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수필

뿔 없는 자의 존재방식 / 문 윤 정

장대명화 2026. 5. 19. 10:09

                         뿔 없는 자의 존재방식 / 문윤정

밤새 바람소리가 거칠었다.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마치고 법당 주변을 돌았다. 천천히 발걸음을 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저 멀리서 검은 물체가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등을 바닥에 대고 누운 벌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보니 하늘을 보고 드러누운 장수풍뎅이가 여섯 개의 발을 버둥대고 있다. 아마 거센 바람에 날려 여기에 떨어진 것 같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등을 바닥에 대고 허공을 향해 여섯 개의 다리로 잔발질을 치는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생의 한복판에서 거센 폭풍을 만난 녀석은 우주의 어느 귀퉁이에 떨어졌는지 알지 못한 채 탈출하려는 필사의 몸짓을 하고 있다. 장수풍뎅이는 두려움, 낯섦, 공포, 외로움 등의 감정이 난무하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장수풍뎅이는 유충으로 보내는 시간은 길지만, 성충이 되고 나면 인간의 시간으로 2, 3개월 산다. 곤충의 세계에서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일 것 같다. 하루살이에 비하면 천 년을 사는 만큼이나 긴 생이다.

그냥 풍뎅이도 아니고, 이름 앞에 ‘장수’라는 단어가 붙은 것으로 보아 녀석은 곤충 중에서도 힘이 센 녀석임을 알 수 있다. 갑옷처럼 단단한 외골격을 가지고 있어 작은 곤충은 감히 덤벼들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머리에 붙어있는 뿔은 끝이 날카로운 삼지창을 연상케 하는 최고의 무기이다. 길게 뻗은 뿔을 앞세우고 보무도 당당하게 걷는 모습은 전장의 장수를 연상하게 했다.

장수픙뎅이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등을 바닥에 대고 하늘을 향해 오랜 시간 누워 있으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몸이 뒤집힌 채 누워 있으면 움직일 수 없으니, 먹이를 구할 수도 없고 적으로부터 쉽게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갑옷과 긴 창도 무용지물이 된다.

일리아드가 죽은 친구의 원수를 갚기 위해 투구를 쓰고 방패를 들고 적장을 향해 달리던 그 모습처럼 장수풍뎅이도 한때 그렇게 거침없이 들판을 누볐을 터이다. 이젠 그런 패기도 내려놓고 숨을 헐떡이면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필사적인 몸짓에 가슴이 아릿하다. 사람이든 미물이든 목숨은 하나, 그 하나의 목숨은 우주와 바꿀 수 없을 만큼 귀하디 귀한 것. 장수풍뎅이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만났으니 내가 녀석을 구해주어야 한다.

나는 장수풍뎅이의 몸을 뒤집을 수 있는 도구를 찾아보았다.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마땅한 것이 없어 부러진 나뭇가지를 주워들었다. 젓가락처럼 만든 나뭇가지를 들고 장수풍뎅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비록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 있지만, 녀석의 긴 뿔에서 자르르 윤기가 흘렀다.

한때 장수풍뎅이의 뿔을 탐내었던 적이 있었다. 동네 아이들과 풀숲에서 노는데, 누군가가 장수풍뎅이가 있다고 소리쳤다. 우린 달려가서 지켜보았다. 어린 눈에 장수풍뎅이의 뿔이 빛나 보였다. 머리의 뿔을 앞세우고 기어가는 모습이 용감해 보였다. 그 뿔을 한번 만져보고 싶었다. 그때 갑자기 나를 괴롭히는 옆 짝이 생각났다. 나도 저런 단단한 뿔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때 남학생들은 절대권력자처럼 폭력을 행사하고 싶어했다. 내 짝궁 역시나 책상에 선을 그어놓고 넘어오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지우개가 책상의 선을 넘어도 으름장, 공책이 조금만 넘어가도 칼을 들이대면서 자른다고 협박했다. 책상에 깊게 패인 금지의 선은 나를 위협했다. 새로 산 책받침에 칼날로 생채기를 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때의 나는 짝궁에게 휘두를 수 있는 무기가 아무 것도 없었다. 여학생들의 주무기인 깡다구도, 대항할 용기도 없었다. 무방비 상태였다. 장수풍뎅이가 뿔을 앞세우고 기어가는 모습이 어린 눈에 멋지게 보였다. 내 이마에 그런 뿔이 있다면 괴롭히는 짝궁을 혼내주고 싶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나는 별로 변한 게 없다. 세월이 나를 성장시키긴 했지만, 세상 앞에서 나를 지켜줄 만한 단단한 갑옷이나 번뜩이는 무기 같은 것은 여전히 없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무기들을 헤아려보았다. 이름 앞에 세운 명예라는 뿔, 높은 곳에 올려세운 권력이라는 뿔, 숫자 위에 쌓아 올린 돈이라는 뿔, 그리고 벽처럼 둘러친 학벌이라는 뿔까지. 그 뿔들은 화려하면서도 날카로워 보인다. 저 번쩍이는 뿔들의 이면엔 아픔과 쓸쓸함을 품고 있을 것이라며 애써 외면한다.

문득 카프카의 “저는 인생에 필요한 조건이라곤 아무 것도 갖추지 않았고, 단지 인간의 나약함만 지니고 있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카프카가 필요한 인생의 조건은 무엇일까? 카프카는 아버지라는 거대한 세상에 대항할 힘을 잃었다. 아버지라는 세상을 넘어설 수 없었던 카프카는 자신의 나약함에 많이도 절망했다.

어릴 때는 굳건한 장수풍뎅이의 뿔을 가지고 싶었지만, 이젠 그 무엇도 욕망하지 않는다. 갖고 싶다고 해서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힘과 뿔로 세상을 돌파할 때, 나는 자주 주춤거렸고, 물러섰고, 때로는 침묵하거나 돌아섰다. 나는 여전히 그런 것들을 익히지 못한 채, 어쩌면 태생적으로 무방비 상태로 세상 속에 서 있다. 나는 끝내 날카로운 뿔을 가지지 못했지만, 그 대신 오래 바라보는 눈을 얻었고, 말 대신 오래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뿔이 없는 나와 뿔을 가진 장수풍뎅이가 마주하고 있다.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녀석을 빨리 풀숲으로 보내야 한다. 장수풍뎅이의 존재를 증명하는 뿔이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한 판 뒤집기를 했다. 몸을 뒤집은 장수풍뎅이는 한동안 가만히 있더니 숨 고르기를 마쳤는지 걸음을 옮겼다. 숲으로 돌아간 장수풍뎅이는 강철같은 뿔을 앞세워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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