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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는 무상 하다 / 배 길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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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대명화 2023. 2. 7.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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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존재는 무상 하다 / 배 길 관

 

석가(釋迦)는 우주자연의 상변성(常變性) 즉, 현상세계는 ‘항상 변화 한다’는 무상의 진리를 깊이 깨닫고 나서 ‘제행무상(諸行無常:모든 존재는 무상하다)’이라고 천명하고 이를 불교의 근본교리인 삼법인(三法印)의 하나로 삼았다. 무상은 불교적 사유의 출발점이며 석가가 가장 중요시한 근본교리라고 한다.

무상은 결코 허무하다든가 허망하다는 염세적인 의미가 아니라 ‘항상 하지 않다’ ‘변화 한다’ ‘덧없다’라는 뜻으로 천지자연의 존재 실상을 통찰한 본질적인 깨달음이다. 존재를 흔히 시공을 초월하는 영원불변한 실체와 시공안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으로 구분한다. 그 중 물질과 정신을 포함하는 모든 현상은 인연 따라 생멸(生滅)하는 것이며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제행무상의 본래 의미이다. 무상은 곧 생멸이며 생멸은 나고 죽는 것이다. 천지자연은 나고 죽는 것이 단절 없이 이어지면서 영속된다. 시공안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무상함이 현상세계의 참모습이다. 영원은 변화의 연속이며 무상이 바로 영원의 원리이다.

무상은 현상세계의 시간적인 존재방식을 말한 것이다. 삼라만상은 시간적으로 무상이라서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공간적으로 무아(無我)라서 주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불가의 전통적인 세계관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지금의 연속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가고 오는 것이기 때문에 무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속에 있는 모든 것은 새롭고 무상하다는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 인생도 일회성과 유한성이라는 생멸의 질서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덧없다’ 하는 것이다.

기독교를 죄(罪)의 종교라고 하고 불교를 고(苦)의 종교라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을 괴로운 욕망의 세계로 보고, 그 괴로움의 원인을 무상에서 찾는다. 그들은 ‘모든 존재는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라고 가르친다. 성철스님도 ‘무상이 아니면 괴로움도 없다’라고 설법(說法)한 바 있다. 무상을 의식하지 못하는 무명(無明) 때문에 백년도 못사는 인생이 죽음을 의식하지 못하는 착각 속에서 ‘나와 내 것’에 집착하는 탐욕이 생기고 탐욕에서 번뇌 망상이 생기고 번뇌 망상에서 괴로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불교의 믿음은 다름아니라 무상을 깨치고 괴로움을 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무상을 의식하고 괴로움을 없앤 경지를 해탈 또는 열반이라고 한다.

괴로움과 즐거움도 무상하게 오고 간다. 괴로움 속에 즐거움의 씨가 있고 쾌락에 취해 있을 때 이미 고통의 싹이 자란다. 불행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행복이 있기 때문에 불행이 있고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괴로움도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무상을 모르고 ‘좋은 것’에만 매달리기 때문에 고통이 더한 것이다. 싫은 것이 없으면 좋은 것도 없는 법인데.

세월무상이요 인생무상이다. 우리가 원하는 원하지 않든 세월은 빨라 화살같이 달아나고, 세월 따라 인생의 영고성쇠(榮枯盛衰)가 덧없이 일고 진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우리가 사랑하고 미워하는 모든 것 기뻐하고 슬퍼하는 모든 것 즐거워하고 괴로워하는 모든 것 중에서 항구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몸은 아침이슬 같고 마음은 아지랑이 같다. 태어난 것은 모두 생자필멸(生者必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속절없이 사라진다. 이것이 진리의 눈으로 본 인생의 참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상의 가르침은 무상한 인생에서 무한한 가치를 찾고자 하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짐이다

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서산대사 해탈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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