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로 간 붕어 / 김 미 화
다니는 절 마당에 맑은 물이 찰랑거리는 오래된 우물 하나가 있다. 전에는 물이 가득하여 바닥을 볼 수 없었는데 최근 들어 시나브로 줄어들면서 그 비밀스러운 곳이 모습을 드러냈다. 혹여 내가 세상에서 만나지 못한 무엇을 품고 있을 것 같은 기대를 안고 더듬으며 내려다보던 바닥엔 우물이 숨겨 온 대접 하나가 오롯이 앉아있다. 우물 속의 물을 다 안은 듯이 만족해하는 그것이 밉지 않은 것은, 처마 끝으로 들어오는 빛의 물그림자 때문일까.
내게도 오랜 시간 우물이 감추고 있던 대접 같은 어린 시절의 비밀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재혼을 했고, 초등학교 삼학년인 나와 동생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엄마의 곁을 떠나 시골 새아버지의 본가로 가게 되었다. 그때, 고되었던 날들이 죽비가 되어 나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 한구석을 채우려 사찰을 찾아와 절을 하고 우물의 물을 자꾸 들어다보고 있는지 모른다.
아득한 기억이지만 아직도 한기가 느껴지는 그때의 기억들, 이른 봄이건만 끝없는 하늘 아래 양옆을 보면 산이고, 앞을 보면 잔설을 두르고 동면冬眠에서 깨어나지 못한 논밭뿐이었다. 어린 내 마음이 따스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곳, 머물던 그 집은 마을에서 떨어진 전형적인 시골 외딴 집이었다. 이른 봄, 산을 마주 보는 뒤란에는 포도나무 한 그루가 버팀목을 따라 죽은 듯이 감겨있고 옆에는 처음 보는 수평 돌우물이 있었다. 우물가 주변엔 들쭉날쭉한 돌들이 깔려있어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 속으로 빠지기 십상이었다. 돌바닥에 엎드려 컴컴한 우물 속을 내려다보면 깊이를 어림잡을 수 없어 내겐 두려움도 그만큼 깊었다.
꼬장꼬장하면서 밴댕이 속 같은 할아버지와, 눈 깊이만큼 도통 그 속내를 알 수 업는 우렁눈의 할머니, 큰 눈에 총기는 없고 못된 궁리만 반득이던 중학생 오빠라는 남자애는 내 교과서를 감추고 학용품을 훔쳐 가는 것은 예사였다. 같은 학년 한 반인 주근깨 투성이의 또래 여자아이는 오기가 창창하고 심술은 뒤란 우물 깊이만큼 깊었다. 그것이 어린 내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이었다.
그 마을이 새아버지의 집성촌이다 보니 그 애는 친구들을 모아 학교에서 나를 따돌렸고, 멀쩡한 내 이름을 두고 그곳을 떠나는 날까지 ‘아무개’하고 불렀다. 그러다 보니 그 마을엔 친구가 없었다. 새 할머니는 내 도시락은 빼고 당신 손자 것만 챙겨주었다. 그리고 그들만의 모의를 한 것처럼 그 애는 혼자 슬그머니 부엌에 들어가 제 도시락을 퍼 담아 나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도 못 본척하며 발끝에 닿는 애꿎은 돌부리만 걷어차면서 학교에 갔다. 어쩌다가 서울에서 엄마가 다녀가면 그들은 우리 옷장은 물론 깔아놓은 자리까지 들추며 몰래 주고 간 돈을 찾느라 난리였다.
눈칫밥 먹는 처지의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살면 덜 힘들었을 텐데, 어려서도 자존심은 대쪽 같아 ‘아닌 것은 아니다’ 하며 옳고 그름을 조목조목 대꾸하니 얼마나 미웠을까. 새 할아버지는 당신의 세월만큼 손때와 담뱃진이 짙게 입혀진 곰방대로 화로 끝을 탕탕치며 대놓고 상처를 주었다.
“계집애가 너무 똑똑하면 자내 앞길 막는다고 네년이 우리 손자 앞길 막을까 봐, 그래서 네가 싫다.”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 까뭇까뭇 잦아들던 화롯불처럼 어린 가슴이 순간 붉은빛으로 피었다가 어쩌지 못하고 까맣게 숨죽이며 부서졌다.
이렇듯 촌로村老의 손자 사랑하는 편견은, 사립문을 들어서는 내 그림자조차 미웠을 것이다. 그들에게 다른 성을 가진 나는 섞일 수 없는 이물질이며 벼 표기 속에 뽑아내야 하는 하찮은 피와 같은 조재였으리라. 그래도 기죽지 않았던 나는 어른들이 한 계실 땐 그 하늘 같은 손주에게 종주목을 들이대며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다. 억척스럽게 덤벼드니 말로는 이길 수 없었던 새 오빠는 이리저리 나를 골탕을 먹였다. 한번은 읍내 장날에 광에서 베틀 부속을 훔쳐내다 팔아 쓰고는 내게 그 누명을 씌웠다. 다른 것도 아닌 도둑누명에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을 어디에도 풀어놓을 수 없었던 나는 집안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복수를 맘 먹었다. 집 앞 개울에서 손바닥보다 작은 붕어 세 마리를 잡아 우물에 넣었다. ‘붕어가 산란을 하면 치어들이 두레박에 몇 마리씩 올라오고, 결국 더러워진 물을 목 먹게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러고 나니 물을 먹을 때마다 배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정작 비밀을 만든 나만 더 힘들었다.
그 후, 치어가 댓 마리 씩 두레박에 담아져 올라올 것이라 믿고 집안에 사람만 없으면 틈나는 대로 물을 퍼 올렸다. 날은 가고 계절이 바뀌어도 우물에 넣은 붕어는 어디로 갔는데 두레박엔 비늘 하나 없는 맑은 물만 찰랑거렸다. 사라진 붕어들이 재혼한 엄마만큼 야속해 소리 죽여 울기도 했지만 그리도 두레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려다보던 우물 속은 늘 어둡지만은 않았다. 가끔은 하늘의 구름도 머물며 나와 눈 맞춤을 하다 사라지기도 하고, 우물벽 돌 틈에서 자라는 풀들을 보며 어느 순간부터 우물이 새삼 다르게 보였다. 비가 내리면 내린 만큼 물 높이도 높아졌지만 퍼내고 퍼내어도 딱 그만큼만 차오르는 물이 내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듯했다. 내 속절없는 두레박질은 치어가 아닌 맘속의 서러움과 원망을 퍼내게 했던 것인지 어느새 가슴속 응어리는 서서히 녹아내렸다. 필경 돌 틈 어딘가에 끼어 죽었을 것 같은 붕어들이 불쌍하고 미안해 가슴에 두레박을 몇 개씩 매달고 있는 것처럼 무겁기만 했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우물 속 붕어도 점점 잊히고, 소망하던 서울 상경에 들떠 있던 여름 저녁쌀 씻을 물을 퍼 올렸는데 손톱만 한 치러 한 마리가 두레박 속에서 요동치는 물결을 타고 있었다. 순간 심장의 녹색 파동은 발끝까지 전해지고 살아 있다는 고마움은 눈물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치어가 나온 걸 알면 물어 퍼내어 붕어들을 잡아 뚝배기에 끓여 새 할아버지의 밥상으로 올라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동 치던 심장이 굳어지며 살려야 된다는 생각에 치어를 대접에 담아 개울로 뛰어가 붕어를 잡았던 물가 풀 섶에 놓아줬다. 우직하게 시간을 퍼내도록 기다렸다가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알고 우물은 내게 후한 이별의 선물을 안겨 주나 보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흐른 뒤 돌아보니 우물에서 태어난 치어를 냇가에 놓아준 일은 내 생각이 앞선 실수였다는 안타까움이 든다. 치어는 결코 원치 않았을 텐데 내 생각만 좋아 낯설고 위험한 먹이사슬의 환경 속으로 보낸 것은 아닌지. 어릴 때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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