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이제 젊어져야 한다 / 손 광 성
수필, 이제 젊어져야 한다. 수필은 젊은이의 글이 아니라 노인의 글이라는 생각부터 고쳐야 한다. 우리가 수필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 수필은 진부하고 고루한 문학이 되고 만다.
수필이 젊어지기 위해서는 수필가부터 젊어져야 한다. 수필가가 진부하고 고루한 생각에 안주하고 있는 한 수필이 젊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젊어져야 한다는 말은 생물학적 연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 연령을, 정서적 연령을 말한다. 늙은 30대가 아니라 젊은 70대를 말하는 것이다.
젊어지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이 있고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권위주의 사고와 매너리즘, 속물근성과 닫힌 마음은 버려야 할 것이고,합리주의 사고와 탐구 정신과 정신적 귀족주의와 열린 마음은 지켜야 할 것이다.
권위주의적 사고는 감성을 시들게 하고 유연성을 상실케 한다. “내가 사회적 지위가 이러한데, 내가 등단을 먼저 했는데, 내가 누군가? 나는 이미 대가다.” 하는 식으로 문학 외적인 것에 의존하여 독자와 후배들 위에 군림하려는 사고에는 창조적 정신이 깃들지 못한다. 자만심은 감성을 고갈시키고 황폐화시킨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 나이도, 학벌도, 사회적 지위도 문제되지 않는다. 그런 것에 의존하는 순간 이미 그는 예술가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수필 문단에는 이런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적지 않다. 등단 햇수나 따지면서 선배연하는 자세가 그것이다. 그런 경직된 자세로는 문학을 생산하지 못한다. 살아 있는 것들은 낭창거린다. 죽은 것들은 뻣뻣하다. 학자연하는, 선배연하는, 대가연하는 사람들은 수필가로 적합하지 않다. 수필은 이미 시인이나 소설가나 학자들의 여기(餘技)가 아니다. 그것은 전문 수필가의 문학이다. 예술은 권위적의를 경멸한다. 합리적 사고를 존중한다. 따라서 예술가란 경직된 권위주의에 대향하여 싸우는 사람이며, 그런 경직된 사고의 파괴를 서슴지 않는 사람이다.
권위주의적 사고 못지않게 수필을 늙게 만드는 것이 매너리즘이다. 대상에 대한 집중적 사고나 지속적 탐구 없이 늘 하던 대로 글을 쓰는 태도가 그것이다. 수필이 고루하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보다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는 도전 정신의 결여에서 나온다. 스스로 참신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했을 때 매너리즘은 싹트고 또 자란다. 그런 작가적 자세에서는 참신한 작품을 기대할 수 없다. 같은 제재, 같은 주제라 하더라도 보는 시각이 개성적이고 표현이 참신하면 새로운 예술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이 없는 습관적 집필 태도는 하루 빨리 지양되어야 한다.
매너리즘이 나태에서 나온다면 속물근성은 어떤 의미에서 체질적인 것이다. 속기(俗氣)란 스스로 씻어 내지 않으면 고치기 힘든 병이다.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가 없다. “향을 쌌던 종이에서 향내가 나고, 생선을 쌌던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는 법이다.” “모든 병은 고칠 약이 있지만, 속기는 고칠 약이 없다. 다만 책이 있을 뿐이다.” 상촌 신흠의 말이다. 그렇다. 독서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자기가 속물이란 것조차 모른다. 그러니 그런 사람의 글에서는 비린내가 날 수밖에 없다.
수필은 태생적으로 지적인 귀족 문학이다. 비록 신변잡사를 소재로 하는 것이 수필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신변잡사를 예술적으로 표현하여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수필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소설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표현에서 수필은 소설과 달라야 하는 것이다. 소설처럼 야해질 수는 없다. 그 출발부터 수필은 품위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수필가가 그런 자부심을 잃을 때 수필은 신변잡기나 잡문에 머물고 말 것이다.
그리고 수필을 쓰는 사람은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자기의 패러다임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할 때 과감하게 수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고루한 글이 되고 말 것이다. 권위주의적 사고나 매너리즘, 속물근성과 닫힌 마음은 예술가가 제일 먼저 타기해야 할 악덕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사물을 새롭게 보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글쓰기란 다른 것이 아니다. 세상 읽기다. 세상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글의 깊이가 결정되는 것이다. 아집과 편견을 버려야 한다. 그때 비로소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그리고 마음이 열린다. 세계가 가슴을 열고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것도 바로 이때다.
수필은 이제 젊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필을 쓰는 작가들이 젊어져야 한다. 아니, 수필을 쓰는 마음이 젊어져야 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상투를 틀고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 매너리즘에 안주하는 나태한 사람, 집필할 때만 선량을 가장하고 일상에서는 닫힌 마음으로 시기와 질투를 일삼는 사람들이 수필을 쓰는 한, 수필의 장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수필, 이제 젊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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