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의자 / 박영덕
나는 의자입니다. 내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면 사람들은 혹여, 고급 융단으로 치장을 하고 몸을 360도로 회전하며 멋진 폼을 잡는 그런 의자를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디 그런 의자만 의자인가요, 변두리 구멍가게 앞에서 밤이슬을 맞아가며 노숙을 하는 저 같은 의자도 의자인 걸요. 아니 가끔씩은 오히려 내가 더 의자다운 의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구요? 특정된 사람만 앉도록 지정된 그런 거북스런 의자보다는 지친 사람이면 누구나 맘 편히 앉아 쉬어가는 나 같은 의자가 오히려 의자로써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나도 한때는 그런 화려한 변신을 꿈꾸던 시절이 없진 않았어요. 내 고향인 밤섬 바람받이 언덕에 서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내가 밑동을 잘리는 아픔을 참아냈던 것도, 제재소에서 온몸이 얇게 저며지는 고통을 참을 수 있었던 것도 새로이 전개될 미래에 대한 벅찬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그 꿈은 나에게 부풀었던 만큼의 실망을 안겨주고 떠나 버렸답니다.
어느 날, 허름한 감색 잠바의 아저씨가 내게 다가오면서부터 나의 꿈은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바퀴가 열 개나 달린 큰 트럭에 실려 의기양양하게 떠나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아저씨는 낡아빠진 오토바이 꽁무니에 나를 동여맸습니다. 내 운명에 체념이란 단어가 붙게 되는 순간이었지요. 번화한 도심을 다 지나쳐 버리고 내가 도착한 곳은 변두리의 허름한 구멍가게였습니다. 안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나오더니 나를 만져 보며 옹이가 많다고 혀를 차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어찌 알겠습니까. 사시사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불어오던 그 줄기찬 바람 속에서도 휘거나 비틀어지지 않으려고 내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요.
잠시 후, 아저씨는 연장들을 가져다가 서투른 솜씨로 가게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또 다시 가슴이 조마조마해져 왔습니다. 왜냐면 같이 실려 온 친구들은 모두가 과자를 올려놓을 선반으로 자리를 잡았는데도 유독 나만 따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조이며 그 자리에 선채 밤을 샜습니다. 아마 내 일생에 그토록 긴 밤이란 다시는 없을 겁니다.
날이 새자 아저씨는‘신장개업’이라고 쓴 종이를 가져다 출입문에 붙이더니 드디어 나를 집어 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꼭 감았습니다. 또닥또닥, 꽝꽝, 다 되었다는 아저씨의 말에 눈을 떠서 유리창에 비친 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긴 널빤지에 짜리몽땅한 다리 네 개가 생뚱스런, 볼품없는 나무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아저씨는 건조도 채 되지 않은 재목을 팔았다고 투덜대며 면장갑으로 내 얼굴을 쓱쓱 문질러 버렸습니다.
내가 고향을 떠나며 꿈꾸었던 청운의 꿈 따윈 사람들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아저씨의 가게 한편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절망 속에서 시작된 새 생활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의자로서의 소임에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자부심도 생겨났습니다. 할머니는 깨끗한 수건을 마련하여 늘 얼굴을 닦아 주었고, 무뚝뚝하지만 속정이 깊은 아저씨는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 되면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나를 벽 한쪽에 세워서 편히 쉬게 해주었습니다.
이웃들과도 어지간히 친해졌고 단골손님도 생겨나서 어쩌다가 내가 눈에 띄지 않으면 부산들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를 찾는 손님들이 다 반가운 손님만은 아니었습니다. 건너편 비디오 가게 아저씨는 부부싸움을 자주 하는데 그럴 때마다 깡소주를 들이키며 애꿎은 나를 들었다 놨다 해댔습니다. 정작 화풀이를 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을 터인데, 왜 나를 못살게 구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도 늘 당하고만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이런 손님들을 위해 자구책이랄까, 그런 것을 강구해 두었지요.
우리 가게 단골손님 중에 벽돌공장 공장장인 이씨가 있습니다. 이씨는 매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우리 가게엘 들러서 나를 쉼터 삼아 새우깡을 펼쳐놓고 맥주 한 병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이 양반은 마지막 잔을 비우고 나선, 코를 푸는 버릇이 있습니다. 휴지로 얌전히 일을 보면 이 얼마나 교양 있어 보이겠습니까. 한데 꼭 손으로 그 일 보고 나선 글쎄 내 다리에다 쓱 하고 문질러 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진저리를 치며 싫어했지만 몇 달을 두고 보아도 이씨에겐 전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분풀이를 좀 했지요. 그가 마지막 잔을 놓는 순간을 포착하여 왼쪽 다리를 번쩍 들어 버린 겁니다. 엉덩방아를 찧는 꼴이라니. 정말로 통쾌한 순간이었습니다. 깨진 병조각들을 치우다가 손을 베인 아저씨에겐 정말로 미안했지만 가슴 속이 얼마나 후련했는지 모른답니다. 아참, 이쯤해서 빨간 커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우리 아저씨는 원래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였답니다. 요즈음 아가씨들의 농촌 기피 현상 때문에 그도 역시 서른다섯이 넘도록 장가를 들지 못한 노총각이었지요.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농사를 잠시 남에게 맡겨놓고 이 구멍가게를 차려 신붓감을 구하는 중이었답니다. 그래선지 우리 가게엔 아저씨의 사촌누나가 분위기 운운하면서 반 강제로 들여온 것이 2인용 소파인 그 빨간 커버입니다. 진짜 가죽소파를 들여놓는데도 별로 달라질 것 없는 우리 가게에 무슨 분위기 맞출 일이 있는지 나는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나중에 가서 아저씨의 결혼 작전에 빨간 커버가 얼마만큼의 도움을 줄지는 몰라도 가게 안은 한결 비좁아졌습니다. 그래서 자연 나를 밖에다 내어놓는 횟수가 빈번해진 것이지요. 그러다가 어젯밤엔 아예 노숙을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답니다. 창문 너머로 들여다보니 얌체처럼 버티고 앉아 힐끗거리는 빨간 커버가 얼마나 밉던지요. 그래도 떠돌이 개 한 마리가 와서 벗을 했기에 조금은 덜 외로웠습니다만.
하지만 나는 생각했습니다. 처음 고향을 떠날 때 꾸었던 꿈들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보려는 꿈이 있었기에 잘 견뎌낼 수가 있었다고요. 언젠가 내가 의자로서의 꿈마저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아마 훨훨타는 불 속에 던져져서 한 줌 재가 되고 말겠지요. 그러나 나는 그 순간에도 이런 꿈을 꾸고 싶습니다. 재가 된 내가 민들레 홀씨처럼 훨훨 날아가서 고향 언덕 어린 나무들의 뿌리에서 또 다른 꿈들을 키우는 꿈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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