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바깥 / 모 임 득
째깍째깍 시곗바늘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보기만 해도 이름을 알 수 있는 꽃. 시계꽃 구조는 봐도 봐도 신기하다.
우주를 닮은 듯한 원형에 들여다볼수록 꽃술이 독특하다. 꽃은 오전 10시경부터 펴지기 시작하여 시침 방향으로 꽃잎이 한 장씩 펴진다. 꽃은 하루만 지속되며 오후에는 다시 접힌다. 처음 꽃을 보고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쩜 이렇게 정교할까. 시계의 문자판 같은 자주색 부화관 위에는 수술이 5개, 씨방을 이고 암술대는 세 개로 갈라지는데 시침과 분침, 초침인듯하여 꼭 시간을 지나는 중인 거 같았다.
삶은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달력의 숫자가 달라지고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 그러나 한 해가 지나감은 인생의 흐름 속에서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니 나를 되돌아보고 새해 소망을 품어보게 된다. 시간은 멈출 수도 없고 되돌릴 수가 없다. 그래서 더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이리라.
우리는 저마다의 시간을 살고 있다. 연보랏빛 시계꽃은 시계꽃대로, 식물은 식물대로, 하루살이는 하루라는 생체시계로, 나 또한 지금, 이 시간에도 열심히 살고 있다.
가끔 이 세상은 시계초처럼 정확히 움직이는 공간 속에 시간이 침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그 시간 그곳에서 마침 우리가 만난 것이 마치 필연을 가장한 우연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분침과 초침이 겹치는 그 공간에 함께 있었다는 것. 지난여름 수생식물원에 같이 간 일행이 시계초를 보며 함께 같은 시간에 있었다는 것처럼….
부모님은 가고 없는 시골 빈집에 괘종시계가 있었다. 크지도 않고 적당한 크기에 사람은 없어도 시간만 되면 추를 움직이며 시간을 알려주었다. 시침과 분침이 정시에 종을 쳐서 시간을 알려주는데, 요즘처럼 세련된 소리가 아닌 둔탁한 저음을 냈다.
시골집 마당을 질러 뜰에서 거실 문을 열면 정면 벽면에 괘종시계가 보이고 그 옆으로 액자들이 있었다. 액자에는 부모님 약혼 사진이나 우리 어렸을 적 사진이 빛이 바랜 채 꽂혀 있다. 순간이 사진으로 남아 액자 속에서 언제 꽂아놓은 줄도 모르게 오래된, 그래서 추가로 사진 한 장 놓고 싶으면 유리 안으로 못 들어가고 액자 가장자리에 찔러 놓았다.
요양원에서 돌아오지 않는 집주인 대신 시계만이 시간을 알려주는 햇수가 오래 걸렸다. 그러다가 집주인이 바뀌자, 괘종시계는 새로운 주인에게 시계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변했어도 새 주인은 단순한 모양의 괘종시계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시골집 괘종시계가 시간은 흐르며 없어진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째깍째깍 초침이 시간을 지운다. 숨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나온 시간은 기억으로 남는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두 종류로 나누었다. 크로노스는 시계나 달력과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객관적 물리적 시간이지만 카이로스는 주관적 심리적인 시간의 경험과 타이밍을 강조한다. 크로노스의 일정과 정확성보다는 카이로스는 상황에 따라 적절한 순간을 포착하여 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관리할 수 없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늘릴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다.
시간을 알려주는 괘종시계는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갔다면 가족의 일생을 기억하는 괘종시계는 내가 보기에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가족의 일생을 기억하는 괘종시계와 덩굴손 감아올려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꽃시계에 물어본다. 지금 내 인생의 시계는 몇 시이며 잘 돌아가고 있는지. 크로노스나 카이로스 시간도 아닌 시간의 바깥에서 허송세월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무심한 시계꽃은 답이 없다. 다만 괘종시계 초침만 들릴 뿐.
*모임득 수필가*
꽃이 피는 시간과 사람의 시간은 얼마나 다를까. 가장 아름다운 시간에 꽃이 피듯이 시간의 테두리 바깥일지라도 남은 내 인생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울 날이 올까.
시간의 바깥에서 오늘 지금이란 시간에 꽃을 심고 가꾸리라.
*약력*
『수필과비평』 수필 당선 (2006)
한국문인협회, 청주문인협회 부회장, 충북수필, 푸른솔문인협회, 뒷목문학회 회원
수필집: 『간이역 우체통』 『먹을 갈다』 선집: 『아버지의 고무신』
수상: 수필과비평문학상, 충북여성문학상, 원종린문학상 작품상등 다수 수상.
땅 위의 별 / 모 임 득
청자색 꽃과 눈 맞춤했다. 작지만 야무진 모습을 찍으려고 바닥에 엎드려 초점을 맞춘다. 왜 이름에 뚜껑이 붙었을까? 열매가 다 익으면 뚜껑 열고 씨앗 퍼뜨리는 걸 큰 특징으로 잡아서 뚜껑별꽃이란다.
어느 날 처음 보는 꽃인데 청자색이 강렬하게 나를 이끌었다. 검색해보니 전라남도는 어딘지 찾을 수가 없고 서귀포로 가야 만날 수 있다. 당장 제주도 비행기표를 끊어야 하나 날짜를 헤아려 보다가 이곳저곳 막무가내로 꽃 보고 싶다고 물어보았다. 그러다가 남양주에 사시는 분 하우스에서 봤다고 한다. 연락을 거듭한 결과 이튿날 만나기로 했다.
운전은 오래 했지만 서툰지 두렵다. 딸이 서울에 살지만, 운전하고 가기가 무섭다는 이유로 한 번도 올라가지 않았는데, 서울보다 더 오래 걸리는 2시간 거리를 당장 운전했다. 딸보다 꽃이 더 좋은가 보다. 야생화를 처음 접했을 때 풀꽃 회원들이 제주도로 여행 가서도 꽃을 본다. 대단한 분들이야!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그 단계가 왔나 보다.
독특한 꽃 색을 따서 ‘보라별꽃’으로, 밤하늘에 빛나는 별만큼이나 총총하게 핀다고 해서 ‘별봄맞이꽃’으로도 불리는 작은 식물이다. 꽃잎 중앙의 수술과 암술 둘레에는 흰색과 자주색, 진보라색의 띠가 2, 3중으로 둘러쳐지면서 오묘하다. 노란색 꽃밥과 어우러져 멋진 색의 조화를 보여준다. 게다가 5개의 수술대엔 붉은색 잔털이 수북하게 나 있어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꽃이다.
바닷가 바위 틈새에서 바람에 흔들거리며 사는 애처로운 아이가 아니라 하우스에서 보호받는 꽃을 연락한 지 하루 만에 보게 해 주었다. 추진력이 대단하다고 말하는 내게, 주인장은 오후 3시가 넘어가면 꽃이 닫히는 특성이 있고 흐린 날이나 비 오는 날에도 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하우스에는 귀한 꽃이 지천이다. 옆 너른 밭에는 야생화가 주인공이고, 고추나 상추 같은 작물이 조연이다. 이 꽃을 보기 위해서 매년 돈을 들여 꽃을 사고 매시간 땀을 쏟고 공을 들인다. 어렸을 적부터 야생화가 좋았다는 주인장. 밭에서 꽃에 물 주는 남편은 풀도 뽑아주고 야생화 만나러 갈 때면 운전도 해 주면서 적극 도와준단다. 팔십이 가까운 나이지만 부부가 건강하게 꽃을 가꾸며 사니 보기가 좋다. 인생을 참 잘 사셨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장이 열매 맺힌 꽃을 보여준다. 동그란 열매가 영글면 종자를 퍼뜨리기 위해 가운데가 갈라지면서 뚜껑이 떨어져 나가듯 벌어지고 별 모양의 꽃받침이 도드라지게 드러난다는데 아직은 덜 영글었다. 뚜껑 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주황색 뚜껑별꽃은 수줍은 몽우리까지 있다. 가지런히 돌아 나는 다섯 장의 꽃잎은 지름이 1cm 안팎으로 아주 작지만 봐도 또 보고 싶다. 한껏 눈 맞춤 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하우스에 다른 귀한 꽃들도 많지만 내 눈에는 이 꽃만 보인다.
별꽃, 개별꽃, 쇠별꽃 등 흔히 별꽃이라 부르는 꽃들은 석죽과 식물이다. 그러나 뚜껑별꽃은 별꽃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앵초과의 한해살이풀꽃이다.
하늘의 별이 양치기가 보고 싶어서 땅 위에 별꽃으로 피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하늘의 별이나 땅 위의 꽃은 언제나 마주할 수 있기에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꼭 보고 싶을 때는 나처럼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만 볼 수 있고 꽃 피는 계절이 지나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볼 수 있다.
지나고 보면 나와 마주친 인연들이 별 같고 꽃 같은 고운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꽃말 ‘추상’처럼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지금 내 가까이 인연 맺는 분들이 별이고 꽃이라 생각하고 위하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눈으로 보고 찍고 마음속에 데리고 왔지만, 바다를 바라보며 바윗가에서 꽃 피운 뚜껑별꽃을 보러 내년 봄에는 제주도 새섬으로 날아가리라. 다섯 꽃잎 안에 빨간색과 흰색 사이로 올라온 노란 수술. 무리 지어 핀 독특하고 사랑스러운 꽃을 꼭 보리라. 그때까지 그리움의 꽃 피우며 살아야지. 땅 위에 피어도 꽃이고, 마음속에 그리움도 꽃일 테니까.
세시화 / 모 임 득
꽃도 사람도 시절인연이다. 꽃이 지천으로 피어있어도 내가 보지 않으면 꽃이 아니다. 꽃도 사람처럼 그저 피는 꽃은 없다.
친구네 정원에서 수세미에 이끌린다. 사진을 찍으려고 허리 구부리다 작고 앙증맞은 꽃을 발견한다. 오후 세 시 무렵 피어나니 세시 꽃이다. 다닥다닥 붙은 꽃송이와 씨앗들이 참 귀엽다. 누가 바라보지 않아도 세시가 되면 다섯 장의 꽃잎을 열었다가 저녁이 되면 오므린다. 꽃이 지는 것이 섧을 새도 없이 봉오리도 많고 달린 씨방도 많다.
작은 진분홍빛 꽃은 금방 나의 마음을 끌었다. 한 줄기 얻어다 심었는데 그 후로 피고 진단다. 나는 왜 이제야 보았을까. 여러 송이가 피어 눈길을 사로잡는 봉숭아, 백일홍 같은 꽃만 눈에 든 것이다.
세시에 핀다고 세시화, 자금성꽃, 목안개꽃으로 불린다. 곁가지 사이사이에서 계속 꽃을 피운다. 주고 또 주는 친구처럼 화수분이다. 씨앗도 계속 따기가 무섭게 여문다. 동글동글 씨도 익으면 하얗게 변한다. 그걸 똑 따면 까만 씨들이 들어있다. 건드릴 때마다 씨앗이 여기저기 막 튄다.
4월부터 11월까지 꽃이 피고 진단다. 꽃봉오리는 왜 하필 오후 세시 경에 열까. 사람의 인생으로 치면 오후 3시는 딱 내 나이일까.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가라앉은 시간, 강렬하게 내리쬐는 한낮의 태양도 좋지만 한 꺼풀 힘이 사그라진 세시의 빛이 좋아질 나이다. 한창 열정적인 시간은 가고 이제 느긋하게 노을을 보며 차 한 잔 여유 부릴 나이로 가는 시간이다. 청춘을 지나 노년으로 접어드는 시간에 꽃이 피다니. 참으로 신기하다.
‘식물학의 시조’라고 불리는 식물학자 칼 폰 린네는 하루 동안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을 기록해 꽃시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 피어있는 꽃과 피어있지 않은 꽃들을 대조하여 지금 시간이 대략 몇 시쯤인지 파악할 수 있는 자연 시계이다. 꽃들마다 봉오리가 벌어지는 시간과 오므리는 시간이 다르므로 이를 이용하여 시간을 알 수 있었던 건데, 린네의 꽃시계에 3시쯤엔 무슨 꽃이 피었을까. 세시화도 추가해야 할 듯하다.
하루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어 어느덧 육십이다. 하루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되돌아보면 그 하루가 모여 이 자리에 닿은 것이다.
힘든 시간을 보내서일까. 마음이 나약해져선가. 5년여 병시중에 몸도 마음도 지친 데다 혼자서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데, 망설이게 된다. 거친 세상에 한 발 내디뎌야 하는데 주춤거리고 있다.
내 인생 9시경일 때는 빠른 판단과 행동도 거침없었다. 세상 두려운 것이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이룰 것만 같았던 패기가 있었다. 그 패기가 무모함이 세상과 부딪히면서 적당히 타협하고 조율하며 여기까지 왔다. 딱 세시화가 피는 시간까지.
세시화 주인인 친구와는 너나들이하는 사이다. 조용한 듯하면서도 내가 푸념하는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공감해주며 해답을 주기도 한다. 성품이 넉넉하고 도량이 넓다. 남편들이 친한 친구였는데, 나의 반쪽이 간 지금은 부인들이 더 친해졌다. 일생에 마음 나눌 친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성공한 삶이라고 하는데, 그럼 난 성공한 인생이리라.
정이 그립고 관심을 받고 싶고 누군가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내 인생을 의논하고 싶다면 주저 없이 친구한테 간다. 남편이 가고 세상 밖으로 한 발 디디기가 힘들었을 때 손잡아 주었고, 언제 만나도 반갑고 고마운 친구다. 좋은 시절보다 내 처지가 곤궁하고 어려울 때 함께 하는 친구가 참다운 벗이다. 친구와의 우정에도 깊이가 있다. 세시화를 품은 벗은 내 개인적인 일이나 불안정한 감정을 드러내어도 흉이 되지 않는 친구다.
눈에 보이지 않는 씨앗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싹을 틔워 꽃을 피울까. 여리디여린 듯 하늘하늘하면서도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물을 주면 바닥에 쓰러졌다 다시 일어난단다. 나보다 더 씩씩한 화초 같다. 친구도 나도 세시화 피는 오후 세 시 인생을 지나고 있다. 그리 길지 않은 인생, 다섯 시를 지나고 저물녘 노을을 맞이하는 길에 같이 하고 싶다.
밥 한 끼 / 모 임 득
인생은 밥이다. 밥 한 끼 한 끼가 모여서 살이 되고 삶이 된다. 오늘 한 끼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고 끼니이다.
삼시 세끼란 말이 좋다. 밥을 잘 챙겨 먹을 것 같아서다. 끼니마다 따순밥 해서 한솥밥 먹던 시절이 그립다.
‘밥심으로 산다’고 믿었던 어머니는 고된 일상에서도 따순밥을 지으셨다. 쌀을 씻어 가마솥에 안치고 불 지피면 밥물 끓어오르는 소리, 아궁이 잔불에 된장찌개 끓이고, 도마에 호박이며 감자 써는 소리가 좋았다. 부글부글하던 밥물이 잦아들면서 나는 밥 냄새는 언제 맡아도 질리지 않는다. 막 뜸 들여진 밥을 주걱으로 뒤적이면 흰 김이 뿜어져 올라온다. 고슬고슬 잘 지어진 밥이 식욕을 돋우던 시절.
늦은 귀가를 하는 자식을 위해 아랫목에 고봉밥을 묻어두던 어머니. 객지에 나간 자식이 행여 밥을 굶지는 않을까 늘 부뚜막에 밥 한 그릇 떠 놓으셨다. 난 멀리 떠난 자식들이 밥이나 잘 챙겨 먹고 있는지, 걱정은 되어도 어머니처럼 밥 한 그릇 떠 놓는 정성은 없다. 그저 잘 먹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밥’에 관한 전시 포스터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비가 오는지 우비를 입은 채 공원 벤치 가장자리에 엉거주춤 앉아 밥을 먹는 노인. 걷어 올린 바지 사이로 드러난 앙상한 다리, 밥과 반찬이 한 번에 담긴 그릇을 숟가락으로 입에 흡입하듯이 먹는 모습이다.
흑백으로 처리된 사진은 코로나 이전에 공원에서 무료 급식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벤치에 앉을 자리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비 가림 천막이나 식탁도 없이 풀밭에 앉거나 서서 드시는 밥 한 끼. 삶의 애환이 담긴 사진을 보며 가슴이 탁 막혔다. 매주 토요일이면 약 오백여 명이 공원에 오셔서 밥을 드셨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떻게 끼니를 해결하고 있을까.
우리는 지금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겨운 세상이다.
평균 수명이 길어진 요즘, 몇 세까지 사는가보다 어떤 삶의 질을 유지하며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경제적 궁핍, 사회적 소외, 치매나 뇌졸중 같은 돌봄이 필요한 질환 등 노년의 삶에 등장하는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심각하다.
밥을 먹기 위해 일을 하는가. 일하기 위해 밥을 먹는가. 이유야 어떻든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허기는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온다. 추운 날 거리에서 떠도는 노숙자들이나 독거노인이나 집안에서 소외된 어르신들을 위한 도움의 손길을 주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음식을 같이 먹을 수가 없는 요즘. 백 명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곳이 있다. 11시부터 시작인데 10시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음식을 받자마자 길거리에서 풀어놓고 드시는 분이 있다고 한다. 그분들에게는 그 음식이 꿋꿋이 살아갈 힘을 주는 밥상일까.
봉사자들이 정성껏 조리하여 따뜻한 집밥의 온기를 드리려고 노력한다. 밥을 나누면서 따뜻한 마음마저 나누는 사람들. 밥을 뜸 들일 때처럼 온기가 느껴진다.
요즘은 밥솥에 밥을 안칠 때나 주걱으로 밥을 풀 때 내가 혼자라는 것을 실감한다. 식구들이 한 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던 시절이 얼마 전이었다. 몇 년 사이에 혼자가 되어 끼니를 대충 챙겨 먹으며 생각한다. 인생의 두 번째 바퀴는 괜찮을까. 혼자 평생 살 수 있을지, 나이 듦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밥으로 이어지는 기본적인 삶과 관계의 끈이 허물어지고 있는 요즘, 장수가 과연 축복일까.
TV를 친구삼아 밥을 우적우적 씹다 보면 어릴 적 두레 밥상에 비집고 앉아 먹던 음식을 떠올린다. 추억을 소환하는 음식들을 머릿속에 그리고 혀로 굴리며 그 맛을 음미해 본다. 밥 비벼서 여럿이 숟가락으로 퍼먹던 커다란 양푼도 있다. 먹을 것이 부족해도 식구들 부대끼며 거친 음식 달게 먹던 시절이었다.
‘밥’하면 따끈따끈한 밥의 온기가 입안에 그득해진다. 밥 한 끼라는 말에는 부뚜막의 온기가 있다. 따순 밥 한 끼를 같이 먹는다는 것은 밥 이상의 가치가 있다. 밥 냄새도, 사람 냄새도 그리움이다.
연 필/ 모 임 득
반듯하게 깎인 연필이 필통에 가지런히 있으면 뿌듯하던 시절이 있었다. 책보자기 둘러메고 십 리 길 뛰어 학교에 가다 보면 필통 안 연필은 흐트러지고 까만 연필심은 고단함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필통 뚜껑만 열면 늘 잠자던 나무 향이 배시시 깨어나곤 했었다. 그 향은 들뜬 마음을 안정시켜 주곤 했었다. 나무 안에 감춰진 까만 속심, 연필도 요즘은 형형색색이다. 한번 검정 연필이면 평생 검은색으로만 써진다. 사람으로 치면 고지식하지만 올곧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보는 듯하다. 눈뜨면 들로 산으로 다니시며 농사짓는 일밖에 모르던 아버지 같다. 밭 갈고 쟁기질하던 거친 손으로 입학하는 딸을 위해 연필을 깎아주셨던 아버지. 부러진 연필을 깎고 또 깎아서 짧아 진 몽당연필을 볼펜 껍데기에 끼워 침 바르며 공책에 삐뚤빼뚤 써 내려가던 그 시절이 아련하다.
달포 전, 볼펜도 샤프도 아닌 몇 자루의 연필을 K선생님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어떤 뜻으로 연필을 주셨을까. 철학적 안목으로 하얀 종이에 세상살이의 희로애락을 엮어내라는 의미일까. 생의 행로를 한 글자 한 글자 까만 속심 닳아 없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쓰라는 의미일까. 연필은 넙데데한 얼굴에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며 웃어주던 착한 K선생님 같다.
선물로 받은 연필을 깎아본다. 초등학교 시절 책상에 앉아 칼로 연필을 깎는 일은 대단히 어렵고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부러 연필을 깎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연필을 깎는 것은 먹을 가는 것처럼 들떴던 마음을 다스리며 한곳으로 모으는 훈련이다. 적당한 힘으로 칼을 잡고 엄지손가락을 움직여 사르륵사르륵 육각형의 나무를 깎아내고, 뾰족하게 까만 심을 갈아내는 일은 마음에 굳게 박힌 아집을 갈아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스마트폰의 내장된 펜을 사용하고 있다. 스마트폰 화면에 펜으로 글씨를 쓰면 마치 실제 종이에 쓰는 것처럼 사각거리는 소리가 난다. 붓부터 연필까지 여러 형태의 펜 종류에 따라 다양한 소리를 내 재미를 더한다.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이 시대에 연필을 선물 받은걸 보면 그래도 연필로 쓰기를 고집하는 이들이 있어 반가운 세상이다.
내 마음을 연하게 그려내는 연필은 수수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을 연필로 적는다면 선물 받은 네 자루면 가능할까. 쓰다가 마음에 안 들면 지우개로 지우고 마음 가는 대로 다시 써도 된다. 볼펜처럼 한번 써 놓으면 절대 지울 수 없는 똥고집이 아니다. 잘 못쓰면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쓰고 또 써도 절대로 성내는 일이 없다. 그만큼 연필은 포용과 배려의 상징이다.
며느리로 엄마로 아내로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니 매 순간 치열한 삶이었다. 길고 쭉 빠진 온전한 연필에서 이순을 바라볼 만큼 살다 보니 내 몸은 겨우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짧은 연필이 되고 말았다. 책보 속에서 뜀박질할 때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연필처럼 온 몸이 안 아픈 곳이 없다. 순수했던 마음은 침 묻힌 연필로 얼키설키 낙서 해놓은 것처럼 까매졌다.
살아온 생을 글로 적는다면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살고 싶은 나이가 어디쯤일까. 건강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 다시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보고도 싶지만, 그래도 지금의 내 삶을 사랑하려고 한다. 한평생 글씨 쓰는 일에 온몸을 바치다 몽당연필같이 된 삶도 내 삶이기에.
빨랫줄과 바지랑대 / 모 임 득
모처럼 마당가에 번진 햇살 위에 구름을 내걸고 싶다.
며칠째 내리는 비에 쌓여가는 시름만큼이나 빈 빨랫줄에서는 물방울만 오종종 매달리다 떨어지곤 했다.
서둘러 일상의 고단함을 빨래와 같이 탁탁 털어 줄에 넌다. 쌍둥이가 벗어놓은 옷들이 어찌나 많은지 세탁기로 휘휘 돌려 너는 일도 힘에 부친다. 하루 종일 쓸고 닦으며 치우다 보면 지치고 짜증나는 날들이라서 얼굴은 펴질 때가 없다.
마당의 길이만큼 걸쳐진 빨랫줄이 주어진 삶이라면 바지랑대가 놓인 중간 지점만큼 온 인생이다. 숨 가쁘게 분주한 일상을 보냈지만 돌이켜보면 바지랑대 높이에서 바라보는 곳도 벗어나지 못한 채 종종거리며 살아온 듯싶다. 이십대 후반부터 외줄 타기하듯 발끝에 온몸을 지탱한 채 자식을 갖기 위한 일념으로 살았다. 하얀 기저귀가 널리기를 갈망하며 병원을 드나드는 횟수만큼 근심만이 널렸었다. 불혹이 가까워서야 쌍둥이를 낳았을 때 하루 세 번 세탁기를 돌리면서도 행복에 겨워하며 바쁘게 살았던 지난날들이 생각난다. 조금 힘들다고 너무 소중한 것을 잊고 있었다. 손길 닿을 빨래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빨래에는 내 행복의 원천인 가족들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새벽같이 나가서 어둑해서야 들어오는 남편의 양말은 나보다도 남편의 일상을 더 알고 있을 터이다. 변비 때문에 놀림 당했을 아들아이 팬티를 볼에 대니 냄새보다는 속살에 어울려 함께했을 체취가 전해져 온다. 치마는 한사코 마다하며 머슴애들하고만 노는 딸아이의 바지까지 널어놓고 보니 하늘이 참 곱다.
쪽으로 물들이면 저렇듯 고운 빛이 나올까. 내친김에 수돗가에 자리를 잡았다. 남편 옷만큼은 손으로 비벼 빨고 있다. 울퉁불퉁 집에서 만든 비누로 비비다 보면 피어나는 거품처럼 속이 후련하다. 한번 두 번 헹굼질하는 단순한 움직임 속에 시름은 사라져 버린다. 커다란 자배기에 물을 받아 헹군 옷들은 짜지 않고 축 걸쳐 넌다.
옷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만큼 파이는 마당의 흙. 무게도 느껴지지 못할 만큼 작은 존재인 물방울이 낙하하는 속도만큼 흙마당은 자리를 비켜준다. 작더라도 큰 힘을 쓸 수 있고 맞서기보다는 돌아가는 이치이리라.
처마에서 마당을 가로질러 돌담 옆에 있는 모과나무까지 걸쳐진 줄이 힘에 겨운지 축 늘어진다. 바지랑대를 중간에 세워 무게를 덜어주니 한결 보기가 좋다. 장대 하나가 버티기에는 벅찰 텐데도 아무런 불평 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피곤에 지쳐 축 처진 남편의 어깨 위에도 바지랑대를 받쳐주면 한결 가벼워질까. 전 재산을 투자한 사업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 사십이 넘어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남편의 마음이 가벼워진다면 기꺼이 바지랑대가 되어 주고 싶다.
옷가지를 가득 달고 바람에 흔들리는 빨랫줄이 남편의 모습 같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내가 늘어진 줄 같았다. 인연이 되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 하는 태아들로 침통해 있을 때 남편은 바지랑대가 되고 따뜻한 햇살이 되어 힘을 보태 주었다.
빨랫줄과 바지랑대처럼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인생살이이지 싶다.
무거워진 줄에 온 식구가 걸려있다. 혼자 두 팔 벌리고 힘겨움을 참고 있을 남편의 빨랫줄에 이제부터는 내가 바지랑대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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