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탑, 신부님 어리비치다 / 김새록
이기대 장자산 가는 길 초입이다. 비손에 모가 닳은 돌덩이는 탑이 되어 가슴에 안긴다. 별이 내려오길 기도 중인 것 같다. 마음 새긴 돌 자리, 맨 처음 누가 괴어 놓았는지 돌무더기 탑은 가지각색 수많은 사연을 담아 내 키를 훨씬 높게 쌓아 버팀목이 되어 있다.
아프고 힘든 자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세상의 면모일까. 돌탑이 네 개나 서 있는데 또 한 개가 절반쯤 쌓여 간다. 간절한 소망을 담아 쌓아 올린 탑, 잘나고 못나고 있고 없고도 아닌, 가족을 향한, 이웃을 위한 마음이 깃들어 있을 터이다. 비 오면 빗방울로 오염을 씻어내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으며 오직 정갈한 일념으로 손 모은 탑이 되어 하늘에 고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적지나 사찰에 있는 탑들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장엄하지도 않다. 중년 가장家長들의 처진 어깨를 닮은 소박한 탑이다. 하여 친근감과 연민의 정이 오롯하여 산을 오갈 때마다 다정한 친구인 양 눈인사를 하며 마음을 보탠다.
곁에 서 있는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사시사철 벗하며 돌돌 소리 읊어주고 때로는 폭우가 헤집고 칼바람이 망나니 춤 출때, 푸른 잎으로 감싸주며 앞길 막는 바람 잠재우고 있을 터이다. 공든 탑 무너질 리 만무하다. 하늘이 눈치를 채고 돌탑에 내려앉아 어루만진 듯 평화롭다. 은퇴자의 공허한 모습, 취준생의 초조한 마음,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자의 절절한 기원이 그 속에 있다.
아프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막힐 때 성모님이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애절하게 기도하는 내 마음처럼 탑을 쌓은 사람들 마음 또한 같을 것이다. 동병상련을 일으킨다. 때로 마음이 어수선한 날은 산을 가다가 돌을 주워서 한 개 얹어 놓고 마음 한 가닥 내려놓기도 한다. 우리 성당 교우들이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의아해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돌탑이 입은 무거워야 한다며 넉넉한 품으로 먼 곳을 보고 있는 듯하다.
길 가다가 발부리에 걸리면 무심코 짓밟거나 발로 툭툭 차버리는 돌멩이거늘, 탓하지 않고 나약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 놓았다. 수도자처럼 깊고 너그러움이 그 속에 있다. 크고 작고 다 쓸모가 있듯 남녀노소 가진 자 못가진 자 가릴 것 없이 제자리를 찾아 이루고 있는 돌탑은 성당을 연상시킨다.
신부님 모습이 어린다. 신부님 또한 교우들에게 고해성사를 수없이 듣고 탑처럼 손을 모으고 있을 것이다. 사제이기에 가능하지만, 또한 감정이 있는 사람이다. 그 고뇌를 새삼 헤아려본다. 대나무 숲에 들어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하고 외칠 수도 없다. 길가에 나뒹굴고 있는 돌멩이 하나, 하나, 사랑으로 품으며 성사를 새겨놓았는지 모른다.
순박한 돌탑은, 고향에 있는 아담하고 소박한 성당을 연상케도 한다. 봄이면 겨우내 얼어있던 땅을 일궈 씨앗을 뿌리고 여름이면 이마가 벗어질 정도로 햇볕이 뜨겁다면서 기진맥진 농작물을 가꾸지만 때로는 농협에 빚만 지고 있다며 하소연하는 농부들의 애환을 다 들어주는 신부님 모습이 돌탑에 겹친다.
인적이 끊기고 어둠이 짙게 물든 시간, 짓누르고 있던 탑 속의 온갖 사연은 고요 속에서 참회하며 기원을 하고 있을 터다. 그 곁에 풀벌레들도 덩달아 구슬프게 애원하고 있을 장자산 파수꾼을 떠올리며 나는 묵주기도를 마친다. 기도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함께 어울려 있을 때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무게를 헤아려볼 수 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별하며 내밀한 마음의 소리에 더 깊이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독경 중인 돌탑이다. 제 발치에 들꽃을 키우고, 산새들의 수다도 들으며, 먼 하늘 구름도 불러들이면서, 풀벌레 울음소리도 들으리라. 캄캄한 밤엔 절실한 단어를 읊다가 혼자 잠들고 있을 터이다.
교우들의 고해성사가 장자산 돌탑을 아우라가 되어 감싸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