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의 탁란 / 이 상 열
바스락바스락, 잎사귀들이 자잘하게 떨어진다. 가을의 초입에 당연하다는 듯 낙엽은 바람의 음계를 타고 돈다. 수만 사연을 머금고 떨어졌을 잎사귀들을 밟으며 나도 사색의 음계를 오른다. 툭, 무엇인가 나의 말초신경을 두드리며 발목을 잡는다. 마른 가지 하나가 몇 장의 잎사귀들을 품고 힘없이 발 위로 떨어진다. 그제야 위를 올려다본다. 오래 묵어 덕지덕지한 느티나무 한그루가 스스로를 떨구어 내며 나를 부른다.
나는 지금 도심의 한복판 느티나무 아래에 서 있다. 네모 난 건물들이 나무의 수보다 더 많아서인지 사람들은 빌딩숲이라고들 부른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이곳에 발걸음을 한 지 벌써 서너 달이 되었다. 처음 업무 차 근처에 왔었다. 번화가답게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발을 구르다가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좁은 공간이라도 다급한 마음에 주차를 한 후 업무를 보았다. 급한 불을 끄고 다시 돌아왔을 때, 나뿐 아니라 수많은 차들이 철갑으로 무장한 자신의 몸을 들이밀며 바쁜 걸음을 옮긴다. 인정머리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메마른 도시 뒷골목의 차들은 그렇게 매연을 뿜어내며 느티나무를 위협한다. 답답하다. 높은 빌딩들이 하늘을 앗아가고, 바쁜 일상들은 숨 쉴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가운데 사람들은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이곳을 드나든다.
쉽게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어둑한 오후가 되면 우울감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와 감정을 사정없이 무너뜨린다. 그 순간, 낮은 담 너머로 아이들의 자르르 웃는 소리가 속절없이 함몰된 감정을 일으켜 세운다. 어디일까. 초등학교가 보인다. 울타리 너머 아이들이 제각각의 소리로 뛰어놀고 있다. 나는 울타리 밖에서 아이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학교 밖 느티나무처럼, 내 아버지처럼. 일평생 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던 아버지가 애틋한 기억의 영상 속에서 잔잔히 다가온다.
고향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은 곧고 길었다. 아버지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니셨던 그 길 끝에는 당신을닮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아버지의 걸음이 해를 거듭하면 할수록 힘겨워졌던 것처럼, 느티나무 또한 나이를 먹어 갔다. 무겁고 외로워 보였던 아버지의 등 뒤로 친구처럼 느티나무는 바스락 소리를 내며 잎사귀들을 떨구어 주었으리라.
아이들과 꽃 그리고 나무를 무엇보다 좋아하셨던 아버지셨다. 평생을 교직에서 아이들과 함께하셨고, 화단의 손질을 마지막으로 끝낸 그날 한생을 꿋꿋이 지켰던 당신의 강단 위에서 순직의 꽃을 피우셨다.
잠시 느티나무에 손을 대 본다. 딱딱한 껍질 속으로 수액이 흘러가는 소리가 골골골 들리는 듯하다. 흘러간 세월 속에 눈길 한번 받지 못하면서도 묵묵히 자리하고 있다. 언제부터 여기를 지켰을까. 살아온 세월로 치자면 분명 동네의 주인은 느티나무일 게 틀림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나무는 원룸과 빌딩, 주차된 차들로 인해 베어버릴 수 없어 살려두는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었다. 도시에 중독된 자들이 몰려와 움을 트고, 빼곡한 문명이 나무를 에워쌌다. 껍질은 벗겨지고 다시 아물기를 반복했는지 군데군데 상처 난 흔적이 보인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상처는 아물면서 흉터를 남기는가 보다.
사람의 나이에 비한다면 어느 정도일까. 깊고 짙은 나무껍질만큼 주름도 깊이 파인 걸 보니 푸른 청년은 아닐 성싶다. 그렇다고 아직 나뭇가지가 무성하고 잎이 여전히 푸르름을 유지하는 것을 보아 노년은 아닐 터. 자신의 몸뚱어리에서 낙엽 한 조각 털어내는 것이 이다지도 쓸쓸해 보이는 것을 보니 중년의 느티나무인 듯싶다. 제 몸 곳곳에 박힌 커다란 옹이와 왠지 모를 쓸쓸한 기운이 중년의 나이를 짐작케 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중년이었다. 전쟁터와 같은 살벌한 세상의 틈에서 홀로 광야에 서 있어야 하는 나이 중년, 고독하다는 소리침이 아니라 천 길 물길보다 더 깊어져야 하는 나이가 아닐까. 돌아보면 푸른 꿈도 있었고 걸어온 길도 먼데 또 앞으로 달려가야 할 길은 더 멀고 높기만 하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나이, 아무리 숨이 멎을 만큼 힘겨워도 나 아닌 누군가를 지켜내야 하기에 어깨는 무겁고 가슴은 늘 쓸쓸하다. 천진한 아이의 해맑은 모습을 가슴 한 자락에 넣어 두고도 함부로 뿜어내지 못하고 오로지 무게를 잡아야 하는 어른 아이다.
학교 담벼락을 따라 걷는다. 나도 아버지가 걸었던 진저리치게 무거웠던 중년의 길을 처벅처벅 따라가고 있다.
느티나무를 올려다본다. 이미 여러 가지들은 베어버린 흔적이 역력하다. 굵직한 한 가지가 썩고 있다. 누군가가 전기톱을 가져와 곧 베어버릴 수도 있을 만큼 깊은 상처를 가졌다. 내 삶의 일부가 썩고 있는 듯 가슴 한구석에 통증이 인다. 그때, 연초록의 새순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잎사귀가 크고, 대가 곧고 가는 것으로 보아 분명 오동나무다. 주변을 둘러보니 학교 뒷 담장 안으로 큰 오동나무 두어 그루가 보인다. 바람을 따라 오동나무가 탁란을 한 모양이다. 뻐꾸기가 자신의 알을 다른 새의 둥지에 맡겨 부화하는 것을 탁란이라 하듯이 오동나무는 그렇게 느티나무에게 자신의 씨앗을 탁란했다. 씨앗하나 뿌리내리지 못하는 핏기 없는 콘크리트 세상에 자신의 씨앗도 아니면서 오동나무를 보듬어 안은 느티나무의 사랑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무수히 많은 가지에 매달려 있는 나뭇잎들을 살리는 원천이 모두 한 뿌리에서 비롯된 것처럼 아버지도 몸을 아끼지 않고 고통을 참으면서 잎들을 끌어 안으셨으리라. 중년을 힘겹게 건너고 있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의 모습이 스쳐간다
오동나무는 제법 참하게 자라고 있다. 세상을 다 덮고도 남을 만큼 큰 잎을 가졌다. 하늘을 가린 빌딩숲을 넘어 올곧게 창공을 향해 거침없이 커 가리라 기대해 본다. 쉴 새 없이 퍼붓는 자동차들의 매연을 뒤집어쓰고도 밤낮없이 세상에 산소를 뿜어냈을 느티나무다.
나는 숨을 쉰다. 내가 지금 이렇게 큰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느티나무가 만들어 준 산소 때문일지도 모른다. 짹짹짹, 새소리가 들려온다. 느티나무 가지 속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새들의 소리다. 갈 곳 없는 새들을 불러 안식처를 만들고, 그늘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앉아 쉴 수 있는 그늘을 허락한 느티나무다.
걷다가 문득 나뭇잎 하나를 주워 든다. 오래 전 소녀가 소년에게, 소년이 소녀에게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건넸던 책갈피 속의 나뭇잎처럼, 나는 고이 오늘을 고백하며 책 속에 꽂아 둔다.
햇살이 내려앉는다. 도심 한복판에도 뒷골목에도 참 공평히 깃든다. 이곳저곳 제 빛을 나누어 주느라 발 부르튼 햇살이 느티나무 잎사귀에 고요히 내려앉아 쉬고 있다. 나뭇잎은 햇살을 감싸 안고, 햇살은 느티나무를 어루만진다. 느티나무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햇살의 탁란을 받아들이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도시민들의 여린 호흡을 위해 자신의 몸을 탁란으로 내어준다.
다시 차에 올랐다. 잎사귀를 은은히 누비며 불어오는 바람이 자꾸만 아버지에 대한 아득한 옛 기억을 일렁이게 한다. 조급하게 지나가던 도시의 시간이 느티나무 옆에 와서 잠시 멈추어 선다. 느티나무 곁에 아버지가 서 계셨다. 이제는 고독해 보이지 않았다. 느티나무 위에서 탁란한 햇살 한 자락이 내려와 아버지의 어깨를 감싼다.
이 가을 느티나무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것은 뚝뚝 지는 낙엽 때문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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