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내 계절을 지나/ 노 영 운 (2025 광화문글판 에세이 우수상)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가장 먼저 귀를 기울인다. 거실에서 돌아다니는 엄마의 인기척은? 창문 밖의 달궈진 자동차 소리는? 제대로 가늠이 가지 않을 때, 나는 직접 입 밖으로 목소리를 토해내 본다.
“아아. 아아아.”
세심한 시험을 통해 귀가 먹먹하거나, 검열 소음 같은 삐- 소리가 사이렌처럼 머리를 울려댄다 싶을 때는 침대 옆 책상의 약통에서 알약을 꺼내 먹는다. 내 책상 책꽂이 한편에는 약국에서 처방받은 약봉지가 빼곡했다. 아직 먹지 못한 약도 많고 유통기한이 지난 약도 많지만, 없는 것보단 차라리 필요 없더라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았다.
나는 돌발성 난청을 앓고 있었다. 고2 가을에 발병된 돌발성 난청은 고3을 지나 20살의 새해를 함께하고 있었다. 온 세상이 나를 놔두고 홀로 앞서가 멀리서 속삭이는 기분 나쁜 감각. 육체는 현실에 있지만, 청각만은 저 아래 파묻혀 마치 현실의 소음을 지직이는 라디오로 넘보는 듯한 괴리감. 그 불쾌함과 어지럼증은 이제 내게 외면과 반항을 일으키기보다 ‘오늘은 조금 심하네’ 따위의 가벼운 감상으로 나를 순응시키고 있었다.
내가 앓는 돌발성 난청은 영구적인 청력의 손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든지 영구적인 손상으로 남을 수 있다고 고2 때 의사는 말했다. 그 한 마디는 당시의 내 안에 경각심으로 포장한 불안함의 씨앗을 낳았다. 고3에 올라간 나는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아침에 증상이 있으면 쫓기듯 개원 시간보다 일찍 병원에 들렀다. 수업 시간에도 툭하면 불안함에 귀를 기울여 양쪽 귀의 청력 차이를 느끼려 했고, 조금이라도 이상하다고 느낄 땐 망설임 없이 조퇴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어 그래. 왔니?”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담임 선생님의 시선조차 무심하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병원에 들려 챙겨온 진단서는 접혀져 고3 학생 관리로 바쁜 담임 선생님의 책상 구석으로 향했다.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걸 바라보며 선생님이 내가 어디가 아픈 건지, 병명이 뭔지 정확히 기억은 하실까 의문하게 되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상황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멀쩡해 보이는데 저 정도까지인 걸까, 하는 눈빛을 보내곤 했다. 가끔 동정표를 던지는 이들도 있었지만 앞선 이들의 반응으로 내가 그들을 속이는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그 시점에서 나는 그저, 한낱 난청 호소인으로 전락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입으로 돌발성 난청에 대해 말을 꺼내는 일은 줄어들었다.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더라도, 병명을 꺼내기보단 잘 못 들었으니 한 번만 다시 말해달라며 머쓱하게 웃어넘기곤 했다. 그렇게 그냥 속에 묵힌 채, 조용하게 지내기 시작했다.
그런 하루하루가 반복되다 보니 언제부턴가 내 방은 죽어버리고 말았다. 창문은 외부의 잡다한 소음들을 가렸고, 한때 온갖 선율을 연주하던 사운드바는 먼지로 덮여 있었으며, 스마트폰은 최소 음량으로만 소리를 유지해두고 있었다. 스스로도 메마르고 있다고 실감할 정도로 지독한 침묵의 늪이었지만, 조금이라도 증세가 악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사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방 속에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듣는 것이 불안했으니까.
그러나, 이따금씩은 약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날이 있었다. 그럴 경우엔 여느 때처럼 큰 소음을 대비한 귀마개를 챙겨 병원으로 향한다. 4월 초였다. 20살이지만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런 몸 상태로 학교를 다니기엔 여러 애로 사항이 있었으니까. 고등학생 때처럼 학교에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사라진 하루는 무료함과 동시에 근원 모를 조바심을 일으켰지만, 한편으론 어느 때보다 후련했다. 매일매일 폐를 옥죄이던 특유의 압박이 사라져 있었다. 마침내 자유가 된 노예의 기분이랄까. 조금은 가벼워진 사람들의 옷차림과 추위에 움츠러들지 않고 꼿꼿하게 세운 허리가 이전엔 없었던 개운함을 일깨웠다.
청력 검사를 받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의사의 조언이 끝난 뒤에 가벼운 치료를 마치면, 처방전을 받는다. 하지만 그날은 약국에 들르지 않았다. 약이 남는 한이 있더라도 언제나 처방을 빼먹지 않던 내게 그건 그저 어쩌다 한 번 있을 단순한 변덕이었을까.
간만의 외출을 만끽하며 돌아온 아파트 단지. 파릇한 나뭇잎 무리의 반짝이는 그림자 위를 걸었다. 문득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달큰한 꽃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고개를 들었다. 풍성하기보단 쥐어 짜낸 듯 피어오른 봄날의 꽃. 부는 바람에 떨어지고 있는 꽃잎들이 내가 이 봄의 일부에 섞여 있다는 듯 나의 세상을 한가득 품어 안았다.
집에 돌아왔다.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방의 창문을 열었다. 몸을 웅크리게 만들었던 백색 겨울은 지나갔다. 산뜻한 기류가 몰아쳤다. 싱그러운 햇살이 방을 일깨우고, 상쾌한 공기가 폐부를 벅차게 만들었다. 짹짹, 희미하게 지저귀는 새소리가 나와 방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물러날 곳 없는 지금이야말로 시작이라는 양, 봄바람은 단조로웠다.
아무리 귀가 먹먹해도, 삐- 이명 소리가 나를 방해할지라도, 내게 봄은 듣는 것이 아니었다. 침묵이란 계절의 끝맺음이자, 새 출발의 신호탄. 불안이란 밧줄을 풀어헤치는 자유. 창문을 여는 것만으로 나는 봄에 묻어있었다.
'추천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버지의 애첩 / 김 사 랑 (0) | 2025.09.12 |
|---|---|
| 땅에는 불국사, 하늘에는 운주사 / 박 용 수 (1) | 2025.09.08 |
| 品이 품은 뜻은 / 김 선 자(2025 경북이야기보따리수기공모전 입선) (0) | 2025.09.08 |
| 크리넥스의 진료학/ 노 대 영(제 12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금상) (1) | 2025.09.06 |
| AI가 투병기를 쓸 수 있을까 / 박희곤(2025 매일시니어 문학상 수필부문) (0) | 2025.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