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주 / 김 희 자
푸른 달빛이 무대 위에 흩어져 내린다. 무대 서편에는 초저녁별이 반짝반짝 빛을 낸다. 애잔하면서도 슬픈 해금의 선율이 달빛 속으로 흐른다.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올 때까지. 밤을 지새우고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의 아름다움을 그린 곡이다. 밤의 몸짓이 달빛의 현을 탄주彈奏하듯 여인은 손으로 음을 주무른다. 오래전부터 내 안에 들리던 소리처럼 은은하게 젖어든다..
해금 탄주이다. 여인은 왼손으로 해금의 현을 잡고 오른손으로 채를 붙들어 음을 탄다. 왼손으로 음정을 찾고 오른손에 쥔 활대로 줄을 마찰하여 소리를 낸다. 소금쟁이가 물의 현을 지나가듯 그녀의 손가락이 해금의 현을 스쳐 간다. 순간 현이 소리를 자아낸다.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현의 울림으로 나는 그윽한 소리이다.
라일락 수줍게 만개한 봄밤에 귀를 열고 나직나직한 가락을 듣는다. 홀로 있는 시간을 위하여. 해금 연주가 허공에 머무는 어둠을 둥글게 밀어낸다. 문득문득 물방울처럼 떠오르거나 생각난 것들이 이미 오래전 내 안에서 흐르던 것처럼 반짝이며 되살아난다. 달빛 속으로 흐르는 선율이 건조해진 가슴을 눅진하게 녹인다. 홀로 있는 시간이 좋다는 건 이렇게 무언가에 진중히 빠질 수 있음이다. 해금은 대나무 통에 네 가닥 줄이 이어진 게 전부다. 볼품은 없지만 음의 폭이 놀라울 정도이다.
여인은 왼손으로 해금의 네 줄을 싸 감아쥐고 떡 주무르듯이 소리를 낸다. 손가락으로 음색을 조절한다. 거칠게 꺾고 구부리면서 섬세한 것들을 아우른다. 해금의 소리는 그 소리를 탄주하는 사람의 몸 소리처럼 들린다. 몸이 느끼는 리듬을 손바닥으로 받아내어 세상으로 소리를 내보낸다.
며칠 전, 동해안에서 파도와 몽돌이 한 몸 되며 내는 소리를 들었다. 비가 막 그치고 햇살이 몽돌 위로 쏟아져 내렸다. 달이 끌어당기는 대로 물은 멀어졌다 다시 돌아왔다. 밀려온 바닷물이 오랜 세월 파도에 닳아 동글동글해진 몽돌을 나직나직 탄주했다. '쏴아, 자그락자그락…' 흑진주 같은 몽돌을 바닷물이 위무하는 소리였다. 몽돌 위로 쓸려나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내 몸은 전율했다. 비 그친 해안 길을 걸으며 들었던 바다의 탄주는 해금의 선율처럼 깊었다.
그 소리는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바다의 심장 소리였다. 오직 파도의 손으로만 칠 수 있는 저음의 건반이었다. 그때, 내 몸속에도 쓸쓸히 파도치는 건반이 있다는 걸 알았다. 바다가 탄주하는 소리. 그 애절한 탄주를 들으며 내 몸도 날마다 글이라는 건반을 소리 없이 연탄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탄주하는 언어가 언젠가는 출렁출렁 가슴에서 울려 나와 세상이라는 바다를 건널 것이라 확신했다.
나는 글을 온몸으로 쓴다. 온몸으로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없으면 쓰지 못한다. 그만큼 몰입한다는 뜻일 게다. 글쓰기의 무아지경에 들지 않으면 한 줄도 그려내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만 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 가장 많이 배운다고 했다. 그럴 때면 시간이 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무언가에 푹 빠져 있을 때는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글에 몰두하다가 끼니를 잊기도 하고 냄비를 새까맣게 태우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다가 식는 줄도 모른다. 몰입하면 잘하게 되고, 잘하게 되면 더 빠져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좋아서 하는 것으로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글에 미쳐서 수년 동안 내 몸을 갉아먹기도 했다. 몰입의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도 경험했다. 문학의 경지에 이르는 길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다. 조금씩 새로운 것을 시도하다 보면 해금을 탄주하는 여인처럼 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늘이 깊어야 향기도 깊어진다는 말처럼 내면에 쌓인 사유의 힘이 요동쳐 글을 무르익게 하리라.
무슨 일이든 일치, 하나가 되어야 깊어진다. 몸과 사유를 연결해야 글로 옮길 수 있다. 그것이 문학의 운율이다. 해금의 선율과 몽돌 위에서 내는 파도 소리 같은 리듬은 살아있는 생명 속에서 탄생한다. 탄주는 오직 몰입하는 시간 속에만 존재한다. 글을 창작할 때 나는 음악을 듣는다. 내가 그려내는 글도 음악처럼 리듬이 있어야 한다. 시 같은 운율이 아니라 사람이 호흡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현이 울릴 때마다 달빛이 물결친다. 해금 탄주를 들으며 나의 글이 해금의 소리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염원한다. 글은 내면의 뿌리에서 피는 꽃. 여인이 해금의 소리를 주물러 손바닥으로 반죽해 내듯 나도 내 문장을 맛깔나게 주물러 낼 수 있었으면. 하나 지금은 내 짧은 사유로는 깊디깊은 문장을 주물러 낼 수가 없다. 하나의 문장을 우주로 만들어보고 싶은 열망만 가득할 뿐 서툴기만 하다. 그래서 오늘같이 봄비 내리고 무심한 밤에는 해금 탄주에 귀를 기울인다.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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