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는 이별 / 허 정 진
한여름 마른하늘에 제비들이 갑자기 땅바닥으로 낮게 날기 시작하면 곧이어 소낙비가 쏟아질 것을 예고한다. 빨래도 걷고 장독 뚜껑도 닫아야 한다. 정원에 멀쩡하던 소나무가 청청하던 빛깔을 잃고 솔방울만 촘촘히 맺고 있으면 더 이상 생존이 힘들어 최후의 번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이다. 그 이유와 까닭을 서둘러 확인해야 한다.
갑자기 건강이 나빠졌다거나, 갑자기 담벽이 무너졌다면서 불가항력처럼 이야기들 하지만 알고 보면 사전에 낌새와 귀띔이 분명 있었다. 평소보다 혈압이 높아지거나,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벽에 금이 가거나 하는 조짐 말이다. 그 경고를 미리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갑자기 발생한 일로 착각하는 것일 뿐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예고 없는 결과는 세상에 없다.
아버지가 그랬다. 그 겨울엔 기침이 무척 심했다. 입을 열기만하면 끊이지 않는 헛기침과 쇳가루 달라붙은 듯한 숨소리가 힘들어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지 못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겨울감기려니 대수롭잖게 여기고 약을 지어 먹었지만 효과가 신통치 않았다. 제대로 진찰이나 받아봐야겠다며 평소처럼 외출복 차림으로 병원에 들리신 게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마지막 나들이가 되고 말았다. 폐섬유화병. 폐가 굳어서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다는 진단결과였다. 이러다간 앞으로 정상적인 호흡이 불가능하다는 주의성 경고가 아니라, 이 지경이 되도록 지금까지 아무것도 몰랐느냐는 선고형 질책이었다. 정신과 오장육부가 멀쩡한데 사람이 되어서 숨을 쉬지 말라니, 낮 도적을 만난 것처럼 순간 얼마나 기가 막히고 눈 앞이 황망하셨을까. 한 달 가량을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무상한 삶의 종말을 의심하고 여투다가 그 길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평소에도 기침이 잦고 목소리가 노쇠했었다. 언덕길을 조금만 올라도 숨이 새근발딱거리고 눈물 같은 땀이 온 몸을 타고 흘렀다. 등산은커녕 동네 공원 발걸음도 쉽게 피곤해짐을 이유로 별반 내키지 않아 하셨다. 몇 해전부터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로한 나이 탓으로, 쇠약해진 기력 탓으로만 애써 외면하고 말았다. 우둔하고 주의력 없는 자식들은 아버지가 갑자기 아프고,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주위에 변명하기 바빴다.
바보 아버지라고 항변했다. 아픈 시늉이나 엄살도 부릴 줄 모르고, 아파도 식구들 걱정이 염려스러워 겉으로 내색 한번 할 줄 모른다고 뒤늦게 호들갑이었다. 불치의 병이라 할지라도 남들처럼 몇 년간의 시한을 주었더라면 못다한 호강이나 맛난 음식점, 경치 좋은 곳에 구경도 하면서 서둘러 효도를 하지 않았겠냐고 되레 신경질들 부렸다. 치매나 오랜 병고로 자식들 고생도 시키면서 효심의 정도와 진위여부도 시험해 보았어야 마땅하지 않았냐고 다투어 엉너리치는 소리나 나달댔다. 미처 하지 못한 효도에 대한 풍수지탄이고, 일종의 죄의식이었다.
노후를 산수 좋은 시골에서 지내기를 권했지만 힘 닿는 데까지 일하면서 살겠다고 무소 뿔처럼 고집을 피우시더니 결국 망자의 몸이 되어 고향산천으로 귀향하셨다. 별다른 취미나 놀이에도 관심이 없어서 세상 아버지들처럼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근면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 자식이 뭔지, 젊어서는 조금이라도 잘해주려 애면글면하고 늙어서는 조금이라도 짐이 되지 않으려 노심초사했다. 맘 편히 휴가를 즐긴 적도 없어서, 주위의 독려와 응원이 있고서야 처음으로 어릴 적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한 이른 봄, 그 정겨운 추억의 진달래가 채 피기도 전에 혼자서 하늘여행을 떠났다. 그저 바쁘고 강하게 사는 것만이 옳고 잘하는 일인 줄만 알았던 이승의 시간들, 병상에 누워 스스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서야 세상 앞에 무기력하고 허탈한 표정이 얼마나 또 아버지의 그 가난한 삶을 안쓰럽게 만들었는지…….
어린 꼬마가 하늘에 연을 띄웠다. 해동의 얼음장을 깨고 봄바람 싱그러운 날, 창호지와 밥풀과 대나무 살을 앞마당에 펼쳐놓고 아버지가 솜씨 좋게 연을 만들어 주셨다. 연 꼬리를 길게 두 개씩이나 달고서도 좀처럼 하늘자리를 잡지 못하고 불안하게 요동을 칠 때마다 아버지가 곁에서 연줄을 대신 붙들어 세상 한가운데 안전하게 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소매 자락을 걷어 올린 아버지의 팔뚝은 검붉은 핏줄이 불끈거리는, 영화 속의 삼손처럼 어린 눈에 웅장한 모습 그대로였다. 느티나무 같은 믿음, 태산 같은 존재감은 그 탄탄한 팔뚝에서 나오는 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무쇠 같은 삶의 연줄을 이제 허공 속에 힘없이 놓아버린 것이다. 여기저기 수많은 주사바늘 자국으로 시퍼렇게 멍든 아버지의 팔뚝은 그렇게 삭정이마냥 야위어져 힘겨운 호흡소리에도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생명은 예측의 대상이 아닌 모양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난다고, 평소에 건강하다고 해서 모두가 장수를 보장받은 것은 아니다. 황당무계한 사고나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천재지변은 또 얼마나 많은가. 멀쩡한 하늘에 소낙비 오듯, 청청하던 나무가 하루아침에 푸른빛을 잃듯 세상의 일들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로 예고 없이 다가올지 아무도 모른다.
‘세월은 나를 기다리거나, 나 때문에 멈추지 않는다(歲月不待人, 歲月不我延).’고 한다. 효도에 때와 장소가 따로 있을 수 없다. 효도하는 자식은 거리가 가깝게 산다고, 시간이나 재산에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닐 것이다. 마음이 가까워져야겠다. 훗날 내가 출세하고 성공해서 호의호식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먼저 부자가 되어 평소에 손과 발과 가슴으로 하는 효도가 최선이고 최적이 아닐까 한다.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서 자랑스러웠다고, 임종을 앞두고서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건넨 그 불효가 참으로 후회스럽다. 예고 없는 이별은 평생을 두고 가슴에 담아야 할 아픈 상처를 남겼다
배꽃의 꿈 / 허 정 진
읍내 뒷산 친구네 가는 길에 배밭이 있었다. 요즘 과수원처럼 울타리나 살수기 같은 시설물도 없고, 여든여덟 번의 손이 가는 벼농사처럼 누군가 사시장철 계획적인 경작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잎눈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도 나무 스스로인 줄 알았는데, 가을 수확기가 되면 어김없이 주인이 나타나 터줏대감처럼 권리 행사를 하였다. 배나무 사이 언덕길에 얼씬거리거나, 떨어진 낙과 하나 눈길을 두었다간 행여 서리나 하지 않을까 의심받기에 십상이었다.
봄기운이 완연한 날, 산골짝에서 명지바람이 불어오면 하얀 배꽃이 눈송이 나리 듯 온 세상에 너울거렸다. 새침데기 그녀의 까만 갈래머리에도 나물 캐러 가는 품안의 소쿠리에도 꽃잎이 나비처럼 내려앉았다. 산등성에는 모양이 각양각색인 나무가 제 요량과 기운대로 멋스러운 골격미를 자랑하고, 잎파랑이 물오른 잎새들은 로망스 협주곡을 연주하듯 부드럽게 살랑거렸다. 여유와 조화로움이 봄날 물오르듯 했다.
추석이 다가올 무렵이면 어머니를 앞세우고 기세등등하게 배밭에 갔다. 명절 손님치레를 위해 한 고항주리 주문을 해놓으면 주인은 비탈을 오르내리며 배를 따느라 손발이 분주해진다. 결실의 중량감에 가지마다 바지랑대로 받쳐놓았던 배를 까치발로 손을 뻗대거나 작은 나무 사다리로 발돋움하며 조심스럽게 따 내린다. 입가로 흘러내리는 그 시원하고 달큼한 과즙의 맛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그리워하듯 막연한 아쉬움과 이야기를 품은 채 오래된 유년의 추억으로 남았다. 그것이 오래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배꽃이었다.
아치형 낮은 터널이다. 넓고 편평한 들판에, 비행장의 격납고 같은 쇠파이프 구조물이 똑같은 모양으로 오열을 맞춰 질서정연하게 자리하고 있다. 가운데 통로는 사람이나 농기계가 지나다닐 수 있게 텅 비어있고, 땅으로 구부러진 터널 양쪽 가장자리에는 돌기둥 같은 잿빛 나무가 자로 잰 듯 앞뒤 정확한 간격으로 줄지어 서 있다. 어른 무릎께만큼 자라다가 좌우 쇠파이프를 따라 날개를 퍼덕이듯 오직 양 갈래로만 휘어진, 사지가 찢어진 흉물스러운 모습의 배나무였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가지는 없다. 옆으로만, 밑으로만 향하도록 일찌감치 억제되고 전지되었다. 쇠파이프 구조물의 각도와 형태대로 큰 줄기는 굵은 철삿줄로 옭아매지고, 신경세포망처럼 거미줄로 뻗어나간 잔가지들만 사방으로 어지러이 매달려 있다. 하늘은 촘촘한 그물망으로 둘러쳐져 더이상 멧새들의 놀이터로도, 마실 가던 까치도 나뭇가지에 접근하지를 못한다. 자연물을 어떻게 저렇게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 수가 있을까, 대단하기에 앞서 섬뜩함이 느껴졌다.
포승줄에 묶인 노예의 형상이 따로 없다. 물 밖으로 드러난 가두리 양식장이 저러할 듯싶다. 허용되는 것은 오직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복종하는 일뿐, 자유로이 제 방향과 뜻과 의지대로 뻗어나가는 일탈은 용서받을 수 없다. 밀림에 살던 맹수들이 서커스 묘기를 위해 순종하고 조련되듯, 대지의 나무들도 주어진 재배 조건에 맞춰 분재처럼 구부려지고 뒤틀리며 순응하고 있었다. 박탈된 자유와 구속된 행복이었다.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어서인가. 낭만적 정서와 효율적 사고와의 간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벼를 보지 못한 도시 아이들이 나무를 그렸다는 무지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창공으로 자유롭게 퍼져나간 녹각 같은 가지와 무성한 잎들 사이에 보석처럼 감춰진 열매를 기대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무안하기 이를 데 없다. 과수원은 더이상 동화 속의, 수채화 속의 옛 풍경이 아니었다.
경제 논리일 것이다. 과수원 운영이 재미나 놀이가 아닌 이상 최소의 비용과 최대의 수입에 골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손도 적게 들고, 작업도 수월해야 한다. 작은 흠집 하나 용납하지 않는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알도 크고, 모양도 번듯하고, 색깔도 예쁘고,단물도 듬뿍 들어야 한다. 최상의 품질은 겉보기에 의해 결정될 뿐 누가,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길러냈는가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속도와 효율, 계산과 실리 앞에 낭만이나 신뢰감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케이지 속의 닭처럼 과수원도 과일을 대량생산하는 공장과 다를 바 없게 된 모양이다.
미련은 남는다. 무농약이나 유기농처럼 생물학적 영양분도 좋지만, 행복하게 자란 식물과 짐승이 그것을 먹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든다는 정서적인 가치 상승도 기대해 보고 싶다. 귀하고 비싼 음식보다, 착한 식당의 그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씨가 우리를 더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고 싶다. 편하고 빨라지고 모든 것이 풍족한 세상이지만 아직도 여전히 불안하고 부족하고 쫓기며 사는 것은, 그 삶의 여정과 순간들 속에서 느낌표와 감탄사들을 잃어버리고 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꿈이 없는 삶이 아니었을까. 무엇으로 행복한지, 어떤 것이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삶인지 한 번쯤 되짚어보지도 못하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세상이 정해준 관념과 관습에 얽매이고 성공과 출세라는 사회적 평점에만 목매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것이 아닌데' 하면서도 하고 싶은 일보다 해내야만 될 일이 많은 세상을 탓하며 구속과 속박의 틀에 스스로 노예가 된 것은 정작 나 사진이 아니었을까 되물어본다.
배꽃은 꿈을 더는 꾸지 못한다. 우리는 꿈이 없는 과일을 먹고 산다.
쇠꽃, 향기 머물다 / 허정진
둥글둥글한 버섯들 군생처럼 옹기종기 처마를 맞댄 시골 마을이다. 한해의 결실을 보고 난 뒤의 들판은 허무인지 여유인지 텅 빈 충만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담장 너머 등불처럼 붉게 매달린 홍시가 방학 때마다 외갓집 오고 가는 길목처럼 정겹기만 하다. 숲속 어딘가에서 갑자기 허공으로 높이 날아오른 새가 폐곡선을 그리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선들선들한 바람이 조붓한 돌담길을 따라 마을을 안내하듯 앞장선다. 오래된 시골집이다. 귀향을 염두에 두고 잠시 머물 거처를 찾던 중이었다.
뒤란에서 불어오는 대숲 바람, 호박넝쿨 타고 오르는 낮은 돌담, 우물가 옆에 돌확이나 숫돌이 주인 잃은 빈집을 지키고 있다. 한때는 올망졸망한 자식들 앞세운 일가족이 등가죽 따뜻하게 살던 집이었으리라. 사람 냄새 들썩거리던 온기는 사라지고 시간의 덫에 걸린 풍경만 먼 산 뻐꾸기 울음처럼 휑뎅그렁 남겨졌다. 눈길 머무는 대문 옆 허청에 가지런히 놓인 농기구들이 눈에 띄었다.
조가비처럼 닳고 닳아 뭉툭해진 호미며 낫, 손잡이가 낡아 푸석이는 괭이와 삽, 헛간 안쪽에는 오래된 보습이나 쇠스랑도 동면하듯 웅크리고 있다. 사용한 지 오래되어 하나같이 쇠붙이마다 붉은 녹이 슬었다. 비록 낡고 오래되어 볼품없지만, 주인과 함께 평생 한 몸이 되어 살았던 삶의 도구들이다. 한 가족의 역사이고 주인의 생애가 그대로 읽히는 것 같다. 이제 모두 먼 세상으로 떠난 지금, 살아생전 주인이 쏟았던 새척지근한 땀내만 낙오병처럼 남아 침묵 속에 묵은 시간을 붙잡고 있다.
저 쇳덩이에 이끼처럼 달라붙은, 붉은 강낭콩보다 더 서러운 쇳녹이 처연하게도 보인다. 시간의 모서리마다 조금씩 허물어져 가는 쇠의 부식은 또한 스산하고 처량하다. 불그죽죽한 녹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색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죽기 전에 피는 것이 꽃이라면, 차갑고 단단한 무쇠가 온몸을 불태워 열정을 쏟은 후에 비로소 꽃이 되는 것을 눈앞에 지금 보았다.
녹이 뱉어낸 쇠의 꽃, 마지막 제 목숨을 소신공양하는 듯 온몸에 불을 질러 붉은 융단을 펼쳐놓았다. 잎도 줄기도 없이 마냥 붉기만 한, 기름기 빠진 무쇠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생生을 비워내고 있는 것일까. 향기 또한 인고의 시간만큼 비릿하고 시큼하다. 짐 진 삶의 무게를 버텨내느라 평생 단내 나는 통증만 꿀꺽꿀꺽 삼켰던 모양이다. 대뜸 꽃말이 궁금해지는 것은 웬일일까.
이제는 녹슬고 부식된 쇠붙이지만 처음에는 대장간 불내 풀풀 날리며 날렵한 자태를 뽐냈으리라. 세상 무슨 일이든 감당하려는 듯 당당하고 강단 있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마른 땅이든, 진 땅이든 주인과 함께하는 길을 두려워하지도, 망설이지도 않았다. 밤낮도 없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척박한 농토를 일구느라 바윗돌에 온몸이 부딪쳐도 참고 견뎌냈으리라.
보릿고개를 이겨내고 생때같은 식솔들 목숨을 거두느라 고난의 세월을 주인과 함께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 식구 배불리 먹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자식들 도시로 보내 공부시킬 수 있을까. 오장육부를 떼어주고 뼈를 갈아 자식 몸에 붙여주느라 모든 것을 수고하고 희생한 땀내를 저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앉으나 서나 일밖에 모르는 지난한 삶에 지친 몸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는 날들이었다.
만추의 낙엽 하나가 그 메마른 무게로 계절을 바꾸었듯이 작고 시커먼 쇠붙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내력을 가졌다. 녹진한 세월을 증명이라도 하듯 살이 빠져나간 자리에 쇠골이 깊어졌지만, 그들이야말로 특별하고 위대한 우리 부모들의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온몸에 흙내가 물씬 밴 저 쇳덩이 하나하나가 삶의 전부이고, 생을 버텨낸 유일한 무기였을 그들의 노고가 눈앞에 그려진다.
저 쇠꽃은 희생과 헌신 뒤에 얻을 수 있는 영광의 빛이고 결이다. 비록 내 몸은 닳고 부서져 없어지지만, 사랑하는 그 누군가를 위해 뼈를 깎는 아픔과 고통을 참고 견뎌낸 땀이고 눈물의 결정체다. 그래서 쇠의 우담바라이고, 어둠 속에 반짝이는 염화시중의 미소일지도 모른다. 평생을 오체투지로 걸어온 저 쇠꽃이야말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천둥에도 꺾이지 않는 꽃 중의 꽃이다. 벌 나비 날아든 적 없지만, 그 어느 보석보다 빛나고 향기로운 꽃이다.
저 녹슬어 사라져가는 쇠꽃이 노인 얼굴에 검버섯을 보듯 슬프게도 느껴진다. 인생처럼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자연으로 회귀하는 일이다. 그러나 꽃이 된 녹은 또 내일의 씨앗을 함께 품고 있는 셈이다. 사라져간다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탄생을 위한 눈부신 산화일지도 모른다. 원래의 본성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생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귀하고 다행한 일인가. ‘사라진다’를 힘주어 읽으면 ‘살아진다’가 되는 것처럼 다시 원점에서 시작한다는 뜻이다.
이제 세상을 등지고 붉게 물들어 가고 있는 저 쇠붙이들이 어쩌면‘녹’이 될 수도 있고 ‘꽃’이 될 수도 있는 경계를 생각해본다. 힘든 삶이라고 좌절과 포기로 손을 놓는 것과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뒤에 얻어지는 결과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고통 없는 인생은 없을 것이다. 비록 쇠하여 없어질 몸이지만 삶의 끝머리가 녹이 아니라 꽃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살아볼 일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열정을 다해 노력하다 맞이하는 종말은 아름답다. 저 농기구의 붉은 녹도 대나무처럼 자기의 모든 힘을 다 쏟아내고 죽기 전에 단 한 번 피우는 무쇠의 열꽃이 아니던가. 생애 마지막에 피는 찬연한 꽃, 물과 햇볕 없이 소금기로 자라는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뜨거운 꽃이다. 호미는 호미대로, 곡괭이는 곡괭이대로 지나온 삶의 비문 같은 쇠꽃에 손을 얹어보면 가을 햇살 가득한 그리움이 손금 사이로 배여 나올 것 같다.
창(窓), 빛 들다 / 허정진
한 평 남짓 서재에 손바닥만 한 들창이 하나 있다. 그 옛날, 창호지 문에 댄 유리 조각을 통해 바깥세상을 내다보는 것처럼 비밀스러운 눈길로 다가간다. 담장 너머 가지에 감꽃이 열리고, 옆집 마당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저 멀리 골목길에 아장아장 손자 걸음을 쫓아가는 노인의 굽은 등도 본다. 창은 작아도 세상은 넓다. 그 창문을 통해 사람과 계절과 경치를 빌려오고 그럴 때마다 삶의 길목과 순간들을 반추하며 상념에 빠져든다. ‘빌려온 풍경’이니 차경(借景)이다.
추사 김정희의 ‘소창다명사아구좌(小窓多明使我久坐)’라는 글귀가 있다. ‘작은 창문으로 많은 빛이 들어오니 나로 하여금 오랫동안 앉아있게 하는구나.’ 거실의 커다란 유리창을 활짝 열어볼까? 창밖에 머물던 아지랑이 햇살, 향기로운 꽃내음, 그늘 품은 바람, 유쾌한 새소리가 창턱을 넘어 안쪽 세상으로 넘나들 것이다. 벽으로 둘러싸여 켜켜이 묵은 도피와 가난한 마음들이 창문을 통해 빠져나갈지도 모른다.
창밖의 세상은 언제나 낯설었다. 궁금할 때마다 다가섰으나 여전히 바깥은 보이지 않는 간유리 같았고, 유리를 사이에 둔 키스처럼 단절된 창문이었다. 성에가 낀 창문은 바깥의 얼음 강 소리를 들썩이며 매번 슬픈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달빛인지 가로등인지 알 수 없는 희붐한 빛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뻗으며 밤새 뜬눈으로 응시한 적도 있었다. 유리 벽에 코를 박은 스푸트니크의 개가 떠올랐다.
반지하 방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사하라사막 마트마타의 지하 토굴집처럼 창이 없었다.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먹과녁 같은 초행길 가듯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지만 당장 내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세상살이란 내 계획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경우도 다반사인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낭떠러지에 묶인 생은 차갑고 가파르기만 했다. 처음부터 주어진 업(業)과 습(習)인 듯 사막의 모래 장미를 꿈꾸며 메마른 삶을 걷고 또 걸어가야만 했다.
반지하인 그 방은 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했다. 외부의 빛이라곤 벽 위쪽에 손바닥만 한 쪽창 하나뿐이었다. 통풍도, 채광으로도 별 의미가 없었다. 다만 안과 바깥의 경계를 알려주는 표시등, 그것마저 없다면 숨 쉴 수도 없는 아가미 같은 존재였었는지도 모른다. 지면과 가까이 붙어 있는 그 창은 골목에 지나다니는 자동차 타이어나, 사람도 무릎 아래 신발만 보일 만큼 낮았다. 창문이 작아 고개를 들이밀 수도 없어 주어진 것만 허용된 감금당한 공간 같았다.
바깥을 보기 위해 창문을 여는 일은 없었다. 가끔은 희망의 빛줄기처럼 그 쪽창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작은 창마저 활짝 열지는 못했다. 먼바다 고기잡이배의 집어등인 양 창문 밖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들까 봐 두려웠다. 열 수 없어 끝내 벽이 되어버린 창문이었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먹구름 같은 울음이 몰려올 때 쪽창으로 숨구멍 하나 열어 놓으면 그 작은 틈새 사이로 푸른 달빛이 흘러들었다.
내게 창(窓)이 필요하다며 늘 속으로 뇌까렸다. 커다란 창이 있는 집에 산다면 그 창은 투명유리로만 만들어서 방안에 앉아서도 온 세상이 다 보이도록 씨쓰루(see-through)하겠다고 꿈꾸었다. 그 창문에는 커튼이나 블라인드 따위로 벽을 만들지도 않을 것이며, 때로는 창틀에 걸터앉아 밤새 하모니카를 불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한 높이에서 저 그리움 가득한 세상을 향해 멀리 활강하는 새가 되고 싶었다.
지금은 햇볕 잘 들어오는 큰 창문이 있는 집에서 산다. 먹고사는 문제는 언제나 지나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서럽고 불편했던 기억들이 트라우마처럼 잠재하는 모양인지 마음의 창문은 아직도 제대로 열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 창을 활짝 열어 쇄서폭의(曬書曝衣)하지 못하고 햇볕도, 바람도 거부하며 묵은 곰팡내를 키우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행여 나는 창문 없는 방에 스스로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아직도 보이지 않는 쇠창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늦게 자신이 두렵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창일 것 같다. 창문이 작아서, 반지하에서 산다고 세상이 우울한 것이 아닐 것이다. 세상에 열리지 않는 창문은 없다. 창을 열지 않으려는 두려움만 있을 뿐이다. 청안시보다 백안시였다. 고집으로, 자존심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불신으로 그 창문 바깥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문은 소통의 통로이다. 창을 통해 사람과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고립된 세계에서 또 다른 세상으로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창을 통해 바깥 사물을 내 인식의 마당에 끌어 들어올 수 있고, 블로그처럼 나의 창을 통해 내 삶을 누군가에게 특정한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캄캄한 밤길을 걸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날개도 등불도 아니고 곁에서 함께 걷고 있는 동무의 발걸음 소리다.’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작지만 내 창문에도 벌 나비가 날아들었으면 좋겠다.
바깥에서 들여다본 내 창은 등황빛이었으면 한다. 차가운 형광등이나 형형색색의 LED 불빛보다 방 모퉁이 키 큰 스탠드에 따뜻한 백열등 하나 켜두는 것이 좋겠다. 한겨울 창호지 너머 바느질하는 어머니와 앉은뱅이책상 앞에 연필을 쥐고 있는 어린아이의 등 그림자가 몰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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