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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팔꽃을 심으며 / 최미옥(2022 샘터상 대상)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25. 6. 3.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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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나팔꽃을 심으며 / 최미옥- 2022 샘터상 대상

 

완연한 봄날, 서랍 속에 갈무리해둔 꽃씨를 꺼냈다. 태풍이 휩쓸고 간 들판에서 만났던 야문 씨앗이다. 어쭙잖은 이유로 등 돌렸던 친구에게 화해를 청하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나팔꽃과의 인연을 떠올린다.

 

어릴 적 시골집에는 꽃이 많았는데 토담 위로 무리 지어 피던 나팔꽃의 기억은 지금도 선연하다. 잠이 깨지 않아 멍하니 앉아 있던 아침, 정신이 번쩍 들게 하던 꽃이었다. 그들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어디선가 경쾌한 나팔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잠은 일시에 달아났다.

 

결혼 후 처음으로 내 집을 갖게 되었을 때 꽃밭 자리가 없어 아쉬웠다. 달동네 무허가 집은 마당이 없었다. 두어 평 남짓한 옥상은 빨래 널기도 빠듯했지만 계단이 가팔라서 물통을 들고 오르내릴 자신이 없었다. 꼭 해야 할 숙제를 더는 미룰 수 없게 된 아이처럼 나는 꽃씨 뿌릴 공간을 찾아 서성댔다. 어느 날 남편이 대문 밖을 가리켰다. 담장 옆 쓰레기 덤불을 젖히니 건장한 남정네 등판만 한 땅이 보였다.

 

묵은 쓰레기를 치우고 나팔꽃을 심었다. 물 주고 거름 주며 정성을 기울였더니 보답하듯, 덩굴손을 뻗으며 밋밋한 담장에 싱그러운 벽화를 그려나갔다. 잠 덜 깬 아이들을 앉혀 놓고 사진도 찍으며 그해 여름은 참으로 흡족하게 보냈다.

 

큰딸이 4학년 때였을까. 여름방학 숙제로 ‘나팔꽃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관찰일기를 썼다. 꽃이 언제 피고 지는지, 하루에 몇 센티 자라는지, 덩굴손은 어느 쪽으로 감는지 살피고 줄기의 단면을 잘라 확대경으로 들여다보기도 했다. 아이는 그 과제물로 상을 받았고 여느 때보다 기뻐했다.

 

해를 거듭하는 동안 나팔꽃은 낡은 골목을 명품 길로 만들었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이 골목에 들어서면 절로 다리쉼하게 된다며 활짝 웃었고, 아침잠이 없는 앞집 할머니는 물주기 당번을 자청하며 흐뭇해하셨다. 짜장면을 시킬 때도 ‘나팔꽃 집’이라고 하면 통했다.

 

한번은 나팔꽃 앞에다 코스모스를 몇 포기 심었다. 여름 지나면 소임 다한 나팔꽃을 재빨리 거두어 낸 후 코스모스 앞세워 가을맞이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해 봄, 나는 느닷없이 나타난 복병과 맞닥뜨려야 했다. 그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단숨에 나를 제압했다.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과 함께 맑은 정신도 빠져버렸다. 간신히 집과 병원을 오갈 뿐이었다.

 

어느 날 오랜만에 꽃밭을 내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나팔꽃이 기세등등, 덩굴손을 휘두르며 코스모스를 옥죄고 있었다. 억센 손아귀에 갇힌 채 시들시들 죽어가는 코스모스를 보는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수술 후 이내 항암은 시작되고 초주검이 되어 병원을 드나드는 동안 애써 누르고 있던 감정이 일시에 터져버렸다. 슬프고 안타깝고 무섭고 화가 났다. 내 안에 뿌리내리고 기세 좋게 세력을 넓히고 있던 것이 덩굴손인 듯 느껴졌다. 대장을 절반이나 잘라내고도 항마에 시달리는 것이 나팔꽃 때문인 듯, 코스모스에 내가 투사되던 순간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덩굴손을 꺾었지만 끈질김의 상징처럼 손으로는 어림없었다. 전지가위를 들고 나와 자르다가 아예 뿌리를 뽑아버렸다. 내 안의 것도 뿌리째 뽑혀 나갔기를 간절히 빌었다. 비로소 긴 숨을 몰아쉬는 코스모스의 전잎을 떼고 수평을 잡아준 후 물을 듬뿍 주었다.

 

‘이제 괜찮을 거야. 해와 바람을 맘껏 받으며 살도 찌우고 꽃도 피우렴. 할 수 있어. 할 수 있고 말고. 내가 도울게!’

 

코스모스가 화답하듯 몸을 흔들었다. 나는 두 번 다시 덩굴손을 보고 싶지 않았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렀고 관찰일기를 쓰던 딸아이도 내 품을 떠났다. 지난여름 딸이 출산을 했고 해산바라지하느라 시골의 딸네 집에 머물게 되었다.

 

병원을 자주 드나들던 때, 신생아 예방접종 하러 오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특히 모녀로 보이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목젖이 당겼다. 푸석한 산모의 얼굴과 아기를 번갈아 바라보는 젊은 할머니의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세상 어떤 명화보다 감동적인 한 컷이었다. 그 무렵 내 아이들은 삼십 대였다.

 

딸이 낳은 아기를 맘껏 끌어안을 수 있는 나날은 내 삶의 절정 같았다. 세상에 나 혼자 할머니라는 빛나는 왕관을 쓴 것처럼 각별했다. 게다가 아침이슬 적시며 들길을 걷는 일로 하루를 열 수 있어 즐거움이 더해졌다. 태풍이 지나간 어느 아침이었다. 밤새도록 몰아친 폭풍우는 즐겨 걷던 길을 지워버렸고 온전한 작물도 남기지 않았다. 여물기를 기다리던 벼는 쓰러져 황톳물에 잠겼고 수확을 눈앞에 둔 고추밭도 가지가 부러지고 찢기어 처참했다. 들판의 평화로운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던 터라 내 손으로 가꾼 농작물을 보듯 안타까웠다.

 

무거운 기분으로 걷다 보니 저만치 마을이 보였다. 무심코 동네 어귀로 들어서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옥수수가 큰 키를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는 텃밭 풍경이 눈길을 잡았다. 나팔꽃의 덩굴손이 옥수숫대를 야무지게 잡고 잡아서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둘이 한 몸이 되어 태풍을 이겨낸 현장은 감동이었다. 폐허가 된 들판에서 만난 온전한 풍경이라 감동이 증폭했다. 옥수숫대를 휘감고 올라가 환하게 핀 나팔꽃은 힘차게 나팔을 불고 있는 듯했다. 태풍의 횡포로 망연자실해 있는 들판으로 응원가가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길을 걷는 내내 옥수수와 덩굴손의 잔영이 떠나지 않았다. 나는 덩굴손이었을까? 남편에게 기대어 그를 친친 감으며 살아왔을까? 그랬다. 긴 투병 생활 동안 그는 내가 기댈 수 있게 허리를 내주었다. 이제는 역할을 바꾸어 내가 그의 지지대가 되어 주리라.

 

그에게 말하면 피식 웃겠지, 지나가는 소가 웃겠다며! 그러나 그에게 기대어 사는 동안 나는 많이 야물어졌다. 산구완이라는 막중한 임무도 거뜬히 해내고 있지 않은가. 때론 그가 나를 감을 때도 없지는 않았으리라. 역할을 바꿔가며 서로의 지지대가 되어준 덕에 비바람도 태풍도 견디며 함께 여기까지 왔으리라!

 

돌아오는 길에 나는 두 손으로 나팔꽃 씨를 받았다. 옛 친구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심정이었다.

 

꽃씨를 심고 나니 벌써 여름 아침이 기다려진다. 신하리 들판에서 태풍을 이겨낸 꽃이 내 집 베란다에서 어떤 그림을 그릴까. 해도 바람도 부족하지만 내가 도울게. 즐거운 상상 속에 일이랄 것도 없는 일을 끝내고 허리를 편다. 어디선가 힘찬 나팔 소리가 들리는 듯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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