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청년 / 윤 주 홍
새벽, 숨을 몰아쉬며 왕진을 청하는 청년을 따라갔다.
새벽밥을 지으시다 낙상 하신 할머니가 일어나지 못 한다며 재촉한다. 청진기로 애타게 심음을 찾았지만 가슴엔 무거운 적막만이 새어 들어올 뿐, 이미 심음은 없다. 청년은 할머니를 안고 오열을 한다. 모두 자기 때문이란다. 오늘 새벽도 도서관에 가는 손자의 밥을 짓다 그랬다며 몸부림을 친다. 기도를 하고 있는 나의 손을 잡는다. 떠는 목소리로“선생님…….”부르더니 말을 잇는다.
청년이 초등학교 6학년일 때는 조석도 제대로 끓이지 못했다 한다. 설상가상으로 할머니가 병환으로 누워있었던 어느 날 병문안을 온 이웃집 아주머니가“할머니는 고기를 먹어야 살아나는데…….”라고 말하더란다. 순간‘됐다’라는 생각이 전광석화電光石火같이 머리를 스쳐 가더란다.
바로 그날 밤, 소년은 차가운 달빛이 가득 찬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날렵하게 교사校舍그늘에 몸을 숨겼다. 가슴을 죽이며 비둘기 집을 살폈다. 비둘기들도 밝은 달밤 낯익은 소년의 기습에 놀라 잠을 깨었는지 구구구 몸을 사린다. 무섭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 손으로 기르는 학교 비둘기인데……. 순간 갈등으로 고민을 한다.
하지만, 광대뼈가 튀어나온 앙상한 얼굴에 영양실조로 눈이 쾡 하고 피골이 상접한 할머니의 몰골이 눈가에 매달려 어른거린다. 그리고 고기를 먹어야 살아난다는 아주머니의 음성이 귓가에 맴돈다. ‘그래 우리 할머니를 내가 살려야지.’ 그리고 바로 달려가 비둘기 한 마리를 채듯 잡아들고 달렸다. 밝은 달빛 뒤로 쫓아오는 자기 그림자가 발목을 잡는 듯 걸음이 무겁다. 캄캄한 밤이었으면 싶었다. 소년은 가슴이 터질것 같은데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다. 할머니는 다음날에도 그 고기를 어디서 났느냐고 묻고 또 묻더란다. 이렇게 살려 낸 할머니인데 돌아가신 것이다.
이후 소년은 6년간이나 정들었던 학교를 가지 못했다. 교문도, 교정에 나무들도“비둘기 도적!”이라고 소리칠 것 같아서이다. 아니 비둘기들이 푸드득 몰려와 쪼아댈 것만 같아서 졸업식에도 불참했다. 지금도 그때 그 생각으로 비둘기를 정면으로 쳐다 보지 못한다고 한다.
요즘 할머니는 행복했다. 손자가 대학에 들어가 열심히 과외, 아르바이트를 한 덕분에 부족하고 어렵지만 사는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만 이렇게 돌아가시다니……. “할머니! 이젠 정말 나 혼자에요.”흐느낄 땐 옆에 있는 이들의 가슴도 저며 왔다. 소년가장으로 자란 그 청년은 하염없이 슬피 눈물을 쏟는다. 외로움에 한 서린 슬픈 울음보다 오히려 절규이리라.
세상에는 돈 수백 억을 떼강도 맞고서도 얼마나 부정했으면 당국에 신고도 못했다는 신문기사를 본다. 이런 세상에 병든 할머니 약으로 잡아온, 자기 손으로 사육한 비둘기 한 마리로 인해 얼굴을 들지 못하도록 부끄러워하는 소년의 맑은 양심을 생각만 해도 숲 향기와 더불어 가슴이 청량해야 할 터인데 왜 무거울까? 이제 막 동이 트려는 진녹색이 어둑한 오월의 숲 골짝이다. 새벽산길에 몇 마리 나려 앉아 먹이를 찾는 산비둘기를 본다. 지금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겠지! 언뜻 비둘기 청년이 궁금하다. 손을 모아 하나님의 가호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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