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물 / 김열규
‘우리 둘은 하늘과 땅 사이다.’
이 말에는 두 사람은 앙앙거리는 원수끼리다. 도저히 서로 통할 수 없는 사이를 두고는 흔히들, ‘하늘과 땅 사이’라고들 한다. 일반 언어생활에서는 그런 게 하늘과 땅이 서로 그 지경이니 물이라고 하늘과 단짝일 수는 없다.
한데 자연에서는 하늘과 땅이 상통하듯이 하늘과 물 또한 서로 소통하고 있다. 아니 단짝이기도 하다.
하늘의 푸른빛은 절로 바다며 강 그리고 호수의 물살에 비쳐진다. 신새벽의 노을은 온 바다를 붉게 타오르게 한다. 야밤에 옹달샘에 어리는 달은 그리운 이의 얼굴을 닮는다. 달이 차고 기울고 함에 따라서 바닷물은 썰물이 되곤 한다. 하늘과 물, 물과 하늘은 그렇게 여간한 단짝이 아니다.
그러기에 신화에서도 하늘과 물은 서로 달콤하게 궁합을 맞추면서 소통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해모수 신화에서 역력하다.
고구려보다 한 시대 앞선 동부여의 왕 해모수는 천제 곧, 하늘의 제왕의 아들답게 그 이름을 ‘천왕랑(天王郞)’이라고도 했다. 그는 ‘오룡거’, 곧 다섯 마리 용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는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녔다고 신화는 일러주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첫 우주비행사다.
한데 해모수는 ‘청하’라고 일컬어진 압록강의 신인 하백의 따님에게 장가를 든다. 아리따운 새색시는 그 이름을 ‘유화’, 곧 ‘버들꽃’이라고 했다. 청하 밑층의 궁궐에서 땅 위로 나와서는 ‘옹심연’이라는 연못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물의 아가씨, 유화를 천랑왕은 약탈하시다시피 해서는 신부로 삼는다. 그러고는 늦게야 그의 비상한 재주를 뽐내어서는 하백에게서 사위로 간신히 받아들여진다.
그러니까, 해모수와 유화, 이들 신랑 신부는 하늘과 물의 짝이 되는 셈이다. 신랑은 하늘이고 신부는 강물이다.
한데 하늘과 물이 어울려서 이룩한 짝은 또 있다. 신라의 첫왕인 혁거세와 그 왕비인 알영이 바로 그런 짝이다.
‘혁거세(赫居世)’라는 그 이름 석 자를, 이두(吏讀) 문자 읽듯 하면 ‘불구내(弗矩內)’가 되는데, 그 뜻을 ‘삼국유사’에서는 ‘광명이세(光明理世)’라고 풀이하고 있다. 빛나는 밝음으로 세상을 다스림이 곧 불구내다. 하늘에서 드리워진 번갯불을 타고 지상에 내린 자줏빛 알이 까이면서 아기가 태어나자 온 몸에서 광채가 빛났는데, 그 아기가 다름 아닌 혁거세다.
그렇게 하늘에서 내린 혁거세는 그 당장으로 여자 아기와 짝이 지어진다. 여자 아기는 용의 따님으로 알영정이란 우물가에서 태어나는데, 그 우물 이름을 그냥 그대로 따서 알영이라고 이름 지어진다.
그러니까. 혁거세와 알영의 짝도 영락없는 하늘과 물의 짝이기로는 해모수와 유화의 짝과 추후도 다를 바 없다. 하늘과 물의 소통 그것이 바로 이들 두 쌍의 남녀, 그나마 신화 주인공 남녀의 짝이다.
하늘은 지상의 존재하는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권위요 군세다. 그러면서 하늘은 지상에 뿌리를 둔 모든 것의 섭리를 관장하고 있기도 한다.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그런 믿음을 갖추고 있었다. 아니 섬기고 있었다. 거기 비해서 물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목숨의 기틀이다. 그것들은 물 기운 없이는 잠시도 무사할 수 없다.
그러니 우주의 섭리, 대자연의 섭리로는 하늘과 물의 소통, 그 둘의 짝을 따를 것은 결코 흔치 않을 것이다.
그 둘의 짝은 소년 시절의 내게 가르침을 주었다. 나는 물고기 저리 가라고 수영을 무척 즐긴 나머지, 예사로 원영을 하곤 했다. 2킬로 넘어 반 십리는 되게 한바다를 헤집고 다니기 좋아했다.
멀리 헤엄쳐 나가다가 물살에 몸을 내맡기고는 반듯하게 드러눕곤 했다. 파도 따라서 등이 흔들대면, 저 아스라한 높이의 하늘도 출렁댔다. 파도 출렁, 하늘 출렁하면서 내 몸도 출렁댔다.
새삼 나의 요람이 되어 주곤 하던, 바다와 하늘의 출렁댐, 그보다 더한 안식을 내가 누린 것 같지는 않다. 내게서 하늘과 바다의 소통은 달디단 꿈자리였다. 그것은 소년시절, 나의 신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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