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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수필이냐고 / 유 병 근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25. 3. 23.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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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수필이냐고 / 유 병 근

 

왜 수필이냐고 나는 나에게 묻는다. 금방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좀 생각해 보자고 말하려는데 생각할 것도 없다.

수필은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이다. 내 마음의 상처를 다독이고자 쓰는 글이다. 무슨 상처냐고 물으면 딱 꼬집어서 이러저러한 상처라고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말해야겠다. 그래야만 왜 수필이냐고 하는 얄팍한 물음에 궁색한 변명이라도 될 것 같다.

한 아이가 운동장에서 공차기를 하고 있다. 담장 쪽으로 굴러간 공이 담장에 부딪쳐 아이에게로 되돌아온다. 되돌아온 공을 다시 찬다. 언젠가 산을 탈 때였다. 산 중턱에 깊은 골짜기가 있었다. 그 골짝을 향하여 야호! 소리를 쳤다. 소리는 다시 되돌아왔다. 골짜기가 내 소리를 받아 되돌려준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골짜기는 학교 운동장의 담장이었다. 되돌아 오느라 좀 피곤해 보이는 소리였다.

산을 타는 나도 약간은 피곤했었다. 두 피곤이 서로 피곤을 쓰다듬느라 천천히 산을 탔었다. 피곤을 치유하는 길이 산타기라는 어렴풋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 생각의 꼬투리에서 움트는 피곤의 싹을 가꾸어볼 요량을 그때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모르는 것에서 실낱같은 수필의 싹이 트는 것이라고 짐짓 말해야겠다.

좀 크게 떠벌릴 엄두는 내지 못한다. 작은 것에서 일어나는 작은 상처 같은 것에서 수필의 씨눈을 본다. 그걸 심는 공책이며 컴퓨터 바닥에 수필이 움튼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시의 씨앗을 심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것은 그때마다의 사정에 따른다고 둘러대어야겠다. 양손에 떡을 쥐고 어느 쪽을 먼저 먹을까 하는 것은 그때마다의 사정 아닌가.

그러고 보면 수필은 마음에 일어나는 상처를 치유하려는 수단이다. 수필을 상처치유 수단으로 삼다니 수필 쪽에서 보면 괘씸한 일이다. 장사하는 사람은 돈을 벌고자 상점에 이런저런 물건을 진열한다. 장사꾼에게 이용당했다고 돈이 좀 억울해 할지도 모른다.

괘씸하게 생각하고 억울하게 생각하는 사이 세상은 오늘 변하고 내일 변한다. 나는 그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는 수필을 하고자 책장 넘어가는 책장의 상처에 눈을 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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