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 지연희
한 방울의 눈물은 수만 말의 소리가 응축되어 전하는 견고한 침묵, 소리 없는 육신의 말이다. 어떤 수식어로도 따를 수 없는 맑고 투명한 슬픔으로 응축된 한 마디의 고결한 언어이다. 이과수폭포의 장엄한 울음이 소리를 배설하여 마침내 직조된 실크 한 방울, 미소를 띤 입술 위로 흐르는 순결한 사랑이다. 댓잎 끝에 떨어지는 비장한 슬픔의 한 모금 이슬이다. 눈물샘을 타고 흐르는 마음 한 조각이 볼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 미소를 지으며 떨어뜨리는 가슴 무너져 내리는 슬픔을 바라본다.
가난을 흐르는 시냇물 소리로 곁에 두신 세상의 아버지는 평생 가장이라는 크기에 눌려 크게 눈물 한 번 터뜨리지 못하고 장례식장의 영정 사진 속에서 처연히 미소를 짓고 있다. 고단한 일상을 삭일 수 있도록 품속에 수많은 생명의 식솔을 천형으로 안고 있는 산, 아버지는 솟구쳐 오르는 슬픔을 두 손으로 막으며 언제나 가장 당당하고 언제나 가장 믿음직스럽게 의로운 자리에 서 계셨다. 평생 쓴소리 할 줄 모르는 아내에게 조기 퇴직 당하고도 입을 닫고, 큰소리치며 도심의 거리를 방황하던 시대의 낙오자였던 사람이다. 파이고 응달진 웅덩이에 고인 눈물을 가슴으로 흘려보내며 성근 절망을 포장하던 아버지는 눈물을 가난한 살림처럼 아끼셨다.
하루 종일 우렁찬 소리로 명치끝까지 맺힌 한을 풀어내는 저 강물의 눈물을 무엇으로 다 씻을 수 있을까. 그토록 쏟아내고도 풀리지 않는 한풀이는 뚫리지 않는 옹벽이다. 울컥 울컥 굽이쳐 토악질하는 비릿한 가슴앓이는 유장한 길의 끝에서야 벗어날 수 있을 터, 바닥이 다 드러나도록 깊은 응어리를 퍼낼 수 없어 스스로 앙상한 가뭄이 되어버린 강물- 어머니는 눈물을 가슴으로 쓸어내리셨다. 어린 두 딸을 이승에 홀로 두고 눈을 감지 못하던 어머니의 눈물은 저승에 가시도록 멈추지 못했다.
장엄한 높이로 솟아있는 북한산이 평생을 눈물에 젖어 사는 까닭은 무엇일까. 묵은 나뭇잎으로 얼굴을 감추고 가슴속 침묵의 아픔을 묵묵히 계곡의 깊이로 흘려보내는 까닭은 잴 수 없는 무게의 슬픔 때문이다. 가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이 견고하게 응축되어 한 방울로 재련된 별빛이 아닌가. 볼을 타고 흐르는 별빛. 눈물이 계곡의 깊이로 흐르다가 마을 앞 시냇물로 흐르고 있다. 조약돌을 가슴에 품고 살갗 위로 내려앉는 햇살을 받아 헤일 수 없는 별빛으로 반짝이는 눈물은 제 속성을 지우지 못해 저 깊은 강물의 깊이를 향해 흐르고 있다.
가슴의 깊이로 흐르는 저 눈물은 수만 소리를 응축하여 재련된 한 모금의 사랑이다. 아픔을 절제하고 소리 없이 흐르는 한 방울의 침묵 속에서 가난한 우리의 아버지와 슬픔으로 평생을 지켜온 우리의 어머니가 흐르고 있다.
꽃탁발托鉢 / 김 은 주 (0) | 2025.04.07 |
---|---|
봄날 만들기 / 심 선 경 (0) | 2025.04.07 |
왜 수필이냐고 / 유 병 근 (0) | 2025.03.23 |
엄마의 빨간 고무장갑 / 송 복 련 (0) | 2025.03.23 |
방, 길들이기 / 이 은 희 (0) | 2025.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