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사판(理判事判) / 홍 혜 랑
산사(山寺)의 겨울밤을 어찌 어둡다 하리.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선명하면 할수록 더 멀리 느껴지는 건 색다른 체험이었다. 멀리 있을수록 그리움이 더한 것이 어찌 별뿐일까. 고개를 하늘로 젖히니 걷잡을 수 없이 허공으로 빨려 들어가는 자신의 몸을 방어할 길이 없다. 별이 나를 마구 잡아당긴다.
살갗에 닿는 청량한 대기 또한 어둠을 씻을 만큼 상쾌하다. 이 무명(無明)의 영혼에게도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다. 이번 문화유적 답사팀이 숙소를 호텔이나 콘도 대신 절간의 선방(禪房)으로 정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별들과의 만남도 소중했지만 잠시 방문한 과객(過客)들에게 법문을 허락한 주지스님과의 인연이 있어 이번 여행이 더욱 기억에 남아 있는 듯하다. 일행 중에는 나를 포함한 기독교인이 꽤 많았지만 구도자의 덕담을 듣는데 종교의 이름을 문제 삼는 옹졸한 사람은 없었다.
우리 앞에 나타난 주지스님은 중년의 나이에 이지적인 학자의 인상을 풍겼다. 그런데 인상과는 달리 그의 법문은 인간의 지극히 형이하학적인 삶의 면면을 담담하게 쏟아냈다. 사심 없는 스님의 고백을 다른 곳이 아닌 선방에 앉아 들을 수 있는 행운이 참으로 흐뭇했다. 도승의 풍자 섞인 자조적 고백에 중생의 웃음소리는 선방의 담을 뛰어넘는다. 아마 이웃 선방에서 용맹정진 수행하고 있을 스님들도 때아닌 나그네들의 웃음소리에 잠시 입가에 미소를 지었을지 모를 일이다.
먹는 즐거움의 비중은 스님에게도 대단한 것이었다. 스님들의 혀도 우리와 똑같이 미식(美食)의 유혹을 받고 있었다. 그뿐인가. 선방에서 치열한 구도의 길을 걷는 동안 한없이 경직된 스님들의 심신은 지대방이라는 휴게실에서 그 유연성을 찾는다고 했다. 젊은 비구 스님들의 입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해학이 있어 지대방이라는 공간이 그들에게 더욱 사랑받는 사랑방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짐작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날 법문의 언어가 형이하학적이었다고 해서 곧 법문이 형이하학적이었다고 기억되지는 않는다.
원로 수필가의 글 속에 나오는 청자연적의 꼬부라진 꽃잎 한 개가 생각난다. 연적에 조각된 똑같이 생긴 꽃잎들 중에 한 개가 옆으로 약간 꼬부라져 있을 때 작가는 이것을 '멋'이라고 불렀다. 그날 스님의 법문도 참 멋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꼬부라진 한 개의 꽃잎이 보는 이에게 멋일 수 있으려면 꼬부라지지 않은, 반듯반듯한 주위의 꽃잎들로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 인간의 물질적이고 본능적인 면모를 가감 없이 묘사하는, 스님으로서는 약간 꼬부라진 위트가 어둡지 않고 오히려 구슬처럼 단아하게 빛났던 것은 오랜 세월 선방에서 갈고닦은 무서우리 만치 치열한 그의 안광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날 법문을 들으면서 많이 웃었다는 기억과 함께 스님이 줄곧 우리의 웃음을 채점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진주를 돼지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확인하려는 눈빛이 역력했다. 웃음에 가리어 놓쳐버릴 뻔했던 법문의 한 대목이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사찰 안에는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라는 역할 분담이 있는데 참선을 하고 경전을 공부하며 도(道)를 닦는 스님 쪽이 이판이요, 절의 살림살이를 맡은 쪽이 사판이라고 했다. 그날 법문하는 스님의 안광에 주눅이 들지만 않았다면 나는 금세 이렇게 질문했을 것이다. '기왕에 인생을 걸고 출가하여 입산수도할 바에야 도를 닦는 이판을 할 일이지 뉘라서 구차한 살림살이를 맡아하는 사판 쪽에 서겠는가'라고 말이다.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절간의 이판과 사판에 관하여 운(云)을 떼어놓은 스님이 '이판사판'이란 세상의 언어를 끝내 모르는 척 넘어간 점이다. 내 언제고 다시 산사를 찾는다면 꼭 한번 질문해 보리라 마음먹고 있지만 그것이 언제가 될는지 알 수 없으니 우선 제어할 수 없는 나의 궁금증을 스스로 달래보려 한다.
상황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때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까짓것, 이판사판이다'라는 중생의 언어가 사찰에 사는 스님들의 역할 분담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해탈(解脫)이란 말은 아무나 가벼이 입에 올릴 수 있는 어휘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해탈의 소망 하나만을 빼놓고는 모든 소유를 던져버린 출가 구도자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판의 스님이든 사판의 스님이든 그들 모두의 소망은 오직 하나이리니, 기쁨과 슬픔, 영광과 고난, 사랑과 미움, 귀하고 천함, 끝내는 삶과 죽음까지를 둘로 보지 않는 불이(不二)의 문(門), 아니 그 문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문(無門)의 삼매(三昧)에 드는 것이리라. 절간에서 맡은 일이 이판이면 어떻고 사판이면 어떻단 말인가. 이판이 곧 사판이요, 사판이 곧 이판인 것을.
그러고 보면 이판사판이란 말은 참으로 용기 있는 사람의 언어이어야 한다. 진리가 나를 어디로 인도하든 오직 진리에게 자신을 내맡기는, 진리를 향한 절대적 자기 개방의 언어 말이다. 하지만 초(礎)나라의 귤 나무가 제(齊)나라에 가면 탱자가 된다던가. 절간의 이판과 사판에서 태어난 이 말을 입에 올리는 중생은 오히려 진리를 밟고 넘어설 기세다. 어리석은 중생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진리에게 자기 자신을 맡기느니 차라리 진리보다는 자기가 더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할 수 있다고 믿어서일까.
세월은 나에게도 이순(耳順)의 성숙함을 강요하며 죄어오는데 아직도 화이트칼라, 블루칼라를 편가르며 양쪽의 무게를 저울에 달아보고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묻고 있었다. 그날 법문하던 스님께 던지고 싶었던 질문을 입 밖에 내지 못했으니 망정이지 근기(根氣) 낮은 나의 무례함을 어찌할 뻔했나. 이 천형(天刑) 같은 분별의 인습으로부터 잠시나마 자유롭고 싶은 뿌리 깊은 염원이 엉뚱하게 자의적(恣意的)일 수도 있는 언어 해석에 이르게 한 것 같다.
해탈과 나 사이의 거리는 빛의 속도로도 수억 광년이 걸린다는 저 별만큼이나 멀고 아득할지 모르나 밤하늘의 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리움의 가슴이야 어찌 죄 있다 하리.
너의 이성理性을 제한하라 / 홍 혜 랑
'불의不義를 동반하지 않는 정의正義는 없다.'
이 역설만큼 정의를 잘 표현해 주는 말도 없을 것이다. 지성과 지식을 동원해서 ‘정의’를 찾아 나선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자신의 책 《정의론》에서, 항로를 막아서는 이율배반이라는 빙하에 수없이 좌초당한다. 가령 대학입학 전형에서 소수 집단 우대정책이라는 배분적 정의는, 능력 있는 인재에게 돌아갈 평균적 정의를 훼손하는 옳지 않은 정책이라는 것이다. 배분적 정의를 선택하는 순간 평균적 정의가 부정된다. 그 역逆도 마찬가지다. 상호 모순되는 두 명제가 동시에 같은 권리를 가질 때 인간의 이성은 인식의 한계에 부딪힌다.
샌델 교수가 접근하는 오늘날의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문제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분리할 수 없는 연기의 끈으로 이어져 있어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정의를 찾아가는 샌델의 항해는 집요했다. 지칠 줄 모르는 그의 탐구는 독자를 차분히 줄탁啐啄의 선창으로 안내한다. 그의 줄탁 교수법은 독자의 지성을 넘어 독자의 마음을 얻었 다. 정의를 찾아 항해하는 샌델의 뱃길을 따라가다 보면 서양적 범주 문화의 물살 속에 어딘지 동양의 통합주의가 합수되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정의론》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곳이 한국이라고 했다. 한국인이 샌델의 《정의론》에 그토록 호감을 갖게된 것이 일시적 바람의 쏠림 현상이라고만 생각되지 않았다.
이쪽에서 보면 이것이지만 저쪽에서 보면 저것이라는 장자의 우언寓言, 이것과 저것의 차이差異가 아니라 이것과 저것 속에 걸쳐있는 차연差延을 직관한 노자의 자연론, 이 둘은 한국인의 무의식 깊은 곳에 잠재해 있는 뿌리 깊은 세계관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학문적 인식을 위한 방법론에서는 한국도 서양의 범주 문화를 많이 닮아갔다. 하 지만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일상은 이분법적 사유에 서양만큼 익숙하지 않다. ‘이것만도 아니고 저것만도 아닌’ 차연의 정서에 친숙한 한국의 독자라면, 시비是非를 가리는 일에 민첩하게 나서지 않는 한국형 독자라면 샌델의 끈질긴 줄탁의 보행에 마음이 끌렸을 법하다. 누구의 말처럼 붕어빵 속에 붕어가 없듯 《정의론》 속에도 정의에 대한 답이 없다. 정의를 찾아가는 발걸음이 있을 뿐이다.
알려진 대로 샌델의 《정의론》은 모두 10장章으로 구성되어 있 다. 정치철학가 샌델의 관심은 물론 사회적 정의였다. 일찌감치 제 2장에서 제러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등의 공리주의를 천착한 그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가 사회적 정의를 실현 하는 공동선公同善이 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제5장이 이마누엘 칸트 (1724~1804)의 정의론이다. 샌델은 공리주의가 왜 정의가 될 수 없는지 그 근거 중 하나를 칸트의 인간학에서 찾았다. 어떤 경우에도 개인은 집단적 행복의 도구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다. 얼핏 사회적 정의처럼 보이는 공리주의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시원적 정의와 충돌하는 모순 앞에서 정치철학가 샌델이 어느 길로 우회하는지 나는 더 이상 지켜볼 여유가 없었다.
불현듯 ‘인간은 존엄한 존재’라는 칸트의 계몽철학이 발목을 잡 는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말은 현대 사회에서 너무 흔하게 자주 쓰이는 상투적 수사가 되어버렸다. 샌델이 《정의론》 제5장에서 인간의 존엄을 칸트 당시로 되돌려놓은 느낌이다. 칸트는 인간 존엄의 근거를 인간의 ‘이성’에서 꺼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인 것은 아니고 동물로 태어나지만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인간으로 만들어 가는 이성적 존재’라고 했다. 창조의 여백을 채워 가는 제2의 창조자가 인간인 것이다. 칸트가 말한 이성의 의미는 세상에서 통용되는 경험적 이성보다 훨씬 본질적이다. 칸트의 이성은 감성에 대칭되는 반쪽짜리 경험적 이성이 아니라 “어떤 경험적 목적에도 상관없이 선험적으로 정해지는 순수 실천이성”이다. 이때의 실천이성만이 인간을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 칸트의 유명한 ‘도덕적 자유’다.
생각해 보면 정치철학자 샌델이 우려하듯 사회적 공리주의가 내 개인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다반사로 나는 나의 존엄성을 지켜주지 못했다. 칸트가 생각하는 인간의 자유는 세상에서 말하는 경험적 자유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의 근원, 거기서만 누릴 수 있는 절대적 자유를 의미한다. 자유를 향한 실천이성은 선택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무조건 따라야 하는 정언 명령이라는 것이다. 문학이 칸트를 경원하는 연유는 그의 까다로운 ‘자유’ 개념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궁금한 것은 샌델이 《정의론》에서 지적한 대로 칸트는 ‘그 자체로서 옳은 정언명령’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이런 말을 남겼다. “자유를 온전히 설명하기란 가장 평범한 사람의 이성으로 불가능하듯이, 가장 난해한 철학으로도 불가능하다.”
칸트가 생각하는 자유가 인간의 이성이나 철학으로는 설명될 수 없고 도달할 수 없는 선험의 세계라면, 그곳은 칸트 자신이 “하느님의 자리를 위해 너의 이성을 제한하라”고 말한 바로 그 지점이 아닐는지. “이성의 마지막 단계는 이성을 넘어서는 수많은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성이 인정하는 단계”라고 말한 파스칼의 고뇌가 칸트의 “설명 불가능“이라는 존재론적 세계에 겹쳐 보이기도 한다. 존재의 땅끝을 밟아본 거인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사유의 단애斷崖 그곳이 초월의 피안이 시작되는 어디쯤일 것만 같다.
신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도 정의의 문제에 대해서 심오하게 고뇌했다. “무엇을 근거로 이래야 하고, 저러면 안 되는지 자문했다. 내 변하기 쉬운 정신보다 높은 곳에 불변하는 영원한 진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재 자체에 이르러 나는 주님의 속성을 보았지만 나는 내 눈을 계속해서 거기에 고정시킬 힘이 없었다.” 정의의 속성이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속해 있지 않음을 체험한 또 한 사람의 오래 전 고백이었다.
정의가 무엇인가 묻는 것은 인간이 무엇인지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피조물 인간이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창조주의 작품은 허술하지 않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정의롭게 살 때 가장 행복하다는 체험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속성은 정의의 관문에서도 나름 멈춰 서기 마련이다. “영성을 배제하는 것은 오만이며 이성을 배제하는 것은 태만이다.” 교부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자인 안셀무스 (1033~1109)의 목소리가 역사의 바람을 타고 서서히 울려 퍼진다.
달인(達人)과 초인(超人) 사이 / 홍 혜랑
천 길 하늘 위에서 춤추듯 페인트칠을 하는 페인트공의 모습에서 긴장감은 추호도 느껴지지 않는다. 입에는 담배를 물었다. 담배를 다 피우고 나면 휘파람이라도 나올 것 같은 경쾌한 얼굴이다. 한 손으로는 탑의 철기둥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페인트 붓으로 허공을 가르며 유연하게 작업을 한다. 사진작가 마크 리부(1923-2016)가 30대에 에펠탑 보수작업 현장에서 포착한 〈에펠탑의 페인트공〉이라는 이 작품은 1953년 미국의 《라이프》 표지에 실리면서 세상에 꽤 알려진 작품이다.
어릴 적 남사당의 외 줄타기, 서커스단의 공중묘기를 구경할 때가 생각났다. 달인達人이 될 때까지 그들이 바쳤을 피나는 노력이 허공에서 진한 연민으로 피어오르던 기억도 생생하다. 날아가듯 사뿐사뿐 움직이는 페인트공의 모습에서는 연민이 아니라 예술가의 멋이 껴진다.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달인의 익숙함이 아니라 흥겨운 내적 감흥이 발산되는 축제 같은 분위기다. 생명의 율동에 동참하는 관람객의 마음도 즐겁다. 까마득한 상공에서 두려움 없이 흥겹게 작업하는 페인트공의 비력臂力이 부럽다.
학기마다 강의 평가에서 학생들로부터 최고의 점수를 독차지하는 교수에게 주위에서 비결을 물었다. 학문적 능력이야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일이니 그걸 물은 것은 아닐 터다. 남다른 것이 있다면 “강의실 문 앞에 당도할 때마다 언제나 기쁨이 넘친다”고 했다. 좋아서 하는 일, 기쁨으로 하는 일은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다. ‘신들린 무당끼가 있어야 선생을 한다’는 투박한 옛말은 선생뿐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신명나게 하는 모든 사람들의 체험에서 나온 말일 게다. ‘신들렸다’ 함은 초인을 의미하진 않지만, 숙련도를 의미하는 달인의 표징은 아니다. 신들릴 만큼 강력한 에너지는 이성적 의지가 아니라 감성의 솟구침이다. 이성으로 옥죈 자아는 결코 신바람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는 말을 우리는 입에 달고 살아간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성적 존재인가. 감정은 이성보다 강하다. 언제나 감정은 이성을 앞지른다. 감정의 쓰나미에 깔려본 적 없는 사람 있을까. 이성이 우아하게 감정을 제압해주는 경우가 없진 않겠지만 지속적이지 못하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인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니체가 ‘예술은 진리보다 강하다’고 했을 때 니체를 미치광이 산문가라고 혹평하던 지성의 목소리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연한 수레바퀴 소리에 시나브로 잦아들었다. 인간이 이성적 존재이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절망스러운 소망일 뿐이다.
니체 이전의 철학자 중 거의 유일하게 스피노자(1632-1677)만이 ‘이성의 윤리학’이 아니라 ‘감정의 윤리학’을 천착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Ethica)》는 과연 듣던 대로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니었다. 내용은 분명 감정에 관한 것들인데 그 표현이 너무 개념적이고 관념적이다. 철학가 강신주는 《에티카》 속에 들어 있는 까다로운 개념들이 공허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증명하고 싶었던지 자신의 책 《감정수업》 속에서 48편의 문학작품 하나하나를 스피노자의 《에티카》 속에 담갔다가 건져냈다. 톨스토이로부터 다자이 오사무에 이르기까지 등장한 문학작품 하나하나가 스피노자의 철학적 명제와 어떻게 오버랩 되는지 맞추어보는 작업이다.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라고 할까. 스피노자의 《에티카》가 350여 년이 지난 오늘 새롭게 살아난 느낌이다.
《에티카》에서 스피노자의 시선은 시종 인간의 감성을 따라 움직인다. 우리는 사물을 만날 때 기쁨과 슬픔 중 어느 하나의 감정에 사로잡히는데, 슬픔보다는 기쁨을 주는 관계를 지키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감정의 윤리학’을 ‘기쁨의 윤리학’ 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1656년 스물 네살의 나이에 유대교로부터 파문당한 젊은 스피노자에게 쏟아진 이단자, 배신자라는 사회적 비난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는 감성에 충성하다가 시대의 수문장이던 이성의 단죄에 희생된 역사의 순교자였다. 물론 《에티카》는 그의 생전에 출판되지 못했었다.
철학가 강신주는 《감정수업》의 프롤로그를 니체의 다음과 같은 언어로 시작한다. “이성은 감각들의 증거를 날조하도록 만드는 원인이다. 감각들이 생성, 소멸, 변화를 보여줄 때 그것들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저자 스스로 감정이 교살된 군대에서 기계 같은 로봇으로 살아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군대가 아닌 세상 속에서도 감정은 시시때때로 교살되기 일쑤고 감정이 안색이나 행동으로 빠져나오지 않도록 우리는 항상 숙련해야만 한다.
어제까지의 삶을 몽땅 지워버리고 싶은 좌절감은 팔십을 넘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몸이든 마음이든 까닭 모르게 불편함을 느낀다면 필연코 어느 귀퉁이라도 본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신호다. 어느 문인의 익살이 내 모습을 희화화한 것 같아 잊히지 않는다. “문제는 이론理論, 이성理性, 이상理想 등 이理라는 글자에서부터 시작된다.” 짧지 않은 세월 이理를 편애하는 자기 속박의 연속이었다. ‘느낌’이 행복의 원류라지만 그런 행복은 어쩐지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겉돌곤 했다. 행복으로부터의 도피였다고 할까. 감출 것 없는 지근의 사람들이 모인 회식 자리에서도 적당한 핑계로 알코올을 사양한다. 취기에서 나타날 이理가 빠져버린 내 모습을 알 수 없어서다.
《장자(莊子)》는 제물론齊物論에서 감성에 대해 이렇게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 밤낮없이 눈앞에 차례차례 나타나지만 그게 어디서 생겨나는지를 모른다. 그 까닭을 애써 알려고 하지는 말자. (…) 참된 주재자가 있는 모양이지만 그 모습은 볼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용은 뚜렷한데 그 형태는 볼 수 없다. 실체는 있으나 모습이 없다.” 우리 마음속의 감정은 주재자를 알 수 없는 자연 중의 자연인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에도 반드시 참된 주인이 있겠는데, 이 사실을 알건 모르건 참된 주인의 진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장자의 말을 곱씹고 있다. 영혼의 자기실현이야말로 그 기쁨이 어디서 왔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기쁨 중의 기쁨 아닌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인간의 감정에다가 그것을 주관하는 신을 하나씩 배속했다. 불만의 감정에는 모모스, 불화의 감정에는 에리스, 사랑의 감정에는 에로스라는 이름의 신을. 그리스 로마인들도 감정은 인간의 의지가 생성·소멸시킬 수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동서양의 공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로마인과 장자의 사유세계는 매우 근사했었구나 싶다. 인류의 역사 속에는 사람의 능력으로 해냈다고 믿기지 않는 걸작 문화유산들이 열거할 수 없이 많다. 이 모두가 ‘좋아하는 마음’의 수확이라고 생각하니 감성의 윤리학에 40년 남짓 짧은 인생을 쏟은 스피노자가 참으로 긴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마음’이 내부에서 자생하는 신기神氣인지 아니면 초월의 세계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주재자의 손길인지는 장자도 모르고 우리도 모른다.
알 수 있는 것은 이성이라는 질서에 갇힌 생명은 외롭다는 것이다.
자생적 신기도 초월적 주재자도 이성을 비켜가는 것일까. 자연이라는 전류가 차단된 작위의 운명이리니. 에펠탑의 페인트공을 보는 순간 내 안의 부자유가 그를 향해 비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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