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좋은수필 베스트 10작품 / 다림줄 ㅡ최 운 숙
전원주택 공사 현장이다.
나무받침대 위에 붉은 고벽돌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먹다 남은 물병이 제멋대로 흩어지고, 드럼통을 반으로 자른 파란색 통에 사모래가 한 몸처럼 엉겼다. 시멘트 자루가 커다란 입을 연 채로 눕고, 굵은 나무토막 서너 개가 아무렇게나 팽개쳐졌다. 페인트를 군데군데 묻힌 사다리 두 개가 등을 내린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가 왼손에 들린 고데에서 포슬포슬한 모래 밥을 펴 돌 사이에 바른다. 귀에 볼펜을 꽂은 남자는 바닥에 앉아 벽돌을 절단한다. 땀과 먼지로 범벅인 얼굴 위로 돌 가르는 요란한 소리가 다닥다닥 붙는다.
벽돌 사이로 줄이 내렸다. 출입문과 계단을 지나 통창에 걸렸다. 벽체가 수직의 기준을 잡고, 바닥은 평면과 직각을 이루며, 허공은 다림추가 잡는다. 각각의 위치를 표시한 노란색 실은 오와 열의 균형을 맞춘다. 조적 기술사는 돌을 한 줄씩 쌓을 때마다 수평실을 올린다. 이 실은 건축의 균형을 지나 지구의 중심과 일치하며, 무너지지 않는 건물의 기준이 된다.
신혼 재미에 푹 빠져있을 때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거실에 짐이 잔뜩 쌓여있었다. 잘 못 들어왔나 싶을 때, 시어머님이 나오셨다. 큰댁에 계셔야 할 분이 어떻게 짐까지 싸서 오셨는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결혼 일 년을 한 달처럼 즐기던 나는, 시어머님의 느닷없는 행동에 남편과 나 사이의 줄이 흔들이며 균형이 무너졌다.
손윗동서와 마음이 맞지 않아 막내아들과 살고 싶다는 시어머님의 부탁을 남편은 거절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게 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어떻겠냐는 상의도 없었다. 그도 설득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리라 생각했지만, 느닷없는 이 상황은 놀라움을 넘어 배신감이 느껴졌다. 하소연할 사람도, 마음 터놓고 상의할 사람도 떠오르지 않았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망하듯 살림을 꾸린 상황에서 엄마에게 하소연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내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소주 한 병을 벌컥벌컥 마셨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발길질했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일면서 호흡이 빨라졌다. 다시 한 병을 깠다. 거푸거푸 들이켰다. 힘이 생기며 무서운 것이 없었다. 술병을 빼앗는 그의 팔을 뿌리치며 헤어지자고 소리쳤다. 뜨겁게 달아오른 몸속으로 배신감이 끓어올랐다.
결혼을 반대한 엄마의 속뜻을 알 길 없는 나는, 서운함과 원망으로 입을 앙다물었다. 보란 듯이 잘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 오기는 온데간데없고, 기준점을 놓쳐버린 현장에서 균형을 잃고 비틀댔다. 그에게 소식을 받은 엄마는, 당신도 사돈과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며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라 하셨다. 그 말은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무서운 말이었다. 막막함이 왈칵 쏟아졌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설계도도 없이 초보 주부가 짓는 집은 엉성했다. 벽돌 하나가 들어갈 곳이 반쪽인지, 반의반인지, 뉘어야 할지, 세워야 할지 알지 못했다. 어설프게 올린 내 벽돌에 비해 어머님의 벽돌은 단단했다. 어떤 때는 단단한 것이 벽으로 느껴졌다. 부딪치며 깨어지고 상처를 드러내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어머님과 함께한 삼십여 년은 초보 주부를 시어머니 나이에 올려놓았다. 당신은 먼 곳을 바라보며 인공호흡기에 의지한다. 나는 시어머님의 수의를 매만지며, 새 식구를 맞을 준비를 한다.
만약, 엄마로부터 엄마도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면 나는 시어머님과 살 수 없다며 바둥거리다 가족을 놓아버렸을지도 모른다. 천방지축으로 자란 내가 어른을 모신다는 것은 불가능이라 생각했다. 엄마는 부모를 잘 섬기는 그릇은 되지 못하더라도 자식의 도리를 다하라고 처지 운운하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신 게다. 그 말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기준선이 되었다.
우리는 줄타기하는 곡예사처럼 흔들리며 산다.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장대를 좌우로 움직이며 중심 잡는다. 시선을 발아래 두지 않고 멀리 줄 끝에 두고, 몸이 쏠리는 반대 방향으로 장대를 움직이며 마침내 중심을 잡는다. 흔들려 본 사람이 중심을 잡을 줄 알고, 휘어져 본 사람이 이내 곧을 줄 안다. 그러니 중심은 흔들이며 잡는 것, 무너지며 많은 연습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가족이라는 공간에서 중심에 서기 위한 꿈을 꾸고, 세계를 향해 팔을 뻗는다. 가족은 보이지 않는 줄로 끊임없이 서로를 잡아당기며 끌어안는다. 원의 중심은 우주와 맞닿고, 가족은 삶의 기준을 세운다. 나의 중심을 잡게 하는 가치는 가족이다.
조적기술사가 레벨기로 줄을 놓는다. 화장실과 싱크대, 벽난로를 잇고, 방과 방을 지나 바닥과 천장을 잇는다. 수직으로 쏘아 올린 푸른 선을 향해 수평계가 바짝 따라붙는다. 다림추가 지구 중심을 향해 묵직하게 줄을 당긴다.
묵 / 최 운 숙
묵이 누웠다. 접시 위에 육면체 바다로 누웠다.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자 잠에서 깬 듯 침묵이 손을 타고 출렁인다. 누군가 잃어버린 꿈처럼 둔중하다.
지인이 도토리묵을 가져왔다. 도토리는 씀바귀처럼 쓰고, 빛깔은 숯처럼 검다. 만드는 과정 또한 번거로워 먹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는 만들기 쉽지 않은 음식이다. 아마도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며 만들었을 묵이 여기까지 건너왔나 보다.
어느 해인가 아버지를 따라 도토리를 주우러 갔다. 아버지는 나무토막을 잘라 구멍을 내어 자루를 박았다. 쿵쿵, 내리치는 소리가 작은 마을을 지나 앞산 이마에 걸렸다 되돌아왔다. 떡메 소리에 맞춰 엄지손가락만 한 도토리가 와르르 우르르 뛰어내렸다. 한꺼번에 떨어지는 소리는 굵은 우박보다 요란했다. 잽싸게 플라스틱 바가지를 머리에 덮어쓰자 타다다탁 탁탁 바가지 때리는 소리가 따발총 소리 같았다.
엄마는 묵을 쑤어 단양주와 내왔다. 단양주는 한 번 빚는 막걸리로 두 번 빚는 이양주나 세 번 빚는 삼양주에 비해 담그기가 까다롭다. 첫 불은 부드러운 불로 지피고, 나중 불은 센불로 지핀다. 시루 위로 수증기가 솟아 나오면 시루 안 고두밥 위에 찬물을 한 바가지 뿌렸다. 고두밥이 지어지면 돗자리를 펴고 차게 식혀 술을 빚었다. 이렇게 술을 빚으면 술지게미가 적고 많은 양의 술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엄마가 내오는 단양주와 묵을 놓고 육자배기 가락으로 겨울을 즐겼다.
아버지는 뭍에서 살고자 했으나 섬을 떠나지 않았고, 명창을 꿈꿨으나 소리를 갖지 못했다. 묵 한 사발과 막걸리 한잔을 놓고 퉁겨내던 소리가 오일장이 파할 때까지 낭창거렸다. 아버지의 꿈이 담긴 가락은 묵 한 그릇에 맴돌다 바닷바람과 섞여 흩어졌다. 아버지는 한 번도 고난과 후회라는 말을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그러나 거친 파도가 올 때마다 당신도 모르게 한은 조금씩 쌓여갔을 거다. 막걸리 한잔으로 쓸어내리곤 했지만, 한이라는 것은 또 생겨나서 오히려 그것은 살아가는 힘이 되었을 테다.
섬은 참나무 열매보다 우뭇가사리가 더 흔했다. 엄마는 검은색에 가까운 붉은 해초를 따와 민물에 씻은 후 햇볕에 뒤집어가며 말렸다. 열흘 정도 꼬실하게 말리면 까슬까슬한 우뭇가사리가 붉은색을 벗고 누르스름해졌다. 엄마는 말린 우뭇가사리를 광에 저장해두고 사철 묵을 쑤었다.
배고픈 시절, 바다에서 나는 걸로 이리저리 음식을 만들다 묵을 만들게 되었다. 우무묵은 여름 햇볕에 핀 소금꽃을 내리는 음식이었고, 콩가루를 넣어 콩국으로 먹으면 든든한 영양식이었으며 자식들에게는 엄마표 밥상이었다. 되직하게 물을 잡아 설탕을 듬뿍 넣어 젤리로 만든 양갱은 내 간식이었다. 얼음같이 투명한 것이 탱글탱글 오돌오돌 입안에 감겼다. 나는 우묵 양갱을 오빠가 육지에서 사 온 과자보다 더 좋아했다.
묵은 사람의 희망으로 태어났다. 수십 번 쥐고, 짜고, 걸러, 수장되어 묵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먹을 것이 풍족해져 가끔은 잊고 살지만, 귀가 순해지기 시작하면 그 슴슴하고 가벼운 맛이 그리워진다. 두 손에 꼭 쥐었던 쓰고 검은 단단한 맛이 우리가 꿈꾸던 희망이 아니었음을 느낀다. 손이 많이 가는 이 음식은 엄마의 비손이 담겼다. 사랑을 먹고 자란 우리는 묵을 쑤며 자손의 꿈을 응원한다.
목포 수산시장에서 우무묵을 사 왔다. 물결모양 칼로 썰어 베란다 테이블에 놓았다. 눈부신 파란 하늘을 보며 젓가락을 들지 못하는데, 싱겁고 못나고 소박한 것이, 오래전 산으로 거처를 옮긴 아버지를 불러온다. 창문을 통해 가늘고 긴 햇살이 가야금 줄이 되어 묵의 지붕에 내려앉는다. 젓가락으로 툭, 건드리자 묵은 가야금 현이 되어 느리게 흔들린다. 묵 속에 아버지의 가야금이 소리를 탄다.
낮달이 보인다. 앞마당을 뛰어다니던 백구처럼 하얀 얼굴로 폴짝폴짝 뛴다. 나는 반쪽인 달을 백구의 꼬리인 양 잡으려고 요리조리 기웃거린다. 달은 없는 꼬리를 살랑대며 자꾸만 오른쪽으로 도망친다. “묵 한 사발 내와라, 노래 한가락 해야겠다!” 무덤에 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화들짝 놀라 환청에서 깨어난다. 묵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여전히 육면체 바다다. 나는 그것을 환청이 아니라 늘 마음속에 그리다 문득 일어나는 그리움의 생각인 수감隨感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춤 / 최 운 숙
한 여인이 펼쳐진 억새밭에서 춤을 춘다. 느릿느릿 일정한 형태도 없이 흐느적거린다. 마치 내면의 슬픔을 끌어내듯 춤이 진행된다. 그녀의 의식에 따라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다 눕는다. 영화 <마더>의 시작 장면이다.
친정엄마는 한 번도 당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할머니의 매운 시집살이와 아버지의 가벼운 주머니도 말없이 받아냈다. 구성지게 뽑아대는 판소리 여섯 마당이 아버지의 목소리로 주막에서 흘러나왔을 때도, 한나절 내내 약장수와 어울려 다니다 분 냄새 풍기고 들어와도 모른척했다. 남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으나 가족에게는 불같았던 아버지와 달리, 훅 불면 날아갈 듯 한 가랑잎 같은 엄마가 가정을 지키는 것은 사막의 낙타처럼 감내하는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갈 수도 없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어려우며 더더욱 멈춰 설 수도 없는 상황에서 가슴에 더는 별이 뜨지 않았을 것이다. 한 번도 자식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거나 아버지 말씀에 반기를 들지 않은 채 순종하며 살았다.
엄마의 한계는 어디까지였을까, 당신 안의 그림자는 어떤 것이었을까, 햇살이 좋은 정오正午가 아버지라면 당신은 보잘것없는 한낮의 작은 그림자였다.
아버지가 마흔여덟에 떠나시고 이어 피 끓는 젊은 오빠도 떠났지만, 가장과 젊은 사람을 데려갔다고 악다구니도 쓰지 않았고 머리 싸매고 드러눕지도 않았다. 북받치는 설움을 왜소한 체구에 꾹꾹 눌러 쟁이셨다. 한 번이라도 짐을 져본 사람은 그 고통을 안다. 너무 깊은 슬픔은 눈물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아버지와 아들을 떠나보낸 후 연줄을 끊고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연처럼 엄마는 하얀 꽃이 되었어도 여전히 그 사막 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딸은 엄마의 팔자를 닮는다고 했던가, 그 무렵 고된 시집살이 중이었지만 지금 아니면 영영 엄마를 잃어버릴 것 같았다. 요양원에 계신 당신을 모시고 집으로 왔다. 따뜻한 밥 한 끼 차려 드리고 하룻밤 한 이불속에서 자고 싶었다. 불편한 시어머니의 시선을 피해 나란히 앉았다. 당신은 걱정 따윈 바람에 날려 보냈는지 평온하기만 했다. 그때, 시어머니의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돈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치매에 걸린 사돈이 가져간 것이 틀림없다고 하신다. 시어머니의 날 선 소리에 단 하룻밤의 소망도 포기하고 늦은 밤 요양원으로 향했다. 만 원짜리 한 장을 당신 손에 쥐어주며 “엄마, 미안해”라는 나에게 빙긋이 웃기만 했다. 그 천 원짜리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혹여 엄마 손에 갔다 치더라도 소박한 그 날의 소원을 포기한 걸 내내 후회했다.
엄마가 춤을 춘다. 느릿느릿 앉아있는 슬픔을 끌어올려 어깨에 걸친다. 팔이 비스듬히 곡선을 이루며 머리 위를 스치고 내려온다. 흔들어놓고 사라지는 바람처럼 자유롭다. 보잘것없이 살아온 발뒤꿈치가 땅에서 일어선다. 한 번도 날아보지 못한 어깨가 들썩이며 날기 시작했다. 춤은 얼마간 이어졌다.
엄마는 처음으로 당신의 생각을 춤으로 말하고 있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아무도 알 수 없는 당신만의 언어인 춤으로, 지켜왔던 침묵을 깨고 조각난 울음을 접고 있었던 것일까. 춤을 추며 그림자로 살아온 생을 조금씩 거두고 있었다. 이미 자유로운 정신을 가졌지만 남은 육체마저 버리는 중이었다. 그녀는 발뒤꿈치를 들어 다시 땅에 내려놓았다. 고달픈 삶도 땅에 내려앉았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외롭다. 영화 <마더>의 엄마처럼 엇나간 사랑도, 같은 공간이지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볼 때도, 시대의 변화에 앞서가도 외롭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들의 춤은 슬프다.
나는 엄마처럼 외롭지 않게 살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득문득 외로움을 느낀다. 따뜻한 사람과 같이 있음에도 그것은 때때로 찾아든다. 어쩌면 산다는 건 외로움을 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깊어지고 넓어질수록 외로움도 커지기 때문이다.
슬픈 춤이 좋다. 땅을 향하는 낮은 몸짓이 좋다. 그것은 내 안에 쌓여있는 엄마의 외로움을 보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지음知音 / 최 운 숙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갑자기 세상이 조용하다. 이제 막 열매를 맺기 시작한 명자나무도 명자나무에 내리는 비도 말이 없다.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몸을 돌린다. 창 옆의 패랭이꽃을 들어 비가 내리는 노천에 내어놓는다. 작게 열린 꽃잎 속, 암술과 수술이 나란히 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 광경 속에서 갑자기 나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
어제 그녀가 놓고 간 작설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다관에 찻잎을 넣고 숙우에 따랐다. 우린 찻물로 잔을 채웠다. 연한 봄빛이다. 잔을 들어 그 봄빛을 한 모금 넘겼다. 차향이 내 몸을 감싼다.
그녀와 나는 고택의 단아한 안주인의 모습과 스마트한 직장인의 모습으로 고전과 현대처럼 만났다. 검정 치마에 붉은 저고리를 입은 그녀는 현대에 고전을 품고 있었다. 차분하고 느린 말투로 해요체를 사용하는 그녀와, 나를 포함한 수강생들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그녀가 자세를 한껏 낮추고 있었음에도 거리가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녀에게서 풍기는 기품 때문이었으리라.
시간보다 강한 것이 없다고 했던가, 그녀의 고전은 조금씩 현대에 물들어갔다. 다례 수업의 반장을 맡은 K 씨 때문이었다. 전직 목사였던 그는 성격과 언변이 좋아 기존의 틀을 깨는 수업분위기를 확 바꾸어 놓곤 했다. 그의 장난기 섞인 요청과 배려로 그녀는 자신의 틀을 조금씩 깨뜨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보다 한참 위인 나는 현대를 뛰어다니다 피로감이 쌓일 때마다 종종 그녀를 찾곤 했다. 그녀가 현대에 물든 것이 아니라 내가 그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녀는 점점 현대로 걸어 나오고, 상대적으로 나는 그녀의 고전 속으로 젖어 들고 있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차와 함께 하고 있다. 봄에는 하동의 우전을 마시고 여름에는 풍미 있는 세작을 한다. 눈이 깊은 겨울에는 향이 뛰어난 보이차를 마시곤 한다.
나는 녹차를 좋아한다. 녹차는 그 찬 성질 때문에 눈과 정신을 맑게 한다. 일이 많아 가만있지 못하는 나는 이곳저곳을 참견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부아가 나기도 하고 열을 받기도 한다. 그럴 때는 녹차 서너 잔을 마시면 머리가 맑아진다. 붉게 열 오른 얼굴이 제자리를 찾으며 가슴속에 날카롭게 선 신경들이 부드러워짐을 느낀다.
차는 기호 음료로서 인기가 많을 뿐만 아니라 약성을 가진 음료이다. 그 약성에 대한 기록은 <동의보감>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에 앞서 군신이 함께 차를 마셨다고 한다. 그것은 정신을 맑게 하여 공정한 판단을 하고자 했음이리라.
조선시대에는 유배를 간 선비들이 많았다. 추사 김정희도 그중 하나였다. 유배지의 여건이 다 그렇듯 추사의 제주도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땅이 매우 척박했으며 바람은 사납고 습기가 많아 풍토병에 걸리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서책과 서화를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40년 지기 초의선사와 차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다신전>과 <동다송>의 작가 초의선사는 섬에 고립된 추사를 위해 배편으로 차를 보내주곤 했는데 그 차를 매개로 한 추사와 초의의 많은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두 사람은 조선시대 차를 사랑한 대표적인 차인이자 금란지교(金蘭之交)였다.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71세의 초의는 전혀 외부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거문고 명인 백아가 자신의 소리를 알아준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은 것과 같다. 추사와 초의는 조선시대 최고의 지음은 아니었을까.
그녀의 집이 열렸다. 문지방을 넘어 대청마루에 서는가 싶더니 쪽마루에 걸터앉는다. 이내 디딤돌을 딛고 마당에 내려섰다. 그녀는 한복을 벗고 살랑거리는 원피스를 입었다. 그녀의 고전은 마음속의 한옥에 남겨 놓은 채 단아한 멋 하나만 쥐고 나왔다. 드디어 현대로 나온 것이다. 밖으로 드러난 옷뿐만 아니다. K의 장난스런 야설에도 맞장구가 단차다. 오히려 내가 무안할 정도다.
그녀가 내 옆에 있다. 내가 그렇게 젖어들고 싶었던 고전이면서 동시에 그 고전의 기품과 멋스러운 현대 모습으로. 나는 그녀와 함께 있으면서 아침과 점심 사이, 점심과 저녁 사이, 고전이면서 동시에 현대에 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을 닮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지금까지 나는 그녀의 고전적 기품을 닮아가고자 했다면, 그녀는 나의 어떤 모습을 향해 점점 가까이 다가왔을까. 우리가 마시는 찻잔 속에서는 나의 무엇과 그녀의 무엇이 함께 엉겨 있었던 것일까. 그 찻잔 속에서 피어나는 우리의 마음은 어떤 향기를 지니고 있을까. 마시는 찻물이 내 가슴 깊숙이 새로운 길을 내고 있다. 그 길이 지음의 기쁨으로 향해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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