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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전국 신춘문예당선작 ***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12. 2. 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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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수필당선작 이상렬

                 느티나무의 탁란 ㅡ 이상렬

 

바스락바스락, 잎사귀들이 자잘하게 떨어진다. 가을의 초입에 당연하다는 듯 낙엽은 바람의 음계를 타고 돈다. 수만 사연을 머금고 떨어졌을 잎사귀들을 밟으며 나도 사색의 음계를 오른다. 툭, 무엇인가 나의 말초신경을 두드리며 발목을 잡는다. 마른 가지 하나가 몇 장의 잎사귀들을 품고 힘없이 발 위로 떨어진다. 그제야 위를 올려다본다. 오래 묵어 덕지덕지한 느티나무 한그루가 스스로를 떨구어 내며 나를 부른다.

 

나는 지금 도심의 한복판 느티나무 아래에 서 있다. 네모 난 건물들이 나무의 수보다 더 많아서인지 사람들은 빌딩숲이라고들 부른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이곳에 발걸음을 한 지 벌써 서너 달이 되었다. 처음 업무 차 근처에 왔었다. 번화가답게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발을 구르다가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좁은 공간이라도 다급한 마음에 주차를 한 후 업무를 보았다. 급한 불을 끄고 다시 돌아왔을 때, 나뿐 아니라 수많은 차들이 철갑으로 무장한 자신의 몸을 들이밀며 바쁜 걸음을 옮긴다. 인정머리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메마른 도시 뒷골목의 차들은 그렇게 매연을 뿜어내며 느티나무를 위협한다. 답답하다. 높은 빌딩들이 하늘을 앗아가고, 바쁜 일상들은 숨 쉴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가운데 사람들은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이곳을 드나든다.

 

쉽게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어둑한 오후가 되면 우울감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와 감정을 사정없이 무너뜨린다. 그 순간, 낮은 담 너머로 아이들의 자르르 웃는 소리가 속절없이 함몰된 감정을 일으켜 세운다. 어디일까. 초등학교가 보인다. 울타리 너머 아이들이 제각각의 소리로 뛰어놀고 있다. 나는 울타리 밖에서 아이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학교 밖 느티나무처럼, 내 아버지처럼. 일평생 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던 아버지가 애틋한 기억의 영상 속에서 잔잔히 다가온다.

 

고향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은 곧고 길었다. 아버지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니셨던 그 길 끝에는 당신을 닮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아버지의 걸음이 해를 거듭하면 할수록 힘겨워졌던 것처럼, 느티나무 또한 나이를 먹어 갔다. 무겁고 외로워 보였던 아버지의 등 뒤로 친구처럼 느티나무는 바스락 소리를 내며 잎사귀들을 떨구어 주었으리라.

 

아이들과 꽃 그리고 나무를 무엇보다 좋아하셨던 아버지셨다. 평생을 교직에서 아이들과 함께하셨고, 화단의 손질을 마지막으로 끝낸 그날 한생을 꿋꿋이 지켰던 당신의 강단 위에서 순직의 꽃을 피우셨다.

 

잠시 느티나무에 손을 대 본다. 딱딱한 껍질 속으로 수액이 흘러가는 소리가 골골골 들리는 듯하다. 흘러간 세월 속에 눈길 한번 받지 못하면서도 묵묵히 자리하고 있다. 언제부터 여기를 지켰을까. 살아온 세월로 치자면 분명 동네의 주인은 느티나무일 게 틀림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나무는 원룸과 빌딩, 주차된 차들로 인해 베어버릴 수 없어 살려두는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었다. 도시에 중독된 자들이 몰려와 움을 트고, 빼곡한 문명이 나무를 에워쌌다. 껍질은 벗겨지고 다시 아물기를 반복했는지 군데군데 상처 난 흔적이 보인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상처는 아물면서 흉터를 남기는가 보다.

 

사람의 나이에 비한다면 어느 정도일까. 깊고 짙은 나무껍질만큼 주름도 깊이 파인 걸 보니 푸른 청년은 아닐 성싶다. 그렇다고 아직 나뭇가지가 무성하고 잎이 여전히 푸르름을 유지하는 것을 보아 노년은 아닐 터. 자신의 몸뚱어리에서 낙엽 한 조각 털어내는 것이 이다지도 쓸쓸해 보이는 것을 보니 중년의 느티나무인 듯싶다. 제 몸 곳곳에 박힌 커다란 옹이와 왠지 모를 쓸쓸한 기운이 중년의 나이를 짐작케 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중년이었다. 전쟁터와 같은 살벌한 세상의 틈에서 홀로 광야에 서 있어야 하는 나이 중년, 고독하다는 소리침이 아니라 천 길 물길보다 더 깊어져야 하는 나이가 아닐까. 돌아보면 푸른 꿈도 있었고 걸어온 길도 먼데 또 앞으로 달려가야 할 길은 더 멀고 높기만 하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나이, 아무리 숨이 멎을 만큼 힘겨워도 나 아닌 누군가를 지켜내야 하기에 어깨는 무겁고 가슴은 늘 쓸쓸하다. 천진한 아이의 해맑은 모습을 가슴 한 자락에 넣어 두고도 함부로 뿜어내지 못하고 오로지 무게를 잡아야 하는 어른 아이다.

 

학교 담벼락을 따라 걷는다. 나도 아버지가 걸었던 진저리치게 무거웠던 중년의 길을 처벅처벅 따라가고 있다.

 

느티나무를 올려다본다. 이미 여러 가지들은 베어버린 흔적이 역력하다. 굵직한 한 가지가 썩고 있다. 누군가가 전기톱을 가져와 곧 베어버릴 수도 있을 만큼 깊은 상처를 가졌다. 내 삶의 일부가 썩고 있는 듯 가슴 한구석에 통증이 인다. 그때, 연초록의 새순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잎사귀가 크고, 대가 곧고 가는 것으로 보아 분명 오동나무다. 주변을 둘러보니 학교 뒷 담장 안으로 큰 오동나무 두어 그루가 보인다. 바람을 따라 오동나무가 탁란을 한 모양이다. 뻐꾸기가 자신의 알을 다른 새의 둥지에 맡겨 부화하는 것을 탁란이라 하듯이 오동나무는 그렇게 느티나무에게 자신의 씨앗을 탁란했다. 씨앗하나 뿌리내리지 못하는 핏기 없는 콘크리트 세상에 자신의 씨앗도 아니면서 오동나무를 보듬어 안은 느티나무의 사랑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무수히 많은 가지에 매달려 있는 나뭇잎들을 살리는 원천이 모두 한 뿌리에서 비롯된 것처럼 아버지도 몸을 아끼지 않고 고통을 참으면서 잎들을 끌어 안으셨으리라. 중년을 힘겹게 건너고 있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의 모습이 스쳐간다

 

오동나무는 제법 참하게 자라고 있다. 세상을 다 덮고도 남을 만큼 큰 잎을 가졌다. 하늘을 가린 빌딩숲을 넘어 올곧게 창공을 향해 거침없이 커 가리라 기대해 본다. 쉴 새 없이 퍼붓는 자동차들의 매연을 뒤집어쓰고도 밤낮없이 세상에 산소를 뿜어냈을 느티나무다.

 

나는 숨을 쉰다. 내가 지금 이렇게 큰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느티나무가 만들어 준 산소 때문일지도 모른다. 짹짹짹, 새소리가 들려온다. 느티나무 가지 속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새들의 소리다. 갈 곳 없는 새들을 불러 안식처를 만들고, 그늘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앉아 쉴 수 있는 그늘을 허락한 느티나무다.

 

걷다가 문득 나뭇잎 하나를 주워 든다. 오래 전 소녀가 소년에게, 소년이 소녀에게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건넸던 책갈피 속의 나뭇잎처럼, 나는 고이 오늘을 고백하며 책 속에 꽂아 둔다.

 

햇살이 내려앉는다. 도심 한복판에도 뒷골목에도 참 공평히 깃든다. 이곳저곳 제 빛을 나누어 주느라 발 부르튼 햇살이 느티나무 잎사귀에 고요히 내려앉아 쉬고 있다. 나뭇잎은 햇살을 감싸 안고, 햇살은 느티나무를 어루만진다. 느티나무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햇살의 탁란을 받아들이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도시민들의 여린 호흡을 위해 자신의 몸을 탁란으로 내어준다.

 

다시 차에 올랐다. 잎사귀를 은은히 누비며 불어오는 바람이 자꾸만 아버지에 대한 아득한 옛 기억을 일렁이게 한다. 조급하게 지나가던 도시의 시간이 느티나무 옆에 와서 잠시 멈추어 선다. 느티나무 곁에 아버지가 서 계셨다. 이제는 고독해 보이지 않았다. 느티나무 위에서 탁란한 햇살 한 자락이 내려와 아버지의 어깨를 감싼다.

 

이 가을 느티나무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것은 뚝뚝 지는 낙엽 때문은 아니리라.

 

<2012 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당선소감>

 

태어나서 이제껏 1등을 해 본 적 없다. 덥지도 차지도 않는 미지근한 인생이다. 내 인생 내가 들여다봐도 졸음이 올 정도다.

이제 나이가 드니 중간치도 힘들다. 남들 한 두 번이면 붙는 운전면허를 열 다섯 번씩이나 낙방해 심히 덜떨어진다는 말도 들어봤다. 자다가 인공호흡기 꽂고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는 부실한 몸이다. 시내 한 복판에 떨어뜨려 놓으면 내 힘으로 집으로 찾아오지 못하는 천하에 보기 드문 길치다. 아직까지 혼자 힘으로 은행 CD기 사용도 못하는 이 사회에 홀대받아 마땅할 기계치다. 나는 분도, 화도 잘 내지 못한다. 그냥 속으로 꾹꾹 눌러 삭인다. 겉으로는 히죽히죽 웃지만 안으로는 끙끙 앓는다. 풀밭에 침을 뱉으면 아마도 그곳의 풀이 죽지 않을는지.

이런 내가 2012년 본 신문사 신춘문예 수필부분 1등 했다. 어질어질하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심한 공포를 느끼지만, 이 행복한 몽환 속에서 한 분의 얼굴이 떠오른다. 대구MBC수필창작교실 곽흥렬 선생님이시다. 글처럼 살고, 살면서 글을 쓰라고 하셨다. 정갈한 언어로 세상을 후련하게 뒤맑히시는 선생님을 생각할수록 눈물겹고 감사하다. 함께 동행해준 숨겨진 옥석, 문우들에게 감사드린다. 내가 외롭지 않도록 중년의 길을 함께 걸어준 학교 옆 느티나무에게 감사한다. 느티나무위에서 탁란한 오동나무 새순에게도 감사한다. 학교 운동장에서 자르르 웃는 소리를 담장너머로 장쾌하게 날려준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이 성스러운 기분에 취해 마음 착한 사람들과 휘파람 휙휙 불며 살련다. 낮아도 이곳에서 가슴 펴고 살련다. 새해 아침, 햇살이 눈부셔서 참 기분이 좋다. 여한이 없다.

꾹, 내가 제일 사랑하는 단어를 마침표 대신 찍는다. 동행.

 

약력>

대구MBC 수필창작반

대구일보 전국수필대전 입상(2010년)

 

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2012년)

영남대학교 경영학(석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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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촌(아시아일보신춘문예당선작) ㅡ 김종보

 

이른 아침, 창밖 은행나무에서 넘어온 앙칼진 까치 소리가 속잠을 흔든다. 내가 사는 빌라 앞쪽 다님길에 수령이 족히 칠팔십년은 됨직한 늘품 있는 은행나무 한 쌍이 자리하고 있다. 서로를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한 혼인목이다. 주위 상가나 건물들이 ‘은행나무 세탁소’나 ‘은행나무 빌딩’ 등으로 첫 이름자를 지을 만큼 동네에서 명물이 된 존재이기도 하다.

 

“이웃이 좋으면 매일 즐겁다”는 프랑스 속담처럼, 나란히 서있는 이 부부나무를 이웃 겸 친구삼아 지내는 재미는 독특하고 색다른 맛이 있다. 조선시대 특별한 나무에 벼슬을 내린 일이 더러 있었고, 지금도 나무가 장학금을 내놓기도 하고 자신이 보유한 토지로 재산세를 물고 있으니 나무의 인간취급이 엉뚱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 나무들은 성현처럼 마음이 후하고 손이 커서 이웃을 사랑하고 베풀기를 좋아한다. 이들이 만드는 짙고 널찍한 그늘의 쉼터는 어린이들의 놀이교실, 문상객들의 술자리, 노인들의 사랑방 등 어느 것으로나 손색이 없다. 가을걷이에는 집집에 되가웃 정도의 구수한 은행알도 노느매기한다. 가을의 노란 단풍과 함께 육탈(肉脫)의 계절에는 높가지에 까치둥지도 두 채나 이고 있어 각박해지기 쉬운 도시생활에 시골의 정취를 물씬 풍겨주니 고맙고 자랑스러운 이웃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나무들과 어릴 때부터 너나들이하며 자라왔다. 장미과(科)처럼 같은 종(種)이 수십 가지나 되는 복잡한 나무 족보도 있지만 은행나무는 한 종류만이 살아남아 곁붙이 하나 없는 외로운 수종(樹種)이다. 오랜 세월을 홀로 문실문실 자라온 믿음직한 모습에 더 친밀감이 가는지 모른다. 이들에게는 옛날 길 가던 스님이 꽂아놓은 지팡이가 싹을 틔워 자랐다는 삽목(揷木)전설도 없고, 나라가 어려운 때 특이한 징조도 보이지 않는 거저 평범한 나무다. 나무를 건드려 동티를 시험한 적도 없어 마을의 수호목인지 여부도 알 수 없다.

 

간혹 내 집을 방문하는 사람이 대문 앞에서 나무를 올려다보고 감탄을 할 때면, 나는 이들을 “철학교수 부부”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사람들은 이 거대한 생명체 앞에서 자연의 신비와 인간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얻는다. 인간과 자연의 문제는 철학적 주제이기 때문에 굳이 직업의 범주에서 가른다면 철학교수 이외의 선택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공자가 행단(杏亶)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연유로 은행나무를 유교의 상징적 나무로 여긴다. 고지식한 동양 철학자를 연상해오다가 막상 마주대하면 의외로 산뜻한 모습에 놀라기 일쑤다. 이 부부의 새참한 차림은 주위 공간과 잘 어울리며 세련미가 돋보인다. 은행나무는 천년의 세월을 사는 시간의 지도자답게 계절별 옷의 색상이나 모습의 다양성을 통해 인간에게 자연이 변해가는 이치를 깨우쳐준다. 갈맷빛 새싹이 여름을 거치면서 청청한 옷으로 변하고, 가을이면 현대의 젊은이들처럼 금발로 염색하는 멋도 부린다. 추위가 오면 옷을 홀랑 벗고 황금빛 이불 위에서 졸가리를 팔뚝처럼 올린 채 육체미선수 같은 튼튼한 밑동을 자랑한다.

 

이 부부는 화려한 꽃이나 향기를 내세워 곤충이 중매하도록 꾄 일도 없다. 한 쪽의 꽃가루가 직접 찾아가서 구애하여 결혼하였기 때문에 언제나 당당한 티가 난다. 은행나무는 딴 꽃 가루받이로 암·수나무가 엄연히 구분 되어 후손의 유전적인 다양성도 대단하다.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나 팽나무는 암수 한 그루로 자가 수정이나 근친 교배를 하며 초라한 생을 이어가고 있어 윤리적으로 따지더라도 못마땅한 구석이 있는 것과 비교가 된다. 이들이 결혼한 햇수는 알 수 없지만 늘 한 자리에서 해마다 많은 열매를 맺는 걸 보면 금실이 좋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본새 또한 겉보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거목 중에 플러터너스는 큰 잎을 펄럭이며 겉멋만 부려 정신을 산만하게 한다. 우리 민족이 고고한 선비정신의 상징으로 치는 소나무는 옹고집처럼 보여 말 붙이기가 어렵고 그 앞에선 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돌다리목의 버드나무는 머리를 풀어헤친 두억시니 같아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에는 음산한 기분이 든다. 묵묵히 서 있는 이 은행나무는 넉넉함과 느긋함이 가득해서 도무지 탓할 데가 없다.

 

젊은 시절에 이들은 맷맷하고 군살이 없는 깔끔한 모습이었다. 요즈음은 늙바탕 티를 내는지 나무껍질에 회색빛이 돌고 골이 깊게 패였다. 이는 학문이 더욱 깊어지고 인생을 달관한 철학자의 이마 주름 같아 또 다른 매력으로 느껴진다. 이들은 연장자로 떠세하는 일도 없이 줄기나 가장귀에 쌓인 더께에 날아온 다른 씨앗까지 발아시켜주기도 한다. 풀솜할미처럼 은행잎을 들추는 다람쥐나 청설모가 거처할 방도 내어주고 은행 알을 쥐어주며 손자 다루듯 애정을 쏟기도 한다.

 

이들의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성격 또한 나를 매료시킨다. 은행나무를 주로 관가 뜰에 심은 것은 천심(天心)을 하강시키는 신목(神木)으로 여겨 백성들의 억울함을 보살피지 않고 악정을 베푸는 관원을 막기 위해서였다. 관리가 벌을 줄 때 죄인을 때리는 곤장 자리를 은행나무가 도맡은 것을 보더라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철학교수로서 당연히 계절특강이 있기 마련이다. 가을이 무르익는 밤이면 철학의 이치를 자연을 통해 가르친다. 소낙비 난무하듯 은행나무 잎을 쏟아내면 주위는 자연이 만든 숨 쉬는 언어가 쌓인다. 대 문호 괴테는 연인 마리안네에게 사랑의 징표로 짧은 시 한 편에 고운 은행잎을 실어 보냈다. 연서와 함께 보내는 노란 은행잎 하나에도 가을 하늘처럼 맑은 감정이 물들어 있는 것이다. 은행나무는 이파리 하나하나가 금빛은 아니지만 전체의 잎이 하나가 될 때 금빛을 발하게 된다. 이 거대한 가을의 불꽃은 우리의 힘든 삶을 일깨우는 지혜의 빛이 되기도 한다.

 

이런 계절이 오면 나는 이웃 친구의 허리에 등을 대고 그들의 체온을 몸으로 느끼면서 고전적인 철학 서적을 읽는 즐거움에 빠진다.

 

 

         <당선소감 / 김종보(남) / 1947년 부산시 영도구 출생>

정말로 오랫동안 팽개쳐둔 글밭을 일구려니 힘들고 어려웠다. 초라하게 보이는 내 작품에 보여준 관심은 조금 쑥스럽기도 하지만 기쁨이 배가(倍加)됨은 숨길 수 없다.

수필은 “삶을 생각하는 문학”이라고 한다. 인간의 삶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수필가의 진정성이 문학성을 결정하게 된다. 더욱 착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맛깔스러운 글맛을 남기는 글품쟁이가 되고 싶다.

나의 습작을 지켜보고 격려하신 문학평론가 김천혜교수와 영원한 편집장인 친구 안병화, 직업상 칼을 다루지만 펜을 좋아하는 의사 남기천의 성원에 고마움을 표한다. 매일 밥 싸주며 도서관으로 등을 떼밀던 고마운 아내와 아들의 응원도 빠뜨릴 수 없다. 여린 글 묘목을 화분에 심어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이번에 새롭게 문을 연 글의 숲 -아시아일보 신춘문예의 창을 두드린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글을 가꿀 수 있는 터를 마련해준 심사위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뚝배기 ㅡ 오귀옥

 

맵시는 부족해도 푸근한 오지그릇이다. 아가리가 넓고 속이 깊은 건 제 안에 담긴 음식을 한껏 품어내기 위해서다. 그 안에서 노랗게 봉싯 부풀어오른 계란찜은 더없이 맛깔스럽다. 바글바글 끓는 청국장은 헛헛한 몸의 기운을 돋군다. 무게감 없는 양은냄비는 왠지 경박해 보이지만, 투박하니 묵직한 뚝배기에는 이름 그대로 뚝심이 배어 있다.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맛을 담아내는 데에는 뚝배기만한 그릇도 없다. 뚝배기는 완전한 것보다 조금은 허점이 있어야 더 친숙하다. 한두 군데 이가 빠진 아가리 둘레로 와글와글 개구리 울음소리를 내며 국물이 끓어넘쳐야 제 맛이다. 자르고 찌르는 서양음식에 비해 입술을 쑥 내밀고 숟가락을 후후 불어가며 뚝배기에서 떠먹는 우리 음식에는 여유로운 정이 흐른다.

 

뚝배기의 질감은 매끈한 물감보다 가루가 묻어나는 크레파스에 가깝다. 계집애들의 보들보들한 손등이 아니라 평생 진일, 마른일 가리지 않으신 우리네 어머니의 손등이다. 처자식 건사하기 위해 뚝심 하나로 묵묵히 농사를 지으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 안에 깃들어 있다. 고봉밥처럼 넉넉하고 속정 깊은 그릇이다.

 

어쩌다 나는 뚝배기로 먹고 사는 집으로 시집을 왔다. 삼계탕집을 운영하시는 어른들을 시부모로 모시게 되었던 것이다. 갓 시집 온 새댁이 맨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뚝배기와 가까워지는 일이었다. 나는 반지르르하게 배를 닦아주는 것으로 뚝배기에게 손을 내밀었고 말을 텄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뚝배기는 며느리 자격부터 시험하려 들었다. 달구어진 뚝배기를 잘못 집었다가 데이고 물집이 잡히는 건 예삿일이었다.

 

잘 익은 수박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듯 금이 제법 굵게 간 뚝배기도 심심찮다. 필시 뜨거운 불 위를 어지간히 들락거렸으리라. 더는 못 쓰게 된 뚝배기는 망치로 톡톡 깨부수라고 시어머님은 내게 일러주셨다. 하지만 시집살이 스트레스가 어디 톡톡으로 해소될 일인가. 나는 시어머니 몰래 금간 뚝배기를 뒷마당 구석에 쌓아 올렸다. 그 뚝배기들이 어느 날은 내 키만큼 부쩍 자랐다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박살이 났다. 그 소리가 속을 후련하게 했다.

 

그런데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던 걸까. 그날 오후에 시어머님이 삼계탕 솥을 들어내리다 펄펄 끓는 국물을 그만 다리에 쏟고 말았다. 비명을 지르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내게 어머님은 괜찮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셨다. 당장 병원에 가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지만 소용없었다. 이게 약이다시며 벌겋게 덴 자리에 감자를 갈아 붙이실 뿐이었다.

 

하루도 가지 않아서 어머님의 다리는 곳곳이 물풍선처럼 물집이 잡혔다. 결국 어머님은 그날 밤을 뜬 눈으로 새우셨다. 밤새도록 뚝배기 깨지는 소리가 귓가에 쟁쟁거려서 나도 뒤척거렸다. 다음날,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했느냐는 의사의 지청구가 또 가슴을 저릿저릿하게 했다.

 

뚝배기 속 국물은 조금만 방치해도 속수무책으로 왁 넘친다. 국물이 끓기를 기다렸다가 기름기도 걷어내고 잡내 나는 불순물도 덜어내야 하는데 그 시절에는 그것조차 제대로 몰랐다. 무지한 나를 보다 못한 뚝배기가 스스로 기름기와 불순물을 내보내서 제 맛을 찾았던 것이다.

 

좋은 것은 품고 해로운 것은 가려서 뱉어낼 줄 아는 이치를 나는 뚝배기한테 배웠다. 그렇게 쩔쩔매던 며느리가 뚝배기를 만진 지 올해로 이십 년째다. 가게를 물려받은 뒤 팔에도 제법 힘을 올린 그 며느리가 지금은 어른들께서 물려주신 맛을 이어나가고 있다.

 

어린 닭을 손질해서 솥에 넣고 푹 고아내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하자면 허리가 뒤틀리고 어깨도 뻐근해진다. 그러면 온갖 상념에 빠진다. 고부갈등도 있고,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속상할 때도 있다. 가족간에도 민주주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데 내겐 의무만 지워진 것 같아서 야속하기도 했다.

 

닭이 고아지는 동안 다른 솥에 넣을 어린 닭을 또 손질한다. 내장을 말끔히 긁어내고 미리 준비한 인삼, 대추, 찹쌀 등속으로 그 안을 꽉꽉 채울 때는 마음이 또 요상해진다. 어느새 내 안의 작은 응어리까지 사그라든다. 이마에 잡혔던 주름도 저절로 펴진다. 그리고 두 시간 가량을 뭉근한 불에 푹 고아 뚝배기에 담아내면 어느덧 내 마음은 해감을 다 토해낸 바지락처럼 개운하다.

 

이제 뚝배기는 내 분신과 같다. 체질적으로 몸이 차가운 나와 열이 많은 뚝배기는 어쩌면 서로의 고단한 등을 토닥여주며 평생을 함께해야 할 운명공동체인지도 모른다. 뚝배기와 더불어 살아갈 날들이 얼마인지는 모르겠다. 뚝배기를 닮고 싶다. 뚝배기처럼 담백하고 뜨거운 열정이 부럽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맘속에 금 간 뚝배기 하나를 걸어놓고 산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했다. 겉모양은 보잘 것 없지만 내용은 그만이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다가가기 어려워도 차츰 정감있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훈훈하게 덥혀져 오는 사람,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늘 한결같은 사람이 바로 뚝배기다. 그런 사람을 하나라도 마음에 두고 살아간다면 늘 보양식을 먹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런 이에게 뜨끈한 삼계탕 한 그릇을 대접하고 싶은 날이다.

 

<수필 심사평>

"뚝배기에 얽힌 일상의 애환 꼼꼼하게 녹여내"

오하근(문학평론가·원광대 명예교수)

송준호(문학평론가·우석대 교수)

수필을 붓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 말에 수필 쓰기의 용이함과 어려움이 모두 들어 있다. '붓가는 대로' 누구나 쓸 수 있으되, '붓가는 대로' 아무나 쓸 수 있는 것도 아닌 글이 바로 수필이라는 말이다.

예심을 거쳐서 마지막까지 논의가 되었던 것은 이정인의 '마당', 윤희순의 '바람꽃', 오서림의 '뚝배기' 세 작품이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완결된 한 편의 수필로서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각자 돋보이는 힘도 갖추고 있었다.

적어도 문장을 다룰 줄 아는 솜씨만으로는 '마당'이 가장 돋보였는데, 그게 또 이 작품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마당'과 관련해서 연상되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묘사 중심으로 나열하다 보니 현란한 수사는 읽되 잔잔하게 읽는 맛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2012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귀얄 ㅡ박상미

 

웃자란 잡풀들만 마당 안에 가득했다. 스산한 바람이 불 때마다 간신히 매달린 문짝들이 덜컹거렸다. 추억 찾기 여행만 아니었다면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을 것이다. 폐가의 전경은 지켜보던 나를 두려움으로 머뭇거리게 했다. 먼저 들어간 남편이 손짓을 했고 둔덕 아래서 기웃거리던 나와 딸아이가 두근거리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소품들만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때 묻은 것들에게서 행여 이야기라도 쏟아져 나올까 귀를 기울여본다. 딸아이 눈이 쥐눈이콩 마냥 새카맣게 빛이 난다. 귀신이 나올 것만 같다며 호기심 어린 표정이다. 구석구석 쌓인 먼지가 사람 손길이 떠난 두께를 말해주었고 시간의 무게만큼 내려앉은 아랫방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 찍는 재미에 푹 빠진 남편 덕분에 덩달아 누려보는 호사이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에 대한 배경이 그립기만 하던 요즘이었는데 귀한 구경거리와 만났다. 쓰러져 가는 빈집이었으나 토담에 기대고 서있는 사립문과 구멍 숭숭 난 창호지 틈새로 그 옛날 고향집이 떠오른다.

 

부엌 안은 그을음으로 가득하다. 흙벽 앞에 위치한 살강은 쥐들의 수난을 엄청나게 받았을 테지. 색 바랜 주발 한 개와 수저 몇 벌이 보인다.

 

사십년쯤 시간을 거스르면 내 유년의 부엌도 그러했으리라. 쪽마루에 나뒹굴고 있는 양은주전자, 석유풍로, 선반 위 녹슨 가위까지 해후한 벗이 되어 반가움을 더해주었다. 마치 시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거룩한 의식에 초대된 기분이다. 남겨진 물건들을 살피는 내내 반가운 함성이 그칠 새 없이 나온다.

 

두리번거리던 시선을 오래도록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귀얄이다. 낡은 나무기둥 대못에 얼마 전까지도 제구실 톡톡히 했을 자세로 걸려있다. 가위 뼘 넓이 틀에 숱이 빽빽한 모습이다. 손잡이가 반질거리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랫동안 이 집 단장에 쓰여 왔나 보다.

 

귀얄의 손길은 섬세하지 않고 둔하다. 정교하게 선을 내려 그어 사군자 속 난 잎을 뽑아 낼 수 있는 귀족신분의 붓이 아니다. 노비나 서민격의 솔이다.

 

예술적인 감각으로 승화시키는 일보다 덮어주고 접착시키는 역할에 더 어울린다. 오동나무로 짜 맞춘 옷장과 경대에 옻칠을 하거나 벽지를 훑고 지나가는 풀비가 되어 도배를 돕는 것이 귀얄이다. 한마디로 다목적 큰손이다.

 

시간을 거스르며 생각 속에 묻혀있을 때 폐가 기둥에 걸려있는 귀얄과 아버지의 손이 겹친다. 어찌 생각하면 아버지의 투박한 손도 귀얄이다. 어머니의 잔정과는 또 다른 강도였다. 아무렇게나 쓸어내리듯 하지만 뭉근히 타오르는 사랑을 손길에 묻혀 바른다. 집안곳곳과 가족들 마음속에 귀얄 문양을 칠했던 평생이었다. 특히 그 터치는 피붙이 자식들에게 내리사랑으로 더 쏠리어 온갖 기법을 발휘하였다. 졸음 쏟아지는 밤이면 거친 손바닥으로 삼남매 등을 쓸어 평안히 잠재워주곤 하였다.

 

가을까지 쉴 새 없는 농사일로 굳은살이 생기지만 실은 겨울에 더욱 거칠어진다. 무릎 넘게 눈이 쌓인 날도 빼놓지 않고 땔감을 구해왔다. 박씨 문중 산에 우거진 가시나무 베어오느라 두꺼운 가죽장갑을 껴도 손바닥에 가시가 수도 없이 박힌다. 백열등 아래서 바늘을 세워들고 아버지의 손바닥을 헤집는 어머니. 거북이등 모양으로 갈라진 손바닥을 보며 어머니 가슴에도 골이 깊어 졌으리라.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가업을 이어받고 힘든 농군의 길을 걸었다. 부족한 땅뙈기와 논배미나마 올바로 건사하여 맥을 잇기까지 애면글면 고생하였을 것이다.

 

이 집을 가꾸는 일에 기꺼이 한 몸 바쳤을 귀얄이 끝내 이사 길에 동행하지 못했다. 집안 어느 구석 미치지 않은 손길이 없도록 애쓴 공로가 높을 것인데 버려진 것 내색도 않고 묵묵하게 걸려만 있다. 그것이 겸손인지 미련함인지 답을 얻을 수 없어 나는 뻣뻣해진 솔 끝만 만지작거렸다. 숱이 얼마 남지 않아 윤기 잃은 아버지의 머리칼을 쓰다듬듯 손안에 한참을 머무르게 했다.

 

아버지도 늘 고단한 표정 내보이지 않고 허름한 고향흙집에 붙박이 된 귀얄이었다. 친정복판에 아버지를 걸어두고 냉큼 강원도로 시집 와버렸다.

 

처음엔 내 가정을 형형색색으로 덧칠하고 단장할 힘이 넘친다며 의기양양 자신했었다. 허나 얼룩에 불과할 일들도 덮어주지 못한 채 기진맥진했던 지난 세월이었다.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해 새 숱 가득한 손잡이 들고 곁으로 다가온 이가 남편이다. 저무는 황혼의 날까지 거칠고 험한 시간을 덧칠하며 동행할 사람이다.

 

폐가의 허름한 헛간 앞에서 발에 풀칠이라도 한 듯 미동조차 않는 나를 부른다.

“다 찍었어, 이제 다른 곳으로 가자!”

추억 더듬기를 계속하자는 남편의 말이다. 손안에 움켜쥐었던 귀얄을 다시 걸어두며 가슴 한구석 사진기의 셔터를 꾹 눌러 담아놓는다.

 

바다 소금기를 털어 낸 바람이 우리가 있는 산 쪽으로 분다. 부는 해풍 결에 뒤란으로 길게 이어진 대숲의 흔들림이 보인다. 댓잎이 내 등을 긁는다.

 

그것은 거대한 바다가 귀얄로 찍어 그린 한 폭 수채화다. 역동적인 자연의 몸동작!

 

 

<심사평>

2012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 심사평/조미애

*한 편의 글로써 세상의 귀얄이기를

전국 각지에서 응모한 177명의 수필 264편을 심사했다. 올해는 특히 자연과 풍경을 일상과 접목하여 작품화한 글이 많았다. 우리의 삶이 문학을 통해 어떻게 새로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작품의 질적 수준의 편차가 다소 있었지만 수필을 향한 예비 작가들의 습작을 통한 노고와 함께 문학을 향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인 기억들을 단순한 기록이 아닌 작품이 되도록 노력한 순수함에 큰 박수를 보낸다.

당선작으로 박상미의 ‘귀얄’을 뽑았다. 풀칠을 하거나 옻칠을 할 때 쓰는 귀얄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각과 완성된 문장이 돋보였다. 쓰러져가는 빈집에서 발견하는 잡다한 물건들 중에서 귀얄을 가려내어 아버지의 투박한 손을 기억하고 고향 흙집에 붙박이가 된 귀얄과 아버지를 동일시한 구성이 탁월했다. 버리고 간 사람들의 안타까운 심경을 조금 담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앞으로 한 편의 글로써 세상의 귀얄이 되길 바란다.

아깝게 탈락했지만 이정인의 ‘미영솜꽃’도 우수한 작품이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잊어버리고 있는 목화솜 이불이야기를 따뜻하게 전개하였으며 목화에 비유한 표현 등이 돋보였다. 일반적인 부분을 과감히 버렸다면 더 좋은 글이 되었을 것이다.

박홍배의 ‘굴뚝새의 기호’ 이종희의 ‘개똥아버지, 아들’ 이상수의 ‘까둥거리’ 이성은의 ‘오래된 의자’ 김정숙의 ‘전라도 예찬’ 이연숙의 ‘구제, 이름을 얻다’ 등 다수의 작품이 탄탄한 구성으로 문장력이 돋보인 글이었다. 아깝게 낙선한 분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2012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 가작

 

                          바디와 북 ㅡ 류현서

 

 집안 정리를 하기 위해 창고 문을 열었다. 창고 안은 이것저것 밀려난 살림살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한쪽에는 크고 작은 솥들과 대나무 소쿠리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고, 또 한쪽 구석에는 커다란 상자가 입을 봉하고 있다. 상자를 열자 언제 넣어 두었는지 바디가 보인다.

 

길쌈을 할 때 날실을 끼울 수 있도록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만든 것이 바디다. 바디는 날줄 사이로 씨줄이 담긴 북이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한다.

 

참빗처럼 촘촘하게 생긴 바디 사이에 날줄을 끼우면 베 짜기는 시작된다. 이때부터 씨실을 문 북과 날줄을 문 바디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된다. 북이 가로 길로 지나가면 바디가 세로 길로 내려오고 다시 북이 돌아오면 바디 역시 시차를 두고 내려와 앉는다. 한 필의 베를 짜기 위해서는 한 올의 씨줄과 날줄이라도 어긋나면 베가 안 되듯이 우리네 삶도 이와 같으리라.

 

가지런한 바디의 모습은 아직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있다.

그래도 주어진 몫에 마다치 않고 묵묵히 지켜온 세월이 그립다.

 

남편이 북이라면 나는 바디가 아니었나 싶다. 천지사방 옷자락을 휘날리며 다니는 남편이야말로 매끈한 몸으로 바람처럼 베틀을 누비는 북과 다를 봐 없다. 밤낮없이 문을 벗어나지 못하고 속을 태우는 나는 베틀에 매여 있는 바디와 닮은꼴이다. 하나 부드럽지 못하고 꼿꼿한 성격끼리 만난 우리는 여태 수더분하게 살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해 부부모임에서 단풍놀이를 갔을 때였다. 붉은 단풍만큼이나 우리 부부의 젊음도 곱던 시절이었다. 단풍에 취해서 가을의 짧은 해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산속의 새들도 제집을 찾아들 시간, 집에 올 때가 되었는데 그제야 남편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일행들이 산 계곡을 훑고 다녀도 보이지 않았다. 큰 소리로 불러도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였다. 일행들 보기가 민망하여 산새처럼 날아가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조금 전에 흥에 겨워 부른 노래가 마음속에서는 울분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어쩌랴. 일행들과 집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남편이 밉다가도 제발 무사하게 와주기만을 바랐다.

 

집에 도착하니 캄캄해야 할 방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한편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말도 하기 싫었지만 "왜 먼저 왔냐"고 물었다. 다른 사람들과 신 나게 놀고 있는 것에 화가 나더라고 하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늴리리 맘보춤을 춘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 같았다. 그 시절에는 야외에서 노래는 물론이고 춤을 추면서 즐기던 때였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혼자 돌아온단 말인가. 그날의 내 마음은, 아이라면 있는 힘을 다해 두들겨 때려주고 싶었다. 두 번 다시 보기도 싫었지만 그래도 없어져서 애를 태우던 것을 생각하면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강산이 두어 번 바뀌고 중년이 되어서도 남편의 너그러움은 늘어날 줄 몰랐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도 자기주장만 밀고 나갔다.

 

사람의 성격은 조금은 변할 수 있으나 많이 바뀌기는 어렵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북이 달아나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온 느낌이다. 남편은 나와는 언제나 생각이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의견을 제시하면 반대론을 펼친다. 희망적인 것보다 염려하는 쪽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니 한 사람이 산이라면 한쪽은 강이 아니었나 싶다.

 

몇 년 전 친정어머니 생신이라 형제들이 우리 집에 모이기로 했다. 그날 아침 남편과 대화를 하다가 의견차이가 났다. 대화가 다 일맥상통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 않은가. 음식을 준비하다보니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바깥에 나가 찾아보아도 없었다. 전화해 보니 아예 받지도 않는다. 대문에는 언니 동생들이 짝을 지어 몰려 들어오고 있다. 그들이 알기라도 하면 얼마나 마음이 무거울까 싶어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드디어 언니와 동생들이 눈치를 읽었는지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고 해서 집으로 들어오게 했다.

 

예전에는 마당에서 베를 맸다. 바디에 실을 끼우는 일로, 베를 짜기 위한 마지막 작업이었다. 바디의 섬세한 틈 사이에 한 올이라도 빠뜨리지 말아야 바디와 날줄이 맞물려 제자리를 찾아 바로 앉게 된다. 날줄은 너무 말라도 젖어도 안 된다. 혹 마르기라도 하면 물을 축여 꼽꼽하게 만들어야 실이 잘 끊어지지도 않고 바디 사이로 북이 순조롭게 들락날락한다. 그리고 베를 짤 때마다 북 질을 몇 번 하고는 늘 바디집을 탁탁 쳤다. 그렇게 해야 베올이 느슨하지 않고 올이 성긴 데가 없이 곱게 짜지기 때문이었다.

 

바디집을 치는 것은 우리 인생의 긴장감 같은 것이리라. 바디집을 친 뒤에야 엉성하지 않고 야무진 베가 되듯이, 평탄한 가정을 위해 서로가 고삐를 당기기도 늦추기도 해가며 이제껏 살았다. 그렇게 이래저래 살다 보니 마음을 조금씩 넓게 가지면서 인내를 쌓아가게 되었다. 그것이 집안이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알게 되었다.

 

바디를 닦아본다.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색깔만 좀 짙어졌을 뿐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오래된 세월에도 삐뚤어지지 않고 간결한 그대로이다. 어쩌면 이토록 좁고 넓은 데가 없이 한결같은지. 그것 역시 삶에서 이탈하지 않고 무난하게 살아온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북이 제멋대로 날줄 위로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길을 터주는 바디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이 내 몫이라 여기며 기꺼이 거부하지 않고 살아 왔다. 하지만 바디가 아무리 틀을 잡고 있다 하더라도 북이 없으면 저 혼자 베를 짤 수 없고, 북 또한 씨실을 물고 다닌다 하여도 바디가 받쳐주지 않으면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한다.

 

가지런한 바디의 모습은 아직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있다. 그래도 주어진 몫에 마다치 않고 묵묵히 지켜온 세월이 그립다. 그 세월 뒤에는 밀고 당기는 북과의 긴 시간이 있었다. 북과 바디는 붙어서 함께 가야 하는 끈끈했던 삶들이었다. 바디 살처럼 내리는 빗속으로 지난날이 얼비친다. 대지를 적시는 비처럼 내 마음도 감회에 젖어드는 오후다.

 

 

[2012 신춘문예-수필] 심사평 / 부부 인생론, 사람 마음 사로잡아

                심사위원 김열규

오백여 편의 응모 작품을 앞에 두고 '이걸 언제 다 읽지?' 하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지만, 응모자들로서는 최선을 다한, 주옥들이기에 그걸 읽어내는 일에 극도로 정성을 바쳐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을 하고 또 했다.

처음 몇 편을 읽다가 감이 잡히는 게 있었다. 문장이 이지러져 있고 문맥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그것들은 요컨대, 말이 안 되듯이 글이 안 된 작품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우선 그런 작품들을 추려내기로 했다.

꼼꼼히, 샅샅이 따지고 살피고 한끝에 모두 36편이 일차 예비 심사를 통과했다. 소재의 창의성과 그것을 다루는 시각을 따지는 한편으로 글 전체의 짜임새를 짚어 나간 결과, 간신히 다섯 편이 재심을 통과했다.

마지막 결심은 너무 힘겨웠다. 문장 하나하나를 마치 현미경 들여다보듯 했고 소재며 주제를 다루는 개성의 심도를 후벼 파듯 했다. 세 번씩이나 다섯 편을 서로 견주어 본 결과, 류현서의 '바디와 북'이 간신히 최종 결심에서 승리했다.

바디와 북에 견준 부부 사이의 인생론이 그 소재로나 주제로나 심사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당선작이 못 되고 가작으로 그치고 만 것은 마음 아프다. 뽑은 사람의 욕심이 지나친 탓만은 아니라고 감히 자부하고 싶다.

 

 

 

 

( 2012 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화투 ㅡ 임병숙

                                                                  

투명한 유리창 안으로 햇살이 여과 없이 스며들었다. 두텁게 내려앉은 침묵 사이로 각질 같은 먼지가 빛살에 실려 부유물처럼 떠다니고 있다. 보호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는 바람이 지나간 듯 휑뎅그렁하다. 방 안에는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간간이 어머니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한숨 소리와 화투가 조심스럽게 부딪치는 소리만 들렸다.

중환자 대기실에 처음 들어가던 날 어머니는 몹시 낯설어했다. TV소리와 한숨 섞인 낮은 말소리, 이따금 들리는 낮은 울음소리와 호흡을 힘겹게 하는 크레졸 냄새. 눈앞에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둔 환자들 때문인지 방안을 흐르는 공기마저 무거웠다. 전등과 TV를 끈 밤이면 심해의 침묵 같은 어둠이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어머니는 이방인처럼 그 속에 섞이지 못하고, 모든 촉수(觸手)를 동물의 그것보다 예민하게 맞은편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향했다.

 

병원을 옮기거나 환자들이 먼 곳으로 떠나면서 보호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벽지에 밴 크레졸 냄새가 익숙해진 대기실 안에 어머니와 단둘이 남았다. 북적댈 때는 제대로 쉴 수가 없어서 힘들었는데 갑자기 방안이 넓어졌다. 왠지 허전하면서 옷을 헐렁하게 입었는데 가슴이 답답했다.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어느 한 곳에 고정했다. 화면에는 이른 시간에 화사하게 화장을 한 주부들이 소리 내어 웃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녀들의 얼굴은 화장만큼 그늘이 없이 밝았다.

아침도 거르고 누워 있던 어머니가 살며시 눈을 떴다. “딸, 혹시 화투 칠 줄 알아?” 풀기 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어머니의 눈빛이 무언가를 잡고 싶어하는 듯했다. 조금 할 줄 안다고 하자 화투 좀 사오라고 했다. 겨울이면 일거리가 없는 친정 동네 할머니들은 화투로 길고 지루한 하루를 저 끝으로 보내곤 했다. 평소 외출도 잘 하지 않는 어머니는 그 틈에 끼지를 않아서 의아했지만, 두말없이 병원 뒤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사왔다. 어머니가 휑한 눈으로 부스스 일어났다.

 

보푸라기와 머리카락이 뒤엉켜 있는 군청색 담요를 깔았다. 그 위에 화투를 펼치니 그림이 선명하게 보였다. 꽃, 동물, 나무, 풀 등이 그려져 있다. 대부분 복과 건강을 상징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려한 색상으로 표현했다. 어머니가 화투는 그냥 치면 재미없다며 허리춤에서 동전을 꺼내 나눠 줬다. 조금 전까지 초점이 흐려져 있던 눈에는 생기가 흐르고, 어린아이처럼 쉬지 않고 말을 했다.

빈 둥지 같은 친정에 어머니가 오신 것은 칠순이 넘어서였다. 그 연세에 재혼이란 쉽지 않았으리라. 자식들이 반대를 하거나 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오셨을 때는 무언가 다른 삶을 바라지 않았을까. 안타까울 정도로 욕심이 없던 만큼 화투처럼 화려한 생활도 바라지 않고 지나간 시간을 묻을 수 있는 보금자리만 바랐다. 남들처럼 서류상으로든가 그 어떤 구차한 조건도 달지 않고, 친정 담 밑에 핀 나팔꽃처럼 소박한 바람뿐이었다.

 

아버지는 그 바람마저 저버렸다. 늘 술을 달고 살면서 다정한 눈빛과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없다. 어머니는 당신의 삶이 갑작스레 안락하게 변하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그런 모습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그 또한 당신이 받아들여야 한다며 내색 없이 견딘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힘겹게 잡고 있던 유일한 희망의 끈이었다. 그 끈이 굵고 튼튼하지 않아도 데면데면한 자식들보다는 나았을 텐데 아버지가 갑작스레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신체 기능은 제 역할을 하고 있어도 한 번 감은 눈을 더는 뜨지 않았다. 의사도 희망이 담긴 얘기보다 절망적인 얘기로 어머니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하루에 세 번, 정해진 면회 시간에 아버지를 뵈면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변화가 없는 표정에서 생의 마지막 경계선에 닿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혈압과 심장 박동도 영하로 내려가는 온도계의 눈금처럼 점점 내려갔다. 어머니의 표정도 아버지처럼 굳어져 갔다. 말수도 줄어들고 단단하게 조였던 나사가 헐거워지듯 당신을 지탱해 주던 모든 관절이 느슨해졌다. 병원 밖에는 나갈 엄두도 못 내고 침묵처럼 눈을 감고 한 자리에 가만히 있는 시간이 많았다. 단단하게 잡고 있던 것을 놓아야 하는 불안감과 그다음에 다가올 시간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당신을 놓아주지 않는 것들을 떨쳐버리고 싶은 것일까. 화투를 내리치는 팔에는 팽팽하게 조인 활시위처럼 긴장감과 탄력이 있었다. 언젠가 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상대의 눈을 속여 돈을 빼앗기 위한 도박꾼들의 팔은 짧고 굵게 허공에서 주춤거림도 없었다. 먹이를 향해 쏜살같이 내리꽂는 매의 동작처럼 날렵했다. 어머니의 팔 동작은 그들만큼 빠르지는 않았지만 잠깐 허공을 가르더니 아래로 내리꽂혔다. 그러나 왠지 울림이 달랐다.

그들의 울림이 상대를 속이기 위한 짤막한 울림이었다면 어머니의 울림은 왠지 길게 울렸다. 팔순을 바라보는 연세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났을까 싶었지만 그 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게 들렸다.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몹시 불안해하는 어머니 주위를 뱅뱅 돌고 있었다.

 

복도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절제하기 어려운 고통을 극도로 절제하며 무언가를 따라 복도 끝으로 가고 있었다. “난, 이제 어떻게 살아.” 한숨 같은 그 말을 오랫동안 참았는지 가느다란 한숨에 섞여 힘겹게 나왔다. 작고 동그랗게 허물어진 어깨선이 조금씩 움직이더니 흐느낌에 따라 들썩였다. 나무토막처럼 거칠고 딱딱한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아버지는 의식도 없이 열흘째 누워 있지만, 뇌세포마저 잠든 것은 아닌 듯했다. 혼자 남겨질 어머니 걱정에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는 게 아닐는지. 아버지를 뵐 때마다 당신이 살아 계실 때와 다름없이 어머니를 대하겠다고 주문처럼 약속했다. 그 말 외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크게 위안이 된 것은 아니겠지만, 그 말을 듣더니 수축됐던 근육이 이완돼 보였다. 그러나 어디다 정신을 놓았는지 화투의 짝을 제대로 못 맞췄다. 일일이 짝을 맞추고 계산을 해 드리면 마지못해 웃었다.

 

그 웃음마저 점점 희미해지더니 한마디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화투의 부딪치는 소리도 어딘가로 깊숙이 숨어들고 방안에는 간간이 한숨 소리만 들렸다. 그 사이 아버지는 점점 더 멀리 가고 있었다. 그 길은 막을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길이다. 세월의 물살에, 신의 손길에, 운명의 손길에 떠밀려가는 길이다. 아무리 힘차게 팔을 휘두르며 화투를 내리쳐도 그 불안은 떨칠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팔은 모든 조임새가 풀려버렸다.

느린 화면처럼 손에 든 화투를 바닥에 있는 화투 위에 간신히 얹었다. 어머니의 손에서 힘없이 빠진 화투는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늦가을, 들판에 내린 하얀 서리 같은 어머니의 머리카락은, 진이 다 빠진 듯 이리저리 쓰러졌다. 얼굴은 가벼운 발자국에도 힘없이 부서지는 낙엽보다 더 푸석해서 주름만 도드라졌다. 출입문이 벌컥 열리더니 낯선 공기가 재빠르게 밀려왔다. 화면이 정지되었다.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빨리 중환자실로 오라고 했다. 조금 다급했지만 차분하게 그 한마디만 남기고 임무를 다 했다는 듯 획 나가버렸다. 화투를 떨어뜨린 어머니의 입에서 ‘아이구’ 하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구부정한 뒷모습이 중환자실로 뛰어갔다. 두어 시간 전에 뵈었을 때 검붉던 아버지의 얼굴이 백열등 불빛보다 하얗게 변했다.

퉁퉁 부은 아버지의 손을 잡은 어머니의 손이 몹시 떨렸다. 아버지는 매미처럼 껍데기만 남기고 이탈 중이었다. 병실에는 어두침침한 동굴의 천장에서 한 방울씩 힘겹게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렸다. 아직 삶의 경계선을 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기계음이었다. ‘뚝, 뚝, 뚜 - 드’ 물방울이 아주 느리게 떨어졌다. 잠시 후, 건전지의 수명이 다한 것처럼 짧고 조용하게 ‘삑’ 소리를 내며 멈췄다. 물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짝을 보내지 않으려는 짐승의 울음이, 손수건으로 가린 어머니의 입술 사이로 삐져나왔다. 어머니의 하얀 머리카락보다 더 하얀 시트가 아버지의 얼굴을 덮었다.

 

갑자기 스쳐 가는 바람처럼 울음을 뿌리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담요 위에는 화투가 아무렇게나 누워 있다. 그토록 불안의 늪에서 헤맸건만 끝내 떨쳐 버리지 못한 어머니를 비웃는 것 같다. 화투와 어머니의 하얀 머리카락이 서로 다른 세상처럼 대조적이다. 삶이란 화투처럼 화려하고 행복할 때도 있고, 어머니의 머리카락처럼 소박하거나 아주 단조로울 때도 있다.

어머니의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을 보면 화투처럼 화려하게 삶의 포만감을 느껴보지 못한 모습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긴긴 삶의 뾰족한 모퉁이에서 이런저런 상처만 받았으리라. 어머니의 하얀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부서질 것만 같다. 결국, 화투는 인간의 행복과 삶의 의미를 담은 것과는 다르게, 아무런 구실도 못 하는 심심풀이 도구였다. 화투를 쓸어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불안의 늪에 정박해 있던 어머니의 손을 잡고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2012 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심사평>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 '화투'로 가볍게 풀어내

다양한 소재로 응모한 삼백오십여 편의 작품들은 모두다 문학에 대한 글쓴이의 열정을 잘 보여주었으나 주목을 크게 끌 만한 작품들이 적었음은 아쉽다. 이는 수필의 특성 중의 하나인 자기 고백적인 글이라는 틀에 너무 묶인 나머지 심리적 철학적으로 삶을 성찰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삶을 깊이 성찰하는 미적 순화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일상으로 담아내면 그와 같은 글 속에서는 영혼의 울림을 찾을 수 없다. 모두 세 차례의 심사과정을 거쳐 최종심까지 올라온 작품은 김길영의 <그때는 들국화가 시였네>, 이강란의 <빨랫줄>, 김제숙의 <하루>, 그리고 임병숙의 <화투>였다. 네 작품 모두 각자의 일상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으나 그 소재를 중심으로 사건과 사물과 인간의 감정을 비교적 깊은 의미의 세계로 끌어갔다.

그중에서 임병숙의 <화투>는 문학적 메타포에서 특징적이었다.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화투라고 하는 가벼운 놀이와 결합시키면서 자신에게는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지만 또 한편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너무나 보편적인 사건임을 보여준다.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느끼는 순간 아이로니컬하게도 화투로 한 가닥 구원의 끈을 붙잡고자 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응모한 거의 모든 작품들도 마찬가지인데 글의 탄력이 부족하고 주제가 선명치 못한 점이다. 글은 과감하게 주제의 중심으로 모이지 못하는 내용들을 잘라냄으로써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리고 말미에 선명한 메시지를 줌으로써 주제를 부각시킬 수 있다. 끝으로 미국의 유명한 수필가인 E. B. 화이트는 글을 잘 쓰는 비결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인류나 인간(Man)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man)에 대해 쓰는것” 이라고. 이 모든 점들을 참고하면서 더욱 정진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남영숙(수필가)·송영옥(수필가)

 

           < 2012 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소감 /임병숙 >

부족한 글 뽑아 준 건 더욱 노력하라는 꾸짖음

음악을 듣거나 회화를 들으며 혼자 걷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을 걸으면 심심할 법도 하지만, 오히려 더 많은 친구를 만날 수 있다. 나무, 야생화, 풀, 띄엄띄엄 놓은 징검다리. 이름 모를 풀들이 피워낸 작은 꽃송이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발길을 쉽게 돌릴 수 없다. 눈에 띌 만큼 화려하지도 않고 향기도 없다. 좀 더 다가가면 그들의 내밀한 언어가 향기롭게 들린다.

글을 쓴다는 건 혼자 걷는 산책길 같다. 그다지 관심도 받지 못하는 분야라서 함께 가는 사람도 드물다. 이름 모를 풀꽃처럼 함께 가는 다섯 명의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오래전에 이 길로 갈 수 있게 등불이 되어 준 몇몇 선생님. 친정집 농사를 짓느라 농부처럼 변한 남편. 모처럼 일찍 들어와도 옆에 앉아서 내 일에 몰두하느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부족했다. 아이들과 어머니. 친정 형제들 모두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린다. 며칠 전 꿈길에 다녀가신 부모님. 가슴을 저리게 한다.

당선이라는 큰 기쁨을 주신 심사위원님.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것은 느림보에게 더 노력하라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따뜻한 손길이라 여겨진다. 더디게 여기까지 왔지만, 또다시 더디게 가야 할 길. 이 길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임병숙(강원도 원주시 봉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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