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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돌아가리라 / 안 숙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21. 8. 2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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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든 돌아가리라 / 안 숙

 

  수류(水流), ‘물 흐르듯’인가, 류수(流水), ‘흐르는 물이듯’인가.

 아침 강에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바람이 살짝 강물을 건드리자 건반 위 도레미송처럼 자르르 물주름이 일어난다. 납작한 돌을 주워 힘껏 물수제비를 뜬다. 핑그르르 튀다가 그대로 물속에 퐁당 빠진다. 어렸을 때 강가에서 물수제비뜨는 놀이를 좋아했다. 돌로 물을 뜨면 널뛰기하듯 몇 번씩 치고 나갔다.

 흐르는 물을 좋아한다. 참새목을 축일 만큼 졸졸거리는 실개천이든, 동네 어귀를 구석구석 휘돌아 나오는 그랑(도랑)이든 흐르는 물이면 좋았다. 물살이 빠르게 여울지는 여울목도 좋았고 멀리 수평선 너머 무량히 펼쳐지는 망망대해도 좋았다.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으면 어느 사이 내 몸도 하염없이 함께 떠간다. 닿는 데로 지향 없이 떠가는 풀잎에 눈을 실리면 호수처럼 마음이 잔잔해진다. 끝없이 이어지는 미지의 세계로 떠내려가듯 무아경에 드는 이 상념이 좋아 물을 좋아한다.

 날마다 물을 바라보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손톱 끝의 생채기에도 냄비 끓듯 하는 마음이 싫고, 사유에 거슬리는 언어가 싫고 정한에 집착하는 온갖 유정이 벅차서 흐르는 물을 그리워한다. 그 물에 모난 마음이 깎여서 동그라지면 또 얼마나 좋은가. 이처럼 ‘물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철들기 전부터이지 싶다.

 내 고향은 낙동강 700리 중허리쯤에 이르러 삼각주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돌아가는 고장이다. 섭섭하게도 우리 동네를 가까이 흐르는 강은 없었지만 대구로 가는 남쪽 길목 외에는 어디를 가든 배를 타야만 외지로 출입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뱃사공이 노를 저어 건네주던 강을 더 좋아했다.

 방학을 하고 집에 갈 때는 언제나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뱃전에 앉아 삐걱삐걱 삐-걱- 물살 가르는 노 소리를 들으면 객지에서의 고단했던 시름도 봄눈처럼 녹았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떠 있는 배가 고향의 너른 가슴이듯 편안했다.

 1950년대 중반은 거의 다리가 없던 시절이어서 강을 건너려면 배를 타야만 했다. 배로 도강을 하는 것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러나 도강비는 외지인 아니면 거의 외상이었다. 일 년에 봄가을 추수기가 되면 뱃사공이 이 동네 저 동네를 찾아 뱃삯 추렴을 다녔다. 얼마를 달라는 금도 없이 알아서 봄에는 겉보리, 가을에는 타작마당에서 나락(벼)을 요량해 됫박으로 쟁여서 주는 것이 상례였다. 공핍한 시절이었지만 넉넉한 인심을 살던 때였다. 이제 삐걱삐걱 삐-걱- 노를 저어 유유히 떠가는 배의 모습은 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세시 풍물이 되었다.

 배를 생각하면 아득한 세월 그림자에 자글자글 주름진 할머니의 예쁘장한 얼굴이 떠오른다. 할머니는 두레 밥상머리에 모여 앉아 식사를 할 때면 식구들의 올라가는 밥숟가락 내려오는 숟가락을 세며 식사 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어떻게 배 옆구리까지 밥알을 꼭꼭 채울 수 있느냐고 성화를 치셨다. 허나 추수기가 되면 뱃사공을 기다렸고 뱃삯을 후하게 쳐주었다. 고모네나 외가에 갈 때면 꼭 배를 타야 했기 때문에 항상 그들의 노고를 고마워하셨다. 타작마당에 자루를 들고 웃으며 들어서던 검게 탄 얼굴의 뱃사공들은 흘러가는 세월에 실려 갔어도 아름다운 세시풍경은 아직도 기억 속에 아련하다.

 강은 언제나 정(淨)하고 늘고 줆이 없다. 사람 얼굴이 마음의 그림자이듯 강의 얼굴 역시 어제의 강물이 오늘의 강물이 아닐지라도 유구히 흘러간다. 강이나 바다처럼 흐르는 순리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사람들은 아무리 퇴색한 세월이 쌓여가도 추억할 지난날들이 있어 행복할 수 있는지 모른다.

 내 고장 ‘흔전(欣田)’(행정명, 欣孝)은 흔전만전 지명이 말하듯 남향으로 논밭이 널려 있고, 가까이 강은 없지만 마을 서쪽에 어두운 골(골이 깊어) 산을 막아 축성된 대흥(大興)지 못이 있다. 산비탈에는 삼월삼짓날 화전놀이 하던 예스러운 정자가 서 있다. 약속이나 한 듯 여름 저녁은 못으로 몰려가 개헤엄도 치고 등물도 했다. 깔깔한 밤바람 마시며 못 둑에 누워 하얗게 튀밥처럼 부풀어 오르는 은하별을 헤던 밤을 언제나 꿈꾸듯 헤맨다. 장마철에 앞 도랑물 철철 넘치고, 무성한 감나무 가지에서 맴맴맴 바리톤으로 떼창하던 매미 소리 그리워진다.

 대학 시절 노천명 시인의 수필 <雪夜散策>에 나오는 “회색과 분홍색을 된 천장을 격해놓고 이 밤에, 쥐는 나무를 깎고 나는 가슴을 깎는다.”를 좋아한 나는 그의 수업을 들을 수 있어 기뻤다. 좋아하는 노천명의 시 <고향(故鄕)>의 일부이다.

 

 언제든 가리라

 마지막엔 돌아가리라

 목화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시인 노천명은 언제나 꿈꾸는 듯한, 정연한 얼굴인 듯한, 그 모습대로 기억에 남아 있다. 장연(長延)이 고향인 그는 다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고향을 그리던 노천명 시인처럼 고향 하면 강이 생각나 언제나 내 눈물샘을 자극한다. 방학 때미다 기를 쓰고 고향으로 달려갔던 추억들이 눈물겨운 향수로 남아 늘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다. 나는 어쩌자고 큰 어른이 되어서도 고향을 못 잊는지 참 맹랑한 일이다.

 수류(水流), ‘물 흐르듯’이 류수(流水), 흐르는 물이듯 이 흘러가는 물에는 그리운 내 유년 시절이 함께 흘러가고 있다. 언제든 마지막엔 고향으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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