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눈부처로 옆에 서는 것 / 김 애 자
그이는 하현달 아래서 생의 층계를 내려가고 있다. 희미한 그림자를 앞세우고 천천히 가벼운 걸음으로 내려가고 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 직장이란 조직에서 성과 비율에 따른 경쟁과 갈등에서 벗어난 지 25년. 그 세월이 그를 달관시켰다. 혼자서 잘 놀 줄을 안다. 어제와 그제, 그리고 오늘과 내일이 별반 다르지 않다. 굴곡 없는 수평적인 일상의 연속이지만 그는 안다. 순자가 말한 복이란 재앙이 없는 삶이 이어지는 상태라는 것을. 부자의 개념도 가진 것보다 덜 원하면 평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가을에 잎 지는 나무를 보고 깨달았다고 한다.
열매를 맺는 나무들은 가을이 깊어지면 열매와 잎을 모조리 땅으로 내려 보낸다. 다 털어버리고 가벼워져야 폭설과 삭풍에 다치지 않는다.
우린 80평생을 서민으로 살아왔다. 서민으로 살아서 버릴 것도 털어 낼 것도 없다. 그 가벼움이 안분지족이란 둥우리 만들어 주었고, 우린 그 둥우리 안에서 해마다 섣달그믐 이마를 마주대고 행복리스트를 점검한다. 하루하루 만족하게 살기. 매일 감사하며 살기. 내가 가진 것 조금 덜 쓸고 나누기. 운동 꾸준히 하기, 서로 자기주장만 내 세우지 않기로 정해 놓았다.
다섯 가지 원칙 안에서 그는 나름대로 일정을 짜놓고 실행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운동으로 하루를 연다. 운동 한 시간 후에 아침 식사하기, 아침 먹고 나면 밥값으로 아내가 정해준 자기 방 청소를 시작한다. 매번 밀대로 방바닥을 닦을 적마다 '메기의 추억'을 흥얼거린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앉아서 놀던 곳’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1960년대 초에 대학 캠퍼스에서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떼창으로 부르던 발라드풍의 가요다.
그에게 메기의 추억은 청춘에 대한 그리움의 광장일 터이다. 갓 대학에 들어간 스물한 살 청년이 선배 혹은 친구들과 막걸리 잔을 부딪치면서 건배를 목청껏 외치면서 술잔을 입술에 댈 적마다 막걸리의 특유한 향은 짜릿할 정도로 미각을 자극했을 것이다. 취기가 온몸으로 번지면 태산이라도 들어 올릴 것 같은 쾌활한 호기를 부리며 스크럼을 짜고 캠퍼스 잔디밭으로 몰려가 불렀던 노래를 기억의 파일에서 꺼내들고 밀대로 방바닥을 닦으며 흥얼거린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육체가 노쇠해지면 지나간 날들을 그리워하게 된다.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시간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 데, 할일 없이 적막한 일상에 갇히면 궁핍으로 얼룩졌어도, 배신과 화합의 경계에서 골머리를 앓게 했던 사건들마저도 그리움으로 윤색된다. 별것 아닌 사소한 것들조차 그리움의 너울을 쓰고 웅얼거림으로 다가온다.
아내와 청소를 마치면 커피 타임으로 들어간다. 아내가 타준 커피를 마시는 그는 늙은 아내가 눈부처다. 삼시세끼 꼬박꼬박 밥상 차려주는 아내는 세상에 태어나 가장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이다. 아내 역시 남편이 눈부처다. 그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삼시세끼 밥상을 차리겠는가.
부부란 정면에서 마주 보고 사는 것이 아니다. 옆에서 보폭을 맞추며 함께 가는 사이다. 그이는 커피타임이 끝나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 조선일보와 동양일보를 읽는다. 그 다음은 한 시간 산책하고 돌아와 두 시간 정도 낮잠을 즐긴다. 대신 밤이면 이슥하도록 고전을 읽는다. 눈부처 옆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인생의 뜰을 거니는 천진한 지구의 소요인(逍遙人)이다.
한 컷의 삽화 / 김 애 자
여름에는 나무가 산을 키우는 장성長成의 계절이라 하던가요. 의기양양하게 키를 높이는 나무들의 짙푸른 야생성이 눈부십니다. 당신께서 보내주신 시클라멘도 한꺼번에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흰색, 분홍, 선홍으로 어우러진 열아홉 송이의 꽃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불가에선 가섭 존자가 스승의 손에 들려 있는 꽃 한 송이를 보고 지은 미소로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선근禪根을 세웠다고 전합니다. 일손을 놓고 모처럼 만개한 꽃 앞에서 누리는 한가함이 이월금을 물려받은 것처럼 기분 좋습니다. 꽃이 빚어낸 시정화의詩情畵意 또한 우리들만의 '이심전심'이 아니겠는지요.
실은 이틀 동안 몸살로 된통 앓았습니다. 며칠 전부터 근육과 신경세포가 쉬고 싶다는 교신을 수없이 보내왔으나 아카시꽃이 필 때여서, 꿀 채취와 마늘종 뽑는 일을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일은 시기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안간힘으로 버티다 그예 탈이 나고 말았습니다.
흔히 넘어진 자리에서 쉬어 간다는 말처럼 이참에 사나흘쯤 푹 쉬어 볼 요량입니다. 그동안 제 몸은 주인을 잘못 만난 탓으로 호사를 누려 보지 못했습니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과 꽃이 뿜어내는 화려한 빛깔의 부력에 떠 있는 정원과, 언제든 찬거리가 풍성한 채소를 가꾸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도시인들은 이러한 실정을 전혀 모를 것입니다. 노동의 대가에 따른 생산의 원칙과, 일하면서 느끼는 소박한 기쁨과,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라는 식물들의 영특함에 대해서 말입니다.
흔들의자에 몸을 맡기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언제부터인가 까치 한 마리가 잔디밭에서 입질을 하고 있었나 봅니다. 필시 지렁이를 사냥하고 있을 까치란 놈은 의심이 많답니다.
인가 근처에 사는 텃새지만 사람이 거처하는 마당까지 날아와 입질을 하기란 드문 일임에도 올 들어선 방문이 잦습니다. 게다가 데크 난간을 저의 집 안방처럼 들고나는 동박새는 비상 직전엔 배설물을 함부로 싸 놓아 걸레질을 자주 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거실에 앉아서 깃털이 고운 새들이 날아와 고개를 좌우로 돌리거나, 꽁지깃 까불대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만한 수고쯤은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데크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그이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손가락을 입에 대고 뒤뜰을 향해 눈짓을 보냅니다. 이미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가를 다 아는 터라 후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창 앞으로 다가갔지요.
졸참나무 아래로 난 사잇길에서 노루가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보아도 살집이라곤 전혀 없는, 다리와 목이 가늘어 가련해 보이기조차 한 짐승은 가끔 방초 우거진 숲으로 내려와선 풀을 뜯다가 되돌아가곤 합니다.
저는 풀을 뜯는 노루의 행위보다는 노루를 보는 그이의 모습이 더 좋습니다. 무겁게 매달고 있던 권위주의와 지식인의 자존심을 빼낸 그는, 로마 카톨릭 교황으로 추대된 베네딕트 교황께서 말씀하셨듯 '포도원의 보잘것없는 미천한 농부'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미천한 농부인 그가 검은 면포를 쓰고 벌통 앞에서 벌들을 살필 때면, 누런 비늘을 단 구렁이가 돌 틈에서 기어 나와 그의 곁에서 볕을 쬐곤 합니다. 구렁이와 그이 사이엔 두려움의 경계가 없습니다.
같은 터에서 사는 처지임을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는 듯 혀를 몇 번 널름거리고는 양지쪽에 몸을 틀고 앉아 있는 꼬락서니라니요.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깔'도 띠지 못했고, 이브를 꼬드겨 낸 제 조상의 '원통함을 물어뜯을' 것을 강요하는 시인의 의사와도 상관없습니다.
단지 한 마리 구렁이일 뿐인 녀석은, 비가 내리고 나면 은거지에서 나와 한가롭게 볕 쬐기를 하고는 제 집으로 들어가곤 합니다.
남편이 구렁이를 곁에 두고 벌통을 보는 날이면 저는 시아버님께서 들려주었던 '바닷가 할멈' 이야기를 생각하게 됩니다. 먼 옛적, 동해 바닷가 어촌에는 늙은 어부 내외가 살고 있었답니다.
노인이 낚싯대를 메고 바닷가로 나가면 갈매기 한 마리가 어깨 위에 올라앉아 어부가 주는 고기를 받아먹으며 말벗이 되어 주었답니다. 어느 날 저녁, 노인은 할멈에게 갈매기와의 우정을 자랑삼아 들려주자 할멈은 자기도 그 갈매기가 보고 싶다며, 내일은 그놈을 꼭 잡아올 것을 간청하였다지요.
다음날 노인은 종일토록 갈매기를 기다렸으나 끝내 오지 않았답니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갈매기는 노인의 어깨를 다시는 찾지 않았다지요. 갈매기는 노인의 기심機心을 먼저 알아차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덧 산그늘이 내립니다. 빛과 그늘의 눈금에서 빛나는 일광이 눈부십니다. 그러나 저 일광도 몇 시간 후면 함지에 잠기고 말 것입니다. 이쯤에서 저도 저녁상에 올릴 찬거리를 준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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