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인생을 그려본다 / 이 유 식
구름은 국적도 없이 비자도 없이 정처 없이 떠다니는 방랑자요 여행객이며, 자유주의자요, 무정부주의자다. 지상의 삶이 그 무엇에서건 구속당해야만 하는 인간들은 저 구름의 자유를 그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구름은 변용의 천재요 조화자며, 물의 딸이요 비의 어머니다. 영국시인 쉘리가 「구름」이라는 시에서 노래했듯 하늘이 길러주는 유아(乳兒)다.
구름은 신의 예복이요 옷자락이며, 두루마기요 도포며, 허리띠요 모자다. 그런가 하면 무욕주의자로서 떠다니다 자기 몸이 무거워진다 싶으면 금방 비를 뿌린다.
구름은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희고 가느다란 줄무늬 모양의 새털구름, 조개껍질이나 비늘 모양의 조개구름과 비늘구름, 장막처럼 펼쳐져 있는 털층구름,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조각구름, 산봉우리에 걸려 있는 삿갓구름 등을 비롯하여 면사포구름, 두루마리구름, 꽃구름, 실구름, 양떼구름, 뭉게구름 등등 참으로 그 종류나 모양새도 많고도 많다.
이런 하늘의 구름에는 인생의 축도가 있다. 그 모습에서 우리는 인생의 은유를 읽고 있다. 살다보면 운이 좋아 꽃구름도 만나기도 하고 운이 나빠 먹구름이나 비구름도 만나며, 맑은 날의 새털구름이나 뭉게구름도 만난다. 그래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탈기도 하고 안심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높이 떠 있는 푸른 구름을 쳐다보며 미래에 대한 높고 푸른 꿈도 꾸어본다. 그것이 이른바 ‘청운(靑雲)’의 꿈이 아니던가. 살고 보면 그 꿈을 이루었다고 의기양양할 사람이 과연 그 몇이나 된단 말인가. 세상사나 인생사가 다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인류가 태어난 이래 바뀔 수 없었던 불변의 진리가 아니던가. 시시각각으로 모습이 변하는 구름같이 불가해(不可解)한 것이 바로 인생이다.
구름은 일기예보의 관상대다. 농부들은 구름 가장자리가 미친 듯 춤을 추면 폭풍이, 또 일몰 후 불꽃같은 구름이 피어오르면 가뭄이 올까봐 걱정이 태산이었고, 뭉게구름을 보거나 구름이 북쪽으로 날거나, 산에 띠구름이라도 걸리면 맑음의 징조라 하여 안심을 했다. 비를 기다리는 마음에서라면 안달도 났다. 오랜 가뭄 끝에 양떼구름, 털층구름, 조개구름을 보면 비 올 전조라 하여 하늘의 선물인양 고마워했고, 먹구름이나 소나기구름이 몰려오면 깨춤을 추기도 했다.
구름은 예부터 시인 묵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물위의 부평초인양 떠도는 구름을 ‘부운’(浮雲)이라 하며 인생이나 세상살이의 덧없음을 명상해 보기도 했다. 서산대사의 「뜬 구름 같은 인생」이란 한시의 한 구절이 문득 생각난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한 조각의 뜬구름이 나타났다가 없어지는 것 같다고 읊지 않았던가. 아니 또 김만중의 「구운몽」도 생각난다. 뜬 구름 같은 남가일몽이 또 인생이 아니던가.
늦은 석양의 오후다. 열린 창문으로 서쪽하늘을 바라본다. 구름이 무심히 흘러간다. 70평생 사는 동안 내 인생에 드리워졌던 갖가지 구름도 그려본다. 어차피 ‘부운’이 아니던가. 담배연기를 한모금 쭈욱 빨아 구름처럼 내뿜어 보며 다시 한번 서쪽하늘을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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