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 문진 / 손 광 성
내 책상 위에는 물소 문진이 하나 있다. 청동으로 만든 것인데, 소의 아랫도리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강물에 잠겨 있기 때문이리라. 어찌 보면 작은 섬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가지를 반으로 쪼개서 도마 위에 엎어 놓은 것도 같다.
입을 약간 벌린 채 목을 오른쪽으로 틀어서 살짝 들고 있다. 뒤미처 오는 송아지를 재촉하는 것일까. 초승달처럼 잘 휘어진, 크고 긴 두 개의 뿔은 뒤쪽을 향하고 있다.
“댁을 공격할 생각 같은 건 전혀 없거든요.”
마치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분명 우리의 한우는 아니다. 양쯔 강이거나, 메콩 강 지류 어디쯤에 사는 물소다. 왼쪽 엉덩이 위에 S자형으로 올려놓은 꼬리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귀찮게 구는 파리 떼를 혼내 주려고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몸뚱이가 젖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마지막 자존심만은 적시고 싶지 않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물소는 중국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데, 등에다 아이를 태우고 물을 건너는 광경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이 물소 문진도 그러니까 중국에서 만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등에 타고 있어야 할 아이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의 소지품만 있다. 챙이 넓은 밀짚모자와 그 밑에 멜빵이 달린 가방 하나. 신발은 보이지 않는다. 1950년대 우리처럼 그곳 아이들도 맨발로 사는 모양이다. 가방은 우리가 어렸을 때 메고 다니던 것과 비슷하다. 물론 가죽은 아니고 무명이나 삼베로 만든 듯한, 그래서 김치 국물이나 풀물이 든 자국이 몇 군데쯤 얼룩져 있을 법한 그런 가방이다.
모자와 가방이 있는 것을 보면 근처 어디쯤에 녀석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 혹시 강가 모래밭에서 다른 아이들과 씨름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버드나무에 기대서 풀피리라도 간드러지게 불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소더러 혼자 건너라고 내버려 둘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녀석은 대체 어디로 잠적한 것일까? 있을 만한 곳은 한 군데, 그러니까 물속밖에 없다. 그렇다면 소를 타고 강을 건너던 녀석이 강 중간쯤에 이르자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는 말인가? 모든 정황을 고려할 때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다. 굳이 서둘러 집에 가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날씨는 덥고 기분은 꿀꿀한 데다, 일찍 가 봤자 귀찮게 잔심부름을 시키거나 아니면 동생을 돌보라고 할 것이 뻔한데 말이다.
“땡땡이치는 거지 뭐.”
녀석은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지금 물속 어디쯤을 신나게 잠영潛泳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물살에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 부릅뜬 눈, 작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두 개의 귀여운 볼때기, 아마 입술은 조가비처럼 굳게 다문 채 헤엄을 치고 있으리라. 마치 수족관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처럼 녀석의 모습이 환히 잡힌다.
겨우 소지품 두 가지를 보여 주고서 나에게 이런 정황을 상상하게 하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아이를 생략하지 않고 쇠잔등에 앉혀 놓았더라면 어떠했을까? 나의 상상력이 지금처럼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시선이란 보이는 사물에 쉽게 얽매이는 법. 그러니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어찌 다 거두어들일 수 있었겠는가. 숨기고도 드러낸 것보다 더 잘 드러낸 장인의 절묘한 의장意匠에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마치 동양 미학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산수화에서 산사를 그릴 때도 그렇다. 고지식하게 절집 전체를 다 그리는 바보는 없다. 길이 다하는 곳에 일주문一柱門 하나만 그려 놓고 시치미를 뗀다. 저 울창한 숲속에 산사가 있다. 지금은 녹음이 우거져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귀를 기울여 들어 보라. 솔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독경 소리 사이사이로 청아한 풍경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이렇게 우긴다. 그런데 이런 억지가 도무지 밉지 않다. 구차스러운 설명을 뛰어넘는 저 경쾌한 비약. 상쾌하다 못해 통쾌하다. 이런 비약은 때로 우리에게 정직한 일상을 가볍게 초월하는 쾌감을 준다.
인사동에서 처음 보는 순간 녀석은 이미 나의 것이 되어 있었다. 아니다. 나는 이미 녀석의 것이 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리라.
그림을 그릴 때 나는 이 문진으로 화선지를 눌러 놓는다. 화선지 한 귀퉁이에 놓인 물소를 보고 있으면 긴 화선지 한 장이 그대로 장강長江이 되어 넘실거린다. 하얗게 작열하는 남국의 태양 아래 은빛으로 빛나는 물비늘을 헤치며 물소 한 마리가 나를 향해 천천히 헤엄쳐 오고 있는 것이다.
그림이 잘 되지 않을 때면 잠시 붓을 멈춘다. 그리고 눈을 반쯤 감고 이놈을 바라본다. 그렇게 하고 있으면 물속을 잠영하던 아이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푸푸’거리며 화선지를 찢고 불쑥 내 앞에 솟구쳐 오를 것만 같다. 햇볕에 가무잡잡하게 그을린 녀석이 숨을 몰아쉬면서 내뿜는 시원한 물보라!
아, 이럴 때 내 옷은 속수무책으로 흠씬 젖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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