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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주제와 문학성/ 이 정 림

수필작법 도움 글

by 장대명화 2022. 8. 2.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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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주제와 문학성/ 이 정 림

 

한 편의 수필을 읽고 났을 때, 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느낌을 갖게 된다. 첫째는, 이 작가는 무엇을 말하기 위해 이 글을 썼을까 하는, 그야말로 감(感)이 전혀 잡히지 않는 글이 있다. 이런 글은 대개 주제가 난삽하거나 애매한 탓에도 그 원인이 있을 수 있겠으나 대부분은 주제를 끌어 나가는 기량이 부족한 글일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이 작가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글을 썼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글이 있다. 이런 글은 한마디로 전혀 주제의식이 없이 쓴 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글자 그대로 생각나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썼다고나 할까. 세 번째는, 이 작가는 바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썼구나 하는 감동과 공감을 안겨 주는 글이 있다. 그 감동은 글을 읽는 동안에 느껴질 수도 있고, 다 읽고 난 후에 서서히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글은 대개 처음부터 분명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한다. 다만 주제가 읽는 도중에 표면에 노출되는 경우는 글이 이지적이며 경문장적(硬文章的)인 데 반해, 주제가 암시적으로 밑바탕에 깔리게 되는 경우는 글이 서정적이며 연문장적(軟文章的)이라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주제(主題)란 무엇인가. 주제란, 한 작가가 그 글을 쓰는 이유요 정신이요 사상이다. 어느 개인이 자신의 일기장에다 혼자만 읽는 글을 쓴다면, 그 글에 주제가 있든 없든 하등의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작가라는 사람이 남이 보는 지면에 글을 발표한다면, 그는 최소한 작가정신이라는 것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해마다 신인이 적잖이 배출되는 수필 문단의 양산(量産)에 문제성마저 제기되는 현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수필은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수필을 쓰는 사람들은 수필이 문학의 서자(庶子)가 아니라 당당한 한 장르로서 인정되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전문적인 작가라는 생각에는 그 인식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감정의 여유, 생활의 여유, 명예의 여유를 즐기는 귀족주의 내지 선민의식에 젖어 있는 듯한 느낌이 더욱 강하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요인이 수필을 쓰는 사람들로 하여금 투철한 작가정신을 가질 수 없게 하는 원인(遠因)이 되는지도 모른다.

수필 쓰는 사람들에게 가장 거슬리는 말은 수필을 신변잡기라고 하는 것이다. 수필인들이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잡기(雜記)’라는 두 글자다. 그러나 사전 풀이가 아닌 ‘잡기’라는 말이 갖는 뉘앙스에는 분명한 주제가 없이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늘어놓은, 즉 작품성이 결여된 객쩍은 말의 기록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면 신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인간사(人間事)에서 소재를 얻는 수필이 신변잡기에 머무르지 않고 문학성을 지닐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수필에 작가의 중심되는 사상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수필은 일인칭 문학이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선택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진실의 문학이다. 이 말은 수필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 내지 모사(模寫)하는” 문학이라는 뜻이 아니다. 수필가는 수필을 쓰는 데 결코 사실의 기록에만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그 사실을 소재로 택하게 된 주제의식을 가지고 글에 자기의 사상과 의미와 철학을 심어 넣는다. 이 의미화 작업을 통하여 수필은 신변잡기에서, 사실의 기록에서 어엿한 문학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수필이 어느 문학 장르보다 진한 감동과 공감과 친근감을 주는 것은, 그것이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장르적인 특성 때문이다.

다만 그 수필이 작품성을 지녔느냐 지니지 못했느냐에 따라 수필로서 대접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판가름이 지어질 뿐이다. 그리고 그 판가름은 작가의 시각과 작가의 사상에 좌우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강한 것보다는 부드러운 것의 울림이 더욱 크고 오래 가는 법이므로, 수필의 주제는 직접적으로 노출시키기보다는 함축적으로 처리하는 편이 더욱 문예적이 되리라는 것은 기법에 속하는 문제일 따름이다.

나는 어떤 주제의식을 가지고 임했던가를 소개하기로 한다.

 

<문안에 있는 자와 문밖에 있는 자>(《 隨筆公苑》 1985. 겨울)

이 수필을 쓸 당시만 해도 학생 데모를 소재로 한 글은 발표하기 어려운 정치적인 제약 때문에, 이 수필은 지극히 상징적인 수법으로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학생과 전경이라는 이질적인 집단에 속한 두 젊은이를 바라보면서,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뇌와 아픔을 그리고 싶었다.

 

<흙>(《 韓國文學》 1987. 8.)

소재는 흙이지만, 흙처럼 귀중하면서도 그 고마움을 잊고 사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을 주제로 삼았다.

 

<그 뜨겁던 6월>(《 隨筆公苑》 1986. 여름)

소재는 6·25 전쟁이 일어난 당시 석 달 간의 이야기에서 얻은 것으로, 이 글에는 용감하고 꿋꿋한 큰어머니와 인민군의 앞잡이가 된 천만이라는 두 대조적인 인물이 나온다. 내가 이 수필에서 애정의 초점을 맞춘 것은, 강한 의지의 소유자였던 큰어머니보다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이념 전쟁에서 희생되어야만 했던 이 땅의 힘없고 무식한 백성들의 슬픈 인생이었다.

 

<외길의 고독 그리고 아름다움>(《 월간 에세이》 1988. 6.)

소재는 서품을 받고 첫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의 모습에서 얻었지만, 한 인간이 자기가 택한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는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고독이 동반되는가를 그려 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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