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샘터상 우수작/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찾은 희망/ 배 선 숙
나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다. 이 일을 선택했을 때 내 인생의 바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예상치 못한 따뜻함과 희망을 발견했다.
차가운 겨울 새벽, 어둠을 가르는 알람 소리가 좁은 방에 가득 찬다. 오늘도 이불 속에서 조금 더 버티다 곤히 잠든 남편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일어난다. 옷을 겹겹이 껴입고 그 위에 또 작업복을 입는다. 현관문을 여니 센서등의 환한 빛에 밤새 어둡고 무거웠던 기운이 일시에 사라진다.
그것도 잠시, 차가운 공기가 몸속을 파고든다. 밤새 소복하게 쌓인 눈이 내 발자국을 기다린다. 길을 걸으며 서산대사의 말씀 한 구절이 생각났다. “눈길을 걸을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이 말씀처럼, 나의 하루하루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조심스레 발을 내디딘다.
전남 광양에서 식당을 하던 우리는 가게 보증금조차 모두 날렸다. 마침, 남편 지인의 소개로 연고도 없는 이곳에 보증금이 싼 원룸을 얻어서 지낸다. 남편은 현대제철에서 일당직으로 일을 하다가 쉬고 있고 나는 한 달 전부터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한다.
동료들과 함께 차를 타고 서해대교를 건넌다. 창밖으로 한진항의 불빛이 어둠을 뚫고 환하게 빛나고 있다. 저 불빛 아래에서 누군가는 밤을 새우며 일하고 있으리라. 우리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현장에서 내가 하는 일은 배관에 색색의 테이프를 감는 일. 단순해 보이지만 중요하다. 빨간색은 난방, 노란색은 가스, 파란색은 냉수, 회색은 하수관이다. 약속처럼 정해진 색깔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배관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매서운 바람에 손이 시려오지만 이 일이 누군가의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든다고 생각하니 힘이 난다.
바닷가 근처 현장의 고층 건물엔 겨울바람이 매섭다. 옷을 겹겹이 입었지만 막기 어렵다. 뚫린 벽에 가림막을 대신해 걸려있는 이불은 거센 바람 앞에서 무용지물이다. 봄바람에 날리는 원피스 치맛자락처럼 연신 펄럭이며 칼바람을 실어 나른다.
오늘 할 작업은 화장실 배관 보온이다. 작업용 긴 의자에 올라 천장에 달린 배관과 씨름을 한다. 배관이 천장에 너무 가까이 붙어있어 테이프를 감기가 어렵다. 왜 이렇게 천장에 바짝 붙여 놓았을까. 테이프를 놓치기라도 하면 바닥까지 주르르 풀린다. 숙련자들은 그냥 끊어 버리기도 하지만 나는 아까운 마음에 도로 내려와 테이프를 감아 작업 의자에 다시 올라간다. 테이프를 놓칠 때마다 작업 속도가 늦어지고 시간이 지연된다.
천장 작업을 하다보면 시멘트 가루가 눈에 들어가고 목이 뻣뻣해진다. 사찰의 단청과 성당의 천장에 그림을 그리던장인들도 나처럼 목이 아팠겠지. 단순하게 반복되는 노동이지만 정신을 빠짝 차려야 한다. 테이프의 색을 잘못 감으면 안 된다. 크기도 잘 맞춰야 하기에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하루 종일 손을 놀리다 보면 손가락이 뻑뻑하게 굳어간다. 어깨와 무릎도 신호를 보낸다. 차가운 겨울 공기에 근육이 잔뜩 움츠러들어 통증이 더해진다.
처음에는 남성이 대부분인 현장에서 여성으로 일하는 것이 두렵고 힘들었다. 여성 노동자의 하루는 쉽지 않다. 화장실조차 마음 편히 갈 수 없다. 남성 위주의 현장이라 여성 인부들이 사용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 여러 겹 입은 옷 위에 걸친 작업복과 안전띠 때문에 화장실을 가는 일이 더더욱 번거롭다. 공사 현장 근처에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면 행운이다. 이번 공사장엔 바로 옆에 편의점도 있고 화장실을 이용하게 상인들이 배려해줘서 편하게 사용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베푸는 작은 친절 하나가 받는 이에게는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부담스럽기만 했던 남성 동료들의 시선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르게 느껴졌다. 어느 날, 전기 기사님이 “자, 따뜻한 커피 마시면서 해요. 날이 추워서 힘들죠?”라며 캔커피를 건넸다. 그의 거친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이 내 마음을 녹였다. 다른 동료들도 점차 나를 인정하고 배려해주기 시작했다. “여자가 현장에서 일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닌디. 그라도 아줌마 같은 사람이 있응께 현장 분위기가 보들보들허요.” 진한 사투리로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말들이 큰 힘이 된다.
추위와 시멘트 가루, 좁은 틈과 싸움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위층에서부터 사람들이 타고 내려오기 때문에 나는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서둘러 승강기에 오른다. 사방이 뚫린 작업용 승강기 안으로 거센 바람이 제멋대로 드나든다. 모자를 꾹 눌러쓴다. 처음 현장에서 공사장용 승강기를 탔을 때는 무서웠다. 아득한 공사 현장 바닥도 무섭고 종종 뉴스에 등장하는 승강기 추락 사고 소식 때문에 더 겁이 났었다. 하지만 이제는 승강기를 직접 조작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함바 식당 문을 밀치고 줄을 서서 음식을 받아온다. 인부들을 위해 스무 가지가 넘는 음식을 준비해준 식당 이모님께 늘 감사하다. 나 역시 식당을 해보았기에 식당 일이 얼마나 고된지 잘 안다. 현장 사람들과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단순한 동료 이상의 관계가 되어간다. 힘든 일을 하려면 든든히 먹어야 한다. 접시에 밥과 반찬을 가득 담아 허기를 채운다. 뜨끈한 국물 한 숟갈에 온몸이 스르르 풀린다. 접시에 담아온 음식은 반찬 하나 남기지 않고 먹는 것이 나의 철칙이다.
인부들은 조금이라도 더 쉬려고 빠르게 식사를 마친다.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자판기 커피를 마신다. 활활 타오르는 드럼통 곁에서 몸을 녹인다. 인부들이 각목을 던져 넣으면 붉은 불꽃이 일어나 반짝거리다 사라진다. 우리의 삶에도 저렇게 짧게나마 빛나던 순간이 있었을 텐데. 저 멀리 멈춰진 크레인이 보인다. 크레인의 힘을 빌려 만들어지는 거대한 건축물. 언젠가 그곳에서 누군가 편안한 저녁을 맞이하겠지. 짧은 점심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현장 일을 하고 난 후부터 가족들이 가장이 일하는 현장에 한 번은 와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들이 어떤 더위와 추위랑 싸우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작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내들은 돈 벌어오는 것만 좋아하고 아침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다고 한다. 힘들게 번 돈으로 생활비를 줘도 늘 부족하다고 불평한다고 했다. 그들의 씁쓸한 웃음 속에 애잔함이 묻어난다.
겨울의 짧은 해가 저물고 하루의 작업도 끝이 난다. 우리가 쌓은 벽돌 하나, 감은 테이프 하나가 누군가의 안락한 보금자리를 만든다는 생각에 잠시 피곤함도 잊는다. 퇴근길,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 일이 내 인생의 끝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에게 건설 현장은 더 이상 인생의 바닥이 아니다. 오히려 이곳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인간의 따뜻함을 배웠다. 힘든 노동 속에서 피어나는 동료애, 서로를 향한 배려, 그리고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 이 모든 것이 나를 더 강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이곳에서 나는 새로이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책에서 읽은 어느 이야기가 떠오른다. 벽돌을 쌓는 세 사람 중 첫 번째 사람은 벽돌을 쌓고 있다고 답하고 두 번째 사람은 돈을 벌고 있다고 답한 반면 마지막 사람은 “나는 아름다운 성당을 짓고 있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단순한 노동자가 아닌 누군가의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흐르는 곳을 짓는 중이라고 여긴다.
이것이 바로 삶이 아닐까. 우리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고난이 축복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뀔 수 있다. 나는 이제 알고 있다. 희망은 때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피어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희망을 발견하고 키워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이라는 것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루 종일 나를 기다렸을 남편을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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