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을 알면 문학이 보인다 / 백 임 현
올해는 시인 백석이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서점에 가서 새로 나온 책을 보다가 <백석문학 전집 1.2권>이 눈에 띄어 집어 들었다. 아- 백석, 처음 백석의 시를 만났을 때의 감격과 기쁨을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거의 그것은 충격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백석 시의 열광 팬이 되었다.
백석은 월북 작가 아닌 재북작가였음에도 80년대 중반 해금 조치가 내려지기 전까지는 거론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금기의 시인이었다.
그러나 일단 해금이 되고 백석의 문학이 햇빛을 보게 되자 막혔던 봇물이 일시에 솟구치듯 백석의 시는 진주처럼 새로운 빛을 발하며 문단의 뜨거운 관심이 되었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현역 시인들 중 많은 사람이 문청 시절 백석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또한 지금까지 600여 편이 넘는 석박사 학위논문이 백석의 시를 테마로 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백석 시를 처음 만난 것도 어느 학자의 학위 논문에서였다.
다시 읽어도 놀라움과 찬탄이 절로 나오는 주옥같은 명시. 서사적 구조로 이야기되는 시의 세계는 기법이 신선하고 이채롭다. 평안도 정주 지방의 투박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토속 사투리를 거침없는 시어로 활용해 우리 민족의 정서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 당시 새로 대두되기 시작한 서양의 사조(思潮)에 휩쓸리지 않고 어떤 유파에도 가담하지 않았던 그의 시는 그래서 독특한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그의 시 속에는 우리 할머니들의 옛이야기가 숨 쉬고 있으며 전통적인 생활 습속과 음식을 통해서 주고받던 인정이 있고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했던 우리 고유의 민간신앙이 토착어로 녹아 있다. 시집 ‘사슴’에 수록되어 있는 <가즈랑집> <여우난 골족> <고방>등을 읽으며 우리는 지난 시대의 전통문화를 생각하게 된다.
그의 유년 시절을 이야기한 <오리 망아지 토끼>에는 평화롭고 아름답고 따뜻함이 넘치는 사람들의 생활 풍경이 동화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시는 대체로 춥고 외롭고 쓸쓸하고 슬프다. 그러나 따뜻하고 정겹고 눈물겹다. 그것은 일제의 탄압이 가속화되던 30년대 중반, 식민지 지식인의 울분과 좌절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며 개인적으로는 이루지 못한 사랑의 상처와 친구의 배신 등으로 뼈아픈 체험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건상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했던 객으로서의 고단한 여정이 시인의 가슴에 비애와 뿌리 깊은 정한으로 심어져 시적 배경을 형성했을 것 같다. 예술은 고난의 소산이라는 말을 입증이나 하듯이 고향을 떠나 방황하면서 쓴 그의 시는 평자들에 의해 모두 백미로 꼽히고 있다. <흰 바람벽이 있어><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조당에서><두보와 이백같이><귀농>은 읽고 다시 읽어도 가슴을 훑어내리는 감동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는 그의 대표작으로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여우난골족><모닥불>을 꼽는다. 그러나 나는 <오리><선우사(膳友辭)><연자간><개>를 인상 깊게 읽었다. 미물에 이르기까지 정감이 풍부했던 그의 섬세한 감성과 낙천성이 위안을 준다.
백석 시를 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시어로 구사한 평북 방언에 대해 특별히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는 놓칠 수 없는 중요한 특징이 발견된다. 소리와 형태의 묘사다. 우리말이 갖고 있는 개성과 언어감각을 산뜻하게 살려 낸 표현기법이 아닐까 싶다.
-오리야, 밤길에서 까알까알 하는 너이들의 즐거운 말소리가 나면..<오리>
-저기는 산그늘이 그늘그늘 여기는 햇살이 챙챙 <황일>
-덕신덕신 이야기 하고 싶은 길이다<창원도>
-고기비늘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바다>
-흰 당나귀도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새끼 오강에 한 없이 잘 누는 오줌의 사르릉 쪼로록 하는 소리 <동뇨부>
-향내 높은 취향리 돌배 움퍽움퍽 씹으며 <안동>
어느 시에서도 볼 수 없었던 백석 시의 이런 표현들은 생동감 넘치는 리듬감으로 시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한다.
이처럼 뛰어난 시를 쓰는 천재시인이었지만 그의 생애는 불우했다. 그는 자신의 불행을 예견이나 한 듯이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이렇게 자신을 노래하고 있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사랑하고 귀애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흰 바람벽이 있어> 끝부분
젊은 시절에는 이루지 못한 사랑과 친구의 배신으로 상처를 입었고, 28세 때 만주로 떠나서는 남의 집 방을 얻어 거주하면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측량 서기와 세관업무에도 종사했으며 남의 집 땅을 빌려 소작인 노릇도 했다. 만주에서 광복을 맞이한 그는 고향인 평북 정주로 귀향하여 문화 예술 총동맹 중앙위원회에 임명되어 번역 활동과 아동문학에 관련한 글을 쓰며 문학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59년 초 당성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소위 <붉은 편지> 사건으로 평양에서 추방되어 삼수군 관평리에 있는 국영 협동조합의 양치기 노동자로 추방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당국의 조처가 감사하다며 김일성 체제를 찬양하는 글과 사회주의 혁명을 옹호하는 글을 열심히 쓰면서 복권되기를 염원하였다. 그러나 끝내 복권은 되지 않았으며 그나마 쓰던 글도 62년 무렵 복고주의 비판으로 작품 활동을 일체 중단하고 1995년 84세로 사망할 때까지 삼수군 오지에서 양치기 노릇을 하면서 생을 마감했다.
백석 시인은 재북 작가다. 분단 이후 북쪽 문단에서 그가 쓴 글들은 이미 문학이 아니라 체제 찬양을 위한 선전문에 불과했다. ‘얻은 것은 이념이요, 잃은 것은 예술’이라고 한 회월 박영희 말처럼 살벌한 이념의 현장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그의 몸부림은 예술보다 더 절실했던 것 같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백석이 남쪽에 있었으면 우리 문학사에 눈부신 획을 그었을 것을. 안타깝고 슬프다. 그의 생애와 문학은 한 시인이 살다간 개인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대변하는 뼈아픈 비극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우리 문학사에 보배 같은 존재다. 식민지 침탈의 위기 앞에서 국권이 상실되고 우리 고유의 전통과 문화가 말살되어 갈 때 그는 우리의 말과 관습과 민족의 정서를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켜 겨레의 뿌리를 지켜낸 애국자였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조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의 보석 같은 시편들은 시공과 이념을 초월하여 우리들 가슴에 기쁨과 위안을 줄 것이다. 올해는 1912년에 태어난 백석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에게 바치는 헌사로 이 글을 쓴다.
우리에게 백석이 있었음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역사를 알면 오늘이 보이는 것처럼 백석을 알면 문학이 보인다.
추억의 경의선 / 백 임 현
경의선이 지나가는 일산 신도시에는 나와 친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런 연유로 나는 일산 나들이를 자주 하는 편이다. 이곳 도봉에서 그곳까지는 전철로도 두 시간이 더 걸리는 수월치 않은 거리이다. 이렇듯 가는 길은 멀어도 나는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간다. 일산을 중심으로 고양시 일대는 어디를 가나 내 추억의 편린들이 숨 쉬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일산 신도시인 탄현에서 작은 모임이 있는 날이다. 늘 전철을 이용하였으나 이번에는 특별히 경의선을 타기로 하였다. 신촌에서 출발하는 경의선 열차는 매시 정각에 문산을 향해 출발하는데 새로 만든 관광 열차이다. 기차 겉면에는 보통 열차와 달리 흰색 바탕에 예쁜 꽃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보기만 해도 꿈같은 여행길을 생각하게 한다.
오랜만에 달려보는 경의선 기차다. 수십 년 전 나는 경의선 기차 통학생이었다. 아침, 저녁 이 길을 다녔기 때문에 눈을 감고도 철로 연변의 풍경이 환하게 떠오르곤 하였다. 서울역에서 문산을 향해 가자면 왼쪽에 한강을 끼고 펼쳐진 행주벌과 오른편으로 철로를 따라 이어지는 높고 낮은 야산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니 산도, 들도 옛 모습은 아니었다. 눈이 시리게 이어지던 벌판에는 전에 없던 아파트 단지와 신작로가 뻗어 있고, 사철 숲이 무성하던 산들도 이리 깎이고 저리 허물어져 높고 낮은 건물이 들어서 시가지가 되어 있는 곳이 많았다.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는 것은 단지 평행선으로 이어진 경의선 선로뿐이었다. 그리고 퇴색하지 않은 나의 추억이었다.
일산역 못미처에 이름도 아름다운 백마역이 있었다. 이 정거장은 옛날에 없던 것이다. 백마역 앞에 있는 백마초등학교는 아버지가 칠 년을 재직하시던 곳이다. 신설학교로 부임하신 아버지는 학교 이름을 그 지역 두 곳의 머리글자(백석, 마두)를 따서 백마학교로 명명하셨다. <백마학교의 백 교장> 이것은 그 무렵 심심치 않은 화제 거리였다. 지금은 확고하게 그곳의 지명이 되어버린 <백마>는 우리 선친으로부터 유래된 것이었다. 평생 동안 아버지의 근무지는 고양 파주 일대인 경의선 부근이었기 때문에 나의 유년기와 젊은 날의 추억도 그곳을 벗어날 수가 없다. 경의선 철로와 기차소리, 통근차를 타고 내리던 수많은 사람들의 부산한 발소리 등…. 그리고 나의 꿈도 고뇌도 사랑도 경의선 부근에서 일어나고 사라졌다. 경의선, 거기엔 내 젊은 날이 있는 것이다.
직업상 전근을 자주 하시던 아버지는 해방 직후 경의선이 닿는 일산에서 근무하시게 되었다. 아이들의 교육문제 때문에 일부러 지원을 한 것이라고 했다. 그곳에서는 서울로 기차 통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하루 서너 차례씩 오르내리는 경의선 열차가 교통수단의 전부였다. 일산뿐 아니라 문산 장단 개성에서도 모두 새벽 통근차를 이용하여 서울로 출퇴근을 하였다. 정거장 근처에서도 철로 변에 살았던 우리는 늘 흰 구름 같은 증기를 뿜으며 거대한 쇠바퀴를 움직이는 기관차의 힘찬 굉음을 생활 속의 한 부분으로 익히며 살았다. 언제 보아도 그 광경은 아이들에게 신나는 구경거리였다.
꼬리를 물고 달리는 긴 기차 칸은 열 칸도 더 되었는데 그중에 한 칸은 여학생만 타는 여학생 칸이었다. 아직 초등학생인 우리들은 통근차가 지나가면 언제나 여학생 칸을 먼저 찾았다. 밖에서 보아도 그 칸은 꽃밭인 듯 밝고 화사했다. 교복을 입은 예쁜 여학생들이 창가에 앉아 재잘거리는 모습은 너무도 행복해 보였고, 가끔 우리를 보고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는데 그들은 우리 가슴에 선망과 동경을 심어 주고도 남았다. 그때 우리 어린 친구들의 꿈은 어서 여학생이 되어 서울로 통학하는 것이었다.
머지않아 나도 마침내 여학생 칸에 타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기차를 타고 보니 차 안의 모습은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화려한 것만은 아니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여학생들의 모임이라 학교 간의 대립에서 오는 갈등도 만만치 않았고, 사소한 일로 다투기도 잘 했으며 얼굴 예쁜 여학생들은 가끔 연애사건에 휩싸여 흥미 있는 소문 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배울 점도 많았다. 여학생 칸에는 여대생도 여럿 있었는데 이들은 선배답게 언제나 언행을 조심하며 모범적으로 구는 것 같았다. 그들은 늘 책을 읽고 있었으며 중고생들이 물어오는 공부를 친절하게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나는 개성에서 다니는 여대생 언니와 잘 알게 되었는데 그가 내게 준 영향은 매우 컸다. 그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 언니는 나에게 세계명작 소설들을 소개해 주었고 이러한 소설들이 작가의 상상이 꾸며낸 허구적인 세계라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감동적인 동화나 소설들이 어느 작가가 쓴 상상력의 소산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작가는 그래서 위대한 것이라고 그는 덧붙여 말하였다. 그러나 이 선배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이후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그 선배의 집은 개성이었다. 일산에서 개성까지는 기차로 사십 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으므로 날씨 좋은 주말이나 방학 때면 우리는 그 선배가 사는 개성으로 놀러 가기도 하였다. 금촌 문산을 거쳐 임진강을 건너고 장단벌을 지나 송악산이 솟아 있는 개성은 깨끗한 기와집들이 즐비하고 거리가 잘 정돈된 정결한 도시였다고 기억된다. 선배의 집은 부유해 보였다. 우리가 가면 언제나 그 선배는 다정했고 대접은 친절하여 아직까지 개성에 대한 추억은 즐겁고 행복하다. 깨끗한 도시 개성, 마음씨 좋은 선배가 있었기에 그곳은 늘 그리운 곳이다. 중학 이학년 초에 전쟁이 일어났다. 개성 사람인 선배의 소식은 그 이후 끊어졌고, 휴전 이후 개성은 갈 수 없는 먼 곳이 되고 말았다.
지금 경의선 종점은 문산이다. 한때는 신의주까지 힘찬 기적 소리를 울리며 기차가 달리던 길, 경의선 철도 최북단인 문산 조금 위에는 북으로 가던 기관차가 오십 년 풍상을 견디며 녹슨 철로 위에 멈춰 서 있다. 다시 움직일 그날의 역사를 기다리며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경의선이 이름 그대로 서울에서 의주까지 시원하게 달려 볼 날은 언제 올 것인지, 지척인 개성만이라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그날을 내 평생 안에 볼 수 있을지 아득한 생각을 해 본다.
지난 일을 더듬고 있는 동안에 기차는 우리의 목적지인 <탄현>역에 섰다. 세련된 신도시 한 모퉁이에 한적하게 자리 잡은 아주 작은 간이역이다. 내리는 사람도 우리 일행 두 사람뿐이고 정거장 안의 사람도 우리를 마중 나온 두 사람뿐이다. 우리는 오늘 시골 정거장의 낭만을 한번 꾸며보기로 하였다. 우리는 손을 흔들며 차에서 내렸고 마중 나온 그 여인들은 한껏 우아한 모습으로 차에서 내리는 우리를 맞이했다. 젊었을 때 일산을 떠났던 내가 주름 잡힌 노년이 되어 경의선 호박밭 질펀한 시골 정거장에 내려 멋진 두 여인의 마중을 받았다. 우리는 반가워 서로 얼싸안으며 이거 꼭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즐거워했다. 먼 훗날, 오늘 일이 아름다운 추억이 안 되겠는가. 그리운 경의선, 참으로 장구한 세월을 두고 가지가지 추억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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