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우하 박문하문학상 1,2회 대상작품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24. 9. 26. 09:55

본문

                  수다의 방 / 정연순 - 제1회 우하 박문하 문학상 대상

 

901호실의 정원은 여섯 명이다. 세 번째 침대의 희 할머니는 관절염이 있다. 손가락 사이가 굽은 채 벌어져 있어 손을 흔들면 단풍잎 같다. 휘어진 손가락 마디에 걸린 세월이 저리 가벼울 수 있을까. 희 할머니는 종일 침상에 누워서 지낸다. 편측 마비가 있어 요양병원이 집이 된 지 오래다.

요양병원의 밤은 고요해야 다음 날이 활기차다. 희 할머니는 요즘 밤낮이 바뀌었다. 엄밀히 따지면 혼자 깨어있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 될 게 없다. 문제는 주변 할머니에게 밤새 말을 건다는 것이다. 잠을 못 잔 할머니들은 식반 앞에서 꾸벅이거나 눈을 아예 감고 있다.

오후 두 시, 희 할머니의 눈꺼풀에 잠이 그득하다. 나는 할머니를 깨우기 위해 침대에 다가가 간곡하게 노래를 신청한다. 인내하며 거듭 말하면 듬성듬성한 치아 사이로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 집 한 채~~~괴기 잡는 아버지와 따 있다 ~~내 사랑 크레파초스”이즈음이면 노래는 이미 절정에 다다라 주변은 웃음꽃이 팡팡 터진다. 노래 가사의 클레멘타인이 갑자기 크레용도 아닌 듣도 보도 못한 크레파초스가 된 것이다. 다시 가사를 고쳐주며 시켜봐도 할머니의 크레파초스는 불변이다. 나는 손바닥이 빨갛게 되도록 응원을 한다.

이어서 부른 <백발가>의 “나도 어제 청춘이다가 요로콤 늙어따아~~”가 끝나기가 무섭게 할머니가 내 신상을 캐묻는다. 이참에 장단도 맞춰야 하니 무조건 처자가 된다. 부모형제, 봉급, 사는 곳까지 찰지게 물어보는 할머니가 오늘은 봉급에 꽂혔다. 내게 봉급을 많이 받느냐고 묻는다. 얼마가 많은 것이냐고 되물으니 20만 원이라고 단번에 내뱉는다. 할머니의 최곳값 20만 원이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 시집도 가고 집도 사고 맛난 것도 먹고 그야말로 화수분이다. 그래서 나는 졸지에 부자가 되고 할머니는 갑자기 중신어미로 돌변한다. 참 좋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은근한 눈빛으로 물으니 막내아들이란다.

구십 세인 할머니의 아들이면 나이는 뻔한 노릇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칠 수 없다.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니 구구절절 듬성듬성한 치아 사이로 이번엔 노래 대신에 아들 자랑이 한 섬이다. 내용인즉은 집, 돈, 외모는 되는데 여자만 없다고 한다. 할머니의 기억에 아들은 언제나 청춘이다. 한참 말을 잇던 할머니가 상두대 위에 있는 情의 대명사인 초코파이를 달라고 한다. 초코파이는 할머니의 며느리가 사다 놓은 것이다. 며느리는 할머니를 뵈러 올 때마다 평소에 좋아하셨다고 강조했다. 초코파이는 할머니의 입가에서 아들까지 잊은 채 진한 맛을 돋우는 꿀이 되어 흐른다.

할머니는 물까지 마신 후 다시 노래를 부른다. “저 건너 잔솔밭에 뽈뽈 기는 저 포수야 그 짐승 잡지 마라 그 뒤는 몰라~몰라”라고 하신다. 재창을 시키며 다시 듣는 뽈뽈 기는은 이 노래의 달콤한 샘물이 된다. 함께 노래를 듣던 옆 침대의 성 할머니가 나는 포수 모르는데 하시며 얼굴에 근심이 그득해진다. 왜 모르냐고 물으면 금방 울음이라도 터뜨릴 기세다. 성 할머니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있다. 이어 칠십 세의 성 할머니의 앞, 구십오 세의 봉 할머니가 “괜찮여~응 괜찮여~”하시며 하회탈 같은 표정을 짓는다. 괜찮여는 요즘 봉 할머니가 하는 거의 유일한 말이다. 이즈음이면 봄 들녘, 노동 후 마시는 막걸리보다 걸쭉한 웃음꽃이 병실에 가득 번진다. 희 할머니의 기분이 더욱더 좋아지면 나는 할머니의 情이 담긴 초코파이를 주변의 할머니에게 심부름한다. 며느리도 일찍이 부탁한 일이니, 주저할 이유가 없다.

노래를 잘하는 희 할머니는 방의 수호신이다. 옥 할머니가 식사 때 숟가락을 내려놓으면 “선상님요! 저기 할매가 밥 안 먹었심더”하면서 내게 일러준다. 그리곤 구십이 넘은 옥 할머니에게 “밥 안 먹으면 죽소 어서 드소!”하며 호통까지 친다. 치매로 숟가락을 밀어내는 옥 할머니의 머리엔 꽃무늬 앞치마가 머릿수건으로 곱게 씌어 있다. 식사 때마다 머릿수건이 된 꽃무늬 앞치마는 할머니의 어떤 시절을 불러내는 것일까. 배고픔까지 잊은 채 온화하게 변하는 얼굴이 신비롭기 그지없다.

희 할머니의 입담은 다른 보호자에게까지 이어진다. 날짜도 넘나들어 휴무일을 지내고 가도 901호의 소식을 아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병실은 밥의 힘이 보여주는 최고의 현장이다. 할머니들은 밥을 두 끼만 밀어내도 비틀어진 화초처럼 시들시들해진다. 그러므로 끼니는 불로초처럼 소중한 탄성이 된다.

희 할머니가 갑자기 밥을 밀어낸다. 다짜고짜 한잠도 못 잤으니 수면제를 달라고 한다. 식사도 못 할 정도로 잠에 취해 있던 희 할머니는 졸지에 희 할머니가 아닌 게 되어버렸다. 의사에게 최고의 무기를 내걸고 협상을 하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 말로 약속을 받아낸 할머니의 배꼽시계가 크게 울린다. “할매요 진짜 안 먹을라고 했는겨?”하니 단풍잎 같은 손을 들며 “저 할매가 내게 호통치게 할 수는 없심더”하며 꽃무늬 앞치마를 머리에 쓴 옥 할머니를 바라본다. 협상가인 희 할머니의 식판은 깨끗하게 비워졌다. 밤이 되기 전 수면제는 할머니의 기억 저 너머로 물처럼 흘러갈 것이다.

할머니들의 이름이 온전히 불러지던 유효기간은 어디쯤일까. 희로애락과 함께 잊히던 이름은 요양병원에서 다시 개인으로 회생한다. 하여 처음 요양병원에 오면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한참 동안 생경한 표정을 짓는다. 이름만으로 추억을 불러내던 세월은 유수 같다. 다시 소환된 이름마저 욕심인지 가족이 머릿속에서 안개처럼 지워지는 할머니들. 나는 그들의 고요해지는 나날에 연분홍 초대장을 띄운다. 호수처럼 밋밋한 마음에 물수제비로 뜨는 납작 돌이 된다. 씨앗을 뿌리는 농부도 된다. 그 씨앗에는 좋은 이웃으로 남게 되는 아들딸도 있다. 흙 없이 덕담만으로 새로 심어진 아들딸은 할머니의 노랫가락에 여름덩굴의 활기찬 줄기로 뻗어나간다. 나는 슬픔의 덩어리로 초점이 맞춰진 아들딸이라는 이름에 안녕을 고한다.

드르륵 문이 열리자, 희 할머니가 좋은 이웃을 향해 단풍잎 같은 손을 흔든다. 연이어 입술이 달막달막하기 시작한다.

 

                              학이 춤추는 동래 / 김영욱ㅡ제2회 우하박문하 문학상

 

피리소리가 흐르자, 양팔을 좌우로 펼치고 한 발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이내 날렵한 버선코가 하늘을 향하자, 다른 발이 뒤꿈치가 들리며 바닥을 박차고 날아오를 듯하다. 펄럭이는 흰 소매는 날개 같고, 돌아설 듯 머뭇거리다 핑그르르 제자리를 도는 품새가 한 마리 새라도 된 듯하다. 과연 갓 쓰고 도포 입은 선비인가, 멋 좀 부릴 줄 아는 한량인가?

글쎄, 부잣집 종손으로 태어난 할아버지는 기방출입이 잦았다고 했다. 아쉬울 게 없으니, 물 쓰듯 인심도 쓰고 다니셨다고 했다. 본마누라는 하동에 두고 진주, 순천, 부산에도 갈 곳을 만드셨으니, 인생 자체가 풍류였음은 세상물정 모르는 삼척동자도 짐작이 가능하리라. 그런 할아버지는 어느 날 맏손녀인 내가 외발로 서서 발레리나를 흉내 내자, 내 조막손을 붙잡고 온천장으로 데려가셨다. 내 나이 다섯 살 적의 일이니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널따란 다다미방으로 초대된 춤꾼 할아버지의 ‘외발서기사위’는 생생하게 기억난다.

똑바로 선 자세에서 오른발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양팔을 수직으로 어깨선까지 올리며 두 팔은 둥근 해라도 모시듯 쳐들었던 춤사위. 그리고는‘무릇 외발서기는 뒤로 다리를 쭉 찢는 게 아니라, 이렇게 다리 하나로도 꼿꼿하게 서 있는 학처럼 하는 거란다.’라던 할아버지의 한 마디 역시 여전히 내 귀가에 쟁쟁하다.

학, 두루미라고도 불리는 이 새는 겨울철이 되면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오는 철새다. 어느새 수 십 번의 겨울이 들고 나는 동안 본처와 후처들 사이를 분주히 오가던 할아버지의 삶도 막을 내리고, 나 역시도 찬바람이 불면 야외온천탕이라도 찾아가 몸이라도 지지고 싶어지는 반백 살의 나이를 훌쩍 지나왔다. 특히 무릎이 시큰거리거나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기어이 목욕 가방을 들고 나서게 된다.

스파윤슬길이란 이름이 낯설다. 인공 실개천을 따라 걷다 양말을 벗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는 족욕탕에 발을 담가본다. 발끝부터 간질간질하면서 금세 나른해진다. 유난스레 습지가 많아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학이 무리지어 겨울을 났다는 이곳에서 온천수를 찾아낸 것도 다름 아닌 학이라는 전설이 떠올랐다. 학소대, 학암, 학란 마을 등등, 유난스레 ‘학’자가 들어 있는 지명이 많은 걸로 볼 때는 그럴싸하지만, 이는 발을 서늘하게 두는 걸 좋아하는 학의 성질과는 모순된다. 하지만 아주 오래 전에 갓 쓴 선비들이 찾아들어와 푸른 청학이 되었다던 청학동에 얽힌 전설에 비하자면, 마냥 믿기 어려운 것만도 아니다.

수면 안쪽과 바깥 온도 차이 때문에 눈앞이 뿌옇다. 기침 소리가 들리더니, 건너편에 앉아 있던 할머니 한 분이 구부정한 허리를 폈다. 그 모습에서 외발로 만년을 건너 온 내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열여덟 나이에 종손 며느리가 되었지만, 남편은 진정한 동반자가 아니었다. 그래도 모질게 마음먹고 어린 아들을 부산으로 유학까지 보냈지만, 울며 떠난 아들도 당신 품의 따뜻함을 잊고 더 먼 대처로 훨훨 날아가 버렸다. 이웃들이 남편 복도 자식 복도 지지리 없다며 수군거려도 당신은 촌구석을 떠날 수 없었다. 때가 되면 철없던 철새들이 다시 돌아올 거라는 희박한 믿음 하나에 기대어 텅 빈 집을 지켜냈다.

할머니는 몸매가 호리호리하고 다리가 길었다. 얼굴까지 자그만하니 발레리나의 조건을 타고난 셈이었다. 그런 할머니를 볼 때마다, 이미 할아버지의 손에 끌려 동래온천장에서 학춤을 본 적 있던 나는 단정하고 꼿꼿한 당신의 자태가 마치 한 마리 학 같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편히 속내를 터놓고 어우렁더우렁 어울리는 성품이 아니셨기에, 손녀인 나조차도 어린마음에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군무에는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백학 같다고나 할까, 고고한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여러모로 수더분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자주 듣던 나는 그런 할머니를 닮고 싶다가도 지나치게 삼가고 꺼리는 신독(愼獨)의 모습에 질려, 몇 번이나 학을 뗀 적이 있었다. 그 중 낙상으로 다친 다리를 수술한 후, 관절을 움직여야만 하는데도 불구하고 간병인의 도움 따위는 받고 싶지 않다며 뻣뻣하게 펴고 지내시다 결국엔 뻗정다리가 되었을 때도 그랬다. 심지어 내 부축까지 마다하고, 혼자 힘으로 외발서기를 하려 애 쓰시는 모습에서는 평생 내외의 쏠림 없이 삶의 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버텨온 안간힘 같은 것이 느껴졌다. 설령 백학(白鶴)도 다리를 다치면 도움을 청하려고 우는 모습을 보일 텐데, 당신 홀로 깔끔하고 고고한 척하는 태도는 밉다 못해 차라리 안타까웠다.

때로는 독무로 때로는 쌍무가 되어도 좋은 것이, 심지어는 춤꾼과 구경꾼이 따로 없이 섞이어 어우러져도 무방한 것이 동래학춤이다. 물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 춤의 유래에 따르자면, 소리꾼의 구음에 맞춰 흰 도포의 소맷자락을 너풀거리며 마당으로 뛰어나온 건 여느 집 아낙도 춤판의 남사당패도 아닌 갓 쓴 선비였다고 하니 막춤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물며 그 선비가 선보인 일자사위니 돌림사위니, 옆걸음사위니 하는 춤사위는 어느 정도 규정되어 있으되 자유분방한 즉흥성까지 허용되었다고 하니 기실 우리네 삶을 닮은 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 아마 이 동네 사람들은 마을로 날아드는 학의 모습을 유심히 보았을 것이다. 그러다 길고 긴 다리를 휘저으며 하강하는 모습을 흉내내보기도 했을 것이다.

나도 족욕통 속에 담근 발을 휘저었다. 퉁퉁 분 발가락이 외씨보선처럼 하얗다. 어디선가 자진모리를 치면서 악사들이 등장할 것만 같다. 그러면 맨발로 일어나 나도 살짝 어깨를 들어 올리면서 리듬을 탈 것만 같다. 그래, 지금 내가 있는 이 스파윤슬길 어딘가에서 반 백 년 전에는 한바탕 춤판이 벌어졌었다. 허름한 온청장에 딸린 낯선 다다미방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그곳이 어딜까?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봤다. 가족탕이 있던 온천장이라고만 기억날 뿐, 외관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찾는 건 금세 포기했다. 그날 춤꾼을 불러들여 맏손녀인 내게 제대로 된 동래학.춤을 보여주신 할아버지가 한량이면 어떻고 선비면 어떤가. 비록 당신께서는 동서남북으로 책임질 마누라와 식솔들을 만들어 놓고 철철이 이 집 저 집 떠돌아다녔어도 당신만의 행복한 삶의 중심을 잃지 않으셨는데......,

그래, 가끔은 나도 새처럼 어딘가로 날아가고 싶다. 하지만 그럴 때면 오히려 한 발로 똑바로 서서 다른 쪽 다리를 접어 발끝이 사타구니에 닿게 한 뒤 깊은 호흡을 한다. 나무를 뜻하는‘브륵샤사나’라는 요가 동작이다. 그러면서 한쪽 다리를 영영 못 쓰게 된 만년의 할머니를 떠올린다. 할머니는 외다리서기를 실패한 걸까? 어쩌면 할머니는 학처럼 사셨던 게 아니라 학을 기다리는 소나무처럼 사셨던 걸 아닐까?

생각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그만 일어나야겠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백발노인도 어느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저 만치 걸어가고 있다. 지팡이를 짚고 기우뚱기우뚱 걸어가는 모양새가 뽀얀 물안개 속에서 쓸쓸하게 너울거린다. 하지만 그새 한쪽으로 살짝 기운 어깨선 밑으로 날개라도 돋아났는지, 어느 틈엔가 거리의 젊은이들과 어울려 벌써 길을 휘어 돌고 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