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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에세이 / 강현자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23. 3. 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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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걸음에세이(정송강사편) / 한국수필 12월호 / 강현자

                                          환희산에 안기다 -정송강사-

 

그가 누워있는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산그늘마저 열기를 걸러내지 못할 만큼 푹푹 찌는 더위만 아니라면 단숨에 올라가도 좋으련만, 족자를 걸어놓듯 앞에 내걸린 오솔길을 오르자니 숨이 턱에 닿는다. 발끝을 보고 걷는데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잣방울이다. 이미 도사리가 되어버린 잣방울이 아직 싱싱한 초록빛을 머금은 채 발길 뜸한 산길에서 애처롭다. 솔방울보다 걀쭉한 몸매는 고결한 선비의 모습이요, 이미 끝이 뾰족하게 선 잣방울 조각은 대쪽같은 그의 성품이지 싶다. 실하게 열매를 맺지 못한 채 떨어진 잣방울의 모습에서 그가 떠오른 것은 어인 일일까.

 

강호(江湖)에 병(病)이 깁퍼 죽림(竹林)에 누었더니

관동(關東) 팔백리(八白里)에 방면(方面)을 맛디시니

어와 성은(聖恩)이야 가디록 망극(罔極)하다

연추문(延秋門) 드리다라 경회남문(慶會南門) 바라보며

하직고 물너나니 옥절(玉節)이 압패 섰다

평구역(平丘驛) 말을 가라 흑수(黑水)로 도라드니

섬강(蟾江)은 어듸메오 치악(雉岳)은 여긔로다

소양강(昭陽江) 나린 믈이 어드러로 든단말고

고신거국(孤臣去國)에 백발도 하도할샤

 

국문학사상 불후의 명작이라 할 만한 관동별곡 서곡이다. 송강은 벼슬을 그만두고 은거하던 중 선조의 부름을 받고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했을 때 관동팔경의 여정과 산수풍경, 자신의 소감 등을 화려한 문체로 여지없이 나타냈다. 정철의 시향을 느껴보려 그의 생을 둘러보기로 했다.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정송강사가 있다. 환희산 품에 안긴 그곳은 산새 소리만 들릴 만큼 고즈넉하다. 주차장에 들어서면 입구에 우람한 느티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반긴다. 400년 세월이 버거웠는지 목발을 짚은 느티나무엔 수많은 잎새들이 물감을 풀어 그림을 그린 듯 음영이 선연(鮮姸)하다. 햇빛을 받아 하늘거리는 초록 이야기들이 마치 송강의 생을 두런두런 나누는 듯하다.

홍살문 앞 신도비에 우암 송시열은 ‘마음은 호수같이 맑고, 기질과 절개는 대나무같이 푸르셨다.’고 했다. 정치인으로서의 송강에 대한 기억은 극단적이라고 할 만큼 양면으로 나뉜다. 충직하고 맑으며 의로운 인물이라는 평이 있는가 하면 아량이 적고 복수심이 강하다고 하는 이도 있다. 그러니 정치무대에서 그의 행로가 원만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지 모른다.

홍살문을 들어서기 전 왼편에 몇 개의 시비가 눈에 띈다. 술을 좋아했던 송강이라는 것을 알기에 장진주사에 눈길이 머문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세어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줄                 이어 매여 가나 유소보장의 만인이 울며 가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숲에 가기만 하면 누런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바람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휘파람 불 때 뉘우친들 어찌하리

 

죽어서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냐며 마시고 또 마시고 무진무진 마시자 한다. 이토록 술을 좋아하던 송강이다. 선조가 하루에 한 잔만 마시라고 은잔을 하사했는데 송강은 한 방울이라도 더 먹으려고 그 은잔을 찌그러뜨려서 대접으로 만들었다니 그가 얼마나 술을 좋아했는지 알 만하다.

송강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한 진정한 사랑꾼이었다.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만난 기녀 강아와의 사랑 이야기가 궁금하다. 강아는 정철이 임기를 마치고 떠난 후에 유배지까지 가서 수발을 들었는가 하면 지금도 강아의 무덤이 송강의 원래 묘소가 있던 고양시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저 스치는 바람은 아니었던 듯하다. 어쩌면 이 술 때문에 그의 정치적 입지가 불리하도록 빌미를 주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풍류를 즐길 줄 알았기에 그의 문학적 예술성이 한층 고조되지 않았을까?

홍살문을 지나 외삼문에는 그의 시호를 따서 지은 문청문(文淸門) 현판이 걸려있고 왼편으로 정철 시비가 걸음을 이끈다. 송강이 50세 되던 해 동인과 서인의 당파 싸움으로 사헌부와 사간원의 논척을 받고 고향인 창평으로 돌아가 은거하던 중 지은 사미인곡이 새겨져 있다.

 

동풍이 건듯 불어 쌓인 눈을 헤쳐내니, / 창밖에 심은 매화 두세 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냉담한데 그윽한 향은 무슨 일인고 / 황혼의 달이 쫓아 베갯머리 비치니,

느끼는 듯 반기는 듯 임이신가 아니신가 / 저 매화 꺾어내어 임 계신 데 보내오저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여기실꼬

 

송강은 경험에서 얻은 일상의 삶을 진솔하게 글로 담아냈다. 사미인곡은 정철이 호방한 품성을 지녔음에도 섬세하고 애절하리만큼 여성성을 보이기도 한다. 연군의 정을 마치 남편을 생이별하고 연모하는 여인의 마음으로 빗대어 자신의 충절을 고백한 가사다. 이를 두고도 지나치게 아첨한다거나 마음을 흐리게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니 이 또한 이념을 달리하는 반대 세력가들의 편견이 아니었을까 싶다.

 

정철 시비 맞은편에 팔작지붕을 한 송강기념관이 있다. 술을 좋아했던 터라 역시 옥배, 은배가 전시되어 있고 그의 친필편지와 생전의 시와 가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들에게 보낸 친필편지에는 무뚝뚝한 듯하면서도 자상한 아버지의 정이 엿보이기도 한다.

忠義門(충의문)을 지나 사당으로 올라선다. 목조 맞배지붕 아래 송강사(松江祠) 현판이 걸렸다. 슬쩍 비껴 열린 문으로 들여다보니 엄한 듯 선한 눈매의 송강 초상화가 나를 맞는다. 그보다 몇 년을 더 살고 있지만 유야무야(有耶無耶)하게 지내는 내게 뭐라 전할 말이라도 있는 듯하다.

명종 때 사헌부 지평으로 재직할 당시 명종의 사촌 형인 경양군의 죄를 집행해야 했다. 명종이 관대하게 용서하라고 사사로이 부탁하였으나 송강은 상감의 뜻을 거스른다. 더구나 명종과는 어려서부터 동궁에 드나들며 함께 거처도 하고 놀기도 할 만큼 가까이 지내던 사이가 아니던가. 이 일로 오랫동안 벼슬자리에 오르지 못하기도 한 것을 보면 그의 성품이 얼마나 대쪽같았는지 알 만하다.

 

그의 강직한 성품에도 불구하고 유달리 술과 여자를 좋아했기에 그것이 빌미가 되어 동인들로부터 숱한 화살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품성은 언제나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과 같았다. 정사(政事)는 정사대로 개인사(個人事)는 개인사대로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그다. 관직의 자리에서는 치열하게, 문학을 할 때는 섬세하게, 술을 마실 때는 호탕했으니 시대의 엘리트이자 풍류인이 아니었겠는가.

환희산 품에 안긴 사당을 뒤로 하고 남쪽을 바라보니 곁에서는 흐르는 물소리가 계곡을 가르고, 저 멀리 좌청룡 우백호 형상의 능선이 수묵화처럼 펼쳐졌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진천 땅에 송시열이 송강의 묘소를 이장하고 신도비를 세운 이유를 알 만하다.

물고기가 숨어있는 지형이란 뜻을 가진 어은골에 송강의 묘소가 있다. 정송강사 입구에서 300m쯤 떨어졌다. 그의 묘소로 향하다 도사리가 되어버린 잣방울에서 송강이 떠오른 것은 그의 생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대나무같이 푸르렀던 그의 기질과 절개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명나라에 사은사로 다녀온 후 도중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탄핵, 파직, 귀양…. 정철에게는 평생 익숙한 말들이다. 관직에 몸을 담고 굴곡진 삶을 살다 후세에까지 입방아에 오를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의 성품이 어땠는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개성이 강하고 타고난 기질에 충실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려는 의욕적인 인물이라면 오히려 본받아 마땅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 과거의 인물과 대화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문학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송강의 국문학사적 가치를 인정하고 기억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한문으로 된 글을 높이 사던 시대에 우리말을 차원 높은 예술 언어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었다. 요즘 한글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더 나아가 정철 같은 문인의 후예로서 우리의 문학도 세계무대로 성큼 올라서길 바라본다. 환희산에서 흘러온 한 줄기 바람이 어은골에 스민다. 소나무(松)의 절개가 강물(江) 되어 흐르듯이.

 

                                 발걸음 에세이(보탑사편) / 한국수필2022 11월호 / 강현자

                                      염원을 담다 - 통일대탑 보탑사 삼층 목탑-

 

목탑은 분명 꽃술이었다. 연곡리 보련산을 나지막이 둘러싼 산봉우리가 연꽃잎이라면 목탑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꽃술임에 틀림없다. 연꽃 피는 계절에 보탑사에 갔다. 보련골 계곡을 따라 이미 여름이 짙어간다. 전에 있던 연꽃밭을 찾았으나 잡풀만 무성해 못내 아쉬웠다. 보탑사를 둘러싼 보련산 능선이 어우러져 연꽃 형상을 하고 있으니 나는 이미 연꽃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가.

 

충북 진천군 연곡리 보련산 자락에 있는 보탑사는 한때 사진에 빠져있을 때 카메라를 둘러메고 철마다 찾던 사찰이다. 1996년에 창건하여 역사가 깊지는 않다. 고려시대 석탑 부재들을 모아 세운 삼층석탑으로 보아 이미 절터였음을 짐작케 한다. 다른 사찰처럼 고색창연한 모습은 아니지만 이른 봄부터 진사들은 물론 상춘객이 몰려든다. 비구니 스님들이 정성스레 가꾸어 놓은 야생화를 보러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입구에 수령이 300년을 훌쩍 넘긴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서 한 부부가 정담을 나누고 있다. 지나온 세월만큼 구불구불 휘어진 가지 사이로 하늘을 뒤덮은 초록 잎새가 바람에 파르르 떤다. 그 모습이 마치 부처님의 자비를 그 부부에게 흩뿌리기라도 하는 듯하다.

 

일주문은 따로 없다. 커다란 귀에 눈을 부릅뜬 사천왕상이 호통을 치는 듯하여 내 안의 삿된 기운이 다 사위어버린다. 사천왕상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바로 정면에 삼층 목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목탑 아래 꽃밭에는 정성스레 가꾼 부처꽃, 털중나리, 백일홍…. 친숙한 꽃들이 먼저 반긴다. 참나리는 무슨 염원을 담아 목을 길게 빼고 서 있는 것일까. 꽃잎은 쪽진 머리처럼 뒤로 젖혀 동그랗게 말리고 꽃술은 기도하는 여인의 긴 속눈썹 같다. 스님의 염불 소리가 경내에 울려 퍼진다. 나도 모르게 합장을 하고 삼배를 올린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보탑사는 3층 목탑으로 1층 큰 법당은 사면불전이다. 2층에는 법보전, 3층에는 미륵전이 함께 있어 더욱 장대하게 느껴진다. 목탑은 밖에서 보면 사각이지만 안에서는 원통처럼 하나로 통한다. 아파트 14층 정도의 높이에 쇠못을 전혀 박지 않고 목재를 끼워 맞춰 지었다는데 그 기술이 놀랍다. 게다가 안에서 3층까지 직접 올라가 볼 수도 있다.

 

1층은 부처님의 뜻이 사방으로 퍼지라는 뜻으로 사방불을 모셨다. 지금 스님이 앉아 계신 곳은 아미타여래가 중앙에 본존불로 모셔져 있고 협시불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좌우에 자리하고 있다. 동서남북에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석가여래, 비로자나불과 각각의 협시불을 양쪽에 모셨다. 부처님의 자비가 내게도 한 자락 닿기를 소망하며 탑돌이 하듯 손을 모으고 한 바퀴 돌았다. 약사우리광불 앞에서는 요즘 점점 나약해지는 체력이 나이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크게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소박한 마음을 전하고 나니 왠지 든든하다.

 

동서남북 사방불을 모셨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사방으로 퍼져 그 자비와 은혜가 모두 하나로 모아지리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심주(心柱) 둘레에는 999개의 간절한 발원이 담긴 원탑이 모셔져 있는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한쪽에 계단이 있어 올라가 보았다. 2층 법보전에는 윤장대 세 곳에 팔만대장경을 봉안했다고 한다. 원통형으로 된 윤장대는 경전을 넣은 책장이라고나 할까? 한 번 돌릴 때마다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다고 한다. 손으로 돌리면 돌아간다고 하는데 내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마 불심이 부족해서 그런 모양이다. ‘게으른 자여 성불을 원하는가’라고 했던 어느 사찰에서의 표석 글귀가 나를 부끄럽게 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래, 내가 뿌린 만큼 거두는 거지 더 바라면 욕심 아니겠는가.

2층과 3층 사이 암층에는 인도, 중국, 일본, 우리나라 목탑의 연원을 알 수 있도록 여러 종류의 탑을 사진으로 전시해 놓았다. 보탑사 3층 목탑은 신라시대 황룡사 9층 목탑을 이어받았다 한다. 목탑은 석탑과 달리 안으로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는데 속리산 법주사에 있는 팔상전도 목탑이지만 위층까지 올라갈 수는 없었다. 보탑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계단을 통해 3층까지 올라갈 수 있는 목탑이다. 황룡사 목탑이 삼한일통을 염원하여 지었다면 보탑사는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지은 통일대탑이란 말에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밖에서 보면 각 층마다 사방이 불전인 보탑이 안에서 하나로 통해 있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사방천지 울려 퍼져 한목소리로 통일을 염원하는 것이 아닐까.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

 

통일이 어디 남북통일만 있겠는가. 초고속으로 발달하는 문명의 이기로 세대간의 격차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어른은 자칫하면 꼰대로 치부되기 쉬우니 옳은 말 하기도 조심스럽다. 이제 아이들은 어른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배운다. 노인이 소외되는 세상보다 어른, 아이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이 아쉽다. 세대 간 갈등뿐 아니라 남녀 간 갈등도 심상치 않다. 언제부턴가 양성평등을 부르짖고 있지만, 겉으로는 나아지는 듯 보여도 속내까지 평등을 인정하기는 아직 요원한 것 같다. 평등의 잣대가 서로 통일되지 않은 바에야 양성평등도 공염불이 되지 않을는지. 게다가 지역간의 갈등, 좌파와 우파, 흙수저와 금수저…. 우리가 하나로 뜻을 모아야 할 곳이 참 많기도 하다. 그야말로 국민대통합이 이루어지기를 부처님 앞에 발원해 본다.

 

3층으로 올랐다. 미륵전이다. 화려한 금동보개 아래에 미륵삼존불을 모셨다. 신도 셋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기도 삼매 중이다. 무엇을 발원하는 것일까. 분위기에 압도되어 나도 따라 미륵불의 용화세계를 감히 넘실거려보지만 가당키나 한가 말이다.

미륵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든 후 56억 7천만 년이 지나면 이 사바세계로 돌아온다는 부처님이다.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먼 미래지만 우리에게 미륵불은 그야말로 희망이라는 믿음을 준다. 땅은 유리와 같이 깨끗하고 평평하며 꽃과 향기로 뒤덮인 세계, 지혜와 위덕을 갖추고 안온한 기쁨으로 가득 차 8만 4천 살이 되도록 살 수 있다니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 미륵 세계에 도달할 때까지 티끌만치의 죄업도 모두 씻어내라고 그 긴 세월이 주어진 걸까? 용화세계로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을 터, 나는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 것일까. 어쩌면 수억 년 전부터 나의 존재가 이어져 왔는지도 모르겠다. 물리적인 존재는 남아있지 않지만 나도 모르는 영혼의 존재가 지금의 나를 있게 했는지도…. 그렇다면 지금도 나는 용화세계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정숙한 미륵전을 내려오는데 계단 소리가 유난히 삐걱 소리를 낸다. 그동안 삿된 마음으로 살아왔음을 꾸짖는 소리 같다. 이제라도 죄악의 씨앗을 없애고 업장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여여하게 살 수 있기를…. 내려오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목탑을 한 번 더 돌며 영산각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중생들을 만난다. 불유각(佛乳閣)에서 목을 축이고 지장각을 지나니 반가사유상이 보탑을 향해 앉아 은은하게 미소짓는다. 그 미소가 어떤 의미일까?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 공덕과 수행을 쌓아 세상 모두가 하나 되어 극락을 향한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른 것은 아닐지.

와불을 모신 적조전(寂照殿)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열반하시면서도 빙그레 법열을 보이사 부처님은 내게도 깨달음의 미소를 보내신다. 풍경소리가 은은하다.

 

되돌아 나오는 길에 범종각과 법고각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둥둥둥… 어디선가 하늘의 소리가 보련산에 닿은 듯하다. 눈을 감지 않는 나무 물고기는 어느 바다에서 이곳 보탑사까지 올라왔을까. 바다가 산이고 산이 바다라는 깨달음을 전하려는 것일까. 한갓 미물에 울고 웃고 너와 나를 경계 지으며 미세한 차이에도 핏대를 세웠다. 목어와 눈을 맞춘다. 복잡한 세상도 알고 보면 하나일 터인데.

 

땅에 닿을락 말락 범종이 용두 아래 묵직하다, 하대 크기만큼 움푹 파인 홈에 시기와 질투, 욕심, 이념 대립…. 중생의 번뇌를 모두 모아 맥놀이로 거듭나니 이는 땅의 소리다.

 

법고에서 울리는 하늘의 소리와 범종이 품은 땅의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우주 만물이 결국 하나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온 세상에 전하는가.

남북으로 갈린 이념을 하나로 모으고자 했던 보탑사 창건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며 천왕문을 나선다.

 

                             나르시스가 기다린 님프 / 강 현 자

 

오해와 진실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헤라의 저주가 아니었다면 에코는 사랑을 이루었을지 모른다. 목소리가 아름다운 에코도 나르키소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마음과는 다르게 메아리만 들려줄 수밖에 없던 에코가 나르시스에게 하려던 진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냥 ‘(사랑)해요 해요 해요…….’ 뿐이었을까? 메아리만 들은 나르키소스가 에코의 마음을 알 리 없다.

 

흰 눈이 소복이 내리던 어느 날 돌계단 아래 무언가가 파르라니 눈짓을 하고 있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나만큼 급했던지 벌써 나와 떨고 있다. 이파리 끝은 점점 누렇게 말라가고 내가 오가며 멋모르고 짓밟은 흔적도 역력하다. 서둘러 나오더니 상처투성이다. 안쓰럽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저러다 그냥 스러지겠지.

 

내 생각은 빗나가고 있었다. 한겨울 눈이불을 덮고 냉기를 견뎌낸 새싹은 날이 갈수록 생명의 푸른 피를 길어올리고 있었다. 이게 뭘까? 지난 초겨울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 와 어디서 무슨 싹이 나올지 나도 아직 모른다. 하여 이번 봄에 누가 제일 먼저 봄소식을 전할까 내심 기다리던 중인데 첫 번째 주자가 꼴이 영 아니다. 그래도 용케 살아난 것이 기특할 뿐이다. 그러고는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리고 그의 시난고난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가 상처를 보듬고 있는 동안 나의 시선은 녹두 빛 매화 봉오리에 머물렀다. 아침 서리에 봄까치꽃이 화들짝 놀라고 양지바른 곳에서는 별꽃도 점점이 눈에 띈다. 오며 가며 내가 밟은 꽃씨들은 또 얼마나 절망했을까. 이것들에 사죄하듯 허리를 낮추고 고개를 숙여 겨우 그들과 눈을 맞춘다.

밤사이 얼었던 대지에 햇살이 스미고 출산의 고통을 마친 생명체의 숨소리로 마당이 술렁인다. 돌계단 아래 그 녀석도 어느새 진초록 긴 잎사귀를 무더기로 올리기 시작했다. 내게 밟혔던 자국도 사라지고 새살이 돋는다. 낯이 익다.

 

아, 너였구나, 수선화.

 

누렇게 뜬 이파리는 어느새 생기를 찾고 꽃대를 쭉쭉 올리더니 황소바람에도 건들건들 봉오리를 터뜨렸다. 춘분을 앞두고 매화나무도 이제 겨우 벙글었는데. 한 송이, 두 송이…, 어느새 셀 수 없이 많은 꽃들이 노랑노랑 하며 머리채를 살랑댄다. 접시처럼 펼쳐진 다섯 장의 연노랑 꽃잎과 가운데 진노랑 잔 모양 꽃잎이 볕을 받아 투명하다. 날갯죽지를 뒤로 젖힌 채 작은 몸을 앞으로 쑥 빼고 어미를 찾아 달려가는 병아리 같다. 그 모습이 낫낫하면서도 당차 보인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누구보다 먼저 당당히 꽃을 피워냈으니 수줍어할 줄 모른다고 누가 탓하랴. 겸손하지 않다고 누가 나무라랴. 자신을 낮추기는커녕 처음 꽃대가 올라올 때보다 고개를 더 들었다. 이 당당함이란…. 연못을 들여다보는 나르시스의 모습도 이랬을까? 나르시스가 스스로 반할 만도 하겠다. 내게도 그런 수선화 같은 친구가 있다.

 

낯을 가리지 않는 그는 첫 만남에서부터 누구에게든 적극적이다. 서먹함도 농으로 풀어가는 그녀 주변엔 늘 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기독교인인 그녀는 우연히 찾은 절에서도 스님을 도와 법당 청소를 할 만큼 서글서글하다. 식당에서도 반찬이 모자라면 다들 쭈뼛쭈뼛하는 사이 선뜻 나서서 더 줄 것을 당당히 요구한다. 자신의 장점을 스스럼없이 얘기할 만큼 솔직하고 남이 일러주는 단점도 바로 수긍하며 받아들인다. 그런 시원시원한 모습을 사람들은 좋아하면서도 뒤에서는 잘난 척을 하느니 자기 자랑을 하느니 하면서 수군대곤 한다.

어려서부터 그녀는 장사하느라 바쁜 어머니 밑에서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하며 자라야 했다. 마음 기댈 형제도 없이 외로웠다. 평생 봄이 오지 않을 것 같던 겨울 같은 세월을 당연한 듯 여기며 살아왔다. 그의 적극적인 성격은 아마도 들풀처럼 강인하게 살아온 힘든 역경 속에서 얻은 소산이지 싶다.

 

애면글면 살아온 지난날의 자신이 스스로 대견하다. 그녀에게 봄 같은 오늘은 덤이다. 행복은 불행을 겪고 나서야 찾아오듯이 그녀가 그랬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늘 즐겁고 당당하다. 역경을 딛고 일어섰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싶은데 사람들의 시선은 늘 지금의 모습에만 머문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정욕구가 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든 인정받지 못한다면 삶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크게든 작게든 누구에게라도 인정받을 때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에코는 나르시스를 사랑했지만, 나르시스 자신도 원하던 사랑을 얻지는 못했다. 님프들의 사랑을 외면했기에 그가 도도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인정욕구를 채워준 님프가 없었던 것은 아닐는지. 수선화는 홀로 엄동설한 언 땅에서 서둘러 촉을 끌어올리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끝내 수선화가 꽃을 피워내면 그 아름다움에만 탄복할 뿐 아픈 과정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어쩌면 나르시스는 지독히도 외로웠는지 모른다. 남이 알지 못하는 그만의 고통이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더욱 당찬 모습으로 피어났을 것이다. 그는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아픔까지 사랑해줄 님프를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나르시스. 그의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추어진 외로움이 봄바람에 일렁인다. 아무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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