리는 결국 빨강과 파랑으로 각각 제 갈 길을 갔지만, 오늘 여기 타운홀 계단 위 로맨스가 휩쓸고 지나갔던 자리엔 자카란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연보랏빛 기억을 흩뿌리고 있다. 사라졌지만 여전히 곁에 있는 것처럼. 나는 오래도록 착각했다. 사랑은 함께 있어야 완성된다고. 그러나 지금은 안다. 사랑은 함께 있지 않아도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어떤 감정은, 끝나서야 비로소 그 깊이를 알 수 있다. 오래된 사진처럼.

 

그리고 나는 문득, 사랑도 사진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함께했던 순간들은 사랑이 끝난 그 자리에서 조용히 빛을 남긴다. 연보랏빛 자카란다 꽃잎처럼.

 

                                                  입국 심사 / 양 지 연

 

​시드니에 살고 있는 나는 오랜만에 그리던 한국을 방문했다. 꼭 해야 할 일정을 마친 후 남겨진 3일을 나를 위해 뭘 할지 생각했다. 오랜만에 한국에 가면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그리고 호주로 돌아왔을 때 하지 않았던 일을 후회한다. 교보문고에 가서 꼭 그 책을 사 와야 했는데, 고속 터미널 지하상가에서 영화『Peaky Blinders』에 나오는 newsboy 모자를, 광장시장에 들러 떡볶이를 먹어야 했는데 등.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다듬거나 목욕탕에 가서 때를 미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잠원동에 있던 동네 이발소를 찾았다. 중년의 대머리 미용사가 운영하던 이발소는 다른 업종으로 바뀌었고, 주변엔 ‘파마, 염색, 커트, 화장’이라는 간판의 미용실이 있었다. 특히 하얀 바탕에 빨간색으로 ‘남성 헤어컷’이라고 쓰인 소박한 문구에 신뢰감이 밀려왔다. “윗머리는 많이 자르지 말고, 밑부분은 상고머리 형태로 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잠깐 졸다 눈을 뜨니, 아주머니가 물었다.

 

“눈썹 좀 해 드릴까요?”

 

뭔가 해준다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내 의사를 표현했다. 아버지를 닮은 나는 숱이 많아 눈썹이 짙은 편이다. 미용사의 능란한 손놀림이 멈춘 후 거울을 보니 면도로 밀었는지 눈썹이 서양 사람처럼 미간에서 관자놀이 쪽으로 갈수록 가늘고 갸름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눈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뭐∙∙∙∙∙∙.

 

낯선 그 변화가 꽤 신경이 쓰였고 어색했지만, 강한 인상이 좀 부드러워진 것 같고 눈썹이 외국인처럼 변한 내 모습에 살짝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팁으로 몇천 원 더 줬다.

 

12시가 넘기 전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바쁜 신데렐라처럼 한국을 떠나기 전 보고 싶고, 먹고 싶고, 사고 싶은 것들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다.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서둘러 돌아다녔는데 지치지 않았다. 그리움은 힘이다. 해가 질 때쯤 눈과 호흡기가 미세 먼지로 불편해지고 있었다. 그때 간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24시 불가마 사우나!

 

수인분당선이 지나는 모란역 부근을 지나다 버스에서 내렸다. 5층 건물의 유리창에는 사우나 간판 말고도 서로 별 연관성이 없는 보청기, 기원, 한의원, 세무사 등 다양한 업종의 간판이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탕 안에 들어가서 몸을 담갔다. 제법 뜨거웠다. 물이 턱밑까지 닿았다. 벗고 멀뚱멀뚱 서로 바라보는 것이 민망한 듯 명상수련원생처럼 서너 명이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사우나에서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 가며 부지런히 때를 불린 후, 나머지는 때를 밀어주는 사람에게 맡겼다. 그는 아프면 말해 달라면서 우악스러운 손으로 쓱쓱 밀며 앞으로, 옆으로, 뒤로 누우라고 명령했다. 이런 일에 돈으로 타인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에 쑥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태리타월에 박박 밀려 나와 욕실 바닥에 쌓이는 녹두 크기의 때를 바라보며 해탈을 경험했다.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대에서 내 앞에 있던 긴 줄의 사람들이 차례대로 검색대 카메라를 바라보면 즉시 문이 열리고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아, 이게 AI 안면 인식 기술이구나!” 입국자와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정보가 일치하는지 판별하는 거기에 사람은 없었다. 감탄하고 있을 때 내 차례가 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리 카메라를 쳐다봐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내 앞 사람의 상황과 달랐다. 검색대 바로 옆 작은 모니터에는 한 사람과 그림자 같은 또 다른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아이콘이 보였다. 왼쪽, 오른쪽, 위를 보고 또다시 정중히 카메라를 응시했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이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더 당황했고, 결국 보안 요원이 다가왔다. 보안 요원의 지시에 따라 몇 번을 더 시도했지만, 기계는 완강히 나의 입국을 거부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조사실로 가야겠어요.”

 

다른 복장의 보안 요원과 함께 별도의 조사실로 갔다.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혹시 나이 드신 이모가 사과하고 과도를 내 가방에 넣었나?’ 아니면 ‘내가 불법 물건을 가지고 있나?’ 하고 걱정했지만, 보안 요원은 딱히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한 시간 넘게 조사실에서 울렁거리는 시간을 보내며 결과를 기다렸다. 그들은 “카메라에 찍힌 내 얼굴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얼굴과 일치하지 않으며, 중동의 어떤 테러리스트 인물과 67%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라고 했다. 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아니, 그게 왜?

 

질문은 계속되었다.

 

“호주에 처음 온 게 언제인가?”, “현재 거주지는 어디인가?”, “신원을 보증해 줄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가 있는가?”

 

그때 미용실 아줌마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들렸다.

 

“눈썹 좀 해드릴까요?”

 

아~ 눈썹!

 

내 굵고 진한 눈썹을 서양식으로 갸름하게 다듬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으나, 그들도 결국 얼굴 인식 시스템의 오류를 인정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풀려났다. 눈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