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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가시나무 / 김 삼 복(2)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21. 12. 17.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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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좋은수필 베스트에세이 최우수작품상ㅡ 낙타가시나무 / 김 삼 복

 

매번 낯선 길이다. 여러 겹의 얼굴을 가진 사막 안, 밤새 돌개바람이 별빛을 뿌렸는지 다져놓은 발자국은 노란 모래로 덮여 있다. 꾸역꾸역 마른 바람이 나를 떠민다. 엊그제 살짝 삐끗한 발목이 시큰거린다.

 

내가 들어가는 곳은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 한복판, 사구 위에 버티고 있는 거대한 건물 속이다. 그 속에서 온종일 길을 찾고 먹이를 구하려 서먹한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목에 사원증을 걸고 컴퓨터를 보며 일하는 그들 또한 먹이를 벌기 위해 주눅 든 사막여우들이지만 나에게는 고객님이시다.

 

잘 차려입은 여직원 손에 구수하게 내린 커피가 들려 있다. 아침 식사를 커피로 대신하는 그녀에게 식사 대용 전단을 주었다. 커피 빨대를 만지작거리며 나에게 눈길 한번 없이 새침하다. 숙취로 눈이 빨간 남자직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얼른 뛰어가 숙취 해소에 좋은 음료를 소개했다. 속이 쓰려 가슴을 문지르면서도 선뜻 신청하지 않는다. 하나둘, 거절들이 나의 기대를 꺾는다. 거절을 거절하고 여기서 도망치고 싶다. 계단을 오르내렸더니 발목이 더 아팠다. 배달 가방에 눌린 한쪽 어깨가 더 깊이 내려앉았다. 오랫동안 사막 먼지에 뒤섞인 눈물이 언제 말랐는지 기억이 없다.

 

엄지발가락이 쏙 나왔다. 구멍 난 양말 밖으로 나온 부끄러운 발가락, 얼른 양말을 끌어당겨 발가락을 덮었다. 그때 하필 복도 끝에서 새끼낙타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저나 나나 이렇게 부딪히고 싶지 않다. 서로의 간격이 좁아질수록 긴장감은 팽팽해졌다. 두 달째 아침저녁으로 등하교를 시켜주는 나를 학교에서는 머리를 외로 틀며 이렇게 모른 척했다.

 

등에서 열이 올라왔다. 행여 양말 밖으로 나온 나의 발가락이 보일까 봐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었다. 오늘도 학교 정문에서 한참 떨어진 신호등 사거리에 내려 달라고 하였다. 교무실에 매일 제품배달을 오는 아주머니의 아들이 저라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음을 나는 알고 있다.

 

교무실 안은 조용하다 못해 숨이 막혔다.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며 아무 말도 건네지 않는 선생님들에게 밝게 인사를 했다. 거들떠보지 않는 선생님들의 모니터에 올라온 뉴스를 곁눈질했다. 아들 담임선생님은 미안해하는 모습으로 서비스 제품을 슬며시 받아 옆에 두었다. 받고도 부담되는 얼굴과 주고도 부끄러운 마음이 얽히는 순간,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일제히 일어서는 나의 고객님들은 교실로 유유히 사라졌다.

 

넓은 운동장은 조용했지만 움츠린 마음속은 시끄러웠다. 다 비워낸 배달가방인데 다시 돌을 담은 듯 무거웠다. 이 철없는 새끼낙타를 데리고 사막 어디까지 들어가야 오아시스를 만날 수 있을까. 갈라진 입술이 탔다. 메마른 입안에서 모래알이 씹혔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눈으로 들어갔을까. 매운 눈을 질끈 감았다. 창밖으로 내 모습을 보고 있을지 모를 새끼낙타의 눈망울은 지금 어떤 빛일까. 저 아이의 목에 걸어 둔 고삐는 아비 낙타가 자신의 가슴 털을 꼬아 새끼낙타의 목에 고삐를 곱게 매어 준 것이다. 크는 동안 고삐를 당기는 대로 잘 따라왔는데 학년이 올라가더니 예민해진 새끼 낙타는 발굽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빼며 자기 뜻대로 버티는 날이 잦아졌다.

 

땀에 절어 발 냄새를 풍기는 부부 낙타의 길에 자주 채찍 같은 모래바람이 불었다. 가진 것을 다 잃고 결국 사막까지 쫓겨 온 우리에게 다른 길은 없었다. 바람이 쓸어 올린 반월 사구 하나가 보였다. 내일은 저 사구를 넘어야 한다. 저녁마다 서리 같은 시린 기운에 별빛이 떨었다. 그 별빛 하나를 나침반 삼아 캄캄한 사막 길을 걸었다. 누군가 사막에서는 지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했다. 그래서 길이 있으나 없으나 가는 곳이 길이라 여겼다. 바람에 따라 모래언덕은 자꾸 모양을 바꾸었고 발바닥에 붙어있는 육구는 너덜너덜 걸레가 되었다. 지금은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이 가야 할 방향이리라.

 

한때 신이 주신 멋진 뿔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서역 잔치에 놀러 간 꾀 많은 사슴이 그 뿔을 빌려 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가끔 서역 하늘을 바라보며 오지 않은 사슴을 원망했다. 부부 낙타가 먹이를 찾아 헤매는 동안 아이들은 단칸방에서 낙타 뼈를 가지고 공기놀이를 했다. 저녁을 거른 채 자는 날도 많았다. 아이들을 깨워 밥을 먹였던 사막의 저녁 시간, 어미가 새끼들에게 물린 젖은 짜고 매웠다.

 

낙타가시나무에 불이 일었다. 붉은 꽃들이 사막 한가운데 피어 있었다. 편히 앉을 만한 그늘은 없었다. 푸른 잎들 사이로 반 뼘이나 되는 굵은 가시가 보는 눈을 아프게 찔렀다. 꽃과 가시가 뒤엉킨 나무다. 아무렴, 저 나무도 이 모래언덕에서 살아남자면 자신을 지키는 가시 몇 개는 필요했으리라. 꽃을 사랑하고 상처를 감싸는 방법이 가시를 품는 것이어야 한다면 낙타가시나무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사막의 한가운데서 소중한 꽃을 지켜주는 일로 가시는 사명을 다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기가 두려웠다. 말을 건다고 받아 줄 것 같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는 나의 일은 뾰족한 가시를 건드리는 일이다. 나를 밀어내는 사람들에게 내 손가락이 무수히 찔리는 일이다. 그러나 사막에서 밀려나지 않고 그 속에서 버텨내야 했다. 여러 겹의 사람을 읽어내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어쩌면 나 또한 여기저기 박힌 잔가시를 뽑아내며 나도 모르게 남을 찌를 나만의 가시를 몸에 둘렀으리라.

 

목이 마른 다른 낙타들이 움직이기 전에 불기둥처럼 피어오르는 나무 곁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등 위로 솟은 두 개의 혹은 짐이기도 하지만 생명 줄이다. 그 속에 숨겨놓은 먹이조차 바닥이 났다. 내 갈증이 나를 그곳으로 끌고 갔다. ‘이 꽃잎을 먹어야 한다.’ 뻔히 찔릴 것을 알고 있다. 꽃잎 한 장에 입천장이 찔리고 푸른 잎 한입에 혀가 찢겨 피가 흘렀다. 뜨겁고 찝찔한 붉은 피로 목을 축였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콧구멍을 타고 내쉬어지는 한낮, 시퍼런 가시 끝이 드디어 낙타를 살렸다. 높은 자존심의 무릎을 꺾고 제 몸에 붉은 포도주를 바쳤다. ‘그래, 이 가시나무를 씹어서 새끼 낙타에게 먹이는 일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교문 앞에 차를 정차했다. 야간학습이 끝난 새끼낙타의 책가방이 허리까지 내려왔다. 차를 탔으나 아무 말이 없다. 모른 척하는 일로 매일 시달렸을 새끼낙타의 마음 벽의 가시를 뽑아 주고 싶었다. 지금까지 복도에서 애써 외면해 주는 것이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가 제 방에 들어가 엎드려 울었다. 조용히 문을 닫았다. ‘새끼 낙타야, 지금 너와 나는 가시 박힌 붉은 꽃을 먹고 통증을 앓는 것이야. 눈물로 슬픔을 닦고 혼자 우는 일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이야.’

 

새끼낙타가 잠들었다. 입안 상처를 훑은 혀 돌기에 아직도 가시가 짚였다. 새끼낙타의 갈기를 쓸어내렸다. 연한 자존심에 굳은살이 박인 낙타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새로운 새벽, 누군가 바람 소리를 말머리에 새겨둔 마두금을 꺼내 챙챙 활을 긋고 있다. 모래언덕의 능선을 넘어 지평선 끝으로 퍼지는 소리가 태양을 부르리라. 거대한 사구 위로 태양이 솟았다. 오늘도 낙타는 제 몫의 하룻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참꽃 불러오기 / 김 삼 복

  여름 들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산비탈에 원추리들 사이로 비비추, 노루오줌, 동자꽃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사이에 유난히 눈에 띄는 연보라 꽃이 있었다. 모래알만 한 꽃 주위로 네 장의 꽃잎들이 오밀조밀 가장자리를 아우르고 있었다. 산수국. 너울거리는 꽃송이들이 조로록 붙어서 보는 이를 유혹했다. 그 꽃송이는 헛꽃이고 가운데 못생긴 것이 참꽃이란다. 한몸에 참과 거짓을 같이 가진 꽃이라니 성질 또한 생뚱맞다. 참꽃은 못생겨서 화려한 헛꽃을 앞세워 벌, 나비를 불러들이는 모양이다. 진즉에 바람잡이 저 헛꽃에 취하여 나도 마음을 다 줘 버렸다. 아직 별모양인 참꽃은 눈도 뜨지 않았다. 꽃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눈뜨지 못한 산수국을 닮은 내가 거기에 있었다.
 삼복더위 한가운데 시어머님의 생신이 있다. 새댁 시절에는 뜨거움을 모르고 잔치 음식을 했다. 시댁 식구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며느라기基’ 시절은 모든 일이 즐거웠다. 끓이고 볶고 지지고, 불 옆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지만 칭찬받을 생각에 몸놀림이 경쾌했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시댁 형제들만으로 묶인 단체메신저 대화방이 일주일 전부터 시끄럽다. 그 방에 난 ‘절대사절’인 사람이다. 사위와 며느리, 소위 ‘성姓’이 다른 사람은 초대받지 못한 방이다. 올 생신은 시누이들이 챙기는지 식당과 모임 날짜를 열심히 토의하고 있었다. 며느리인 내 입장이 정말 중요한 집안 행사인데 연락 한 줄 없는 걸 보니 말없이 올케의 수고를 덜어 줄 요량인가 싶어 내심 고마웠다. 그러나 생신 당일 시댁에 도착하니 온갖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어머니는 그 더운 날 자식들 몸보신시킬 요량으로 살아있는 낙지를 준비하고 육수까지 끓이시며 하루 종일 김치를 담그고 갖은 반찬들을 준비하셨다. 밖에 나가 에어컨 밑에서 산뜻하게 외식을 할 줄 알았던 모두는 당황하고 놀랐다. 며느리인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어쩔 줄 몰랐다. 어머님 생신날에 자식들이 대접받는 자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단톡방에서 모의된 일은 시부모님의 비밀 준비로 빗나가 버리고 그 속에서 제일 염치없는 며느리인 나는 되돌아와서도 며칠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여름이 다 가기 전 마음의 빚을 갚아야 했다. 하루 날을 잡았다.
 가족모임 식사를 위한 장을 보고 메뉴를 짤 때 같이 먹을 식구들의 오랜 입맛을 기억해 낸다. 해물을 좋아하시는 아버님을 위해 대하와 굵은 갈치를 사고 어머님을 위해서는 생합을 샀다. 어린 조카들을 위해서는 갈비와 잡채 재료를 사고 겉절이를 좋아하는 남편이나 딸을 위해서 열무와 얼가리 배추를 샀다.
 음식 속에 마음을 넣는 것은 쉽고도 어렵다. 재료에 정성을 기울이고 짠맛을 싫어하시는 어르신들의 입맛에 맞게 슴슴한 간을 했다. 새파란 나뭇잎 몇 장과 꽃잎도 따서 곱게 상차림을 꾸몄다. 복분자주도 챙겨 반주로 즐길 수 있게 했다. 뜨거운 것은 뜨겁게, 차가운 음식은 차갑게 해서 마지막에 내놓고 지단이나 잣가루고명도 빠지지 않고 챙겨 올렸다.


 눈이 어두운 구순의 친정어머니 옆에 남편이 바짝 붙어앉아 생선 가시를 발라 주었다. 시어머님은 불고기 한 점을 내 밥 숟가락 위에 올려 주시고 나는 갈치 가운데 토막을 덜어 시어머님 앞 접시에 담아 드렸다. 아버님 앞으로 대하구이 접시를 밀어 드리고 아버님은 남편 앞으로 김치접시를 옮겨 놓았다. 두 분만 계신 큰 집에 모처럼 사람이 북적이고 맛있는 냄새가 거실까지 흘러넘쳤다. 여름 내내 논밭을 오가며 태양과 싸우느라 검게 그을리신 아버님의 얼굴에 연보라 꽃잎 같은 미소가 피었다.
시댁 부엌에 있는 식칼들은 아버님의 손질로 날이 잘 섰다. 매번 조심하지만 과일을 깎다가 또 삐끗했다. 아이들 때문에 과도도 갈지 않고 쓰는 눈 어둔 내 칼솜씨가 여기서 꼭 티를 냈다. 제법 많이 베었다. 밴드로 감고 비닐장갑과 고무장갑을 끼고 마지막 설거지까지 끝냈다. 그때 조용히 아버님이 나를 불러 당신 앞으로 앉히더니 소독제와 연고를 다시 바르고 밴드를 감아 주셨다. 찡그리며 조심히 감아주시는 아버님 손끝과 내 손끝이 닿는 순간 더엉, 가슴속에서 징소리가 울렸다.
조마조마한 손끝에서 느껴지는 아버님의 잠잠한 사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버님은 애틋한 참꽃을 보잘것없다 숨기시고 대차고 성성한 푸른 잎만 우리에게 평생 보여 주셨다. 농기계 소음으로 한쪽 청력을 잃으시고 진통제로 버티며 많은 농사를 꾸려 가면서도 힘들다는 내색을 오히려 부끄러워하셨다.
 밤길 운전 조심하라는 말씀을 내 귀 끝에 달고 집으로 오는 길, 차 속은 묵은 김치와 참기름, 양파와 마늘 냄새로 수북이 쌓이고 밝은 빛을 담은 마음의 등을 앞세워 어둑한 길을 달려왔다. 휴일 하루를 빌려 부모님들의 한 끼 식사를 대접하던 날, 내 헛꽃 옆에 참꽃 한 촉이 가만히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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