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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카와 소녀 / 오 창 익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19. 10. 9.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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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어카와 소녀 / 오창익

 

 고요하다.

학생들이 모두 밀려가고 난 후의 교정은 흡사 간조(干潮)된 갯벌과 같다. 사환마저 퇴근을 해버린, 아무도 없는 교무실이다. 그 교무실 창가에서 나는 홀로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겨울철이라 어느새 땅거미가 어슬렁거린다. 이맘때쯤, 다가선 창가에서 담배 한 두 개비를 하릴없이 피워대는 것은 나의 버릇처럼 되어버린 일과이지만, 오늘만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계를 본다. 610여 분 전. 빈 리어카를 앞세우고 털보 아저씨가 교문을 들어설 시간이다. 그렇다고 나와의 용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찾아가는 곳은 운동장 한 귀퉁이에 만들어 놓은 쓰레기 적환장(積換場)이다.

 

 쓰다버린 학습장, 각종 폐휴지를 가져가는 대신에 남은 찌꺼기마저 깨끗이 치워주기 위해서 날마다 찾아오는 것이다. 달포 전부터 꼭 이맘때쯤, 오후 6시만 되면 텁수룩한 얼굴에 한껏 겸손한 미소로 수위실에 꾸벅 인사를 하며 그는 어김없이 찾아와 준다. 텅 빈 운동장이지만, 덜컹덜컹 바퀴소리를 낸다거나 운동장 한 가운데를 방자스럽게 가로지르지 않는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건만 그는 항상 담을 끼고 간다.

 

 창가에 서서 나만이 오붓하게 적막을 줍는 고요로운 한때에 불쑥 나타난 털보와 리어카, 처음 며칠은 솔직히 눈에 거슬리기도 했지만, 운동장 가장자리만을 골라서 조용조용 걸어가는 그 겸손, 그리고 여섯 시만 되면 어김없이 교문을 들어서는 그 정확성 때문으로 하여 나의 뾰족했던 시선도 끝내는 그를 마다할 수가 없었다. 마다하기는커녕, 지금은 십년지기나 된 듯 오히려 그와 리어카를 기다리게까지 된 나의 저문 창가이기도 하다.

 

 가끔은 혼자일 때도 있지만 대개는 부인인 듯한 40대 작업복 차림의 여인과 나란히 리어카를 끌고 와 준다. 썰물이 남기고 간 황량한 갯벌에서 마치 조개를 줍듯 여기 저기 바람에 흩어진 종이나부랭이를 거둬들이는 것은 언제나 소매를 걷어붙인 부인의 차지다. 그 동안에 털보 아저씨는 쓰레기를 헤쳐서 쓸 것 버릴 것을 갈라놓는다.

 

 일단 전초작업이 끝나면, 둘이는 폐휴지더미 앞에 다정하게 마주 앉는다. 편한 자세로, 결코 바쁠 것이 없다는 듯 언제나 그들은 느긋하다. 추려낼 폐휴지가 있는 한, 뺨을 할퀴는 추위도 퀴퀴한 냄새도 아랑곳없다. 조용조용 주고받는 정담이 오가는 한, 그들의 작업장은 언제나 엄동을 녹이는 따뜻한 양지쪽이다. 그러는 사이에 구겨지고 얼룩진 채 쓸모없이 버려졌던 휴지들은 다시금 펴지고 정리되어 차곡차곡 쌓여지는 것이다.

 

 무릎 높이만 하게 추려지는 둘의 것은 하나로 합쳐지고, 이어 노끈으로 단단히 얽어맨다. 그것을 뒤로 밀어내고는 또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한 장 또 한 장 쌓아 올리는 것이다. 황량한 벌판에 떨어진 몇 알갱이의 나락, 그 나락을 줍는 여인의 머리 위에 울려 퍼졌던 밀레의 만종, 그 만종의 축복을 실감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그렇다. 내버렸던 휴지 한 장의 가치, 그것은 구겨진 나의 과거요, 다시 펴진 나의 현실일 수도 있다. 경솔했거나 무덤덤했던 탓으로 가볍게 흘려버렸던 나의 소중한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것들이 한 장 한 장 거두어져 새로운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발돋음 할 때, 그건 분명 부활이었고 생명이었다.

 

 하기에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결코 태만하지 않는다.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하루 10여 군데의 쓰레기 적환장을 개미처럼 부지런히 드나든다고 했다. 그들은 절대로 조급하지 않다. 언제나처럼 폐휴지더미에 앉기만 하면 항상 금실 좋은 한 쌍의 부부다. 거기에다 매일처럼 쏟아지는 넉넉한 자산이 있으므로 하여 늘 부자스럽고 여유만만하다.

 

 그들에겐 티끌만한 어떤 불만도 없다. 잡역부로서의 졸스러운 비굴함이나 수치감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기에 그들의 표정은 항상 정직하고, 항상 겸손하고, 항상 만족감으로 충만해 있다.

 

 엊그제는 올 겨울 들어 첫눈이 내렸었다. 첫눈치고는 꽤나 많이 쏟아져 리어카를 끌기에는 힘겨웠던 날이다. 그러나 나는 해 저문 창가에 서서 언제나처럼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이 미끄러우니 오늘만은 어쩜 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여섯 시가 되어도 리어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까닭 없이 초조해 진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한 개비의 담배에 불을 그어대는 순간 낯익은 리어카가 불쑥 교문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아무렴, 안 올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오늘은 혼자가 아니라 둘이다. 아니 셋이다. 털보 옆에는 부인임이 틀림없는데 리어카에 타고 있는 작은 사람은 또 누구인가? 가까이 다가오는 리어카 위의 소녀. 그는 네댓 살이나 되었을까 말까한, 볼이 아주 귀엽게 생긴 그들의 막내딸임이 분명했다.

 

 함박눈이 쉴 새 없이 쏟아졌지만 그들의 작업은 천연스러웠다. 한 장, 또 한 장 구겨진 폐휴지는 펴지고 쌓여진다. 막내가 추울세라 모닥불을 피워 놓았다. 무릎까지 차곡차곡 쌓여지면 다시 하나로 합쳐지고, 하나로 뭉쳐지면 아내는 붙들고 남편은 노끈으로 묶어버린다. 언제나처럼, 결코 서두를 것이 없다는 듯 눈발 속의 세 식구는, 모닥불 가의 단란한 한 가족은 동화 속에 나오는 정겨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이윽고 두어 뭉치가 챙겨지면 그들은 마침내 리어카에 짐을 싣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오늘따라 실리는 짐은 폐휴지 말고도 또 하나가 더 있다. 그게 무얼까? 자세히 보니 그것은 어느 틈엔가 리어카로 기어오른 꼬마 아가씨다. 재빠른 동작이었다. 퍽이나 익숙한 솜씨로 보아 결코 처음만은 아닌 듯했다. 이제 엄마는 밀고, 아빠는 끌고 갈 채비다.

 

 눈은 계속 내렸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푹신한 말안장에 파묻힌 소녀는 세상에선 가장 행복한 백설공주가 되었는데…….

어느새 정각 여섯 시. 털보네 리어카가 나타날 시간이 왔다. 나는 한걸음 더 창가로 바싹 다가서 본다. 와 줄 것인가. 오늘도 볼이 하얀 그 꼬마 공주는 엄마랑 또 같이 와 줄 것인가? 조바심을 태우며 리어카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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