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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없는 집 / 나무가슴 / 유월 ㅡ반숙자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25. 5. 2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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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쇠 없는 집 / 반숙자

 

사람이 일생 동안 집을 몇 채나 갖고 사는가를 생각할 때가 있다. 사람에 따라 많고 적을 수도 있고 평생 동안 단 한 채도 가지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죄송하게도 우리는 아파트에 살면서 농장에 딸린 농막 한 채를 덤으로 가지고 산다.

 

아파트에서 승용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농막은 산날망*에 거미집처럼 불어 있어 집이랄 것도 없으나 눈비를 피할 수 있고 소박하게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또한 지대가 높아서 아담한 읍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공기가 맑아 처음 오는 사람들은 별장 같다고 하나 거미집 같은 별장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으니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일 게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자질구레한 농사일로 매일이다시피 드나들지만 수확이 끝나고 새봄이 오기까지 농막은 빈집이다. 예외가 있다면 가끔씩 아파트가 답답하거나 눈이라도 내릴 때면 소풍 삼아 다녀올 때도 있지만 그나마 큰 눈에는 통행이 어렵다.

 

오래전에 농막에 밤손님이 든 일이 있다. 손님은 성격이 괄했던 모양이다. 집도 아닌 것 같은 오두막을 청통같이 잠가 놓은 것이 화가 났던지 앞 베란다 유리문을 박살냈다. 그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을 때 다리가 후들거리고 귀한 자식이 폭행당한 것 같은 아픔이 있었다. 그 뒤로는 문을 잠그지 않고 지내는데 가끔 누군가가 다녀가는 눈치다.

 

어떤 날은 라면을 끓여 먹은 흔적이 있고 어떤 날은 흙 발로 마루를 걸어 다닌 자국이 어지러울 때도 있다. 손님이 탐낼 만큼 귀한 살림집기는 없어도 주인의 입장에서는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드나드는 사람이 마뜩잖을 수도 있다.

 

작년 겨울의 일이다. 동장군이 한바탕 활개를 친 뒤 궁금해서 올라갔다. 누가 또 다녀갔다. 이번 손님은 먼저 다녀간 손님과는 달랐다. 우선 그는 주방에서만 머문 듯 마루는 청소해 놓은 대로 깨끗했고 종이컵에 담배꽁초만 수북했다. 참이슬표 소주 두 병이 비워진 채로 있고 그 밖에 음식을 해 먹은 흔적은 없었다. 허긴 음식을 해먹으려 해도 수돗물을 빼놓아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변한 것이라면 장롱에 걸어두었던 오리털 점퍼와 겨울 코트가 없어졌다.

 

가끔씩 이런 일을 겪으며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누가 오죽하면 이 산골짜기를 찾아들었을까. 마을에서도 동산을 넘어야 올 수 있는 집이고 허술하기가 짝이 없다. 무엇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구미가 당기지 않을 정도인데다가 뒷산을 타고 왔다면 이곳의 지리를 전연 모르는 사람의 우발적인 행위라고밖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러 맘먹고 들렀다는 결론에 이르는데 왜, 무엇 때문에, 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눈보라치는 겨울밤 그는 황량한 적막을 헤치며 왜 여기로 왔을까. 불 꺼진 집, 사람의 체온이라고는 전혀 없는 집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엇이 그리도 가슴에 치밀어 담배만 피웠을까. 그러고도 모자라 안주 없는 강소주를 목구멍으로 넘기며 무엇을 체념하고 무엇을 얻었을까.

 

수사관을 피해 다니는 남자? 아니면 4,5십대 실직가장? 6,7십대 남자라면 북풍이 살을 에는 날씨에 예까지 올라올 기력도 패기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식들 교육비에 휘청거리는 4,5십대의 "젖은 가랑잎" 같은 남자가 어느 날 지구 밖으로 튕겨져 나가고 싶어 예까지 온 것일까. 쓸데없는 상상을 하다가 나는 싱겁게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에게 편지 한 통을 쓰기 시작했다.

 

누추한 집을 찾아오셨군요. 고요한 산천에서 하룻밤 단잠이 들었다면 감사합니다. 제왕이라 할지라도 고대광실에서 잠 못 들어 한다면 제왕 자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나는 낮에는 땀을 흘리며 고달프게 일하고 저녁이 오면 사슴처럼 단잠에 빠져드는 농사꾼입니다.

 

손님, 무엇이 그대를 이 골짜기를 찾게 했는지는 모르나 혹시 저지른 실수 때문에 괴로워하시는지요. 실 수 한 번 했다고 불행해 하지 마세요. 누구나 실수는 하잖아요. 그 실수 때문에 숨어 살아야 한다면 당신의 미래가 너무 아깝지 않아요. 실직? 실연? 내 맘대로 상상해 봅니다.

 

그대는 내 집에 오신 손님일진대 아무것도 대접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건넌방에 가면 쉼멜표 피아노가 있습니다. 40년 전에 멈춰버린 시간의 단절 속에 이제는 녹슬고 낡아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손님, 부탁컨대 무슨 노래든지 한 곡만 쳐보시기를 권합니다.

 

나는 가끔 세상일이 꼬이고 힘이 들 때면 이 피아노에 앉아 천천히 몇 곡을 칩니다. 엊그제는 "즐거운 나의 집"을 쳤습니다. 피아노 소리가 처져 제 음향이 아니었으나 조율하지 않은 피아노 소리는 그대로 또 다른 여운이 있었습니다.

 

손님, 그대의 삶도 지금 조율이 되지 않아 힘겨운 것은 아닌지요. 만약 여름에 다시 올 수 있다면 새벽밭으로 나가 보세요. 그리고 밭골에 앉아 낮게 고개 숙여 어깨를 비비며 자라는 풀꽃들이 분명 당신에게 무슨 말을 속삭여 줄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 해가 동산에 떠오르거든 책장 안쪽에 넣어둔 잘 익은 포도주로 새 출발을 위하여 축배를 드세요. 손님, 땀 흘린 만치 돌려주는 자연의 선물을 한 아름 받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내려가세요. 모쪼록 내가 없을 때 조용히 다녀가세요.

 

다시는 이 집에 오실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이 편지를 주방 식탁 위에 붙여 놓았다. 그리고 라면과 물을 넉넉하게 준비해 놓고 내려오다 뒤돌아보니 열쇠 없는 꺼벙한 집이 한없이 자유스러워 보였다.

 

*산날망 : 동네보다 지대가 높은 산​

 

 

                                                    나무 가슴 / 반숙자

 

한 뼘 남짓한 나무토막을 바라본다. 어느 냇둑에서 한 세월 보내다가 고요히 임종한 은사시나무, 그 숨결 더듬으며 눈을 맞춘다. 목각을 처음 시작한 날, 나무토막 앞에서 나도 나무토막이 되었다. 표정 없는 나무에서 무엇을 캐내야 하는지, 어디를 어떻게 파야 하는지 오리무중이었다. 칼이라고는 연필 깎는 칼을 써 본 것과 도마에 무나 파를 썰던 경험뿐, 예리한 칼 끝에 시선을 피하며 슬그머니 창밖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런 내색을 알아차린 선생님이 칠판에 글을 써나갔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자, 끈질기게 일생 동안 취미로 할 사람만 시작하자. 나무와 대화하며 성질을 알자.

 

나무토막을 세워본다. 안정감 있게 서 있어야 평생​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이 나무토막에서 사람의 얼굴이 태어날 것이다. 앞뒤 어느 쪽이 얼굴이 될까 점쳐두고 얼굴 쪽의 수피에 일자 칼을 대고 망치로 두드렸다. 나무에도 비늘이 있어 그토록 싱싱했을까. 고동색의 비늘이 벗겨지며 뽀얀 살이 드러났다. 나무의 체취가 코 끝을 스쳤다. 석양 비낀 하늘에 노란 손수건처럼 펄럭이던 용서의 기별이 전해오는 것 같다.

 

은밀히 간직한 동정의 속살을 범해 얼굴의 윤곽선을 그었다. 선 밖의 여백에 둥근 칼을 대고 때리고 파고 깎이며 형태가 나타나는데 잠시의 방심도 잡담도 허락하지 않는다. 틈을 주면 칼이 빗나가서 손을 다쳤다. 빨리하려고 서두르거나 마음이 소요스러우면 망치질도 엉뚱한 곳을 때려 멍이 든다. 칼 끝에 정성을 모으고 여유로운 몸짓으로 망치질을 해야 하고, 나무토막에 새로이 형태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형태를 드러내는 작업이라 했다.

 

처음에는 그 말의 뜻이 풀리지 않았다. 나무토막 속에 무슨 형상이 들어 있다는 게 말이 되기나 하는 것인지, 조금씩 작업을 해가며 마음으로 보고 붙이는 것이 아니라 털어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다음에는 눈, 코, 입, 귀를 그려 놓고 파들어가는데 장님이 밤길 나선 기분이었다. 큰 칼은 두고 작은 칼로 오밀조밀 파야 한다. 코가 우뚝 서자면 옆을 파주어야 하고, 지긋이 감은 눈을 만들려면 눈두덩을 둥그렇게 굴려주고 눈썹달 같은 선을 넣어야 한다. 그러나 아는 것과 파는 것은 별개였다. 입술 선에 힘을 조금 넣었더니 화난 인상이 되어 버렸다. ​

 

그러기를 일 년 여가 된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것이라 작품은 석 점뿐이지만​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을 보면 특별한 기쁨이 솟는다. 다섯 사람이 만든 얼굴이 각각 다르고, 어딘가 만든 이의 얼굴 모습과 비슷하게 되는 것도 이상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눈이 가서 마주하고 있으면 은연중에 대화 같은 교류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누가 작품 속에 자기의 혼을 불어넣는다 했다. 그것은 내밀한 일치를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얼굴 하나가 탄생하기까지 수천 번의 칼자국을 입어야 하고, 수천 번의 망치질을 맞아야 한다. 아프다고 망치질을 사양하면 그것은 땔감으로밖에 쓰지 못할 나무토막이지만, 찢기고 터지고 피 흘리며 새로이 태어나는 생명으로서의 환생, 작은 것은 작게 큰 것은 크게 절망해야 하는 것이다. 절망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선생님께 미안하다. 나이배기 제자는 굼떠 진척이 없다. 보다 못한 선생님이 그럴듯하게 만들어 주면 내 것 같지가 않아서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내버려두면 버려진 자식 같다고 떼를 쓴다. 자기하고 싸움이라는 말은 여기서도 금언이다.

 

이번에 하는 작품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좌선하는 부처님의 형상이다. 귀한 후박나무를 구해서 작업하기가 좋다. 어깨선이 둥글게 퍼져 양팔로 흘러내리고 두 손은 자연스럽게 마주 잡았다. 목이 잘록해 답답하게 느껴진다. 한량없이 들여다보다가 집으로 가지고 왔다. 저녁을 먹고 또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식구들이 한 마디씩 보탠다.

 

부처님 모습은 찍어도 안 붙이고 전 어느 대통령을 닮았다고 한다. 이런 낭패가 있나. 부처님은 어디로 가고 엉뚱한 얼굴이 나왔는가. 나는 조각칼을 놓고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엿새가 지난 다음 다시 얼굴 앞에 앉았다. 어렴풋이 짚이는 생각이 있다. 부처님을 만나려면 내 마음 안에 부처님을 모셔야 하는데 세상 온갖 잡동사니로 틈이 없으니 생뚱한 얼굴이 나올밖에​….

 

선생님은 목을 키우기 위해서 머리를 깎아냈다. 한결 시원해졌다. 작은 조각칼로 이목구비를 다듬은 후 사포로 문질렀다. 문지르는 일도 쉽지가 않다. 특히 윤곽을 내는 선의 경우 자칫하면 인상이 바뀐다. 사포로 다듬고 보니 후박나무의 나뭇결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어 또 다른 분위기를 준다. 나무마다 본성이 있어 그것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첫째로 배운 점이다. 소나무는 나무가 단단한데 은사시나무는 살이 무르다. 조금만 망치질이 세어도 턱없이 파인다. 어떤 것은 내리 깎아야 하고 어떤 것은 치깎아야 잘 나간다.

 

치목장에서 일하는 목수들은 나무의 친구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그곳에서는 베어진 나무도 생명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습관대로 생명을 지키고 있어 단순한 제목이 아닌 생명으로 다룬다 한다. 그래서 켠 나무들도 그냥 쌓아 놓는 것이 아니라 살았을 때 그 나무가 살았던 방향으로 뉘어 놓는다. 집을 지을 때도 기둥을 세우려면 서 있던 모습으로 세워야지 거꾸로 하면 뒤틀려 집을 기울어뜨린다는 이야기다.

 

나는 목수는 아니지만 가끔 나무토막을 끌어안고 그 가슴에 얼굴을 대볼 때가 있다. 청청한 나무로 서 있을 때의 싱그러움을 만나고 싶어서, 기다란 팔을 펴서 온갖 새들 쉬게 한 넉넉한 품을 만나고 싶어서, 내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비밀을 굳게 지켜 줄 것도 같아서다.

 

나무 같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나도 누구에겐가 나무 같은 친구였으면 참말 좋겠다. 우리 이웃에 나무를 키우는 남자가 있는데, 자작나무를 심을 때는 한 그루만 심어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너더댓 그루를 한데 어울리게 해서 심어주면 서로 이야기를 해가며 공동체를 이루고 자라난다니, 내가 좋은 친구를 갖고 싶어 하는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먼젓번 얼굴을 할 때 제일 마지막에 촛불을 켜놓고 그을음에 그슬렸다. 단단하게 하려는 것이라 했다. 나무토막 팔자가 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없이 두드려 맞고 수없이 파여서 이제는 화형에 이르니 이름 없는 나무토막으로 발에 채이는 일이 낫지 않겠느냐 물어도 보았다. 그러나 나무토막은 입을 앙다물고 마치 순교자처럼 피를 흘리고 나더니 잿빛 예수님으로 부활하여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라는 나무토막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이 나무토막으로 무엇을 만드시려고 6십여 년간 두드려 패시는가.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얼굴들 앞에서 오늘도 물어보는 말씀이다.

 

 

                                                          유월 / 반숙자

 

한 해도 반 고비에 들어섰다. 정월부터 오월까지가 무에서 유를 파종하는 시기라면 유월은 결실을 시작하는 일 년의 후반기에 해당한다.

올 유월이 나에게 새롭게 다가온다. 조금 높은 지대인 농막에서 내려다보면 초록, 초록의 향연이 안정감 있게 펼쳐진다. 봄의 새순이 나풀거리며 하늘에서 내려오듯 신선하고 환희롭다면 유월의 새순은 뿌리로부터 든든한 양분을 빨아올려 성장하려는 나무의 깃발이다. 호들갑스럽지 않고 산만하지 않다. 바로 앞 과수원에서는 열매 솎기가 끝난 사과나무에 새순이 일제히 올라와서 초록바다가 된다. 새순은 곧게 올라온다. 아래 논에는 지금 세 포기씩 심은 볏모가 새끼치기에 바쁘다. 거기서 내뿜는 초록빛은 바로 생명이고 밥줄이다. ​

이 나이에 잃었던 유월을 다시 찾는다. 열두 살 나이로 치른 6.25 한국전쟁 이후, 나의 목가적인 유월은 실종됐었다. 유월은 포탄이 날아오고 사람이 죽어가고 배고픔과 공포에 떨던 기억으로 채색되어 초록빛 찬란한 본연의 계절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수십 년이 흐른 이제 아픈 기억은 잘려나가고 내 감관으로는 유년에 보았던 그 유월이 들어와 있다. 농막 창으로 채색되는 고추밭 이랑이 한 폭의 동양화다. 유연한 곡선으로 이랑을 타서 심은 푸르게 자라나는 고추와 이랑과 이랑 사이에 내비치는 흙빛의 조화가 구도며 색채의 미적 정점을 이룬다.

며칠 전 미타사 선다원에 들렀을 때 팽주烹主인 우담보살은 보이차를 우려 찻잔에 따르며 산나물을 뜯으러 가자는 이웃의 말에 멧돼지가 새끼를 쳐서 더 사나워지므로 위험하다고 했다. 그렇다. 유월은 만물의 어미들이 부지런하게 새끼를 쳐서 종족을 번성시키는 산달이다.

농부들이 이른 봄부터 밭 갈고 씨 뿌려 모종해 기르는 작물들이 제자리에 착근을 하느라 몸살을 하다가 비로소 안정하여 성장을 하는 때다. 하늘에서는 장마라는 우기를 두어 작물에 충분히 물을 대준다. 그 바람에 농부들은 굽은 등을 펴고 쉬며 애호박을 따다가 밀적을 부쳐 일하느라 소원한 이웃과 막걸리잔 기울이며 정을 나눈다.​

하지가 들어있는 유월은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그림이 다가온다. 그 풍경은 우리에게는 익숙한 소재다. 햇감자는 하지가 지나야 제대로 여문다. 또 하지 전후해서 장마가 들기에 시골에서는 그때가 감자와 마늘의 수확적기다.

감자를 캐서 헛간 바닥에 펴놓으면 엄마는 잔챙이부터 먹으라고 성화를 댔다. 그때는 흰 감자는 드물고 자주감자여서 큰 물박에 담아다가 몽당 숟갈로 껍질을 벗기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어머니는 어린 것이 답답했던지 옹기 자배기에 감자를 쏟아서 보리쌀 으깨듯이 으깨면 껍질이 벗겨졌다.

유월은 텃밭에 첫 오이를 따는 때고 마디마디 매단 마디호박을 한꺼번에 열 개도 넘게 따는 시기이고 방아다리 고추가 주렁주렁 입맛을 돋우는 때다. 비 오는 날이면 텃밭에 상추를 따다가 부득부득 씻어 잘박한 된장찌개 넣고 보리밥 한 양푼 비벼 소담스레 퍼먹는 축복의 계절이다.

가을에 심어 첫 수확을 하는 겨울을 난 밀이며 보리, 마늘을 수확하는 시기다. 여인의 자궁 안에 새 생명이 자라듯 유월은 살아있는 것들이 제 자리에 안착하며 안으로 성숙하는 축복의 계절이다. 꽃모종도 콩 모종도 들깨 모종도 유월까지다. 이 시기가 지나면 모든 심어진 것들은 더 이상 옮기지 않고 제자리에서 성장한다. 그래서인가 인도에는 동안거 하안거와 함께 우안거雨安居가 있다고 한다. 비를 맞으며 활발하게 돋아나는 초목의 생명활동을 훼방 놓을지​ 모른다는 이유에서 가만히 한곳에 머물러 수행하라는 것이다.

유월의 초록빛을 선명하게 받쳐주는 것은 망초꽃 무리다. 산 밑 묵정밭에 무리지어 피어나는 망초꽃의 흰빛은 초록을 껴안은 어머니의 치맛자락 같다. 푸근하다. 거기 몸을 던져 낮잠 한번 실컷 자고 싶다. 나는 지난 60여 년간 망초꽃을 6.25전쟁에 죽어간 장병들의 혼령들이 꽃이 되어 피어났다고 생각했다. 무심하지 못했고 아팠다. 학교 다닐 때 육이오 날이면 방송국에 가서 전사한 국군장병들을 위해 조시를 암송하며 예민한 소녀는 반공의식으로 무장했다. 그 사이 60년이 흘러갔다. 역사로 치면 한 페이지가 넘어간 것이다.​

이제는 그런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무심히 망초꽃을 본다. 망초꽃은 평화롭다. 해 질 녘이면 그 꽃은 더욱 아스라해져서 천지에 활력으로 넘치는 계절의 분망을 고요히 받쳐주고 있다.

사람을 생각한다. 사람의 유월은 어디쯤일까. 팔십을 산다면 사십이 반 고비일 터, 내 인생의 유월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지만 다시 찾은 유월을 만끽하며 나도 올해는 조용히 우안거에 들어가 볼 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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