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속의 나무 / 김선화
길을 잘못 들어, 타고 있던 버스에서 내려 되짚어 걷는 길에 괴목 한 그루를 만났다. 나무 주변에 하얀 띠가 둘러쳐진 것이 의아해 다가가 보았다. 어른의 서너 아름이나 됨직한 몸통에 쭉쭉 뻗은 굵은 가지. 그런데 어딘가 좀 어색하다. 전체적 균형이 잘 맞지 않아 보인다. 하늘거리는 윗가지와 굵은 밑동이 겉돌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내가 잘못 보았나 싶어 꼼꼼히 살핀다. 그러다가 나는 손뼉을 딱 쳤다. 그러면 그렇지. 각질 두터운 묵은 표피 속에 가늘고 보드라운 몸통 하나가 더 들어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아기나무다. 청소년나무다. 아니, 그보다는 조금 더 자란 청년나무다. 즉 청운의 뜻을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하여 팔 뻗는 청년이다.
일순 가슴에 뜨끈한 것이 밀려온다. 굳건한 성 안에서 내공을 키우는 저 나무. 우리들이 보호해서 키워야 할 아기였던 내 아이들. 크느라고 용을 쓰는 햇(?)나무 곁에서 맥박 박동수가 빨라진다. 이것이 바로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지 하며 뿌듯해 한다. 한편으론 아이들의 비밀스런 꿈을 엿본 것 같아 멋쩍기도 하다.
쇠잔해가는 묵은 나무의 기운을 눈치 못 챈 채, 나름대로 키워가는 꿈의 무늬가 저 작은 몸통에도 증거로 남겠지. 그 결을 아는 듯 모르는 듯, 괴목은 자신의 수액을 먹고 자라는 소생이 마냥 대견스러운 폼이다. 완전히 여물어 독립할 때까지 거친 바람 막아주며 서 있는 의지가 숭고하다. 어린것이 그럴싸하게 꼴을 갖출 때까지 의연한 척 하는 묵묵한 몸짓에서
사람살이의 질서를 느낀다.
뿌리와 뿌리, 핏줄과 핏줄사이의 유대관계처럼 극명하게 드러나는 질서가 또 있을까. 사람과 사람 간에 본받고 싶은 모습은 젖혀두고라도 부인하려 한 기운조차 은연중에 닮아 놀라울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농부로서의 적응이 몹시도 어려운 아버지를 배경으로 하여 자라났다. ‘가장’이란 현실에 발은 묻었으나 늘 이상세계로의 추구가 강해 몇 몫의 인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땅에 씨앗을 뿌려 결실을 거두는 농민으로,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지관(地官) 선생으로, 또 동학(東學)을 깊이 이해한 도인으로…. 청소년기의 내 눈엔 그러한 아버지가 마냥 곱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문학에 젖어 사는 내가 이즈음, 어느 고정된 틀을 거북해 한다.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성정에서 아버지 닮은 면면이 종종 확인된다. 한데 모순되게도 그것이 정신적 출구구실을 한다.
서성이던 마음을 거두며 방향을 새로 잡는다. 그때 ‘성황신목(城隍神木)’이라 적힌 안내판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이미 고사(枯死)상태란다. 과천동 4거리 횡단보도 중간에 있던 것을, 20여 년 전 도로확장공사를 하며 이곳 남태령 초입으로 옮겨 심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기존의 성황신목 안쪽에 다른 나무를 이식했다는 점이다. 일순 좀 전까지의 신비가 싹 가시며 허탈해진다. 한마디로 형용키 어려운 이 진실을 무엇이라 일컬어야 할까.
문명의 잣대를 대면 이는 집착이고 퇴보다. 신목(神木)에 대한 미련이다. 마을사람들은 느티나무 한 그루를 오랜 세월에 거쳐 성황신이라 믿었기에, 그 생이 다한 후에도 함부로 취급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발로에서 앞선 상징물을 대신할 만한 존재로, 외모 출중한 아기 신목(神木)을 선택해 키우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가 하면 이 묵은 나무는 생 저편에 들고도 이렇듯 사람들 마음을 휘어잡고 있으니, 정말 신통력이 있긴 있나보다. 게다가 지금 대통 이어갈 후계자를 훈육(訓育)중이지 않은가.
그러나 수액 말라버린 뿌리의 틈을 비집고 새 뿌리를 뻗어가는 나무에게로 자꾸만 시선이 간다. 처음 내가 큰 나무에서 풍겨나는 기품을 찾아 서성였다면, 이젠 반대로 그 강렬한 기운에 에워싸인 작은 나무의 본질에 대해 연민의 정이 인다. 저것도 애초 부여받은 나름의 몫이 있었을 터, 그 몫이 바로 수백 년 묵은 신목의 자리를 대신해주는 것이었을까. 우리 사람으로 치면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스승은 스승대로 제자는 제자대로의 고유한 성향이 있는 것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눈앞에 펼쳐진 모습이 괴이하기만 하다. 게다가 길가 풍경에 정신 팔려 갈 길도 잊은 채 어슬렁거리는 나는 더 해괴하다.
눈길을 돌려 나무의 역사를 더듬어본다. 해마다 음력 시월 초하룻날에 이곳에서 대동제의 성격으로 ‘성황신목제’가 열리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중단되었다가 다시 이어간다고 한다. 나무아래 모여 머리 조아리는 의식조차 민족적 정서라 하여 맥을 자른 실태가 어디 이 마을, 이 나무그늘뿐일까. 그 암울한 시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 풀어놓을 장(場)을 그리며 나약해지려는 마음자리를 자연에 기대어 다독였을까. 그러고 보니 이 나무는 그러한 민심을 다 알아주는 큰 어른구실을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로부터 나흘 뒤, 차창 밖으로 들어오는 성황신목에 하얀 꽃이 피었다. 팔 뻗어 닿을 법한 가지가지에 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소지(燒紙)꽃’이 한창이다. 신목(新木)이 오랜 세월 추앙받아온 묵은 신목(神木)을 아우르며 성황신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기세이다. 아니 벌써부터 신통력이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와 현대의 조우다. 자칫 불협화음을 낳을 수 있는 기성세대와 신세대간의 절묘한 조화다. 고목 깊숙이 뿌리를 묻으며 내면을 가꾸어온 새 나무는, 이미 그 전통적 혼을 부여받아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지 않은가. 저렇듯 어우러져가는 대물림에서 사람살이의 듬직한 미래를 읽는다.
아울러 쉼 없는 사유의 장에서 삶의 본질을 생각하는 나는, 주변 사람들의 정성을 먹고 자라 ‘문학’이란 큰 나무속에 뿌리 내리는 한 그루 작은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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