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品이 품은 뜻은 / 김 선 자(2025 경북이야기보따리수기공모전 입선)

장대명화 2025. 9. 8. 23:21

                         品이 품은 뜻은 / 김 선 자 (2025 경북이야기보따리수기공모전 입선)

 

소백산 자락을 달리는 길, 푸른 기운이 어서 오라고 두 팔을 활짝 벌린다. 오월의 끝자락, 드넓은 들판은 온통 초록 잔치다. 여기저기서 풀빛 꽃빛 나풀대고, 흙내음 팔랑팔랑 흩날리니 나도 바람몰이를 나선 기분이다. 금계국 노랗게 밝히는 길을 따라 구불구불 돌다 보니 한적한 마을로 들어선다.

 

고즈넉하던 오솔길을 걷는다. 길 끝, 숲속 언덕 위에 자리한 기와지붕 대문이 빠끔히 내다보인다. 경북 영주 순흥면 내죽리, 금성대군 신단이다. 솟을대문을 넘어 신단 쪽으로 향한다. 제단으로 올라가는 문이 세 개다. 신이 다닌다는 가운데 태극문은 닫혔고, 살아 있는 사람이 드나든다는 양쪽 작은 문은 열렸다. 문 앞에는 호위하는 소나무가 양쪽에서 마주 본 채 허리를 굽혔다.

 

나 또한 공손히 신단 문을 들어선다. 단종의 슬픔을 간직한 단소壇所는 왕조의 아픈 기억을 품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위쪽 상단에 금성대군을 모셨다. 앞의 동쪽 제단은 이보흠을 모셨고, 서쪽 제단은 함께 죽어도 이름을 남기지 못한 순절 의사를 모신 단이다. 망자의 품격을 말해주듯, 돌로 만든 3개의 제단이 품品자 모양을 갖췄다.

 

매년 봄가을에 유림 관계자들이 제사를 지내는 제청祭廳과 음식을 준비하는 주사廚舍의 건물 모양이 같다. 용마루의 곡선을 따라 토담의 기와지붕까지 하나로 이어져 네모지다. 신단 □을 위에 두면 아래 양쪽의 기와집도 □이다. 그래서 신단 전체 건물까지 品자로 배치했다.

 

신단을 나와 주변을 둘러본다. 돌담 너머 우뚝 선 한 그루 나무와 눈이 마주친다. 바로 압각수鴨脚樹, 금성대군의 숨결을 기억하는 은행나무다. 500년을 자란 나무는 마치 조선왕조의 참담한 역사를 모두 지켜본 산증인처럼, 그날의 이야기를 아느냐고 나직이 묻는 것 같다.

 

소수서원 입구를 지나자마자 다리를 건넌다. 물길 위에 놓인 다리 앞엔 한 많은 사연이 서린 비석 하나가 서 있다. 숙종 36년, 1710년에 세워졌다는 제월교라는 이름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지만, 피의 역사를 간직한 다리이다. 이곳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청다리라고 부른다. 다리 위를 찬찬히 살피다 보면, 헐벗은 상흔이 그날의 폐허를 낱낱이 꿰들고 있었다.

 

이곳 순흥 땅에, 세종의 아들이자 단종의 수호자였던 금성대군이 내려온다. 단종 복위를 꿈꾸며, 순흥부사 이보흠과 지역의 선비들이 청다리 부근에서 은밀히 뜻을 모은다. 그러나 젊은 관노 하나가 풍기 현감에게 모든 계획을 밀고하면서 거사는 허망하게 들통나고 마는데,

 

깊은 밤, 소리도 없이 관군들이 몰려든다. 어둠을 뚫고 순흥 고을을 빙 둘러싸더니, 칼끝이 번뜩이며 고샅길 안으로 스며든다. 세조의 명을 받은 군사들은 망설임 없이 창을 들고 민가로 들이닥친다. 대항하는 자는 물론이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비명이 터지기도 전에, 창끝이 몸을 꿰뚫고 칼날이 살을 가른다. 가옥마다 불이 번지고, 연기가 허공에 스민다. 그저 잠자던 이들도,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나온 이들도, 하나둘 청다리 아래로 내몰린다. 그곳에서 말로 다 담지 못할 참극이 벌어진다. 수많은 이들이 그렇게 모조리 죽임을 당한다.

 

결국, 금성대군이 포박당한 채 끌려간다. 관군들의 눈빛은 차갑고, 포승줄은 피가 배어든다. 조정은 그에게 역모의 죄를 씌운다. 사약 한 종지, 대군은 떨림 없이 그것을 받아든다. 이보흠, 그는 차디찬 고문틀 위에서 온몸이 부서지도록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된 채 유배지로 향한다. 먼 길, 그의 발목엔 쇠사슬이 채워지고, 숨은 점점 거칠어진다. 끝내 평안북도 남부의 어느 외진 군에서 밧줄 하나가 그의 숨통을 죄어온다. 복위를 꿈꾸던 이들, 그 뜻을 피로 적으며 결의를 다졌지만, 끝내 청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결을 피로 물들인다.

 

청다리 아래, 물길은 여전히 조용히 흐른다. 하지만 눈을 떼기 힘들다. 물 위로 언젠가 수많은 피가 흘러내렸다는 사실이 땅과 바람에 새겨져 있다. 죽계천은 붉은 물살을 머금고 십 리를 흘렀고, 물이 멈춘 그 끝자락 지금의 동촌1리에 머물렀다.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피 끝’이라 부른다. 물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 순간 지도에서 사라진 고을의 자취가 불쑥 다가온다. 순흥부. 누군가 지운 이름, 그러나 이 바람과 냄새와 흙 속엔 아직 살아 있다. 역도의 고을이라 낙인찍힌 그 땅은 긴 침묵 속에 묻혀 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코흘리개 적 나는 엄마한테 혼이 났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보리밥 안 먹는다고 혼나고, 흙구덩이에서 굴러다녀 옷 더럽힌다고, 남동생이랑 싸운다고 혼났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꼭 같은 말을 했다. ‘넌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 바로 그 이야기의 효시가 이곳 청다리다.

 

역사는 때로는 차마 말하지 못하는 사실은 시쳇侍體말로 은유한다. 고아가 된 자식들을 하나둘 몰래 집으로 데려와 자식처럼 길렀다. 아이들이 자라 출생을 물으면 모두 입을 맞췄다. “너는 청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어릴 적,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이 무척 서러웠다. 그래서 엄마가 계모가 아닌가 생각하면서 몰래 옷깃을 적셨다. 그 숨은 뜻을 오늘에야 알았다. 부모가 청다리에서 희생당했고, 의롭고 절개 있는 선비의 자손이니 부디 근본을 잊지 말고, 굳건히 자라달라는 깊은 의미가 숨어 있었다. 그래서 아이가 성장했을 때 그 숨은 뜻을 알고 부모를 공경했다.

 

죽계의 물줄기를 따라 걷는다. 소수박물관을 지나 서원 둘레길을 가로지르다 보니, 백운교 아래 敬자가 붉게 새겨진 바위가 보인다. 그런 억울하고 참담한 희생 앞에서, 사람들은 그저 역적이었다는 역사적 낙인이 아니라, 이들은 목숨을 걸고 의로운 충절을 지켰기에 마땅히 공경해야 한다고 새기지 않았을까. 저 敬에 숨은 뜻도 오늘에야 읽힌다.

 

品은 단순한 상형문자가 아니다. 그 속에는 말하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 숨죽인 충절, 그리고 함께 울던 백성의 마음이 겹겹이 새겨져 있다. 品이라는 모양 안에 모인 이들은, 역사의 변두리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제 희생을 품은 품격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있다. 잊힌 충절이 기억의 자리에 앉는다.

 

나는 오늘 그 품을 바라본다. 이제야 겨우, 품이 품은 뜻을 생각한다. 그리고 敬자 앞에 가만히 고개를 숙여 경배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