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춤 / 하 재 열
문을 따고 내민 안노인의 얼굴이 곰삭은 삼배 주름 같다. 도시락을 받아들고 다시 이부자리를 찾아 가는 뒤뚱거림이 불안하다. 방 안에서 장마철 같은 후더분한 열기가 덮쳐 나온다. 한 줄 복도에 이어진 끝 집, 이번엔 힘에 부치는 듯 손을 내민 노인장이다. 아파트 몇 층을 오르내렸다. 현관문에 도시락 봉지를 걸어 두고 온 한 곳이 마음에 걸린다. 두드려도 대답이 없었다.
아프리카 사바나, 한 마리 사자가 초췌하게 서성거리다 홀로 무리를 떠난다. 더는 사냥할 수 없게 된 다리를 쩔뚝이며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인 뒷모습이 처연하다. 초원의 덤불 어딘가에서 다른 생의 먹이로 해체된 형해의 몰골로 드러누우리라. 나는 원초적 본능이 춤추는 사바나가 좋다. 물고 물리는 끝없는 광야의 생동감에 나는 내 존재의 이유를 물을 때가 있다. 사는 일이 멍청해지려하면, 거기 이글거리는 '동물의 세계'로 고개를 돌린다. 내가 한 짐승임을 잊어버리고 원래부터 인간이었다는 착각을 치유하기 위해서다.
밥 만드는 법을 배워본다며 일 년도 넘게 칼을 잡았다. 나날이 목으로 넘겨야 할 그 밥으로 벌이에서 멀어진 내 백수의 있음이 허해서였다. 먹기 위해 숨 쉬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을, 멀쩡한 채 밥의 포로가 되어가는 일을 가리고 싶었다. "베이비부머 후기 인생 자아실현 프로젝트 남성 요리교실"이란 긴 제목을 내붙인 한 복지관의 강좌에서 마늘과 대파, 생강과 후추의 향을 파고들었다. 젖어오는 만족감과 안도감이 좋았다. 홀로 사냥을 할 수 있다는 원초의 자존감 아닐까. 뭘 그런 걸 하려 하느냐는 아내의 웃음 띤 힐난도 부추기는 바람이었다.
모아놓은 레시피가 두툼하다. 튀어 붙은 양념 물이 곳곳에 추상화를 그려놓았다. 몇 장의 윗면에 '도시락 봉사'라고 적은 메모가 눈에 띈다. 영세민촌으로 혼자 사는 노인을 찾아간 날이다. 설익은 풋솜씨로 도시락을 만들어 드린다는 게 처음엔 생뚱맞았다. 요리를 웬 공짜로 가르쳐 준다 싶었던 복지관의 속내에는 홀몸 노인의 밥그릇 챙기는 일도 함께였다. 스물 댓 건달들이 어설픈 밥 심부름꾼으로 나섰다. 내겐 내 먹이를 스스로 마련하는 태초의 야성을 더듬어 불러내는 의식이요, 사바나의 짐승이 결코 따라 하지 못할 여분의 먹이를 만들어 사냥 불능의 동류와 나눌 줄 아는 인간임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올해 마지막 봉사 날이었다. 채 썰고, 볶고, 데쳐내며 만들어 그릇에 담아놓은 짜장의 향기가 그럴 듯했다. 내 솜씨인가도 싶어 신통하기까지 했다. 도시락 한 쪽에 담은 면과 밥에 넣으면 짜장면과 짜장밥이 된다. 별 찬으로 잡채를 곁들어 놓았으니 저녁 한 끼 거리는 되리라. 입춘의 바람이 문고리에 차갑기만 했던 첫날부터 문간 틈새에서 만났던 노인들의 마른 얼굴이 겹친다. 고맙다는 어설픈 몸짓마다 받아 안을 수 없는 외로움과 고단함이 밀려왔다. 그건 인간의 밥그릇이 생긴 후 어쩔 수 없는 뒤처진 자의 음울함이었다. 입에 맞았을까 켕기면서도 건네 드린 그 이후를 구태여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허기 채우기 바쁜 심사를 헤아리며 조바심만 내었다. 왜 하필 오늘 짜장면일까 싶었다. 새마을 깃발이 거리마다 서러웠던 시절, 별수 없이 많이도 먹어댔던 그 흑갈색의 향이 가슴팍을 더 아리게 해드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가로수의 늦가을 하늘엔 떨어져 내린 잎이 날리고 있었다.
남자의 요리가 대세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방송의 화면마다 요리하는 남자의 얼굴로 넘친다. 나는 이게 무슨 일일까 싶어 따져 생각했다. 용케도 조선의 사내들은 공자님 말씀이라 둘러댄 이후 밥 전투의 고지를 차지하고는 의기양양해왔다. 이 땅의 여인들 등이 휘도록 긴 세월을 내리덮은 말씀이 되었다. 이번엔 시대 흐름이 바뀌었다며 또 둘러댄다. 그건 고지를 지킬 힘을 잃은 후예들의 고백을 포장한 말이 아니던가. 태초의 광야에서 인간 수놈이 원래 밥주걱을 들었거늘 괜한 변명이 시끄럽다.
접시를 든 건달들의 행렬이 길다. '자아실현'이란 이름표를 내건 몇 사업들을 마감하는 복지관 협회의 워크숍 자리의 뷔페. 가재처럼 옆걸음을 하며 앞에 놓인 먹이를 고르느라 분주하다. 눈빛이 사바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먹이가 여유로운데도 사냥에 나선 조급함과 민첩함이 닮았다. 끝 무렵에야 과일 접시를 내밀며 느긋해 한다. 어쩔 수 없는 짐승이다. 나와 같은 조리대에서 칼을 잡았던 옆자리 노틀이 그제야 나도 혼자인데 다른 노인네에게 밥을 나르고 있었다며 웃는다. 그의 곤한 눈빛으로 짐작은 했지만 무거운 입이 마침내 열렸다. 대책 없어 보이는 초로의 건달 하나가 대책 있을 리 없는 노인을 걱정하는 소리다. 세포 분열하듯 늘어나는 늙은 입들을 나라님 재주로만 어찌 감당할까 싶다.
내 어머니도 많이 늙어있었다. 정작 혼자일 때가 많지만 그래도 괜찮은 형편이라 여기며 찾아 챙기지 못했다. 주방의 그릇도 힘이 빠져 보인다. 멸치, 무, 양파, 북어 머리 넣어 구수한 맛국물을 만들어내고 강판에 감자 썩썩 갈아 옹심이를 빚어 끓였다. 마침 밖엔 비가 부슬거리고 있었다. "얄구재라. 애비가 우째 이리 마싯게 만들었노?" 내가 점심 해드리겠다 했을 때 펄쩍 뛰듯이 손사래를 치시며 참 별일 다 있다고 했다. 남정네들이 밥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알지만, 당신의 자식이 부엌에 서는 게 영 마뜩찮은 모양이었다. "인자 하지 마라. 거기 껌정 묻는다." 불쑥 던지신 한마디가 이제 전설처럼 들린다.
저세상과 동거하는 듯했던 문간 노인들도 , 갑작스레 요양병원에 눕게 된 어머니도 사위어가는 의식의 거죽을 자연의 물질로 환원시키는 절차가 길고 더디기만 했다. 어쩌면 그건 모두가 외쳐대는 복지란 이름의 사육이 아닌가도 싶었지만 입을 열 수 없는 일이었다. 초원의 한 귀퉁이에서 사그라지는 육신을 다른 생명에게 내맡겨버린 사자의 마무리가 외경하기까지 하다.
결국, 모두 밥과의 전투에서 지고 말 일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 황혼의 초원에서 내가 만든 밥그릇으로 순간이 될지언정 춤을 추는 짐승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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