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유혹자 / 김 해 식
프로이트는 인간 최초 성감대가 유방이라고 일렀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젖가슴이야말로 사랑의 시원(始原)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인지 인간의 사랑이 유방으로의 회귀본능에 기인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성의 유방은 해방의 의미로도 깊이 각인됐다. 프랑스의 화가 들라크루아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라는 자신의 그림에 가슴이 풍만한 여인의 모습을 등장 시키는 표현기법을 썼다.
상반신을 전부 드러낸 채 깃발을 들고 서있는 그림 속 여인의 모습에서 문득 무한한 자유를 느낀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마치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는 여인의 결의에 찬 음성이 그 속에서 들려오는듯하다.
이 그림은 들라크루아가 1830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을 바탕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민중의 마음과 자신의 열망을 화폭에 옮긴 것이다. 그는 자유의 상징으로 여인의 유방만큼 훌륭한 게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내 안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인다.
욕심에 갇혀 살은 지난날이었다. 아들 선호 사상에 의해 딸을 셋이나 낳았으니. 물질에 대한 욕망도 남달랐다. 많은 것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안간힘 쓰지 않았는가. 그러면서도 정작 수신제가(修身齊家)는 소홀했었다. 돌이켜보면 남편과 자식 위해 살았던 날들이 더 많은 듯하다.
세 딸들한텐 내 유방을 헌신했다. 아이들에게 모유를 먹이느라 어디서든 가슴을 드러냈었다. 그땐 모성애 탓인지 부끄럼도 몰랐다. 어찌 그뿐이랴. 삶에 지친 남편한테도 나의 가슴을 온통 내주었다. 그는 내 가슴에 기대며 버거운 삶의 짐을 조금씩 덜어내곤 하였다.
어찌 보면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당연한 일이다. 헌데 이즈막엔 그들에게 빼앗긴 나의 가슴을 갑자기 되찾고 싶어진다. 비단 이런 심정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프랑스의 대중가수인 안샤펠은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조국이 해방되자 자동차 지붕 위에 올라가 힘차게 국가를 불렀다. 그는 자신의 블라우스를 갈가리 찢어 상반신을 드러낸 채 유방을 흔들며 목청껏 국가를 부른 것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전쟁의 참상에서 되찾은 자유의 기쁨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쩜 그녀는 조국의 해방과 더불어 여성으로서 사회적 구속을 벗어나고 싶은 바람이 더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이후 동 ,서양을 막론하고 여인들의 삶은 달라진 게 별반 없다. 아직도 세상은 남성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의 유방이 자유의 상징이라면 그에 준하는 사회적 대우도 정당해야하지 않은가. 하지만 여성의 가슴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화폐 도안으로 활용될 만큼 에로틱한 욕망, 세속적인 탐욕의 절묘한 결합선상에 요즘도 놓여있을 뿐이다. 그런 여성에 대한 미묘한 관점이 언제나 올바른 시각을 되찾게 될까. 나또한 그날이 은연중 기다려진다.
이젠 남편이 나의 가슴에 얼굴을 묻을 날도 점차 줄어들 것이다. 아이들한테 젖을 물릴 일도 없다. 하지만 나는 왜 아직도 내 유방이 타인의 것으로만 간주 될까.
누가 그것을 차지하고 여태껏 돌려주지 않을까. 가장 먼저 내게서 빼앗아 간 사람은 남편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자신의 품안에 가둔 채 놓아주지 않으려 하고 있다. 쉴 틈 없이 내게 많은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여자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남편 앞에 여전히 여자로서의 매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이 그것이다. 어쩜 그건 불가항력의 일이 아닌가. 천하일색 양귀비도 흐르는 세월을 막지 못 하지 않는가.
바람 빠진 풍선마냥 점점 왜소해지는 가슴을 크게 부풀리기 위해 나는 큰 속옷만 필요한 게 아니다.
연륜에 걸맞지 않는 처세는 얼마나 경박해 보이는가. 겸양과 염치도 가슴 속에 꽃처럼 지녀야 한다.
정신없이 사노라 앞만 보며 내달려온 발걸음을 멈추고 이젠 주변도 되돌아보는 여유로움도 배워야 한다. 덕을 외면하면 마음의 그릇이 작아져 인색함을 면하지 못 하지 않는가.
삶의 뒤안길에서 앞서가는 사람들의 뒷모습도 묵묵히 지켜볼 줄 아는 넉넉함도 익혀야 하련다. 남을 따뜻한 시선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야말로 진정한 인격의 향기를 갖추는 일이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슴으로 품을 일이 태산 같다. 하여 아직도 내 젖가슴이 순전히 내 것이라고 우기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지닐 가슴보다 남을 위해 내 줄 가슴이 더 남아있음에 자부심마저 든다.
젊은 날처럼 가슴을 뜨겁게 달굴 일들이 아직은 주변에 많다.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지닌 가슴을 가꾸기 위해선 식지 않는 열정과 덕을 최초의 유혹자로 간직해야 할까보다.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내면의 무르익음이고 건강하게 나이를 먹는 비결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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