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말 / 정 목 일
촛불이 선 자리는 삶의 중심점이다. 촛불의 양식은 시간이다. 가진 시간만큼의 빛을 낸다. 촛불은 전깃불과는 달리 생명성을 지닌다. 신성하고 순결하다.
초는 수명壽命을 뜻한다. 촛불이 탄다는 것은 살아있음을 말하고, 신의 뜻을 따른다는 의식을 갖게 한다. 촛불이 켜지는 순간, 어둠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의 시선과 마음은 불빛을 향한다. 시간과 순간이 빛으로 타오르는 현상을 목격한다. 촛불을 보면서 지나간 삶의 궤적을 바라본다.
인간은 한 자루씩의 초를 가지고 태어난다. 초의 길이가 약간씩 다를 뿐이지, 대개 100년 미만의 빛을 낸다. 누가 이 촛불을 켜주었을까. 태어날 적부터 촛불은 타오르고 초는 점점 줄어간다.
지금 내 초는 얼마나 남았는가. 촛불은 일생의 모습과 남은 시간의 양量을 보여준다. 의식하지 못하였던 과거의 흔적들을 떠올리게 한다. 반쯤, 혹은 3분의 1밖에 남지 않은 초를 보는 순간,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린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흘러간 시간 속에, 태워낸 촛불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창출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를 성찰해 본다. 지나간 시간들에서 찾을 수 있는 인생 자국들은 초라하고 형체도 알 수 없는 빈껍데기들에 불과하다는 걸 느낀다.
촛불을 바라보면, 삶은 초라하고 허전하다.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도 모르게 촛불 앞에 서 있음을 깨닫는다. 때때로 태풍과 폭설이 들이닥쳐 촛대를 쓰러뜨리려 위협하고, 돌연한 광풍이 몰아닥쳐 촛불을 꺼버릴 듯 가물거리게 만들었다.
촛불은 창백하게 떨면서 가까스로 혼신을 다해 일어서며 두 손을 모은다. 촛불이 꺼질락 말락 한순간엔 기도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운명을 비켜 갈 순 없기에 신의 가호를 얻길 바란다.
많은 여인들이 50대가 되면, 갱년기 장애로 우울증에 앓게 된다고 한다. 의사의 처방을 받고 약을 복용한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한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바쁜 세월이 지나가고, 50대가 되니 살맛이 없어졌다는 하소연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문득 가슴속에 촛불이 타오름을 느낀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이 켤 수 있는 촛불의 분량을 보여주고 싶다. 촛불을 켜고, 일생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만큼 유익한 일도 없다.
허망하다고 생각할 필요 없다. 그동안 얼마나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온 나날이었던가. 여인들의 삶은 위대하고 아름답다. 어머니, 아내, 며느리, 시누, 올케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면서 1인 5역을 다하는 동안, 자신의 이름마저 잃고 살았다. 온갖 시련과 갈등을 이겨내고 살아낸 것만으로도 장한 일이다. 자신을 녹이고 태워서 3분의 1이 되는 초로 남은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삶의 흔적인가. 자신보다 가족들을 위한 헌신으로 살아온 가치 있는 삶이다.
촛불을 보면 안다. 작은 분량의 초로 우주 한복판에 고독하게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제 망설일 시간이 없다. 최선의 열중과 집중력으로 남은 시간을 빛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을……. 그 빛으로 한 점의 재와 촛농도 남기지 않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창출해내고 감동과 아름다움으로 넘쳐나게 해야 한다.
촛불에게 다가가 말하고 싶다.
“삶을 떠오르는 해처럼 경건하게, 해넘이처럼 아름답게, 인생은 어둠이 아닌 빛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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