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세수 외 4편 / 정 승 윤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22. 3. 28. 04:12

본문

                                                                    <세수>

 

 그 시절엔 거지가 흔했다. 그때는 거지들이 탁발승처럼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구걸을 했다. 곡식을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먹던 밥을 퍼주었다. 어머니가 거절하는 경우는 대개 거지가 아침 식전에 온다거나, 멀쩡한 사람이 구걸을 다니는 경우였다. 거절하면 말없이 조용히 가는 사람도 있었고 문간에 붙어 서서 떼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 전후에 생긴 고아 거지들도 많았다. 그 애들은 대개 깡통을 들고 다녔다. 길거리에, 다리 밑에, 사직공원 정자에 거지들이 득실득실했다. 거지를 보지 않고 지나는 날이 드물 정도였다. 양지 녘에 거지 남매가 쪼그리고 앉아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던 기억도 있다. 몇 사람이 발걸음을 멈추고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어디서 얻은 밀가루인지, 조그맣게 반죽을 하여 떡 모양도 빚고 국수 모양도 빚고 있었다. 그 모양이 제법 그럴싸해서 사람들은 연신 감탄을 하며 웃고 있었다.

 하루는 식구들이 다 집에 없고 나 혼자 마루에서 뒹굴고 있는데 웬 거지 하나가 불쑥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 거지가 구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짜고짜 우물가로 가는 것이 아닌가. 나보다 서너 살쯤 더 들어 보이는 여자애였다. 세숫대야에 펌프 물을 받더니 태연히 세수를 하였다. 거지라면 당연히 굽실거리며 구걸을 해야 마땅할 텐데, 그의 하는 짓이 어린 눈에도 너무 터무니없어 보였다. 거지가 낯을 씻는다는 것도 어쭙잖은 일이거니와, 주인 허락도 없이 대야를 사용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른 거지라면 무서웠겠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는 하지만 여자애 아닌가. 나는 용기를 내서 소리를 질러 보았다. 그러자 그 여자 거지 애는 나를 빤하게 쳐다보더니 입가에 묘한 웃음을 지으면서 아주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팔과 목까지 씻었다. 나는 거지를 줄곧 노려보았지만 그 거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것은 도저히 구걸하는 거지의 태도라고 볼 수 없는 도도한 태도였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혹시 어머니가 돌아오셔서 거지가 하는 짓을 보고만 있었다고 나무랄까 봐, 가끔 멍청한 개처럼 소리를 한 번씩 내지르곤 했었다. 도대체 저 애는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것일까. 가만히 있으면 얕보고 더한 짓을 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두려운 생각마저 들어 목소리마저 떨려 나왔다. 저게 누나라면 한 대 쥐어박을 텐데. 그러나 그 애는 내 누나처럼 만만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 애는 그런 식으로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주면서 나를 실컷 괴롭히더니 올 때처럼 말 한마디 없이 세수만 끝내고 나가버렸다. 뭘까? 왜 하필 우리 집에 와서 세수를 했을까? 나는 수수께끼에 휩싸여 오후를 보냈다. 나중에 어머니가 돌아왔을 때, 그 이야기를 꺼낼까 말까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틀림없이 ‘이 방안 퉁수 같은 놈, 명색이 사내자식이 그걸 못하게 해야지 보고만 있었냐’ 하고 핀잔을 줄까 봐 주저가 되었다. 밖에서는 불지 못하고 캄캄한 골방에서만 퉁소를 부는 ‘방안 퉁수’가 되더라도 나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어머니는 뜻밖에도 나를 나무라는 대신 뭔가가 짐작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그 거지 애가 이만저만한 여자애가 아니더냐’고 물으시더니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아침에 나가시다가 그 거지를 만났는데 제법 처녀꼴이 나는 애가 거지라도 너무 더럽게 하고 다녀서, 어디 개울에라도 가서 좀 씻고 다니지 그러냐고 충고 삼아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세상에 기어이 우리 집을 알아내 가지고 그 앙갚음을 하였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나는 비로소 그 여자애의 행동들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그때 나는 처음으로 ‘여자의 자존심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라는 중대한 사실을 깨달은 셈이다. 나는 지금도 여자들이 두렵다. 울고 나서 세수하는 여자들이 두렵다. 울고 나서 화장을 고치는 여자들은 더욱 두렵다.

 

                                                                   <닭집 여자>

 

 어느 날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정육점 이야기가 나왔다. 대치 사거리 어느 집은 고기를 두껍게 썰어주는데 삼겹살용으로는 그만이라는 둥, 돈을 벌려면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둥,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가 결국 화제가 여자 쪽으로 빠졌다. 한 친구의 이야기가 자기가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정육점 여자들이 대체로 예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칼을 든 여자가 더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는 건 중국이나 홍콩 무협영화에서 익히 보아왔던 바가 아닌가. 그 이야기를 듣자니, 문득 동네 장터에서 생닭 한 마리를 샀던 기억이 떠올랐다.

 변두리 그 장터는 오일장이라기보다는 상설시장에 가까웠다. 닭집들은 항상 문이 열려 있었고 입구에 쌓아놓은 좁고 낮은 케이지에는 닭과 오리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거나 뒤쪽에 웅크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트에 진열된 냉동 닭보다는 생닭을 잡아먹는 것이 더 맛이 있지 않으려나 싶어 그 중 한 집을 찾았다. 예상과는 달리 집주인은 젊은 여자였다. 머리는 뒤로 질끈 묶고 검정 비닐 앞가리개를 한 활기찬 여자였다. 비교적 빛깔이 곱고 튼실해 보이는 암탉을 골라 흥정을 끝내자 그 여주인은 케이지에서 닭을 끌어냈고 닭도 고분고분 끌려 나왔다. 저 여자가 닭을 잡으려나, 아니면 닭 잡는 남정네가 따로 있으려나, 그런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여자가 돌아서더니 짧은 삼각형 모양의 칼로 닭의 앞가슴을 푹 찔렀다. 그리고는 바로 옆에 있는 털 뽑는 회전판 속으로 던져 넣었다. 몇 번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곧 윙하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금방 털이 벗겨진 닭은 다시 물로 씻겨 몇 오라기 남은 털마저 뽑히고 도마 위에서 내장이 제거된 후 검정 비닐봉지에 담겨졌다. 불과 몇 분도 채 걸리지 않는 듯싶었다. 그 숙련된 과정 중에서도 특히 여주인이 닭을 칼로 찌르는 동작은 놀랍도록 빠르고 절제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았다.

 대학 시절, 캠핑을 가서 닭을 잡아야 할 경우가 있었다. 내가 자처했는지 닭 잡을 사람이 따로 없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닭 잡는 임무가 나에게 떨어졌다. 막연히 목을 잡아 비틀면 죽는 걸로 생각했다. 정말이지 빨래를 쥐어짜듯 목만 비틀면 그냥 맛있는 닭고기가 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닭을 잡아서 모가지를 비튼다는 행위 자체가 생각보다는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닭은 상상 밖으로 심하게 푸드득거리며 저항하였다. 그때만 해도 패기만만하던 젊은 시절이라 닭 한 마리 못 잡는 심약한 사람으로 취급받긴 싫었다. 그리고 닭을 먹고자 하는 자가 닭 잡는 것을 회피한다는 것은 일종의 위선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힘차게 닭 모가지를 비틀었다. 닭이 까무룩 눈을 뒤집으며 두 다리를 쭉 뻗었다. 닭의 따듯한 체온이 손으로 전해져 왔고 내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닭 모가지를 비틀고는 이제는 죽었겠지, 생각하고 놓았다. 그러자 마치 불다가 손에서 놓친 풍선처럼 그 닭은 푸드덕거리며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놀림감이 되고 말았다. 그 후로는 다시는 닭을 잡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닭고기를 즐기며 오히려 남보다 많이 먹는 편에 속할 것이다.

 손님을 위해서 닭의 가슴에 칼을 찌르는 그 닭집 여자를 보니, 남자인 내가 과연 ‘평생을 살육하지 않고 살았다’며 안심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윤회가 거듭되면 나도 언젠가 칼로 찌르는 자가 될 수도 있겠고 칼을 받는 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오면 과연 나도 저 여자처럼 저렇게 무심하게 칼로 찌를 수 있고, 저 닭처럼 저렇게 무구한 모습으로 칼을 받을 수 있을까. 닭집의 그 젊은 여인을 생각하니 비로소 왜 칼을 든 여자가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오목가슴이 서늘해지도록 이해할 수 있었다.

 

                                                                <돼지 잡는 날>

 

 예전에 시골에서는 가축은 직접 도축하였다. 닭이나 오리 같은 가금들은 주인이 직접 잡았고 소나 돼지 같은 비교적 몸집이 큰 동물들은 그 마을에 사는 전문가의 손에 맡겨졌다. 우리 마을에서는 ‘잉근’이라는 사람이 주로 그 일을 맡아 했다. 그는 간질병이 있었으며 그래서인지 혼자서 외딴곳에 사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큰집 뒤안에서 돼지를 잡는데 마을 행사처럼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떠들썩했다. 나도 어른들 틈에 끼어 호기심 어린 눈길로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잉근이였지만 그날만큼은 거의 그의 독무대였다. 돼지는 이미 네 발이 묶여 있었고 잉근이는 손에 듬직한 참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흔히 말하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돼지의 멱을 따기 직전까지의 그 단말마의 비명을 듣게 되었다. 잉근이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돼지의 머리를 향해 힘차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때마다 터져 나오는 돼지의 비명은 엄청난 것이었다. 몽둥이를 휘두르는 잉근이의 눈에서는 이상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사람들도 그 열기에 함께 휩싸인 듯, 말없이 뚫어져라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어른들의 옷자락을 잡아 흔들며 이렇게 묻고 싶었다.

 “도대체 왜 때리는 거죠? 고기를 먹기 위하여 돼지를 잡아 죽이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도대체 왜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때리는 거죠? 저 돼지가 무슨 죄를 졌나요? 아니면 그냥 재미로 때리는 건가요?”

하지만 나는 물을 수가 없었다. 어른들은 그 일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성 싶었고, 또 그 일 자체가 어른들만이 치르는 의식처럼 여겨져서, 어린아이인 내가 끼어들 계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무의식 속에는 분명 이런 항변도 있었을 것이다.

 “돼지보다 약간 우월하다고 해서 돼지에게 이런 짓을 저질러도 된다면, 만약 인간보다 약간 우월한 존재가 있다면 과연 이 세상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나는 마른 침을 자꾸 삼켰다. 주먹을 쥔 두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돼지가 울부짖을 땐 모든 세계가 돼지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 후에 돼지가 완전히 쭉 뻗고 나자, 잉근이는 간신히 숨을 헐떡이고 있는 돼지의 목 밑에 흰 보시기를 받쳤다. 그리고는 방금 갈아낸 듯, 날이 시퍼런 칼로 돼지의 멱을 찔렀다. 돼지는 조용히 피를 쏟으며 죽어갔다. 죽어버린 돼지는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 다시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그의 부음이 날아왔다. 요즘은 부음이 한두 줄의 문자로 날아온다. 한동안 머리가 멍했다. 그와 나의 인연은 각별하다면 각별했다.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어서 상당히 오랫동안 같은 차로 출퇴근을 했었다. 그는 나에게 티베트 승려들이 쓴 '사자死者의 서'를 읽기를 권했었다. ‘죽음’도 ‘삶’만큼 철저히 대비하라는 요지의 책이었던 것 같다. 상가에서 듣자하니 호스피스 병원에서 예정된 죽음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사전에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명퇴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그는 혼자 그렇게 덜컥 죽고 만 것이다. 본인은 철저히 죽음에 대비했을지 몰라도, 남은 사람들은 전혀 그의 죽음에 대한 마음의 대비가 없었다. 나로서는 그가 죽었다기보다는 그냥 사라져버렸다는 느낌이었다. 그의 종교도 그의 철학도 별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었다. 한 사람이 그냥 별 의미 없이 사라져버렸다는 느낌뿐이었다. 슬픔은 없었다. 장례식장 어디에도 슬픔은 보이지 않았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나는 다시 그의 죽음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무빙워크와 비슷한 어떤 벨트 위에 함께 서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다 그는 나보다 몇 발짝 더 앞에 서 있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는 그 벨트 위에서 나를 뒤돌아보았다. 그것이 그와 나의 인연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가차 없는 벨트를 시간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그 벨트에서 떨어지는 것을 죽음이라고 부르거나 허무라고 부른다. 나는 길 가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벨트에서 내리는 기분으로 차에서 내렸다. 풀밭 위를 걸었다. 그리고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언제부터인지 별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언젠가 생생한 별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시간의 의미가 사라져버린 무한하고 영원한 공간을 찾아 나설 것이다. 뭇별들과 뭇생명과 한 그루 우주수가 공존하였던, 그곳으로 나는 돌아갈 것이다.

 

                                                          뜰 앞에 잣나무 / 정 승 윤

 

 낮의 광명은 사라지고 어둠이 밤을 지배합니다. 어둠은 모든 것을 뭉뚱그려놓습니다. 낮에 분리되어 싸우던 것들이 어둠이란 용광로 속에서 용해됩니다. 폭력에 의해 속박되고 지배당하던 것들이 밤의 어둠 속에서 해방됩니다, 굴욕과 수치가 밤의 따뜻함 속에서 치유되고 가리워집니다. 밤은 내 존재 자체를 지워버립니다. 나는 밤의 어둠 속에서 은회색을 띠기도 합니다. 내 머리는 별들에 닿고 내 두 발은 지하로 뻗어 나갑니다. 밤에는 모든 것들이 자체의 빛을 뿜으며 하나가 됩니다.

  나는 전기가 없던 시절에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밤이 되면 호롱불을 켰습니다. 온 세계는 어둠에 묻히고 호롱불이 밝힌 조그만 공간이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석유 졸아드는 냄새가 났고 그마저 아까워 심지를 콩알만큼 줄이곤 했습니다. 그러면 세상도 콩알만큼 줄어들었습니다. 그 불빛에 비치는 희미한 얼굴들이 내가 아는 사람들 전부였습니다. 그 불빛 안에서 형제들과 함께 뒤척이며 자는 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 허우적이며 머릿속으로 몇가지 그림을 그리다가 나는 곧 잠의 세계에 빠져듭니다, 그러다가 한밤중에 문득 잠이 깰 때가 있습니다. 바람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상한 새소리도 들렸습니다. 나는 어둠 속을 헤치며 밖으로 나옵니다. 칙간에 가기 위하여 두 발로 섬돌 근처를 더듬거립니다. 조금씩 어둠에 익숙해지며 나는 마당에 서게 됩니다, 그때 나는 어둠이 갑자기 광막한 세계로 펼쳐지는 걸 느낍니다. 온 우주의 끝까지 내 감각이 이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온 세계의 물들이 은백색으로 흘렀습니다, 온 세계의 풀들이 은회색으로 빛났습니다. 내 안의 모든 것들이 그것들을 향하여 흘러갔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 안을 향해 흘러들어왔습니다,

  전기가 들어온 이후에 우리는 그 같은 밤의 세계를 잃었습니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밤은 곧 낮의 세계로 뒤바뀝니다. 낮의 밝음 속에서는 우리는 경쟁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치고 때리고 모욕줘야 합니다. 지치고 상처 입은 채 집으로 돌아와 불타는 증오와 보복의 갈등으로 날을 새웁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편안한 잠을 잃었습니다. 어둠이 모태처럼 우리를 감싸던 따뜻한 밤을 잃었습니다. 각자의 밀폐된 방에서 분리된 개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마다의 태양을 켜고 저마다의 협소한 우주 속에서 저마다의 진리를 찾습니다. 그러나 모든 진리의 말씀들은 결론이 아닙니다. 끝없는 사변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웃이 누구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어떤 이웃들을 얼마만큼 사랑해야 하는지, 그것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만큼 해결할 수 있는지, 끝없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사변과 사념에는 어떤 해결책도 없습니다. 그 진리를 따르는 어떤 실천에도 반드시 오류와 모순이 등장합니다. 결국 절대적 진리나 절대적 도덕의 존재에 대한 의심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나는 어둠이 그립습니다. 인위적인 불 한 점 없는 절대 어둠이 그립습니다. 그 어둠 속에 서 있는 한 그루 잣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직립한 존재 자체만으로 우주의 끝에 이르고 직관의 뿌리가 온 세계에 뻗어 그 존재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 한 그루 은회색 잣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콩알만 한 호롱불마저 바람에 불려 꺼져버리면 나는 뜰 앞에 한 그루 잣나무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존재가 하나가 되는 영원한 밤을 기원할 것입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