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유 부 인
강 효 형
고향 마을에 혼자 사는 노파 한 분이 있다. 사람들은 그녀를 호박갈보라고 부른다. '갈보'를 차마 입에 담기가 민망해서 그냥 '호박'이라고만 부르는 사람도 있다. 물론, 제3자들끼리 그녀를 지칭할 때만 부르는 이름이지만 당사자가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래도 못 들으면 못 들어서 그만이고 들어도 못들은 체하고 그만이다.
6 . 25 전쟁이 끝나갈 무렵, 마을 주막에 색시 하나가 들어왔다. 마을 아낙네들과는 차림세부터가 달랐다. 공작새 날개 같은 유똥 치마저고리에 입술 연지까지 짙게 바른 색시가 나타나자 1백 오십여 호나 되는 마을 사내들이 단박에 술렁였다. 아래 위방 달랑 두 칸에 툇마루, 거기 달린 부엌 한 칸이 전부인 주막에서는 몰려드는 손님들을 다 감당 할 수 없어 밖에서 서성거리는 사내들도 적지 않았다. 양조장 자전거가 막걸리 통을 주렁주렁 달고 분주히 드나들어도 술이 달릴 지경이었다.
H . K 양대 성씨의 집성촌이어서 서로 비교 우위의 양반임을 자처하던 양가의 자존심과 기강이 맥없이 무너졌다. 타성 간에는 물론 아재비와 조카, 손자행과 대부행 간에도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는 판이었다. 사태가 이쯤 되자 이면 체면 다 벗어 던지고 중인 환시리에 땔나뭇짐을 지고 가 주막집 헛간에 부리는 순정파도 있었다.
스캔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자 마을 아낙네들의 입방아까지 분주해졌다. 주모를 원망하고 색시를 저주하고 서방님들을 질타했지만 사태는 좀처럼 반전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호박갈보'란 호칭은 아마도 그 입방아에서 나온 작품이 아닌가 한다. 하기야 성씨도 이름도, 고향도 나이도 모르는 그 '여우 같은' 여인을 순순히 '색시'로 불러줄 심사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낙들의 입방아야 어떻게 돌아가든 그녀는 당당했다. 술 달라면 술을 주고 노래 하라면 노래 하고, 사내들이 어린애처럼 보채면 적당히 달래고 아낙들이 아우성을 쳐도, 내탓 하지 말고 서방 건사나 잘 하라고 응수 했다 마을 앞에 수력발전소가 들어 서면서 대부분의 농토가 물에 잠기자 이농하는 사람이 늘고 주막도 문을 닫았다. 그래도 색시는 그만큼 호황을 누렸으면 한 미천 잡았음 직도 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녀에게 남은 거라곤 폐경기에 접어든 몸뚱이 하나뿐 이었다. 졸지에 실직자가 된 그녀가 마을 아낙들 틈에 끼여 논일 밭일 허드렛일 가리지 않고 소매 걷어 부치고 나서자 그제야 마을 아낙들도 그녀를 용서 했다.
그러구러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서방님들이나 그녀나 염문 뿌릴 나이도 지나가버리고 그다지도 군침 삼키며 보채던 남정네들 중에는 세상을 떠난 이도 여럿이다. 이제는 그녀도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늙었다. 그래도그녀는 여전히 '호박갈보' 또는 '호박'이다. 그러나 그건 마을 사람들 탓이 아니다. 스스로 이름을 밝힌 적이 없고, 남편이나 자식이나 형제 자매나 하다못해 사돈의 8촌하나 나타난 적이 없으니 아무개 엄마, 또는 아무개 이모 하는 식으로 빗대 부를 만한 언덕마저 없는 것이다. 이름만 있고 형체 없는 사람은 많지만 형체가 분명하면서도 이름이 없는 사람.
그녀가 속절 없는 무의탁 노인이 되자 마을 이장이 생활보호 대상자 신청을 하려니 호적도 주민등록도 없는 데다가 본인조차 자신의 출생내력을 모르고 있더라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 연명으로 진정서를 올리는 등, 우여곡절 끝에 생계비 지원을 받게 됐다는데 그녀의 신상 명세서가 어떻게 꾸며졌는지는 알 수 없고, 그녀 자신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요즘도 가끔 그녀를 만난다. 몇 해 전에 정년 퇴임을 한 친구가 그 마을에 농가 한 채를 사서 혼자 내려가 있는데, 안채에는 그녀를 살게 하고 친구는 사랑방 하나를 쓰고 있다. 내 집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어 가끔 내려가 보면 그녀는 늙기는 했지만 여전히 당당하다. 저만큼 멀리 지나가는 젊은이를 목청껏 불러 절구통을 옮겨 달라기도 하고, 큰길 가에 나가 차도를 가로막는 막무가내 식 히치하이킹으로 30리나 되는 읍내를 이웃집 드나들 듯 한다. 그것도 무슨 긴한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심심풀이로 한다. 어쩌다 담배라도 한 갑 사드리면 얼른 들어가 생두부 . 김치에 소주 한 병 들고 나와 씩씩하게 잔을 권하기도 한다. 가진 것이 없으니 속을 염려도 없고, 돌바줄 피붇이 없는 것이 쓸쓸하기야 하겠지만, 아무 간섭이 없으니 홀가분 하다. 생계비 지원은 받게 됐으니 더 이상 호적 따위 골치 아픈 문서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아무 거리낌이 없고,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사람..... 나는 그녀를 그 고약한 별명 대신 '자유부인 이라 부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