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그 깊은 언어 / 김 종 희
불면의 모서리가 돌아눕습니다. 어둠은 경계가 없고 눈빛은 더욱 또렷해지기만 합니다. 하얀 뼈가 드러난 앙상한 밤,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잠의 언어를 기다립니다. 어쩌면 기다림이란 물기 빠진 등에 흐르는 입김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경매 물건이 있다는 지인의 짧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경매라는 말에 잎 떨군 마른 나무를 보는 듯 했습니다. 이리저리 바람에 팔랑거릴 이파리 하나 건사하지 못한 창백한 나무의 비쩍 마른입이 경매라는 이름으로 비틀거렸습니다. 파리하게 드러난 맨살위로 집행영장 같은 붉은 딱지가 덕지덕지 붙었을 나무를 생각하면 경매는 참으로 잔인한 언어입니다. 그래서인지 경매물건이 있다는 말에 나는 보트피플이 된 한 가정이 떠올랐습니다.
삶의 과정이야 저마다 다르지만 누구든 그만큼의 무게를 지고 살아갈테지요. 그 대상이 무엇이었든 어깨에 눌러 붙은 무게로 차라리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움직일수록 아니 몸부림칠수록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 때, 처지를 원망하게 됩니다. 원망은 비난을 낳고 비난은 비관을 낳으며 마침내 감정의 극단으로 매몰아갑니다. 그런 순간이 오면 차라리 물처럼 흘러가도록 힘을 빼는 게 살아남는 길입니다. 흘러가는 일은 바닥으로 가는 길입니다.
바닥은 지난한 삶이 응집된 세계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바닥은 탄탄합니다. 바닥이란 위를 향한 계단이기 때문입니다. 바닥은 끄트머리가 아닙니다. 바닥은 가장자리가 없습니다. 가장자리가 없다는 것은 구분하지 않는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나오는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근원으로서의 바닥이니 당연 응축과 응집이 교직으로 결구되어 있으리라 짐작해봅니다.
삶이 무엇이냐 물어본다 해도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지만 살아있다는 것은 추상명사가 아니라 부지런히 걸어야하는 동사 아닐까요. 바닥을 만나는 일은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라야 가능합니다. 그것은 수용입니다. 운명과 숙명사이 자아라는 끈을 놓지 않은 결과입니다. 대범하게, 호탕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자로서 삶을 발견할 때 비로소 만나게 되겠지요. 가장자리가 없는 바닥을 생각하면서 무변루(無邊樓)를 세워 부릅니다.
회재 이언적이 이십대에 정립한 태극무변론은 조선성리학의 터를 열었습니다. 회재는 탄핵과 유배라는 삶의 바닥을 만났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형벌 가운데 하나인 유배는 주로 반란죄에 해당되는데 이는 정치적 사형을 의미합니다. 모든 익숙한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유배자의 삶은 매 순간 불안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배지에서의 삶은 또 다른 세계로의 길을 열어가는 창이 되기도 했습니다. 생의 가장 절박한 순간 엄습하는 불안함 가운데서도 결코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지식인들의 삶. 그들은 닫힌 세계에서 또 다시 열린 세계로 나아가고자 했습니다. 유배는 절망이고, 좌절이고 삶이 끊어지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 좌절의 시기에 자신을 가다듬은 학자들은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유배는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생을 빛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주어진 현실이 녹록치 않을 때 우리는 흔히 절망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절망을 어떻게 인식하고 극복하는가에 따라 삶의 시간은 달라집니다. 생은 서로의 바닥으로 만나 더욱 성숙해지는가 봅니다.
내 터를 갖는다는 것은 정박할 공간이 있다는 안정감이겠지요. 그러나 생사의 경계를 지켜보면 그 터라는 것이 때로 얼마나 허무한 것이던가요. 평생을 일궈낸 터를 두고 결국은 소멸되고 마는 것이 생이잖아요. 생의 모든 것을 정박했던 터가 경매에 내몰린 현실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냉혹한 시장에 팔리는 불안한 눈빛의 난민으로 전락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살아있다는 것은 바닥을 향한 길 찾기를 하는 것입니다. 중력이 없는 우주의 유영처럼 그럴 때 시간의 흐름에 그냥 나를 맡겨야겠지요. 마침내 바닥에 발이 닿을 때까지...
바닥을 힘차게 발 구르기 할 때 삶은 상승합니다. 이것이 있어야 저것이 드러나듯 바닥이 밀어 올리는 삶의 그 깊이는 아무도 모릅니다. 불면의 밤, 바늘 없는 시계에 고여 있을 잠의 바닥을 봅니다. 바닥, 그 깊은 언어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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