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정여송(정태귀)의 평론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21. 3. 9. 21:41

본문

정여송님의 평론을 소개합니다. 정진권님의 ≪빙긋과 쿡≫에 대한 애정넘치는 표현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한 지성의 위트 있는 라이프 스토리

- ≪빙긋과 쿡≫을 중심으로


1. open
수필은 어느 문학의 장르보다 자기 토로가 직접적인 문학이다. 작가

의 응축된 삶의 진실과 그 영혼의 영토로부터 얻을 수 있는 통찰력에서
기인되는 까닭이다. 따라서 수필은 작가의 인품이 가장 잘 드러나는
문학양식으로서 작가의 내면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잊고 있던 기억
저편의 모습이나 눈앞에 보이는 풍경 등을 서정 어린 그림처럼 펼쳐
보이기도 하고, 사물에 대한 식견과 의미를 정서화하고 구체화하여 그
미학적 맛을 내면서 독자를 끌어들인다. 이것이야말로 수필만이 갖는
매력이다.
이 매력이 발산되는 글을 짓고 있는 이가 있는데 그가 바로 정진권이
다. 그의 ≪빙긋과 쿡≫에는 사람 냄새가 난다. 사람이 사는 이야기를
소박하고 재미있게 묘사하였다. 편안하고 소박한 삽화 같이 정겨운데다
가 위트까지 넘쳐흐른다.
그의 위트는 숨은 의미를 찾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웃기는
말과 다르다. 진술이나 단어마저도 의미 있게 받아들이도록 요구한다.
나아가 모순이며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단순한 가상에 불과하다
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한다. 눈여겨 살펴보면 겉으로 보기에 무의미하지
만 그 속에 정확한 의미가 숨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당부가 곁들여
있다.
≪빙긋과 쿡≫에는 양괄식 구조를 적용해 강조성을 나타내고 있는
<아름다운 삶의 뜰>, <짜장면>이 있는가 하면 담배를 끊기 위해 애쓰
는 <연노설>, 술 한 잔에 소박한 행복을 느끼는 <부자유친>, <빙긋과
쿡> 등 번한 일상을 편안하게 얘기하는데 실감이 나고 재미가 있다.
생활 속에서 우러나는 진실과 참삶이 보이기도 한다.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사물에 주목하여 애정을 갖는 모습에서 그의 인간성을 읽게
된다.


2. play
1) 심상 회로를 통한 영상화
인간은 경험이 풍부하면 풍부한 만큼 상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폭

이 넓어지므로 경험은 문학적 상상력을 좌우한다. 상상을 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대상에 대한 관련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
여 사고하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정진권은 상상 속에서 추출한 순수와 아름다움과 감동을 구석구석에
숨겨놓고 독자를 부른다. 독자들은 그의 상상을 따라가다가 넓은 의미
의 세상으로 바꿀 수 있는 발전적인 눈을 발견하게 된다. 이 눈은 다양한
창조적 체험일 뿐 아니라 미적 감수성, 의미 있는 인생을 상징한다. <마
을버스 이후>, <카트와 트럭>, <분이 별 삼돌이 별> 등은 그 눈으로 깊이
생각하며 심상을 떠올리는 수필의 행위를 보여주고 있다. 삶을 풀어가
는 인간의 가장 순수한 모습을 비춰주는 것이다. 무엇이든 순수할 때
가장 아름답고, 아름다울 때 가장 감동적이지 않는가. 무한한 상상으로
부터 영상화된 소박한 이야기다.

 


녀석들은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같은 말을 전혀 모른다. 그
냥 함께 어울려 끊임없이 재잘거리며 간다. 무슨 말들일까? 왜 흥부는
복을 받고 놀부는 화를 입었는지 잘 알았다는 그런 이야기일까? 아니면
박지성, 황우석, 조수미(그때는 이런 이름들이 아직 빛나기 전이지만),
또는 누구처럼 세계적인 선수, 과학자, 음악가, 또 무엇이 되겠다는 그
런 이야기일까? 거북이에게 진 토끼를 깔깔 비웃는 그런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중략-
아, 저기, 키가 훤칠한 대학생 하나가 성큼성큼 인파人波 속을 내려온
다. 학교길이 좀 먼 모양이다. 어제 리포트를 잘 써냈나, 아니면 오늘
여자 친구와 만나기로 했나. 얼굴이 훤하다. 그 옆을 내려오는 처녀도
사뭇 밝은 표정이다. 며칠 전 대리代理로 승진한 흥분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나? 지금 막 우리 집 대문 앞을 지나간 30대 두 사람은 아주 친한
사이인가 보다. 무슨 이야기가 저렇게 즐거울까? 이번 명절에 보너스
타면 아들 녀석 자전거 한 대 사 주겠다는 그런 이야기일까?
-<마을버스 이후> 중에서


매일같이 집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는 상상의 나래로
장면을 구사한다. 끊임없는 상상으로 독자를 향해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마음대로 상상을 펼치게 했던” 그의 “집 대문 앞
8미터 아스팔트길”이 독한 매연을 뿜어내는 마을버스로 인해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의 상상은 사라진 유정한 풍경들에 대한 그리움에서 그치
지 않고 <분이 별 삼돌이 별>로 이어진다. 귀가 길에 하늘의 별을 보고
자신이 쓴 글을 떠올리며 즐거운 상상을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질주하
는 격의 상상이 아니다. 배려가 사려 있다. 분이와 삼돌이의 아름다운
사랑을 상상하되 첫날밤이 되기 전에 멈춘다. “너무 야한 것 같”아서 멈
추고, 사는 모습까지 상상해 보려다가도 “밤 새워 베 짜고 땡볕에 콩밭
타는 그들이 너무 고달플 것 같아서” 그만 둔다. 그의 섬세한 배려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최재서는 상상을 능력이 아니라 체험의 한 방식으로 보고 ‘현재의 지
각과 과거의 경험을 연결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진권의 상상은
과거의 체험으로서 구체적으로 기억 속에 축적 되어 있는 이미지들의
총화라고 할 수 있다. “첫애를 낳아가지고 시골엘 간 일”이라든지, “인천
에서 남의 집 살 때의 일”이라든가, “지난 일요일의 일”, 또는 “내가 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등 현재 가지고 있는 지각의 기억으로부터 이미
지, 즉 심상의 회로를 통해 끌어낸다. 과거와 현재의 삶이 경험을 토대로
한 새롭고 의미 깊은 형상으로 창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상상을 따라
가다 보면 결국 미소를 짓게 된다.


2) 서민적 일상의 투영
우리는 문명의 혜택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따라서 최우선으로 생
각해야 하는 소중한 인간관계가 소원해지는가 하면 각박하게 돌아간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에만 지나치게 충실하
기를 강조하는 속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변화무
쌍하다 하여도 인간이 삶에 대해 어떤 윤기를 느끼고, 생의 의욕을 일으
키는 것은 정에서 비롯된다.
정진권의 시선은 “꽈리, 딸기, 고추, 호박”을 심어놓은 뜰을 들여다보
는 자잘한 일상에 머물러 있다. 그런가 하면 “짜장면은 좀 침침한 작은
중국집에서 먹어야 맛”을 느끼는 사소한 가운데에서 사색과 인정미를
풍겨낸다. 더러는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 만 원”에 매력을 느끼고, 한
잔의 술에 행복감을 가지며, 담배를 끊기 위해 애처롭게 노력하는 작가
의 겸허한 고백에서 인간적인 미를 엿볼 수 있다. 그 고백은 독자가 흥미
를 갖고 귀기울일 만한 가치가 견지되고 미학적으로도 형상화되었다.
그의 글에서는 하찮고 작은 것에 대한 관심을 통해 정서를 객관화함으
로써 자신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인간적 체취가 풍겨난다. 자기감정의
인간적인 순화이며 승화작용이다.

 


작은애가 지금 군에 가 있다. 돌아오는 토요일이면 제대를 한다. 며칠
남지 않았는데 하루하루가 지루하다. 오늘은 작은애네 결혼식 때 찍은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그애들을 오래 생각했다.
-중략-
나는 주말이 되면 큰애를 기다린다. 큰애네가 아기를 안고 들어오는
모습이 이제는 좀 의젓해 보인다. 나는 또 작은애네도 기다렸다. 작은애
네가 나란히 들어오는 모습은 아직 연애하는 대학생만 같았다. 두 며느
리가 형님 동서 하면서 부엌일 하는 것이 나는 보기 좋았다. 이 아이들
이 돌아갈 때 아내는 김치 한 포기, 고기 한 조각이라도 싸서 차에 실어
주었다.
-<작은애를 기다리며> 중에서


평범한 사랑을 통하여 오늘을 소중히 아낄 줄 알고 어제를 부끄럼 없
이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이다. 이 글에서는 행복이 흐른다. 그
행복을 누리는 아버지의 따뜻한 자상함이 부모가 자식네를 어떻게 사랑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돌아오는 토요일 저녁식탁에” 온 식구들이
모여 작은아들이 “무사히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것을 축하하는 건배”
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아버지의 행복이 독자에게 그대로 전이된다. 맑
고 깨끗하고 깊은 인정이 배어 있는 까닭에서다.
정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 간에는 심정대화가 많다. 마음으로 이해하
고 상대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한다. 정으로 인하여 진심으로 배려
하는 정서적 안정감이나 든든하고 의지가 되는 일체감이 있다. 사실,
우리의 문화는 가족주의적 온정을 나누는 인간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
기는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한국의 관계주의적 정 지향문화에서 바람
직하게 여기는 인간관계의 형태는 가족관계에서 볼 수 있다.
정진권은 가장으로서의 화목한 가정 속에 너그러운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가족주의적 온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눈에 보이는 세
상이 전부가 아니며, 우리가 실제라고 믿고 있는 근거들이 얼마나 취약
한 것인지를 인식하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지금 질서정연한 세계에 살
고 있다는 사람들의 경직된 의식을 경고함이다.


3) 의태어 빙긋과 의성어 쿡
<엄처시하>와 <빙긋과 쿡>은 ‘김 선생’이라는 3인칭 주체를 내세워,
3인칭 서술방식을 사용하여 쓴 글이다. <엄처시하>에는 정년을 하고
난 후의 일상생활을 덤덤하게 그렸다. 손자보다도 더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난 자신의 처지를 일관하는데 이상하게도 행복해 보인다. 그것은
위대한 인간이지만 그토록 보잘것없으며 유치하기 그지없다는 사실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생각했던 것과 눈으로 본 것, 즉 현실과의 불일치
를 인지하게 되면 독자가 즐거워한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인간의 삶은 논리적이며 진지한 면뿐만 아니라 이성으로
파악되지 않거나 이성에 의해 추방된 것까지 포함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빙긋과 쿡>에서도 당혹스러움으로 인한 내면의 순간적인 변화와 진
솔한 마음을 절묘하게 그렸을 뿐인데 재미가 쏠쏠하다. 친구나 동료쯤
으로 그려놓은 ‘김 선생’이 자신임을 드러내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김 선생은 자신의 다른 이름이며 아바타다. 교수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가차 없이 내려놓았다. 조잔한 자신의 옹졸함을 여과 없이 드러
내는데 정감이 간다. 처해진 삶에 대한 원망이나 비하 따위가 아니어서
그렇고, 의태어와 의성어의 사용으로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기 때문이
다. 친구 둘이서 나누는 대화 속에 끈끈한 우정이 흐르고 있다.

 


“교수님이 웬일로 여기 서 계시니?”
“음, 책 한 권 샀어. 사장님께선 웬일이시니?”
-중략-
김 선생인 먼저
“바쁘니?”
했다. 강 사장이 무심한 듯
“바쁘면 어쩌라고?” 하면서 앞장섰다. 그때 김 선생은 지갑 속에 남은
돈이 생각났다. 계산을 해 보았다. 가용 금액 2만 천 원(돌아갈 비용
2천 원 제하고). 이만하면 둘이 소주 한잔은 하겠지 싶으면서도 적이
불안했다. 그래 말했다.
“거 순두부 자글자글 끓여 놓으니까 소주 안주로 괜찮더라.”
그러자 강 사장이 한 번 빙긋 웃고는 내뱉듯이 말했다.
“더운데 무얼 자글자글 끓여?”
그리고 그는 한마디 묻지도 않고 가까운 2층 중국집으로 휙 들어갔다.
-<빙긋과 쿡> 중에서


시골 고등학교 동기인 친구를 만나 나누는 대화에서 위트를 발견하게
된다. 술값을 내는 것은 먼저 먹자고 한 사람이 치르는 것이 속례이므로
김 선생은 술값을 속셈하느라 바쁘다. 1만 5천 원만 더 있으면 친구에게
생색내며 술을 살 수 있는데 애석하게도 부족하다. 가지고 있는 돈보다
음식 값이 더 나올까봐 “강 사장이 자리에 없는 지금 얼른 계산을 끝내”
려고 “계책”을 꾸며보지만 허사다. 김 선생의 생각을 휑하니 꿰고 있는
강 사장은 자리를 비우는 척하면서 값을 치른다. 어이가 없는 김 선생이
지만 “책값이 좀 비쌌던 게로구나” 하고 이해를 하는 친구이니 얼마나
고마운가. 두 친구는 빙긋이 웃으면 쿡하고 받아 넘기는 지기지우知己之
友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정진권은 재치꾼이다. 그는 현실에서 드러난 부정적인 감정으
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커다란 정신적 자유를 누린다. 그가 가진 위트
의 미학적 가치는 모든 것을 관조하고 초월한다는 데 있다. 일차적으로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개별적인 모순에 웃음으로 반응하지만,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불안하게 하는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게 만든다. 또한
어떤 사물이나 개념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고 현
실의 논리와는 다른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3. close
수필에는 향기가 있어야 한다. 작품이 주는 향기는 자신의 내면을 솔
직하게 드러내는 작가의 고백에서 나온다. 그 고백은 조그마한 생활 속
의 체험일지라도 그것을 통해 세상을 투시하는 눈과 가슴이 인간적 정
조와 하나 될 때 효과를 발휘한다.
정진권의 글은 밝고 투명하다. 그리고 재미가 있다. ≪빙긋과 쿡≫을
읽는 동안 피천득 선생이 자주 떠올랐다. 그는 피천득 선생이 그렇듯이
어린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유치함이 아니라 유아스러운 소박함과 맑음
이 읽는 이에게 행복감을 주고 있는 까닭이다.
그의 수필은 일상생활에서의 소재를 중심으로 사색하고 있으며 인
정과 배려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하찮고 작은 것, 평범하고 수수한
것에 대한 관심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체험적 소재가 문학적 형상화의
과정을 통해 수필문학으로 재구성 되었다. 또한 그의 글에는 웃게 하
는 힘이 있다. 그런데 그 웃게 하는 힘의 방법이 탁월하다. 단순한 비
방이나 욕설이 아니라 짤막한 농담이나 익살스러운 내용으로 완곡하
게 표현한다. 짧은 문장 속에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심오한 의미를
숨겨놓기도 하고, 예상을 뒤엎는 문장으로 놀라게 하면서 웃음을 일으
킨다.
정진권은 위트리스트다.

 

정여송 ------------------------------------------------
≪수필과비평≫ 등단. 부경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문학석사).
무원문학상 본상(2005). 신곡문학상 본상(2006)
한국문협, 부산문협, 부산가톨릭문협,수필과비평작가회의,

한국수필문학진흥회, 현대수필문학회 회원.
수필집: ≪힘쓰는 여자≫, ≪마중물≫.

'추천우수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살문/ 주 인 석  (0) 2021.03.18
느티나무의 탁란  (0) 2021.03.10
혼魂으로 쓰는 글 - 반숙자  (0) 2021.03.07
La Parure (목걸이) -기드 모파상  (0) 2021.03.04
서울 뻐꾸기 / 윤모촌  (0) 2021.03.04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