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 윤오영(尹五榮 1907-1976)
내가 잠시 낙향(落鄕)해서 있었을 때의 일.
어느 날 밤이었다. 달이 몹시 밝았다. 서울서 이사 온 윗마을 김군을 찾아갔다. 대문은 깊이 잠겨 있고 주위는 고요했다. 나는 밖에서 혼자 머뭇거리다가 대문을 흔들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
맞은편 집 사랑 툇마루에 웬 노인이 한 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달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그리로 옮겼다. 그는 내가 가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아니했다.
"좀 쉬어 가겠습니다."
하며 걸터앉았다. 그는 이웃 사람이 아닌 것을 알자,
"아랫마을서 오셨소?"
하고 물었다.
"네, 달이 하도 밝기에..."
"음, 참 밝소."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푸른 하늘은 먼 마을에 덮여 있고, 뜰은 달빛에 젖어 있었다. 노인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안으로 통한 문 소리가 나고, 얼마 후에 다시 문소리가 들리더니, 노인은 방에서 상을 들고 나왔다. 소반에는 무청김치 한 그릇, 막걸리 두 사발이 놓여 있었다.
"마침 잘 됐소. 농주(農酒) 두 사발이 남았더니...."
하고 권하며, 스스로 한 사발을 쭉 들이켰다. 나는 그런 큰 사발의 술을 먹어 본 적은 일찍이 없었지만 그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따라 마셔 버렸다.
이윽고,
"살펴 가우."
하는 노인의 인사를 들으며 내려왔다. 얼마쯤 내려오다 돌아보니 노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방망이 깎는 노인 /윤 오 영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세간난 지 얼마 안 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살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 청량리 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방망이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방망이를 한 벌 사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방망이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깎지도 못하고 잘 깎아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 보고 꿈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이다. 차 시간이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들은 척이다. 사실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깎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 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 되나."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 시간이 없다니까."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나는 안 팔겠소." 하고 내 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이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깎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방망이는 다 깎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방망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방망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와야 하는 나는 불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 수록 화증(火症)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그 바라보고 섰던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워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저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보면, 배가 너무 부르면 힘들어 다듬다가 옷감을 치기를 잘 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이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가 쉽다. 요렇게 꼭 알맞는 것은 좀체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방망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하는 말로 바뀌어 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동대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 나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방망이를 깎다가 우연히 추녀 끝의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채국동리부(採菊東籬不)다가 유연결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북어자반을 뜯고 있었다. 전에 더덕북어를 방망이로 쿵쿵 두들겨서 먹던 생각이 난다. 방망이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다듬이질 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만호도의성(萬戶(재방변의 도)燾衣聲)이니 위군초야도의성(爲君秋夜(재방변의 도)燾衣聲)'이니 애수(哀愁)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방망이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
참새 /윤 오 영
짹짹 짹, 짹 짹. 뭇 참새의 조잘대는 소리, 반가운 소리다.
벌써 아침나절인가. 오늘도 맑고 고운 아침. 울타리에 햇발이 들어 따스하고 명랑한 하루를 예고해 주는 귀여운 것들의 조달대는 소리다. 기지개를 펴고 눈을 비빈다. 캄캄한 밤이 아닌가.
전등의 스위치를 누르고 책상 위의 시계를 보니, 새로 세 시다. 형광등만 훤하다. 다시 눈을 감아도 금방 들렸던 참새 소리는 없다. 눈은 멀거니 천정을 직시한다.
참새는 공작같이 화려하지도, 학같이 고귀하지도 않다. 꾀꼬리의 아름다운 노래도, 접동새의 구슬픈 노래도 모른다.
시인의 입에 오르내리지도, 완상가에게 팔리지도 않는 새다. 그러나 그 조그만 몸매는 귀엽고도 매끈하고, 색깔은 검소하면 서도 조촐하다. 어린 소녀들처럼 모이면 조잘댄다. 아무 기교 없이 솔직하고 가벼운 음성으로 재깔재깔 조잘댄다.
쫓으면 후루룩 날아갔다가 금방 다시 온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마음마다 집집마다 없는 곳이 없다.
진달래꽃을 일명 참꽃이라 부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삼천리강산 가는 곳마다 이 연연한 꽃이 봄소식을 전해 주지 않는 데가 없어 기쁘든 슬프든 우리의 생활과 떠날 수없이 가까웠던 까닭이다.
민요시인 김소월이 다른 꽃 다 버리고 오직 약산의 진달래를 노래한 것도 다 이 나라의 시인인 까닭이다.
하고 한 새가 많건만 이 새만을 참새라 부르는 것도 같은 뜻에서이다. 이 나라의 민요 시인이 새를 노래한다면 당연히 이 새가 앞설 것이다. 우리 집 추녀에서 보금자리를 하고 우리 집 울타리에서 자란 새가 아닌가. 이 새 울음에 동창에 해가 들고 이 새 울음에 지붕에 박꽃이 피었다. 미물들도 우리와 친분이 같지가 않다. 제비는 반갑고 부엉새는 싫다.
까치 소리는 반갑고 까마귀 소리는 싫다. 이 참새처럼 한집안 식구같이 살아온 새도 없고, 이 참새 소리처럼 아침의 반가운 소리도 없다.
"위혀어, 위혀어" 긴 목소리로 새 쫓는 소리가 가을 들판에 메아리친다. 들곡식을 축내는 새들을 쫓는 소리다. 그렇게 보면 참새도 우리에게 해로운 새일지 모르지만 봄여름에는 벌레를 잡는다. 논에 허수아비를 해 앉히고 새를 쫓아, 나락 먹는 것을 금하기는 하지만 쥐 잡듯 잡아 없애지는 않는다. 만일 참새를 없애자면 그리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반드시 추녀 끝에 서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매몰하지도 않았고, 이삭이나 북데기까리나 겻속의 낱알, 수채의 밥풀에까지 인색하지는 아니했다.
"새를 쫓는다."고 하지 않고 "새를 본다."고 하는 것도 애기같이 귀엽게 여긴 부드러운 말씨다. 그리하여 저녁 때 다 같이 집으로 돌아온다. 지금 생각하면 황금빛 들판에서 푸른 하늘을 향하여 "위혀어, 휘혀어" 새쫓는 소리도 유장하기만 하다.
새 보는 일은 대개 소녀들의 일이다. 문득 목단이 모습이 떠오른다. 목단이는 우리 집 앞 논에 새를 보러 매일 오는 아랫말 처녀다.
나는 웃는 목단이가 공주 같다고 생각한 일이 있다. 나보다 너댓 살 손위라 누나라고 불러달라고 했지만, 나는 굳이 목단이라고 부르고 누나라고 불러주지 아니했다. 그는 가끔 삶은 밤을 까서 나를 주곤 했다. 혼자서는 종일 심심한 까닭에 내가 날마다 와서 같이 놀아 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도 만일 지금 살아 있다면 물론 할머니가 되었을 것이다.
패가한 집을 가리켜 "참새 한 마리 안 와 앉는 집"이라고 한다. 또 참새 많이 모이는 마을을 복 마을이라고도 한다.
후덕스러운 말이요, 이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참새는 양지바르고 잔풍한 곳을 택한다. 여러 집이 오밀조밀 모인 대촌大村을 택하고 낟알이 풍족하고 방앗간이라도 있는 부유한 마을을 택하니 복지일 법도 하다.
풍족한 마을에서는 새한테도 각박하지가 않다. 언제인가 나는 어느 새 장수와 만난 적이 있었다. 조롱 안에는 십자매, 잉꼬, 문조, 카나리아 기타 이름모를 새들도 많았다. 나는 " 참새만 없네" 하다가, 즉시 뉘우쳤다. 실은 참새가 잡히지 아니해서
다행인 것을..... 나는 어려서 조롱鳥籠을 본 일이 없다. 시골서 새를 조롱에 넣어 기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제비는 찾아와서 <논어>를 읽어주고, 까치는 찾아와서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고, 꾀꼬리는 문 앞 버들가지로 오르내리며 "머리 곱게 빗고 담배 밭에 김매러 가라"고 일깨워주고, 또한 참새는 한집의 한식구인데 조롱이 무엇이 필요하랴.
뒷문을 열면 진달래 개나리가 창으로 들어오고, 발을 걷으면 복사꽃 살구꽃 가지각색 꽃이 철따라 날고, 뜰 앞에 괴석에는 푸른 이끼가 이슬을 머금고 있다. 여기에 만일 꽃꽂이를 한다고 꽃가지를 꺾어 방안에서 시들리고, 돌을 방구석에 옮겨 놓고 먼지를 앉혀 이끼를 말리고 또 새를 잡아 가두어 놓고 그 비명을 향락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분명 악취미요, 그것은 살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 참새도 씨가 져서 천연기념조로 보호대책이 시급하다는 이야기다. 세상에 참새들조차 명맥을 보존할 수가 없게 되었는가. 그동안 이렇게 세상이 변했는가. 생각하면 메마르고 삭막하고 윤기 없는 세상이다.
달 속의 돌멩이까지 캐내도록 악착같이 발전해 가는 인간의 지혜가 위대하다면 무한히 위대하지만, 한편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한 마리의 참새나마 다시 그 아쉽고 그립지 아니한가.
연화봉蓮花峯에서 하계로 쫓겨난 양소유楊少遊가 사바 풍상을 다 겪고 또 부귀공명을 한껏 누리다가, 석장錫杖 짚은 노승의 "성진아" 한 마디에 황연대각, 옛 연화봉이 그리워 다시 연화봉으로 돌아갔다.
짹 짹 짹, 잠결에 스쳐간 참새 소리는 나에게 무엇을 깨우쳐 주려는 것인가. 날더러 어디로 돌아가는 것인가. 사십 년 간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네 소리. 무슨 인연으로 사십 년 전 옛 추억-. 가버린 소년 시절, 고향 풍경을 이 오밤중에 불러 일으켜 놓고 어디로 자취를 감춘 것이냐. 잠결에 두 눈은 이제 씻은 듯 깨끗하다.
나는 문득 일어나 불을 피워 차를 다리며 고요히 책상머리에 앉는다.
염소 / 윤 오 영
어린 염소 세 마리가 달달거리며 보도 위로 주인을 따라간다.
염소는 다리가 짧다. 주인이 느릿느릿 놀 양으로 쇠걸음을 걸으면 염소는 종종걸음으로 빨리 따라가야 한다. 두 마리는 긴 줄로 목을 매어 주인의 뒷짐 진 손에 쥐여 가고, 한 마리는 목도 안 매고 따로 떨어져 있건만 서로 떨어질세라 열심히 따라간다. 마치 어린애들이 엄마를 놓칠까 봐, 혹은 길을 잃을까 봐 부지런히 따라가듯.
석양은 보도 위에 반쯤 음영을 던져 있고, 달달거리고 따라가는 염소의 어린 모습은 슬펐다.
주인은 기저귀처럼 차복차복 갠 염소 껍질 네 개를 묶어서 메고 간다. 아침에 일곱 마리가 따라왔을 것이다. 그 중 네 마리는 팔리고, 지금 세 마리가 남아서, 팔릴 곳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팔리게 되면, 소금 한 줌을 물고 캑캑 소리 한 마디에 가죽을 벗기고 솥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저 주인의 어깨 위에는 가죽 기저귀가 또 한 장 늘 것이다. 그러나 염소는 눈앞의 운명을 생각해 본 일이 없다. 다만 주인을 잃을까 봐 종종걸음으로 따라만 가는 것이다.
방소파의 <어린이 예찬>에는 “어린이는 천사외다. 시퍼런 칼날을 들고 찌르려 해도 찔리는 그 순간까지는 벙글벙글 웃고 있습니다. 얼마나 천진난만하고 성스럽습니까. 그는 천사외다” 했다. 그렇다면 나도 “염소는 천사외다” 할 것이다.
주인의 뒤를 따라 석양에 보도 위를 걸어가는 어린 염소의 검은 모습은 슬프다. 짧은 다리에 뒤뚝거리는 굽이 높아, 전족纏足한 청녀淸女의 쫓기는 종종걸음이다. 조그만 몸집이 달달거려 추위타는 어린애 모습이다. 이상스럽게도 위로 들린 짧은 꼬리 밑에, 감추지 못한 연하고 검푸른 항문이 가엾다. 수염이라기에는 너무나 앙징한 턱 밑의 귀여운 수염, 그리고 게다가 이따금씩 어린애 목소리로 우는 그 울음. 조물주는 동물을 점지할 때, 이런 슬픈 유형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페이터는 일찍이 사람들에게 “무한한 물상 가운데 네가 향수한 부분이 어떻게 작고, 무한한 시간 가운데 네게 허여된 시간이 어떻게 짧고, 운명 앞에 네 존재가 어떻게 미소한 것인가를 생각하라. 그리고 기꺼이 운명의 직녀, 클로우도의 베틀에 몸을 맡기고, 여신이 너를 실 삼아 어떤 베를 짜든 마음을 쓰지 말라” 했다. 이 염소는 충실한 페이터의 사도다. 그리고 그는 또 “네 생명이 속절없고, 너의 직무, 너의 경영이 허무하다 할지라도, 적어도 치열한 불길이 열과 빛으로 변화시키듯 하잘 것 없는 속사나마 그것을 네 본성에 맞도록 동화시키기까지는 머물러 있으라” 했다. 염소가 그 주인의 뒤를 총총히 따르듯, 그리고 주인이 저를 흥정하고 있는 동안은 주인 옆에 온순하게 충실이 기다리고 서 있듯. 그리고 길가에 버려 있는 무청 시래기 옆에 세워 두면 다투어 푸른 잎을 뜯어먹듯. 그리고 다시 끌고 가면 먹던 것을 놓고 총총히 따라가듯.
이 세 마리의 어린 염소는 오늘 저녁에 다같이 돌아갔다가, 내일 아침에 다시 나오게 될 것인가. 혹은 그 중의 한 마리는 가다가 팔려서 껍질을 벗겨 솥 속으로 들어가고, 두 마리만이 가게 될 것인가, 또는 어느 것이 팔리고, 어느 것이 남아서 외롭게 황혼의 거리를 타달거리고 갈 것인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염소 자신도, 끌고 가는 주인도, 아무도 모른다. 염소를 끌고 팔러 다니는 저 주인은, 또 지금 자기가 걸어가는 그 길을 알고 있는 것인가.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염소가 지나간 그 보도 위로 걸어오는 것이다.
엽차와 인생과 수필 / 윤오영
애주가는 술의 정을 아는 사람, 음주가는 술의 흥을 아는 사람, 기주가嗜酒家, 탐주가耽酒家는 술에 절고 빠진 사람들이다. 이주가俐酒家는 술맛을 잘 감별하고 도수까지 알지만 역시 술의 정이나 흥을 아는 사람은 아니다. 같은 술을 마시는 데도 서로 경지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이다.
누구나 생활은 하고 있지만 생활 속에서 생활을 알고, 생활을 말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가 않다. 누구나 책을 보고 글을 읽지만 글 속에서 글을 알고 글을 말 할 수 있는 사람 또한 드물다. 민노자閔老子*의 차를 마시고 대뜸 그 향미와 기품이 다른 것을 알아 낸 것은 오직 장대張岱*뿐이다. 그는 낭차閬茶가 아니고 개차인 것을 알았고, 봄에 말린 것과 가을에 따 말린 것을 감별했고 끓인 물이 혜천惠泉의 물인 것까지 알아내어 주인을 놀라게 했다. 장대는 과연 맛을 아는 다객茶客이다. 다도락茶道樂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마시는 바에는 이쯤 되어야 비로소 다향茶香의 진미와 아취를 말할 수 있지 아니한가.
하물며 인생 백년을 생활 속에서 늙되 취생몽사, 생활을 모르고, 주야로 책상머리에 앉았으되 도능독徒能讀, 글맛을 모른다면 또한 불행하고 쓸쓸한 인생이 아닌가. 시사時事를 고담高談하고 박학을 자랑하고 학술어나 신구대작新舊大作을 입버릇으로 인용하는 속학자류의 공소한 장광설보다 장대의 혀 끝으로 민노자의 참 맛을 알듯 아는 것이 진실로 아는 것이다. 울 밑에 민들레, 밭둑의 찔레꽃, 바위 틈의 왜철쭉, 지붕 위의 박꽃, 다 기막히게 정겨운 꽃들이다. 우리의 생활 속에 파고 들고 인생에 배어든 꽃들이다. 왜 도연명의 황국黃菊이며 주렴계周濂溪의 홍련紅蓮이었을까. 날마다 일어나고 되풀이되는 신변잡사라고 그저 번쇄하고 무가치하다고만 할 것인가. 이런 것들을 다 떼어낸다면 인생 백년에 남은 거이 무엇인가. 생활 속에서 생활을 찾지 아니하고 만리창공의 기적이나 천재일우의 사건에서 생활을 찾으려는 것도 공허한 것이 아닌가. 더욱이 분분한 시정市井의 시비, 소잡한 정계의 동태, 불어오는 사조의 물거품, 그것만이 장구한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위대한 사람을 정신적으로 위대한 사람과 육체적으로 위대한 사람으로 나누면 육체적으로 위대한 사람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작아 보이고, 정신적으로 위대한 사람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커 보인다.”
이것은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정신적으로 위대한 사람은 거리가 가까워올수록 평범하고 작아져서 우리의 누앞까지 오면 결함과 병통투성이의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위대한 까닭이다.” 이것은 위의 말을 적의적適意的으로 인용한 노신魯迅의 말이다.
내가 사서삼경에서 <논어>를 애독하는 이유는 공자가 평범한 인간으로 접근해 오기 때문이다. 그의 문답과 생활 모습에서 풍기는 인간미, 그의 평범한 신변잡사에서만 인간 중니仲尼와 가까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생활이란 곧 위대한 생활이다. 치졸한 글이 가끔 인간미를 지니고 있거나와, 인간미를 풍기는 글이란 또한 위대한 글이다. 서가書家들이 완당阮堂의 글씨 중에서도 예서를 높게 평하는 것은 그 고졸한 것을 취하는 것이 아닐까.
저속한 인품의 바닥이 보이는 문필의 가식, 우러날 것 없는 재강을 쥐어 짜낸 미문美文의 교태, 옹졸한 분만憤懣, 같잖은 점잔, 하찮은 지식, 천박한 감상感傷, 엉뚱한 기상奇想, 이런 것들이 우리의 생활을 얼마나 공허하게 하며, 우리의 붓을 얼마나 누추하게 하는가.
‘절실’이란 두 자를 알면 생활이요, ‘진솔’이란 두 자를 알면 글이다. 눈물이 그 속에 있고, 진리가 또한 그 속에 있다. 거짓 없는 눈물과 웃음, 이것이 참다운 인생이다. 인생의 에누리 없는 고백, 이것이 곧 글이다. 정열의 부르짖음도 아니요, 비통의 하소연도 아니요, 정精을 모아 기奇를 다툼도 아니요. 요要에 따라 재才를 자랑함도 아니다. 인생의 걸어온 자취 그것이 수필이다. 고갯길을 걸어오던 나그네, 가다가 걸러온 길을 돌아보며 정수情愁에 잠겨도 본다. 무심히 발 앞에 흩어진 인생의 낙수落穗를 집어 들고 방향芳香을 맡아도 본다.
“봄을 아껴 날마다 까부룩히 취했더니, 깨고 보매 옷자락엔 술 자욱이 남았고나 惜春連日醉昏昏, 醒後衣裳見酒痕.” 三春行樂도 간 데 없고, 옷자락에 떨어진 두어 방울의 주흔酒痕!이것이 인생의 반점이요, 행로의 기록이다. 이 기록이, 이 반점이 곧 수필이다. 이것이 인생의 음미다.
등잔불 없는 화롯가에서 젊은 친구와 마른 인절미를 구어 먹으며 담화의 꽃을 피우다 손가락을 데던 일을 회상하는 문호 박연암은 지나간 우정에 새삼 흐뭇했다. 달밤에 잠을 잃고 뒷산으로 올라갔던 시인 소동파는 때마침 마루 끝에서 반겨주는 상인上人(寺僧)을 보고 이 세상에 한가한 손이 둘이 있다고 기뻐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마는 이것이 다 인간 생활의 그윽한 모습들이 아니냐.
첫 번째 방향芳香, 두 번째 감향甘香, 세 번째 고향苦香, 네 번째 담향淡香, 다섯 번째 여향餘香이 있어야 차의 일품逸品이라 한다. 그런 차를 심고 가꾸고 거두고 말리고 끓이는 데는, 각각 남모르는 고심과 비상한 정력이 필요하다. 민옹閔翁의 차가 곧 그것이다. 이 맛을 아는 사람이 곧 장대다. 엽차는 육미봉탕六味鳳湯이나 고량진미는 아니다. 누구나 평범하게 마시는 차다. 그러나 각각 향香과 품品이 있다. 평범한 생활 속에서 향기를 거두고 품을 쌓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수필이란 거기서 우러난 차향이다. 평범한 생활 속에서 진실을 깨치고, 그것을 아끼고, 또 음미하고 기뻐하고, 눈물과 사랑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즐길 수 있는 글이다. 그러나 민옹과 장대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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