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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읽다 / 박 종 희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25. 1. 5.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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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읽다 / 풍화/ ㅡ박 종 희

시간은 기억의 방이다. 아주 내밀하게 드나들 수 있는 나만의 통로다. 문을 열면 아스라이 멀어져 간 추억이 머물고, 손을 뻗으면 놓치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 닿을 듯한 그리움의 곳간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애써 떠올렸던 흔적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오히려 통증만 남겨두는 시간의 속을 나는 아직도 알 수 없다. 그래서일까. 지나간 시간을 열면 그리움과 아픔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하루가 다르게 조바심 내던 시간이 마침내 어머니의 손을 놓았다.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지 8개월 만이었다. 단, 1분 만에 생과 사를 정확하게 갈라놓은 시계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초침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이승에서 어머니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사흘뿐이다.
  한정된 시간은 야속하게도 융통성이 없다. 어머니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맞이하며 눈물을 찍어내고 몇 끼 육개장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나니 누더기가 된 시간은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다.
  사흘째 되던 날 시간은 어머니를 화장터로 모셨다. 자식들의 마지막 인사가 끝나자 어머니를 누인 방에 빨간색 불이 들어왔다. 화로실 아궁이가 보이는 유리창을 바투 두고 묵은 각질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마지막 의식인 화장(火葬)을 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번민과 편린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섰다. 생의 언저리에서 어머니의 시간 속에 파고들었던 크고 작은 일들이 씀벅씀벅 머리를 들었다.
  내 삶에 그을음처럼 어머니를 원망하던 때가 있었다. 어릴 때 어머니한테는 늘 새물내가 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깔끔하고 부지런하던 어머니가 자리에 누우셨다. 어지럼증으로 부재중이던 어머니의 자리를 가까스로 아버지가 채우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누워있는 집은 온기가 없었다.
  눈을 감았다. 그날의 흔적을 찾으려 시간을 들추자 어둠 살 곱게 번지는 친정집 앞마당이다. 아슴아슴 추억을 더듬으며 방문을 여니 막내를 잃고 해쓱해진 어머니가 보였다. 하도 어렸을 때의 일이라 기억도 희미하지만, 어머니가 머리를 싸매고 눕기 시작한 것은 막냇동생이 죽고 난 뒤였던 것 같다.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된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방은 빛을 잃었다. 시간이 멈춘 듯 침울하고 눅눅했다. 아침이 와도 어머니는 눈을 뜨지 않았다.

어머니의 시간을 더듬으면 이상하게도 가슴이 저리고 알짝지근해진다. 아마도 장녀라는 역할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리라. 어머니의 시간을 읽다가 문득, 20여 년 전 초여름 어느 날의 시간 앞에서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그날의 일을 제법 꼼꼼하게 기억하는 시간은 어머니한테 분홍색 고운 반소매 티를 입혔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어머니한테 내가 생신 선물로 사다 드린 옷이었다. 어머니는 주방에서 티셔츠 색깔보다 더 진한 분홍색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아버지는 안방에서 들리지도 않는 티브이 볼륨을 아주 크게 틀어놓고 있었다.
  어머니는 당신 생일이라고 밀물처럼 밀려왔던 자식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돌아가고 남아 있는 텅 빈자리와 시간이 갑자기 무섭고 두려워졌다고 했다. 늘 반복되는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갱년기를 맞이해 마음의 근육까지 모두 소진한 어머니한테 그날은 특별히 더 공허한 날이었던 것 같다. 먼 길 가는 큰딸한테 서둘러 가라고 등을 밀었지만 한편으로는 당신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하소연하고 싶었을 게다.
  그날 우리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내가 어머니를 위로했는지 무관심하게 지나쳤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이란 원래 양면성이 있어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고 어느 순간 자기한테 유리한 쪽으로 왜곡하기 때문이리라.

두 시간이 지났을까. 어머니를 모신 방에 초록색 불이 들어왔다. 화장(火葬)이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육 남매가 시도 때도 없이 빼먹은 등골로 구멍이 숭숭 난 유골이 한 줌의 재로 남았다. 80년이라는 시간이 남긴 어머니의 흔적 앞에 나는 다시 무릎을 꿇었다.
  시나브로 어머니의 장례에 맛 들어가던 시간이 드디어 폐장 시간을 눈앞에 둔 듯 초조해졌다. 하늘이 내려앉듯 이제 정말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 의식을 맡은 목사님은 어머니가 보고 싶으면 서로의 얼굴을 기억하라고 했다. 목사님의 말끝에 형제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육 남매의 얼굴마다 어머니의 마디마디가 역력하게 드러나 보였다.

어머니가 떠나시고 멈춘 듯 보이던 시간이 계속 흘렀다. 다시 어머니의 시간을 읽는다. 어머니의 시간은 모가 나거나 수직적이지 않다. 육 남매 키우면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세월에 깎여서인지 둥글며 탄력 있고 제법 융통성도 있다.
어머니만큼 시간을 요긴하게 쓴 사람이 또, 있을까. 어머니는 시간을 축내지 않고 마디게 부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육 남매를 위해 매일 새벽기도를 다녔다.
  승진을 앞둔 큰오빠와 구조조정에 걸려 있던 남동생, 기관지가 약해 골골하는 큰딸까지 육 남매 중 어느 한 명이라도 뒤처질까 봐 애쓰던 어머니는 가뭄으로 타들어 가는 이삭들도 모두 일으켜 세웠다. 생각해보면 육 남매 모두 무탈하게 사는 것도 다 어머니 덕인 것 같다.

 어머니가 떠나시고 나서 벌써 일곱 번째의 봄을 맞이하지만, 여전히 7년 전의 봄날이 선명해 눈이 아프다.
도대체, 무슨 심사일까. 정확한 성질만큼 뒤변덕스러워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전해주는 시간은 어디에 갇혔다가 불쑥불쑥 나타나는지. 잊을만하면 불현듯 시간의 빗장이 열린다.
  그렇다 하여도 변하는 것은 없다.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어둠이 몰려오면 잠을 잔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어머니의 시간을 먹고 자란 내가 어머니의 기막힌 시간을 읽어내느라 내 시간이 빨리 소진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시간을 읽는다.

 

                                                풍화 (風化) / 박 종 희

 

 오래된 사찰이 안겨주는 편안함과 축적된 시간이 느껴지는 단청의 멋스러움에 끌려 절을 찾는다. 고찰(古刹)의 역사만큼이나 마음이 깊어지는 곳.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린 날, 마곡사에 발길이 닿았다. 눈 위에 먼저 길을 내준 사람들의 발자국을 밟으며 들어서는데 속세를 벗어나 법계로 들어선다는 해탈문이 반긴다. 사찰의 정문 역할을 하는 해탈문과 천왕문을 통과해 경내에 들어섰다.

 

고작해야 30여 분 거리에 있는 마곡사를 얼마 만에 왔는지. 코로나가 발생하기 훨씬 전에 다녀갔으니 족히 5,6년은 지난 것 같다.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비스듬한 듯 불안해 보이던 5층 석탑도 그대로다.

 

연말이라 그런지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며 탑돌이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들을 뒤로하고 대광보전으로 발길을 옮겼다. 올해 유난히 도섭 부렸던 기후 탓인가. 화려하던 팔작지붕의 모습도 다소 숙연해 보였다.

 

긴 세월 바람과 햇살의 손길로 쓰다듬은 빗꽃 창살과 꽃살무늬 창호에서도 수선거림이 느껴지고. 수많은 인연들이 스쳐 간 듯 손때 묻은 출입문 기둥은 껍질이 벗겨져 목리가 보였다. 우려했던 것이 확인되듯 내부에 단청공사를 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빛바래고 낡은 것이 어디 그들뿐이랴. 팔작지붕 아래 용 모양 조각의 서까래와 공포의 빛바랜 색깔에서도 세월로 접힌 주름이 보였다. 군데군데 시간이 새긴 상처가 사찰의 내력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수수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자태만은 여전했다.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면서 어떻게 이토록 단아하게 늙어갈 수 있을까. 성질이 유순한 나무집이기 때문일까? 나무로 이은 건축물은 혹한의 추위와 폭염을 꾹꾹 눌러 안으면서도 티를 내지 않는다. 숱한 사연을 나이테 한 줄로 새길뿐 사람처럼 억울함을 하소연하기는커녕 더 과묵하고 단단해진다.

 

된바람에 지난 생이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몸피를 덜어낸 걸까. 다소 가벼워 보이는 단청의 무늬와 색깔도 연해지고 벗겨진 기둥에 코를 대면 날내가 날 듯도 하다. 묵언수행으로 해탈한 스님과 지내면서 건축물도 달관의 경지에 든 걸까. 웬만한 일에는 흔들림이 없다는 듯 마음에 중심을 잡고 서 있는 대광보전이다.

 

환갑을 넘긴 내 모습은 어떠한가. 색과 색이 섞이며 하루가 물들어가는 시간, 내공으로 편안하게 관람객을 맞고 있는 대광보전 앞에서 내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야윈 얼굴에 강한 이미지를 풍기는 광대뼈가 오늘따라 도드라져 보인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그루잠을 자니 눈 밑도 어둡고 움푹 파여 선명한 팔자 주름도 가관이다. 물기 없이 칙칙한 얼굴에는 어느새 기미도 얼룩얼룩하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 무슨 장한 일 한다고 잠 설치며 발버둥 치는지.

 

사람은 나이 들면서 생기는 주름도 있지만, 인간관계에서 마음 사용을 잘 못해 발생하는 풍화도 있다. 몇 년 전, 나도 땅이 흔들리는 것처럼 내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렸던 적이 있다. 언제나 내 편이던 친정어머니가 한마디 언질도 없이 내 곁을 떠나셨다. 갑자기 닥친 이별에 기가 막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를 추억하며 편안하게 보내드려야 했는데. 고인을 앞에 모셔놓고 생전에 누가 더 잘해드렸는지 생색 내기에 바빴던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앞이 아뜩해진다. 내 슬픔만 앞세우느라 어머니와의 시간을 삼켜버린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태풍이 휩쓸고 가면 건축물이 망가지고 상처가 생기듯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내 몸에도 풍화가 일어났다. 그때 내 살 궁리로 상심에 빠져 지내느라 얼굴에 그늘이 생겼다.

 

같은 태풍이 훑고 지나가도 건축물에는 자연스러운 무늬가 생기는데 사람의 얼굴에는 왜, 깊은 주름이 생기고 인상도 변할까? 건물이라고 아픔이 없을까만, 건축물은 바람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며 비를 맞아들인다. 한데 사람은 어떤가. 어떻게든 바람을 피하고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 않는가. 그처럼 고통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다르기 때문이지 싶다.

 

내가 어머니와의 이별을 핑계로 허우적거릴 때, 대광보전은 지붕이 흔들리는 사나운 비바람이 휩쓸고 가도 다시 밝은 날이 오리라는 희망으로 버텨 냈고. 찌는 듯한 더위에 목이 타들어 가도 곧 서늘한 저녁이 오리라는 마음으로 이겨냈기 때문에 은은하고 고풍스럽게 나이 들었으리라.

 

대광보전에서 내려와 5층 석탑에 눈을 돌린다. 층층이 쌓은 돌탑에도 언틀먼틀하게 파인 상처가 보인다. 세파에 흔들리고 젖으면서도 내면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고 얼마나 마음을 다독였을까. 시간이 휘두르는 소멸의 고통을 묵묵히 견뎌낸 석탑이 내심 대견해 보였다.

 

풍화는 어쩌면 모든 생명과 사물의 원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니 너무 애쓰지 말라고 내게 일침을 가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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