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쓰는 글이 잘 쓴 글이다 / 이 정 섭(소설가)
학창시절 생각이 난다. 국어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일평생 잊히질 않는다. 글은 독자가 알기 쉽게 써야한다. 꼭 실력 없는 필자가 미사여구와 어려운 단어를 구사하여 쓴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자기 학식의 실력을 과시하기 위한 거란다. 문학잡지의 글을 인용하여 설명을 해 주셨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렵고 힘들어지는 게 사실이고 보면 쉽게 쓴다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느낀다. 날이 갈수록 더 어려우면 어려웠지, 쉽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항상 써놓고도 체념의 상태에서 글을 인쇄에 넘긴다.
문학은 어려운가? 어렵다고 선뜻 대답이 나온다. 해보면 해볼수록 더 어려워진다. 특히 전공이 아닌 곳에서는 항상 긴장이 배가된다. 나로서는 이렇다 할 취미가 없는 사람은 이 세상 모두가 어렵다. 친척이면서 직장상사도 되고 학교 선배도 되는 분이 이게 쉽다며 해보라고 권해서 해보면 늘 어렵다. 도대체 쉬운 게 뭘까? 사는 게 쉽다고 어느 친지가 이야기 하길래 대관절 뭐가 그리 선뜻 말하기 쉽게 나올까 생각해보니 그분의 업적을 보고 알았다. 그분은 생각 밖의 것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습관이 있었다. 하는 일 그리고 직장 통상 관념에 몰두하지 그 이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종교를 가진 분이어서 전통행사에는 전혀 참석치 않는다. 그의 친척들은 마구 욕을 해댄다. 그 사실을 알려주면 그는 웃고 만다. 왜 그럴까 하고 문의를 했더니 나와는 상관이 없단다. 자기도 친척들과 한 핏줄인 자손이면서 조상의 관한 사항에는 전혀 알 바가 아니란다.
세상 참 편하게 사는 사람이구나 생각되지만 그는 한평생 친척들과 왕래가 없다. 그리고 같은 교인이 아니면 인사도 없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의 문학성향도 그의 종교 일색이라 두 번 다시 읽을 매력을 못 느꼈다. 그래도 부지런히 쓰고 책도 냈다. 한 가지 아쉽다면 일찍이 세상을 떠 버렸다.
글을 쓰면 쓸수록 어려워지는 건 나로서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려운 타령만 하고 안 쓸 수도 없거니와 잘 못써도 내가 쓴 것이기에 늘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면서 계속 쓴다.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하면서 오늘도 써내려가고 있다. 내 글의 비평문을 보고 또 보고 대오 반성을 해보지만 곧 잊어버린다. 인간의 생리구조가 망각이라는 게 없으면 아마 대개가 다 정신병에 걸릴 것이라고 단정하며 잊고 지난다. 오늘도 원고청탁을 받아 쓰노라면 긴장이 된다. 혹 잘못된 곳은 없을까 하고 또 보고 다시 보고 교정도 여러 번 보지만 그래도 고칠 게 나온다.
원고를 보내고 깨끗이 잊으려고 하면 여운이 쉽게 지워지질 않아 술을 찾을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남들은 쉽게도 잘만 쓰는데 나는 왜 맨날 이렇게 어려울까. 그래서 전공을 새로 택해서 늦깎이 공부도 해보았지만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한참 지난 뒤에 선배의 글에서 생각을 복잡하게 하니까 자꾸 어려워진다는 그의 창작 행위 글을 읽었다. 빙그레 웃음이 났다. 생각을 한번 돌려서 자기 주변을 돌아보라는 권유는 내게 참다운 조언이었다. 이런 저런 직업에서 겪은 일들이며 문우들의 충고를 달게 받는 습관이 자기의 문학을 돋보이게 한다는 선배의 말씀이고 보면 그 길이 쉽게 쓰는 비법임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도 글은 어렵다는 생각이 버릇처럼 뇌리에서 떨쳐지질 않는 것은 왜일까?
모든 일 쉽지 않다는 나의 삶의 기본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직업 전환에서 연구하고 실적을 위해 부단한 노력이 어느덧 습관이 되었고 그로 인해서 문학을 하면서도 쉽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최선을 다해 해보는 것이 나의 좌우명이고 보니 이렇게 쓰면 잘 되었을까 아니면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자꾸만 되새김질 하다가 나중에는 원고 마감이 오면 체념한 상태로 송고를 하게 된다. 글자 하나에서부터 글맵시가 어떤가 하는 생각을 거듭하다보면 날이 새고 밤이 가버린다. 초저녁잠이 많고 새벽에 일찍 깨는 습관으로 어떤 때는 날이 새면 깜짝 놀라 서둘러 원고 낸다. 다시 읽어 보면 이건 이건 아니다 싶어 손대다 보면 시간에 쫓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누구나 쉽다지만 나에게는 어려운 작업임에는 틀림없고 모두들 위대해 보인다. 어릴 때 친구들 만나면 가끔 묻는다. 글 쓰는 재미가 어떠냐고. 맨날 어렵다고 하면 그렇게 어려우면 왜 쓰느냐고 묻는다. 대답은 간단하다. 쓰고 싶어 쓴다. 친구들은 팔자소관이라고 웃는다.
남의 글도 보고 내 글도 보고 항상 내 글은 질이 떨어져 보이고 남의 글은 돋보인다. 좀 더 노력하면 되겠지 하면 벌써 나이가 후딱 먹어버리고 신체를 무리하게 쓰면 잠에 취해 곯아 떨어져 버린다. 시간이 지나 잊어버릴 때 쯤 보낸 원고가 인쇄되어 나오면 부끄러워 어떻게 볼까 하고 읽어보곤 좀 더 잘 쓸 걸 후회도 해본다. 이미 독자들에게 돌아간 원고, 체념을 안 하면 글을 영영 못 쓰기에 생각을 가다듬고 원고를 대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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