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 에서 / 이방헌
바람은 바다 위에 머물면서 뭍으로 올라올 생각일랑 아예 하지 않고 있다. 산 중턱까지 뻗어 있는 높은 돌계단을 오르니 땀이 내의를 타고 등으로 흘러내린다. 남산의 케이블카나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 생각이 간절하다. 겨우 몸이 빠져 나갈듯한 좁은 바위틈을 지나가도 시원한 바람 한 점 없다. 이곳을 해탈문(解脫門)이라 한다지만 해탈은커녕 더위에 짜증만 난다.
대웅전 바로 옆에는 앞서 올라온 사람들이 약수로 마른 목을 적시려고 줄을 서 있다. 그러나 표주박을 한번 들었다. 하면 내놓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갈증만 해소하면 될 걸 물로 배를 채울 모양이다. 빼앗듯이 표주박을 받아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두 번, 세 번, 가슴속엔 빙하수가 흐르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듯 정신이 맑아졌다. 그 때서야 부처님 생각이 났다. 대웅전을 올려다보았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뱃속이 더부룩한 느낌이 든다. 오염된 몸에 정수(淨水)가 들어 오니 오장(五臟)이 놀란 것 같다. 오염된 몸에는 오염된 물을 먹어야 탈이 안 생기는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아침에 장어탕을 먹었다. 장어탕은 이곳의 명물이고 아침 해장에는 제격이라고 하여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 장어가 차가운 석간수(石間水)에 놀란 모양이다. 뱃속이 사르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장어가 이승으로 환생하여 뱃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 같았다.
마침 느긋해 보이는 스님 한 분이 방에 앉아 방문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워낙 급해 그들의 대화중에 끼어 든 것도 몰랐다. ‘화장실이 어디…’ 하고 물어보려다가 “해우소가 어디지요?” 하고 얼른 말을 바꾸었다. 속세에 살다 보니 눈치 한번 빠르다고 스님의 미소는 말하는 것 같았다.
해우소는 스님이 가리켜 준 것과는 달리 바로 요 밑이 아니었다. 바위를 끼고 내려가다가 다시 흙길을 올라가고 숲속을 좌우로 돌아 내려가니 간판이 보였다. 해우소를 찾아 가는 길도 고행(苦行)의 하나였다. 육체의 고통을 없애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몸을 비우고 기도하는 마음 비우기처럼 힘든 일이었다.
얼른 걸터앉았다. 쾌락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무심(無心)의 경지도 이런 것이겠지. 뱃속이 가벼지면서 얼굴이 땀으로 뒤범벅된 것을 그제서야 느꼈다. 땀으로 멱을 감고 있었다. 손으로 아무리 쓸어내도 흐르는 땀을 어쩔 수 없었다. 한여름에 양복을 입고 산사(山寺)를 찾은 것이 잘못이었다. 게다가 해우소는 양지바른 곳에 있어서 그런지 몹시 더웠다. 몸속의 지저분한 것들이 왕창 땀으로 빠져 나가버리면 좋으련만, 그렇게 생각하니 더 이상 땀을 닦지 않아도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 이었다. 비로소 정신이 든 것이다. 배가 더부룩하고 요동치던 것은 해소되었지만 마무리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들어 올 때의 걱정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해우소를 두리번거려 보았다. 너무 깨끗해 그 정갈함이 되레 무서운 정적(靜寂)마저 느끼게 한다. 하얀 시멘트벽엔 화장지를 걸어 놓았던 못자국 하나 찾을 수 없었다. 관광객이 읽다 버리고 간 흔한 스포츠 신문 한 장 보이지 않았다. 쭈그리고 앉은 채로 힘들게 호주머니를 뒤집어 보았지만 옷을 갈아입고 오느라고 손수건도 챙기지 못했다. 넥타이는 왜 매고 오지 않았을까.
바로 앞의 휴지통이 얼른 눈에 들어왔다. 땀이 눈으로 흘러들어왔지만 물안경을 쓴 듯 물건을 분간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개안(開眼)의 환희를 느꼈다. 거기엔 구겨진 휴지가 쌓여 있었다. 생명이 없는 종이 쪽지인데도 왜 속세에 잠깐이나마 더 머물다 가도록 했을 까. 자비로운 부처님의 배려는 역시 깊었다.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거기에는 그림이 여러 폭 있었다. 그림 전시장이었다. 캔버스 가득 노란 개나리를 그려 놓은 수채화가 있는가 하면 황금색 물감을 잔뜩 붓에 묻혀 한 덩어리 덥석 발라놓은 유화(油畵)도 있었다. 고흐의 해바라기도 피어 있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동양화에 가 있었다. 안개 낀 아침의 농촌 풍경을 파스텔 빛으로 그려 놓은 은은한 색깔의 동양화에 마음이 머물렀다. 물가에 젖은 난(蘭)도 나의 긴 눈빛을 받으며 미소 짓고 있었다. 한쪽이 찢어진 추사(秋史)의 <세한도(歲寒圖)>도 있었다. 언제부터 내가 동양화를 그처럼 좋아했던가. 현란하고 원색적인 그림보다 나는 동양화의 여백(餘白)이 정말 좋았다.
그 많은 그림 중에 난이 그려진 그림 몇 점을 골라 조심스레 정성껏 폈다. 해우(解憂)가 되었다.
그림 값은 여유를 가지고 나중에 지불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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