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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만세루에 서서 *리뉴얼 좋은 건축이 있는 곳에는 좋은 터가 있나 보다. ‘소쇄원’에서의 기억처럼 ‘봉정사’ 길은 초입부터 땅의 기운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부석사’에서의 기억이 교차한다. 소백산 준령과 천등산 기슭의 차이, 40대 초반의 패기와 지금의 나이, 그런 차이에도 비슷한 감흥으로 오는 건 역시 지형에 순응한 '산지가람'인 이유가 먼저다. 그러나 더 세심히 살피면, '의상대사'가 창건한 ‘부석사’와 제자였던 '능인스님'에 의하여 지어진 ‘봉정사’가 정신적 맥락을 같이함이 다른 이유가 아닐까. 건축을 결정하는 데에는 자연의 영향이 중요함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의 의지도 못지않음을 본다. 그런 것들이 상형화 되어 천 년 후의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나의 경우, 사찰을 기행하고 감격하는 것은 대체로 지금과 같은 기분이 들 때이다. 고즈넉하고 호젓한 느낌, 계절로는 만추의 가을이나 삭풍의 겨울 사찰들이 인상 깊었다. 봄 ‘화엄사’의 화려함이나 여름 ‘송광사’의 분주함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을 오늘 '봉정사'에서 가지는 것이다. 사찰은 창건의 역사와 관계없이 엄연히 종교가 이루어지는 현세의 도량임에도 내게는 사찰을 대하는 편견이 있다. 폐허가 된 '파르테논'이나 '피라미드'의 장엄을 기대하듯 단청이 벗겨지고 솔이끼가 앉은 고전을 느끼려는 욕심이 생기는 걸 어쩌겠는가? 여기에 전통사찰이 가지는 보존과 사용 사이의 혼돈이 있을 것이다. 때마침 '봉정사'도 복원 수리 중이다. 그럼에도,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때 묻지 않은 소박함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내 눈에는 양쪽에만 지붕이 있는 '극락전'보다 날아갈듯 한 지붕의 '대웅전'이 훨씬 좋던데, 사람들은 '극락전'을 더 좋다 하데요." 나를 태워준 운전기사가 큰 카메라를 메고 온 나의 목적을 단번에 알아차린다. 우리나라 최고(崔故)의 목조 건물인 ‘극락전'을 애써 찾는 사람이 어디 나뿐이랴. 그러나 명성에 비하여 규모는 의외로 작고 오히려 소박하다. 이런 작은 사찰에 역사의 최고가 있었다니...... “썩어도 준치다.”라는 말에 동감하며, 마침내 건축을 아끼는 선배들의 수 없는 찬사에 동의해 보련다. 미술사가 '유홍준' 교수가 서술했다. “가람의 배치가 정연하여 일품이다. 단순한 표정(마알간 느낌)의 대웅전 앞마당과 거침없이 트인 극락전 앞마당의 두 공간의 위계 없는 병렬배치로 생기는 다양성과 활기로 인해 공간배치의 특이함과 우수함이 돋보인다.” 또한, 건축가 '김석철'은 이 마당 둘과 뒷자락의 암자 '영산암'의 감정 표현이 많은 마당을 예로 들며, 마당이 중심이 되는 우리의 공간감에 대하여 극찬하였다. 나는 요사채 쪽으로 난 편안한 길을 두고, 정면으로 난 선언적이고 조급한 느낌의 초입을 통과하여 경내로 들었다. 좁고 낮음은 입구에서부터 이미 머리를 숙이게 하려는 종교적 명령으로 보인다. 여느 사찰에서처럼 주위에 '사천왕'을 도열함으로 참배의 마음을 다잡으려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의도이다. 서서히 드러나는 경내의 모습, 비탈에 건축된 필연이 있겠지만, 짧은 시간에도 '숨은그림찾기'에서와 같은 즐거움을 경험한다. 미리 터를 닦아 놓고 집을 앉히는 서양건축의 프로세스를 상상하면서 품격이 다름을 느낀다. 자연과 건축이 빚어낼 수 있는 공간적인 재미와 그것을 의도한 사람의 배려는 삶이 즐거움과 환희의 연속이어야 하며, 건축은 그런 인간을 품어야 한다는 본연의 원칙을 공감케 한다. 때로는 은유에 그치더라도 얼마나 훈훈한 일인가. 나는 오늘 이 하나만 보아도 족하다. 개개의 공간은 작은 편이지만 무척 명쾌하다. 담과 집이 서로 얽히면서 피안(彼岸)의 경계를 분명히 하며 도량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다. 더구나 자연이든 인간이든 얼마든지 순응하려는 태도마저 보인다. 다듬지 않은 구조재가 그렇고, 결구 방식이 무척 간결하다. 투박한 주초와 그 생김새에 맞춘 기둥의 그랭이질이 그렇고, 담의 허튼 막쌓기는 기술력의 부족이 아니라 다분히 의도된 것임이 틀림없다. 어느 부분 하나도 위압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없다. 선도적이며, 계몽적이어야 함을 알고 실천하면서도 극도로 겸손하고, 은유적인 자세로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실은 지난번 부석사에서 느낀 감동도 그런 것이었다. 두 절에서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막상 이런 인간미 때문이다. ‘극락전’의 건축적 의의, ‘대웅전’의 단아함, ‘화엄강당’과 ‘고금당’, 그 외의 사찰건축의 세세한 의미는 사족을 붙이지 않아도 될 듯하다. 같은 마음으로 축조된 도량들이 아니던가. 굳이 느낌을 말하자면, 부석사에서 호연지기와 진취를 느꼈다면, 봉정사에서의 느낌은 안온한 휴식 같은 기분이다. 결코, 커지려 하지 않고, 지배하려 하지 않고, 자세를 낮추어 스스로를 빛내지 않는 선비 같은 어른스러움을 보았다고나 할까? 등재된 몇 개의 문화재는 물론이고 물건들이나 공간들 모두가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다소곳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절의 주인인 스님들로 수가 적다. 하여, 객인 불자들도 들뜨지 않고 그저 소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세루’에 오르면 비로소 인간의 세상이 눈에 든다. 오르는 길이 기대에 부풀어서였을까? 인생도 마찬가지다. 목표를 위하여 치달았던 시간에 지나친 것들이 정점에 이르러 비로소 보이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들판은 온통 노란색 물결이다. 주변마을이 농가수익을 올려주는 소국小菊(황국)이 결실의 들판에 가을빛을 더욱 보태고 있다. 거름냄새 사이로 느끼는 쇄락함은 분명히 소국의 향기 때문일 터이지만, 곧 인간 세계의 향기이다. 봉정사를 찾아드는 길은 그렇게 소담하고 삶이 묻어 있었다. 시주하고 굽이굽이 돌면서 산으로 들어가는 스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찾아드는 절은 저기 이건만 어쩌면, 그 길과 길에서 만나던 사람들이 곧 종교의 목표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절은 더욱이 위엄을 버렸으며, 하물며 ‘만세루’ 같은 걸 지어서 현세를 내려다보려는 애정 어린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종교를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 와서 보니, 공기나 색깔, 사람들의 표정이나, 나아가 산이나 절도 다 억지 없이 고만고만하고 정이 가며, 삼라만상이 곧 편안하게만 보인다. 혹 그런 세상이 ‘의상대사’와 ‘능인스님’께서 꿈꾸시던 화엄의 세계가 아니었나 생각해 볼 따름이다. 봉정사와 극락전에 대한 객관적인 느낌과 글은 많다. 그만한 가치와 아름다움이 있는 까닭이다. 오늘 운 좋게 나는 그 한구석을 보았다. 스스로를 더 다져 다시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국의 향에 나의 향도 보태어 지기를 바란다. 다만, 그때도 계절은 가을이었으면 한다
-深溪-
Soulful Adagio (영혼의 .. - 바이올린과 현 그리고 쳄발로를 위..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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