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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좋은수필 베스트 10작품 / 다림줄 (최운숙)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24. 2. 23.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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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좋은수필 베스트 10작품 / 다림줄 ㅡ최운숙                          

 

전원주택 공사 현장이다.

나무받침대 위에 붉은 고벽돌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먹다 남은 물병이 제멋대로 흩어지고, 드럼통을 반으로 자른 파란색 통에 사모래가 한 몸처럼 엉겼다. 시멘트 자루가 커다란 입을 연 채로 눕고, 굵은 나무토막 서너 개가 아무렇게나 팽개쳐졌다. 페인트를 군데군데 묻힌 사다리 두 개가 등을 내린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가 왼손에 들린 고데에서 포슬포슬한 모래 밥을 펴 돌 사이에 바른다. 귀에 볼펜을 꽂은 남자는 바닥에 앉아 벽돌을 절단한다. 땀과 먼지로 범벅인 얼굴 위로 돌 가르는 요란한 소리가 다닥다닥 붙는다.

벽돌 사이로 줄이 내렸다. 출입문과 계단을 지나 통창에 걸렸다. 벽체가 수직의 기준을 잡고, 바닥은 평면과 직각을 이루며, 허공은 다림추가 잡는다. 각각의 위치를 표시한 노란색 실은 오와 열의 균형을 맞춘다. 조적 기술사는 돌을 한 줄씩 쌓을 때마다 수평실을 올린다. 이 실은 건축의 균형을 지나 지구의 중심과 일치하며, 무너지지 않는 건물의 기준이 된다.

신혼 재미에 푹 빠져있을 때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거실에 짐이 잔뜩 쌓여있었다. 잘 못 들어왔나 싶을 때, 시어머님이 나오셨다. 큰댁에 계셔야 할 분이 어떻게 짐까지 싸서 오셨는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결혼 일 년을 한 달처럼 즐기던 나는, 시어머님의 느닷없는 행동에 남편과 나 사이의 줄이 흔들이며 균형이 무너졌다.

손윗동서와 마음이 맞지 않아 막내아들과 살고 싶다는 시어머님의 부탁을 남편은 거절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게 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어떻겠냐는 상의도 없었다. 그도 설득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리라 생각했지만, 느닷없는 이 상황은 놀라움을 넘어 배신감이 느껴졌다. 하소연할 사람도, 마음 터놓고 상의할 사람도 떠오르지 않았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망하듯 살림을 꾸린 상황에서 엄마에게 하소연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내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소주 한 병을 벌컥벌컥 마셨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발길질했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일면서 호흡이 빨라졌다. 다시 한 병을 깠다. 거푸거푸 들이켰다. 힘이 생기며 무서운 것이 없었다. 술병을 빼앗는 그의 팔을 뿌리치며 헤어지자고 소리쳤다. 뜨겁게 달아오른 몸속으로 배신감이 끓어올랐다.

결혼을 반대한 엄마의 속뜻을 알 길 없는 나는, 서운함과 원망으로 입을 앙다물었다. 보란 듯이 잘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 오기는 온데간데없고, 기준점을 놓쳐버린 현장에서 균형을 잃고 비틀댔다. 그에게 소식을 받은 엄마는, 당신도 사돈과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며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라 하셨다. 그 말은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무서운 말이었다. 막막함이 왈칵 쏟아졌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설계도도 없이 초보 주부가 짓는 집은 엉성했다. 벽돌 하나가 들어갈 곳이 반쪽인지, 반의반인지, 뉘어야 할지, 세워야 할지 알지 못했다. 어설프게 올린 내 벽돌에 비해 어머님의 벽돌은 단단했다. 어떤 때는 단단한 것이 벽으로 느껴졌다. 부딪치며 깨어지고 상처를 드러내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어머님과 함께한 삼십여 년은 초보 주부를 시어머니 나이에 올려놓았다. 당신은 먼 곳을 바라보며 인공호흡기에 의지한다. 나는 시어머님의 수의를 매만지며, 새 식구를 맞을 준비를 한다.

만약, 엄마로부터 엄마도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면 나는 시어머님과 살 수 없다며 바둥거리다 가족을 놓아버렸을지도 모른다. 천방지축으로 자란 내가 어른을 모신다는 것은 불가능이라 생각했다. 엄마는 부모를 잘 섬기는 그릇은 되지 못하더라도 자식의 도리를 다하라고 처지 운운하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신 게다. 그 말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기준선이 되었다.

우리는 줄타기하는 곡예사처럼 흔들리며 산다.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장대를 좌우로 움직이며 중심 잡는다. 시선을 발아래 두지 않고 멀리 줄 끝에 두고, 몸이 쏠리는 반대 방향으로 장대를 움직이며 마침내 중심을 잡는다. 흔들려 본 사람이 중심을 잡을 줄 알고, 휘어져 본 사람이 이내 곧을 줄 안다. 그러니 중심은 흔들이며 잡는 것, 무너지며 많은 연습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가족이라는 공간에서 중심에 서기 위한 꿈을 꾸고, 세계를 향해 팔을 뻗는다. 가족은 보이지 않는 줄로 끊임없이 서로를 잡아당기며 끌어안는다. 원의 중심은 우주와 맞닿고, 가족은 삶의 기준을 세운다. 나의 중심을 잡게 하는 가치는 가족이다.

조적기술사가 레벨기로 줄을 놓는다. 화장실과 싱크대, 벽난로를 잇고, 방과 방을 지나 바닥과 천장을 잇는다. 수직으로 쏘아 올린 푸른 선을 향해 수평계가 바짝 따라붙는다. 다림추가 지구 중심을 향해 묵직하게 줄을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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